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4년 7월 5일 (금)
(홍) 한국 성직자들의 수호자 성 김대건 안드레아 사제 순교자 너희는 나 때문에 총독들과 임금들 앞에 끌려가 그들과 다른 민족들에게 증언할 것이다.

자유게시판

정추기경님의 중앙일보 대담에 대한 소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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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정제 [wild306] 쪽지 캡슐

2009-01-10 ㅣ No.129451

 
 

나누세요 넉넉해집니다  그것이 `오병이어의 기적`입니다.

정진석 추기경의 새해 메시지

 
  정진석 추기경은 “하느님이 정하신 질서가 진리다. 그래서 진리가 선이고, 선이 아름다움이다. 진선미가 하나다”고 말했다. 강정현 기자
 
 
추기경님의 아래 대담에 대하여 비평을 해 보고자 합니다.
이는 과연 추기경님이 성경 본문을 거슬러 교회의 입장과 반대되는 주장을 하신 것인지 알아보기 위해서 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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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성경(마르코) 해당 본문에서 오병이어로 사람을 배불리게 먹이셨다고 한 것에 대한 교회의 주해를
우선 찾아봅니다.
4복음 모두 같은 내용의 비슷한 기술의 본문이 있지만 마르코 복음이 공관복음의 기본이 되므로 이 고찰은 마르코 복음을 주로 기본으로 삼습니다.
 
마르코 6장의 해당 본문을 중심으로  새성경 주해  봅니다.
 
1-1 
6장 "34절 주님이 배에서 내리시어 큰 군중을 보시고 가여운 마음이 드셨다"
===>
주님은 그 군중들에게 왜 가여운 마음이 드셨을까?
"목자없는 양뗴들로 보셨기 때문"이다 
이 귀절은 주님이 당신을 그들을 이끄실 "목자"로 이해하셨음을 보여준다
 
1-2
"34절 "그래서 그들에게 많은 것을 가르쳐주기 시작하셨다"
===>
이 귀절은 마르코만이 예수님의 자비와 당신이 목자로써의 사명을 드러내는 그분의 가르침을 부각한다.
 
1-3
"47절 "너희가 먹을 것을 주라" 하시자 "돈주고 사서 그 많은 자들을 먹이란 말이냐?"라 제자들은 되묻는다
"너희중 먹을 것이 얼마나 있느냐?" 라 묻자 "빵 다섯개와 물고기 두마리가 있다" 라 대답한다. 참고로 다른 복음서에는 어린아이가 오병이어를 가져다 준것이라고 기술한다
 
참고 조정제의 주 :
이런 기술을 보면 여자와 어린아이를 제외한 군중이 5000명이나 되었다 하였는데 그들중에도 음식을 가지고 있음을 시사하는 대목으로 보여집니다.
왜냐하면
사도들은 그들 군중 하나하나를 모두 조사하여 "오병이어만 있을 뿐이다"라 하지 않았기 때문이지요.  
너희중이란 수천의 군중을 의미하는 말씀이 아니라 사도들을 지칭하시며하신 말씀으로 사료됩니다.
 
1-4
"39절 "예수님은 군중을 오십 내지 백명씩 정돈하여 푸른 풀밭에 자리잡게 하신다"
===>
푸른 풀밭은 시편 23절을 연상시킵니다.
마르코의 이 귀절 역시 주님은 당신 자신을 백성들을 잔잔한 물가와 푸른 풀밭으로 인도하여 쉬게하고(마르코31절 참고)
그들에게 먹을 것을 주시는(시편23,5) 목자로 드러내고 있습니다.
 
1-5
39절 정돈하여 자리잡게한 군중들은 34절과 대치되며
탈출기(출애굽기)18장. 민수기31장, 신명기1장)  광야를 행진하는 이스라엘 백성의 조직을 상기시킵니다.
이러한 조직은 하느님의 이상적인 조직으로 간주되었다고 구약성서 마카베오1장에서도 언급합니다.
 
