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4년 7월 6일 (토)
(녹) 연중 제13주간 토요일 손님들이 신랑과 함께 있는 동안에 슬퍼할 수야 없지 않으냐?

자유게시판

오천명을 먹인 사건의 반향

스크랩 인쇄

이상훈 [buyeolee1] 쪽지 캡슐

2009-01-08 ㅣ No.129400

 

(오천명을 먹이시다)

예수님께서는 빵 다섯 개와 물고기 두 마리를 손에 들고 하늘을 우러러 찬미를 드리신 다음 빵을 떼어 제자들에게 주시며, 사람들에게 나누어 주도록 하셨다. 물고기 두 마리도 모든 사람에게 나누어 주셨다.(마르꼬6:40).


(성찬례를 제정하시다)

그들이 음식을 먹고 있을 때에 예수님께서 빵을 들고 찬미를 들이신 다음, 그것을 떼어 제자들에게 주시며 말씀하셨다. “받아라 이는 내몸이다..........”(마르꼬14:22)


마지막 만찬과 오천명을 먹이신 사건에 관한 설명에서 마르꼬 복음사가는 “손에 들다” “찬미를 들이다” “떼다” “주다”라는 네 개의 동사를 사용한다.

왜 이런 교차된 표현들이 최후의 만찬으로부터 빵과 물고기의 식사로 거슬러 올라가는가?

빵과 물고기를 통한 기적에 관한 마르꼬복음서의 이야기는 배고픈 상황에 대해 두 개의 서로 다른 해결책을 제시함으로 시작된다. 사람들은 광야에서 하루종일 예수님의 말씀을 들었으며 이제는 날이 저물었고 군중들은 허기져 있었다. 제자들이 제시한 해결책은 대단히 합리적이다. “그러니 저들을 돌려보내시어, 주변 촌락이나 마을로 가서 스스로 먹을 것을 사게 하십시오.(6:36) 예수님이 제시한 대안은 불가능해 보인다. “너희가 그들에게 먹을 것을 주어라”(6:37) 이 대안에 대하여 제자들은 “그러면 저희가 가서 빵을 이백 데나리온어치나 사다가 그들을 먹이라는 말씀입니까?”라고 대답한다. 예수님과 제자들의 이런차이는 결정적인 차이이다. 그렇지만 이야기가 진행됨에 따라 예수님은 단계적으로 전체과정에 참여하도록 만든다. 예수님은 그들로 하여금 먹을 것을 찾아보도록하며(6:38), 사람들을 풀밭에 무리지어 앉도록 하시며(6:39), 음식을 나누어주며(6:41), 먹고 남은 것을 모으게 하신다.(6:43) 다시말해 그들은 자신의 해결책(그들을 보내자)이 아닌 예수님의 해결책(그들에게 먹을 것을 주라)을 받아들여 그 해결책에 참여하지 않을 수 없게 되었다. 예수님은 하늘에서 만나를 내리게 하거나 돌을 빵으로 만들지 않았다. 즉 빵 다섯 개와 물고기 두 마리를 취하셨다. 그리고 그것이 예수님의 손을 거치자 거기 있는 모든 사람들이 먹고도 남을 수있게 된것이다. (Marcus J Borg)

 

이 복음서의 요점은 빵과 물고기가 많아졌다에 있을까요? 아니면 그것을 나누어 주었다는데 있을까요?. 중요한 것은 어린아이를 통해 봉헌받은 빵다섯개와 물고기 두마리가 예수님의 손을 거칠때 모든 사람이 먹고도 남을 만큼 된 것입니다. 그것은 군중들을 가엾게 여기시고 그들과 나눔을 가지고자 했던 예수님의 의지대로 해결책이 제시되었다는 것입니다.


마르꼬 복음서를 통해 예수님께서 우리에게 던져주는 메시지가 무엇일까? 지금의 이 논쟁이 성령의 도우심으로 세상의 학설이나 논쟁이 대상이 아닌 영원한 말씀의 진리로 모두 함께 하길 기도합니다.



815 37

추천 반대(0) 신고

 

페이스북 트위터 핀터레스트 구글플러스

Comments
Total0
※ 500자 이내로 작성 가능합니다. (0/500)

  • ※ 로그인 후 등록 가능합니다.

리스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