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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떤 사람이 큰 잔치를 베풀고 많은 사람을 초대하였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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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앙 생활하면서 참 신앙인을 만나기 어려워요. 하느님을 닮은 사람을 만난다는 것이 쉬운 것은 아닙니다. 성당안 참 요란합니다. 성당 안에 활동하다 보면 가장 어려운 사람들은 판단하시는 분들입니다. 참 어려워요. 그분들은 너 자신을 알지 못해서 알려 준다고 하는데 그런데 시간이 지나고 나면 쫒겨나는 그런 모습입니다. 싫으면 싫다고 하면 나름 거리를 두어서 서로 공존을 찾아 볼 수 있는데 구지 너를 생각해서 그런 말을 한다고 하면서 나중에 가면 심판을 당해서 쫒겨나는 그런 모습입니다. 재속회도 그렇고 레지오도 그렇고 성서 공부도 그런 말을 들었고, 나중에는 발을 딛을 수 없는 상황이 되어서 스스로 물러 나올 수 밖에 없는 상황으로 나오게 되었지요. 나의 가슴 아픈 일도 있지만 잠시 나를 돌아봅니다. 내가 그렇게 잘났나? 그래서 사람들에게 미운 털이 박힌것은 아닌가? 아니면 오늘 독서에서 말씀하셨듯이 예수님은 하느님의 아들이지만 인간의 모습으로 오셨고 인간과 다를 바 없이 생활하시고 인간의 몰이해로 다름을 다름으로 인정 받지 못해서 너는 틀려 잘못되었어 라는 판정으로 주님은 십자가 죽음을 당한 것인데 ..내가 주님을 닮아 가려다 보니 사람들과 다름이 다름이 아니라 틀린 모습으로 보여서 그렇게 된 것은 아닌가? 어느 상황인지는 잘 모르겠습니다.저도 더 덕을 쌓아야 하는 사람은 분명합니다. 예수님도 완전한 분이셨지만 그런 인간의 모습에 여타 말이 없으시고 온전히 당신의 죽음을 받아 들이시고 온전히 사랑하다가 십자가 죽음을 받아들이신 분입니다. 더 예수님을 사랑해야 겠다는 마음이 더 듭니다.
사람과 사람사이에서 격는 것은 여러 분류가 있습니다. 나를 알고 사람을 알아야 하는데 나도 모르고 사람들도 모르면 문제는 심각해 집니다. 나를 알 수 있는 것은 예수님과 하나되는 과정 안에서 나를 알 수 있습니다. 성화된 신부님들과 대화를 하고 그분들과 같이 생활하다보면 내 모습을 볼 수 있습니다. 왜냐하면 그분들이 생활하시는 모습안에서는 성화된 모습이 나오고 그 모습을 내 모습의거울로 비추어 지기에 나를 알수 있는 것입니다. 그런데 그런 거울을 볼 수 없다면 내가 완전체로 몰인지되어서 죄를 유발합니다. 영혼의 거울이 없어서 그런 죄를 짓게됩니다. 더 중요한 것은 영혼의 고요함을 찾지 않으면 항상 출렁이고 죄를 짓게됩니다. 영혼의 고요함은 나를 내어 놓고 그분에게 온전히 의탁하는 것입니다. 나를 온전히 비우고 그분을 받아 들이는 것입니다. 완전한 영이신 분을 받아들이는데 성찰이 있어야 겠고 비움이 있어야 겠고 경청이 있어야 겠습니다. 예수님도 인간이 불완전하고 어둠이 섞여 있다는 것을 알고 계시고 그럼에도 불구하고 인간을 구원하고자 그 안으로 들어오십니다. 인간을 구원하기 위해서요. 인간의 죄로 필연적으로 십자가 죽음이 일어 날것을 앎에도 불구하고 그 공통의 잔을 받아 들고 드신 것입니다. 인간을 위해서 ..인간의 구원을 위해서.. 주님은 자신을 알고 세상을 알기에 십자가 죽음을 맞이하신 것입니다. 그런데 우리는 우리 자신도 모르고 예수님도 모릅니다. 그래서 복음에서 주님이 초대했는데도 불구하고 여러 핑개를 대면서 그 초대에 불응한 것입니다. 우리 자신도 잘 알아야 겠습니다. 내가 누구이고 주님이 누구신지? 앎으로 넘어가기 위해서는 완덕의 여정을 걸어가야 합니다. 스펙을 쌓듯이 무엇을 행동하면서 무엇을 채워가면서 내가 나를 어떤 행동을 하게 하므로서 신앙의 완덕에 이르는 것은 아닙니다. 성화는 채움의 여정이 아니라 비움의 여정이고 성령이 임하시는 여정입니다. 성령은 비움이 있고 빈공간안에 들어 오십니다. 비움의 단 모습이 예수님의 빈 무덤입니다. 인간의 모습안에서는 빈 모습이었습니다. 그러나 그분은 영으로 활동하신 분입니다. 인간의 모습안에서 채움이 없이 비움의 모습안에 계신 분이셨습니다. 성령과 하느님이 예수님 안에 같이 공존하신 분입니다. 예수님이 예수님이 되는 것과 내가 예수화 되는 것은 우리가 걸어갈 길입니다. 그 길은 나를 이끄시는 분에게 온전히 의탁함에 따라서 걸어가는 것입니다. 아멘 † 성부와 성자와 성령의 이름으로 아멘.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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