1-6
41절 "....하늘을 우러러 찬미를 드리신 다음..."
===>
이런 기도는 유다교의 식탁에서의 기도 모습과 흠사하고 또한 그리스도교의 새로운 식탁인 성찬례중의 기도와도 흡사하며
성찬례에서는 이 의식에 새로운 의미를 부여한다
이 "찬미"는 빵을 나누는 의미를 드러내며 하느님꼐서 당신의 백성들에게 베푸신 모든 선행을 상기시키는 기회도 됩니다.
 
1-7
43절 "광주리" 란 단단한 버드나무로 만든 광주리로써 거기에 유다인들은 생활용품을 담았다
 
1-8
43절 "열두 광주리에 기득 찼다"
광주리의 수가 열두제자의 수와 일치함은 바로 (열두)사도들의 적극적인 역활을 강조하는 것이기도 하며
충분하고도 남은(열왕기 후4, 43-44) 음식을 모았다는 것도 사도들의 중개에 의해 아직도 식사에 동참할수있음을 의미하기도 한다.
 
2. 소순태형제님이 제공한 자료들 중 인용
(이름이 거론함을 죄송하게 생각합니다. 인용출처를 밝히느라 그렇게 한 것입니다. 원하신다면 이름은 익명으로 하겠습니다.)
 
2-1
참고: 추가로, 요한 바오로 2세 교황님과 베네딕토 16세 교황님들의 강론 말씀들 중에서 오병이어 사건, 즉 "빵을 늘리시는 사건(multiplication of loaves)"을 기적이라고 직접 말씀하신 자료들에 대한 검색 결과를 쉽게 읽으실 수 있도록 아래에 링크 설정 조치를 하습니다. 이 자료들을 또한 필히 참고하시기 바랍니다.
 
2-2
(2009/01/08) : 참고: 예수님께서 직접 빵을 늘리셨다는 증거는 마태오 복음서 15,36에 있습니다:
그리고 빵 일곱 개와 물고기들을 손에 들고 감사를 드리신 다음 떼어 제자들에게 주시니, 제자들이 군중에게 나누어 주었다.(Then he took the seven loaves and the fish, give thanks, broke the loaves, and gave them to the disciples, who in turn gave them to the crowds.)
 
===>
아래 대목은 예수님께서 직접 빵을 늘리셨다는 증거로는 불충분해 보입니다.
왜냐하면 주님은 빵(과 물고기)를 들고 감사기도를 드리신 후 그것들을(음식들을) 떼어서 제자들에게 주셨다 하셨기 때문입니다
쪼개어진(나누어진) 음식물을 들고 제자들은 다시 군중들에게 나누어 주었다 성경 분문은 진술을 하고 있지...
예수님이 감사기도를 드리신 후 빵과 물고기를 수천배로 불리셨고 그걸 제자들에게 나누어 주시며 군중들에게 먹였다는 진술이 복음서에는 없기 때문입니다.
 
또한 자기 먹을것을 자기가 꿍쳐놓은 것을 예수님때문에 내놓은 것 역시 음식을 직접 늘리신것과 다른점이 별반 없는 것이 아닐까 생각합니다.
 
((참고))
루가 19장 예수와 자캐오의 본문을 보면
예수님을 따라다니는 수많은 군중들의 이야기가 있습니다.
물론 그 중 자캐오만 구원을 받았구요...
 
그 군중들은 그동안 어떻게 양식을 먹었을까요?
그 군중들에게 예수님이 먹이셨다는 기록은 물론  없습니다.
이런 사유를 볼때 군중들이 예수님을 따라다닐때 어느 정도 자기가 먹을 양식은 가지고 다니지 읺았을까 하는 생각을 해 봅니다. 
 
2-3
(2009/01/08) : 위의 나바르 주석은, 사도들을 통하여 음식을 분배하게 하신 것은 "이 기적"의 결과라고 설명하고 있습니다:
He also avails of the Apostles to distribute the food--the result of the miracle--to the people.
 
===>
 
나바르 주석에는 동의합니다.
주석은 위의 본문처럼 사도들을 통하여 군중들에게 음식들이 나누어진 것이야말로 기적의 결과라 혹은 기적의 결과로써 주님은 사람들에게 사도들을 통헤서 음식물을 나누어주도록 한 것이라는 해석에서 중심을 이루고 있는 것은 "주님이 사도들에게 음식물을 분배하도록 하였다" 라는 것에 있습니다.  
 
위의 나바르 주석에는 구체적으로 기적이 무엇인지에 대해서는 언급하고있지않다고 생각되어집니다.  
 
3. 4복음서에 나타난 오병이어를 오천명에게 먹이신 것에 대한 새성경과 200주년 기념성서에서의 종합적인 주석입니다.
 
3-1
우선 초대교회안에서 수천명을 먹이신 자연기적사화가 몇가지 형태로 존재하였다 합니다.(꿈란 공동체에서도 이러한 사화가 발견되었다고 합니다.)
 
3-2
그런데 이러한 자연기적사화는 구약성경에도 멸가지 보입니다.
3-2-1
엘리아가 사렙다의 과부에게 밀가루와 기름을 떨어지지않게 해준 사화(열왕기상 17장)
3-2-2
엘리아가 보리떡 20개로 백명을 먹였다는 기적사화(열왕기하 4장)
3-2-3
이러한 구약성서 기적사화들이 오병이어기적사화에 영향을 준것임이 틀림없다는 견해가 성서학자들 사이에서 다수에 속한다 합니다.
엘리아는 고작 보리떡 20개로 100명을 먹인 분이지만 주님은 밀떡 5개로 오천명을 먹이셨다(여자와 아이들까지 합치면 7~8000명)
3-2-4
마르코는 위에서 진술한 주해처럼 주님이 모세나 다윗을 능가하는 목자로 당신의 백성을 푸른 풀밭으로 인도하시고 먹이시는 분으로 은유하고 있습니다.
3-2-5
특히 유대인의 사상에는 종말에는 큰 잔치가 벌어지리라 믿어왔는데
예수님은 수천명을 먹이신 분이시다. 종말이 정말 다가온 것이다.
3-2-6
주님께서 수천명의 식사전 감사와 찬미의 기도를 드리셨는바
이는 유대인의 관습을 넘어 요한복음 6장에서 보듯 이제 당신 자신을 영원한 생명의 빵으로 주실 예형이며 이는 미사로써 미사의 풍요함을 초대교회가 밝히고 있다.
 
여기까지가 새성경 주해와 200주년 기념성서 주해의 종합입니다.
그리고 소형제님이 제시하신 몇가지 주해도 참조할 만 한 것이구요
 
이런 전통적인 가톨릭 성경의 주해를 바탕으로 이제 정추기경님의 중앙일보 대담을 고찰하여 보고자 합니다.
 
1."...그 말끝에 정 추기경은 성경에 나오는 ‘오병이어’ 일화를 꺼냈다. 갈릴리 호숫가 언덕에서 예수가 빵 다섯 개와 물고기 두 마리로 5000명(여자와 아이들은 제외한 수치)의 군중을 배불리 먹였다는 이적(異蹟) 일화다. 정 추기경은 그 사건을 ‘기적’으로 풀지 않았다. 대신 ‘예수의 마음’과 ‘예수의 사랑’으로 풀었다....."
 
===>
 
중앙일보 가지가 이적과 기적에 대하여 같은 의미로 사용하였건 그렇지않건 그것은 중요하지 않다고 생각합니다.
위의 진술을 보면 중앙일보 기자는 기적과 이적을 보통사람들과 마찬가지로 동일한 것으로 간주하였음을 알수있습니다.
 
기자는 추기경님이 "오병이어사건을 기적으로 풀지않으시고 예수의 사랑으로 풀었다" 라고 진술합니다.
이말은
추기경님이 복음서의 "오병이어"본문에 대하여 우리가 보통 생각하는 "기이한 현상"대신 어려운 우리나라 경제로 인하여 우리나라 사람들의 일상생활에 더욱더 체감을 느낄수 있는 "예수님의 사랑"으로 설명해 주셨다(풀었다)... 라 합니다.
 
이 부분에서 중앙일보 기자의 잘못을 저는 찾을수없습니다.
간혹 잘난척을 잘하는 저도 기적이니 이적이니 마술이니 하는 것의 중대한 차이점을 대 보라한다면 즉시 망설일것이 틀림없겠기 때문입니다.
 
2. "...   정 추기경은 예수가 올린 ‘감사의 기도’에 주목했다. “그게 어떤 기도였을까요. 그건 ‘마음을 열어라. 하느님께 감사하라’는 내용이었을 겁니다. 그런 예수님의 기도를 듣는 순간 사람들의 마음이 열린 겁니다. 그래서 저마다 품 안에 숨겨 두었던 도시락을 꺼냈던 거죠. 그리고 낯선 사람들과 나누기 시작한 겁니다. 자신이 굶을 수도 있는 상황인데도 말이죠. 그렇게 나누고 남은 게 열두 광주리를 채웠다는 겁니다. 거기에 ‘오병이어’ 일화의 진정한 뜻이 있습니다.” 그건 나누면 나눌수록 더 풍요로워진다는 강렬한 메시지였다...."
 
===>
 
추기경님이 복음서의 해당 본문에서 주목하신 것은 "감사의 기도"였습니다.
이미 위의 새성경 주해나 200주년 기념성서 주해를 보면
감사가도를 "성찬례"와 연관을 시키고 있음을 알수있습니다.
성찬례에 대한 몇해전 우리 교회의 구호 중 "쪼개어진 주님의 몸"이란 것이 생각납니다.(표현이 정확히 기억이 너지 않습니다만)
 
쪼개어진 주님의 몸이란 생명의 양식을 모두에게 나누어 먹게하라는 의미로 알아듣습니다.
혼자 먹을려면 구태여 빵을 쪼개어 다른 사람들에게로 나갈 필요가 없겠기때문입니다/
 
하여 추기경님의 복음서의 "오병이어" 본문에서 주님의 감사기도를 성찬례-빵(주님의 몸)으로 촛점을 잡으신 것은 
위에서 우리 교회가 인정하고 사용하는 성경 주해들의 가르침대로
"오병이어" 본문에 대한 핵심을 잘 잡으신 것으로 판단합니다.
복음서의 "오병이어" 본문을 언급하신 이유는  기자와 서두 대담에서 경제의 어려움에 대한 말이 오고갔음으로 자연스럽게 인용할수 있다고 생각합니다.
 
그리곤 문제의 도시락 발언이 나옵니다.
도시락이란 용어는 비교적 현대에 와서 사용한 용어입니다.
현대인이 현대어를 사용하신다하여 잘못이라 할수 없습니다.
도시락대신
자기가 먹을려고 "보리떡주머니"에서 보리떡을 내 놓았다라는 의미에서
보리떡 주머니라 한다면 문제가 없을까요?
 
아닐겁니다,
추기경님의 발언을 비판하시는 분들은
예수님의 오병이어로 백성들을 먹이신 기적을
보리떡 다섯개와 물고기 2마리를 보리떡 수만개 물고기 수천개로 만드신 것으로 이해를 하시는 것이 아닌가 생각이 듭니다.
 
그러나 추기경님 말씀대로 그러한 기적이야기는 성경 본문에 없습니다.
주님은 빵을 쪼개어 제자들에게 나누어주셨고 제자들은 군중들에게 떡을 쪼개주셨다라고만 되어 있습니다.
 
이러한 내용의 본문(쪼개어져 나누어지는 빵과 물고기)를 근거로 추기경님은
"....   정 추기경은 예수가 올린 ‘감사의 기도’에 주목했다. “그게 어떤 기도였을까요.
그건 ‘마음을 열어라.
 하느님께 감사하라’는 내용이었을 겁니다.
그런 예수님의 기도를 듣는 순간 사람들의 마음이 열린 겁니다.
그래서 저마다 품 안에 숨겨 두었던 도시락을 꺼냈던 거죠. 그리고 낯선 사람들과 나누기 시작한 겁니다."
 
추기경님은 복음서 해당 부분에 대하여 단언하지 않으셨습니다.
"....
그건 ‘마음을 열어라.
 하느님께 감사하라’는 내용이었을 겁니다. ......."
이렇게 가정을 하셨습니다.
가장하에서 당신이 오늘 우리들이 즉각적으로 하여야 할 사명을 언질하신 것입니다.
 
도대체 이런 고매한 말씀들이 왜 비판을 받아야 하는 것인지
우리 교회가 간지하여온 성경의 해당 본문 주석에 대하여 추기경님이 어긋나게 주장하신 점이 도대체 뭔지 저는 모르겠습니다.
 
3. 추기경님께서 언급하신 진화론에 대해서도 불만이 있는 분들이 계셔보입니다만
추기경님이 다윈이 주장하는 진화론 그 자체를 인정하신 곳은 없습니다.
오히려
 
"... 정 추기경은
“우리 인간이 아는 것은 우주 전체의 한 부분에 불과하다.
인간의 과학이 발전하는 과정은
결국
신의 섭리를 알아가는 과정”이라며 ‘
진화론’에 대해서도 정면으로 답했다."

저는 이 말씀에 동의합니다.
진화론에 대한 말씀 뿐 아니라 다른 나머지 말씀들도 추기경님의 말씀중에서 우리 교회의 공식 가르침에서 어긋나게 말씀하신 점은 없다고 생각합니다.
 
추기경님의 중잉일보와의 대담에서 도대체 뭐가 문제인지 문제점이 있다면
구체적으로 지적한 후 
거기에 따르는 교회의 공적인 입장을 명백하게 제시를 하여야 할 것입니다.
 
언젠가 제가 말씀드린 것 같은데요
"교구장으로써 하실 말씀과 행위가 있고
본당사제 혹은 교회기관장 혹은 교회가 운영하는 회사에서 신자들을 위하여 파견받은 사제나 수도자들이 할 말씀과 행위들은 모두 다르다 생각합니다.
 
추기경님은 추기경님의 위치에서 하실 말씀을
교회의 성경 주해적인 전승에 어긋나지않게하시며
교회가 오늘날 해야 할 일에 대하여 온유하게 잘 처신하셨다고 생각합니다.
 
추기경님께 대목자이신 주님께서 잘 인도하여주시길 빕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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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 해가 저물어가는 지난해 12월 29일, 서울 명동성당 옆 집무실에서 정진석(78·천주교 서울대교구장) 추기경을 만났다. 경기 한파의 찬바람이 몰아치는 신년 벽두를 향해 정 추기경은 ‘고통’과 ‘참다운 행복’에 대한 메시지를 던졌다. 그는 “10년 전 외환위기 때를 돌아보라. 누구는 죽고 누구는 사는 게 아니라, 다 함께 살아야 한다는 공동체 의식이 있어야 한다. 그럼 우리는 이 위기를 극복할 수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정 추기경은 ‘오병이어(五餠二魚) 일화’와 ‘다윈 200주년, 진화론 150주년’에 대해 깊고도 파격적인 답을 던졌다.

-일주일 전 성탄 메시지에서 ‘경제만 좋아지면 우리의 모든 삶이 다 해결될 것이란 헛된 기대에서 벗어나야 한다’고 말했습니다. 왜 ‘헛된 기대’입니까.

“사람은 물질만 가지고 행복해질 수는 없습니다. 부탄이나 방글라데시 국민을 보세요. 그들의 행복지수는 문명국보다 더 높아요. 행복의 요건은 물질에 달려 있지 않다는 거죠. 마음 여하에 달려 있는 겁니다.”

-그렇다고 물질을 완전히 부정할 수는 없지 않을까요.

“물질, 그 자체가 행복을 좌우하진 않아요. 행복은 물질을 어떻게 사용하느냐에 따라 좌우되는 겁니다. 물질을 가져도 어떤 사람은 노예가 됩니다. 또 어떤 사람은 물질을 가졌으면서도 그걸 초월하죠. 그런 사람들은 덕(德)이 있는 이들이죠.”

◆‘오병이어’ 일화는 기적 아닌 사랑

그 말끝에 정 추기경은 성경에 나오는 ‘오병이어’ 일화를 꺼냈다. 갈릴리 호숫가 언덕에서 예수가 빵 다섯 개와 물고기 두 마리로 5000명(여자와 아이들은 제외한 수치)의 군중을 배불리 먹였다는 이적(異蹟) 일화다. 정 추기경은 그 사건을 ‘기적’으로 풀지 않았다. 대신 ‘예수의 마음’과 ‘예수의 사랑’으로 풀었다.

“성경을 보세요. 어린이와 여자를 빼고도 5000명이 모였죠. 그럼 적어도 7000∼8000명은 됐다는 겁니다. 예수님은 그 사람들을 50명씩, 혹은 100명씩 무리 지어 앉게 하셨어요. 서로 낯선 이들이었죠. 처음 보는 사람들이었죠. 물론 그중 일부는 같은 마을 사람도 있었겠죠.”

당시 예수는 다섯 개의 빵과 두 마리의 물고기를 손에 들고 하늘을 우러러 감사의 기도를 올린 뒤 제자들에게 빵을 떼어 모인 이들에게 나누어 주도록 했다. 사람들은 모두 배불리 먹었다. 그러고도 남은 조각을 주워 모으니 열두 광주리에 가득 찼다고 성경에는 기록돼 있다.

정 추기경은 사람들 사이에는 ‘친밀도’가 있다고 했다. “가장 친밀한 이들이 가족이죠. 그 다음에 학벌로 뭉친 이들, 이권을 위해 모인 사람들 등이죠. 그럼 가장 친밀도가 낮은 이들은 누굴까요. 시장 바닥에 모인 사람들입니다. 그들은 언제 볼지 모르는 사람들이죠. 그래서 마음을 안 여는 사이죠. 갈릴리 호숫가 언덕에 모인 이들이 바로 그런 사람들이었죠.”

정 추기경은 예수가 올린 ‘감사의 기도’에 주목했다. “그게 어떤 기도였을까요. 그건 ‘마음을 열어라. 하느님께 감사하라’는 내용이었을 겁니다. 그런 예수님의 기도를 듣는 순간 사람들의 마음이 열린 겁니다. 그래서 저마다 품 안에 숨겨 두었던 도시락을 꺼냈던 거죠. 그리고 낯선 사람들과 나누기 시작한 겁니다. 자신이 굶을 수도 있는 상황인데도 말이죠. 그렇게 나누고 남은 게 열두 광주리를 채웠다는 겁니다. 거기에 ‘오병이어’ 일화의 진정한 뜻이 있습니다.” 그건 나누면 나눌수록 더 풍요로워진다는 강렬한 메시지였다.

◆사람들 마음 여는 기적 필요한 때

-그럼 ‘오병이어’ 일화에서 예수가 보인 기적은 무엇입니까.

“성경에는 물고기 한 마리가 두 마리, 세 마리로 불어났다는 기록은 없어요. 하늘에서 떨어졌다는 얘기도 없어요. 그럼 예수님이 보이신 진정한 기적은 뭘까요. 다름 아닌 꼭꼭 닫혔던 사람들의 마음을 여신 거죠. 사람들이 예수님의 마음, 예수님의 사랑으로 이웃과 도시락을 나누게 하신 거죠. 그것이야말로 진정한 기적이죠. 지금 우리에게도 그런 마음이 필요한 겁니다.”

-그런 마음이라면.

“10년 전 외환위기 때를 보세요. 우리 국민은 ‘금 모으기 운동’에 동참했죠. 그런 공동체 의식이 필요합니다. 그렇게 한마음이 돼야 합니다. 한 배를 탔다는 공동체 의식이 있으면 이 위기를 극복할 수 있어요. 누구는 죽고, 누구는 살고가 아닙니다. 다 함께 살아야 한다는 공동체 의식이 있어야 합니다.”

정 추기경은 ‘동물의 세계’를 보라고 했다. 거기에 오히려 배울 점이 있다고 덧붙였다. “동물의 세계를 보세요. 사자가 먹다가 남기면 독수리가 와서 먹죠. 독수리가 남기면 그 다음으로 약한 동물이 와서 먹죠. 그렇게 다들 와서 남김 없이 다 먹죠. 그게 공평입니다. 그게 자연의 섭리죠. 동물의 세계는 창조주께서 설정하신 섭리를 곧이곧대로 따르는 사회니까요.”

-인간은 어떻습니까.

“동물에겐 자연의 질서를 따르는 ‘본능’이 있죠. 반면 인간에겐 ‘자유’가 있습니다. 그래서 자기 욕망을 절제할 수도 있고, 남용할 수도 있고, 악용할 수도 있죠. 자유를 잘 쓰면 달라지죠. 희사하고, 기부하고, 약자를 도와주는 선행은 인간의 자유 의지에서 우러나는 거죠. 동물의 세계에는 그런 게 없어요. 자신을 희생하면서 남을 살리는 일, 그건 인간만 할 수 있는 일이죠.” 정 추기경은 여기에 열쇠가 있다고 했다. 경제 한파의 어둡고 긴 터널을 우리가 어떻게 지나야 하는지에 대한 답이 있다고 했다.

◆‘진화론’은 신의 섭리 알아가는 과정
 
 
2009년은 ‘진화론의 해’다. 찰스 다윈 탄생 200주년, 진화론의 고전인 『종의 기원』 출간 150주년이 되는 해다. 한때 발명가의 꿈을 꿨던 공학도(서울대 화학공학과) 출신답게 정 추기경은 “우리 인간이 아는 것은 우주 전체의 한 부분에 불과하다. 인간의 과학이 발전하는 과정은 결국 신의 섭리를 알아가는 과정”이라며 ‘진화론’에 대해서도 정면으로 답했다.

“창조론과 진화론은 대치되는 개념이 아닙니다. 진화론은 ‘시간’을 전제로 한 거죠. 시간이 지나면서 점점 고등생물이 나왔다는 게 요지입니다. 그럼 ‘시간’이 언제부터 생겼는지를 알아야죠. 시간은 빅뱅 때 생겼습니다. 빅뱅으로 인해 이 우주가 생겼고, 그로 인해 시간과 공간도 생긴 거죠. 그래서 매 순간 변화가 일어나는 겁니다. 그런데 하느님은 어떤 분일까요? 하느님도 시간의 영향을 받는 분일까요? 아닙니다. 하느님은 시간을 초월하신 분입니다. 왜냐고요? 하느님은 빅뱅 이전부터 존재하셨기 때문입니다. 이 우주가 생기기 전부터 계신 분이죠. 그러니 시작이 없고, 변화가 없고, 끝이 없는 거죠. 그래서 성경에는 ‘나는 있는 나다’(탈출기 3장14절, ‘당신의 이름은 무엇입니까’라는 모세의 물음에 대한 하느님의 답변)라고 기록돼 있는 겁니다. 그게 영원한 법이죠.”

-영원한 법이 뭔가요.

“사람 몸의 세포는 7년마다 다 물갈이를 하죠. 저는 70대니까 육체가 열 번 바뀐 거죠. 그런데도 나는 나죠. 결국 나의 육신이 ‘나’가 아니라는 거죠. 나의 영혼이 ‘나’라는 겁니다. 그럼 오늘 태어난 아기의 영혼은 언제 만들어진 겁니까. 바로 ‘지금’ 만들어진 거죠. 그러니 진화가 아니라 창조가 되는 겁니다. 하느님에겐 1억 년 전도 ‘지금’이고, 1억 년 후도 ‘지금’이죠. 시간을 초월하신 분이니까요. 과거도 없고, 미래도 없죠. 오직 ‘현재’만 있을 뿐이죠.”

정 추기경은 하느님이 우주를 창조하신 법을 ‘영원법’이라고 불렀다. “그런 영원한 법을 사람이 다 알 수는 없어요. 다만 그 법의 한 부분을 사람의 이성으로 알아낸 것이 바로 ‘자연법’이죠. 그래서 자연법은 영원법의 일부에 불과한 겁니다. 진화론은 자연법에 속하는 거죠.”

◆사람의 길은 양심, 거스르면 병 얻어

2008년은 유명 연예인의 잇따른 자살과 인터넷 악플(악성 댓글) 등으로 시끌시끌했다. 정 추기경은 ‘인터넷 악플’에 대해서도 한마디 했다.

“철로 위에서 기차는 자유롭죠. 빨리도 가고, 천천히도 가죠. 하지만 철로를 벗어나면 꼼짝도 못 하죠. 그게 ‘길’입니다. 지구도 길이 있고, 태양도 길이 있죠. 이 우주의 천체도 길이 있어요. 그 길 위에서 자유로운 겁니다. 길을 벗어나면 자유를 잃게 되죠. 사람도 마찬가지입니다.”

정 추기경은 사람의 길은 ‘양심’이라고 했다. 우리는 ‘양심’ 안에서 자유롭다고 했다. “동물의 자유는 본능이죠. 동물에게 본능을 어길 자유는 없습니다. 그럼 인간의 본능은 뭘까요. 다름 아닌 ‘양심’입니다. 양심을 거스르면 마음이 괴롭고, 병이 생기죠. 인간에게 양심을 거스를 자유는 없습니다. 그런데 ‘인터넷 악플’은 양심을 거스르는 일이죠. 말로 살인을 하는 거죠. 우리에겐 그럴 수 있는 자유가 없습니다.”

정 추기경은 최근 『믿음으로 위기를 극복한 성왕-다윗』을 출간했다. 부제 시절, 그는 룸메이트였던 고 박도식(전 대구가톨릭대 총장) 신부와 “1년에 한 권씩 책을 내자”고 약속했다. 그리고 지금껏 47권을 냈다. 약속을 지키고 있는 셈이다. 정 추기경은 “공무가 시작되기 전 매일 새벽에 일어나 책을 쓴다”며 “책을 쓴다는 건 내가 하루하루를 살았다는 표시”라고 말했다.

백성호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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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르코복음 6장
 
30 사도들이 돌아 와서 자기들이 한 일과 가르친 것을 예수께 낱낱이 보고하였다.   
31 예수께서는 제자들에게 "따로 한적한 곳으로 가서 함께 좀 쉬자" 고 말씀하셨다. 찾아 오는 사람이 너무 많아서 그들은 음식을 먹을 겨를조차 없었던 것이다.   
32 예수의 일행은 배를 타고 따로 한적한 곳을 찾아 떠났다.   
33 그런데 사람들은 그 일행이 떠나는 것을 보고 그들이 예수의 일행이라는 것을 알고는 여러 동네에서 모두 달려나와 육로로 해서 그들을 앞질러 그 곳에 갔다.   
34 예수께서 배에 내려 군중이 많이 모여 있는 것을 보시고 목자 없는 양과 같은 그들을 측은히 여기시어 여러 가지로 가르쳐 주셨다.   
35 저녁 때가 되자 제자들이 예수께 와서 "여기는 외딴 곳이고 시간도 이미 늦었습니다.   
36 그러니 군중들을 헤쳐 제각기 음식을 사 먹도록 농가나 근처 마을로 보내는 것이 좋겠습니다" 하고 말하였다.   
3 7예수께서 "너희가 먹을 것을 주어라" 하고 이르시자 제자들은 "그러면 저희가 가서 빵을 이백 데나리온 어치나 사다가 먹이라는 말씀입니까?" 하고 물었다.   
38 그러자 예수께서는 "지금 가지고 있는 빵이 몇 개나 되는가 가서 알아 보아라" 하셨다. 그들이 알아 보고 돌아와서 "빵 다섯 개와 물고기 두 마리가 있습니다" 하자   
39 예수께서는 제자들에게 군중을 풀밭에 떼지어 앉게 하라고 이르셨다. 
40 군중은 백 명씩 또는 오십 명씩 모여 앉았다.   
41 예수께서는 빵 다섯 개와 물고기 두 마리를 손에 드시고 하늘을 우러러 감사의 기도를 드리신 다음 빵을 떼어 제자들에게 주시며 군중들에게 나누어 주라고 하셨다. 그리고 물고기 두 마리도 모든 사람에게 나누어 주셨다.   
42 사람들은 모두 배불리 먹었다.   
43 그리고 남은 빵조각과 물고기를 주어 모으니 열 두 광주리에 가득 찼으며   
44 먹은 사람은 남자만도 오천 명이나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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