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4년 4월 20일 (토)
(백) 부활 제3주간 토요일(장애인의 날) 저희가 누구에게 가겠습니까? 주님께는 영원한 생명의 말씀이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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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 빈첸시오 드 폴 사제 기념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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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재형 [umbrella] 쪽지 캡슐

2021-09-26 ㅣ No.149995

자주 걷다 보니 신발의 밑창이 많이 닳았습니다. 다른 곳은 멀쩡하기에 신발 수선하는 곳으로 가서 밑창을 덧대었습니다. 강력본드로 접착하면 되는데 친절한 아저씨는 작은 못을 박아주었습니다. 처음에는 몰랐는데 흙길이나, 자갈길을 걸으면 못이 신발의 깔창을 뚫고 발바닥에 닿았습니다. 약간 불편하였지만 그냥 다녔는데 양말에 구멍이 나고 말았습니다. 신발을 벗어 깔창을 벗겨내고 뾰족하게 나온 못을 드라이버로 구부려 주었습니다. 그랬더니 발도 편하고. 자갈길을 걸어도 아무런 문제가 없었습니다. 생각해 보니 내 몸에 불편을 주는 것들은 바로 느낄 수 있었고, 불편을 해소하기 위해서 행동하였습니다. 머리카락이 자랐다 싶으면 미장원엘 갔습니다. 손톱이 길었다 싶으면 바로 깎았습니다. 먹고 싶은 것이 있으면 마트에 가서 장을 보았습니다.

 

몸의 불편함은 빨리 해결하려하지만 마음의 불편함은 그냥 넘어가는 경우가 많았습니다. 주는 것이 받는 것보다 행복하다고 했는데 주기 보다는 받는 것에 익숙해졌습니다. 남의 마음을 헤아리지 못하면서 나의 마음을 헤아리지 못해주는 것을 서운하게 생각했습니다. 옷장과 서랍을 정리하겠다고 마음먹었지만 6개월이 지나서야 겨우 정리하였습니다. 아직 다가오지 않은 근심과 걱정 때문에 지금 감사하는 마음, 고마운 마음을 잃어버리곤 합니다. 정성과 마음을 다해서 성사를 집전하기보다는 습관처럼 성사를 집전하기도 합니다. 상대방의 이야기를 경청하고 결론을 내리기 보다는 미리 결론을 내려놓고 상대방의 이야기를 듣기도 합니다. 그렇습니다. 마음은 어느덧 상처가 나있는데도 무심했습니다. 마음은 위선과 가식으로 넘쳐나는데도 치울 생각을 하지 못했습니다. 보이지 않는다는 이유로 불편한 진실을 외면했습니다.

 

오늘 축일로 지내는 성 빈센시오 드 폴 사제는 몸의 불편함 보다는 마음의 불편함을 먼저 생각하였습니다. 성인은 1581년 프랑스 랑드 지방에서 소농의 아들로 태어났습니다. 프란치스코 수도원이 운영하는 학교에서 공부한 성인은 1600년에 사제품을 받았고, 1617년에 가난한 이들을 만나는 체험을 하였습니다. 이때 성인은 가난한 이들을 돕는 것이 곧 하느님을 섬기는 것임을 깨닫고, 자선 단체인 사랑의 동지회, 전교회, 사랑의 딸회를 창설하여, 가난한 이들을 돕는 데 일생을 바쳐 봉사하였습니다. 꽃동네를 창설한 오웅진 신부님도 얻어먹을 수 있는 힘만 있어도 하느님의 은총이라는 생각을 하였습니다. 평생 가난한 이들, 소외된 이들, 아픈 이들과 함께 하고 계십니다. 세상은 몸의 불편을 해결하려고 합니다. 그것이 이익을 창출하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신앙은 몸의 불편을 넘어 마음의 불편을 해결해야 합니다. 이것이 예수님과 성인들께서 가신 길이기 때문입니다.

 

고속도로에는 휴게소가 있습니다. 사람들은 휴게소에 들러서 간단한 음식을 먹기도 하고, 일을 보기도 하고, 차에 기름을 넣기도 합니다. 같은 값이면 친절하고, 시설이 좋고, 음식이 맛있는 휴게소를 찾을 것입니다. 그러나 사람들은 잠시 휴식을 취하면 미련 없이 정해진 목적지를 향해서 떠나기 마련입니다. 누구라도 휴게소가 좋다고 거기서 며칠씩 머무는 사람은 없을 것입니다. 저는 종교는 고속도로에 있는 휴게소와 같다고 생각합니다. 인생의 나침판과 같은 지침을 준다면, 고독한 현대인들에게 위로와 기쁨을 준다면, 영원한 생명에로 이끌어 준다면 사람들은 그러한 종교를 선택할 것입니다. 하지만 역시 종교는 최종 목적지는 아닌 것입니다. 그 끝은 깨달음, 진리, 해탈, 하느님나라, 영원한 생명과 같이 저마다 표현은 다르지만 참된 진리인 것입니다. 그러기에 예수님께서는 늘 겸손할 것을 요청하십니다. 그것이 사람들의 마음을 열개하는 힘이기 때문입니다. 누가 더 높으냐가 중요한 것이 아닙니다. 누가 더 진리를 향해서 가고 있느냐가 중요합니다.

 

다양한 종교가 공존하는 대한민국은 휴게소가 많은 고속도로와 같습니다. 다른 종교를 비난하거나, 탓하기 전에 지금 내가 믿고 있는 종교가 참된 진리를 향해서 치열하게 방향을 가리키는 나침판이 될 수 있도록 노력해야 할 것입니다. 그래서 어두운 시대에 등불이 되도록 해야 할 것입니다. 불빛이 보이는 항구로 배들은 모이게 되어있습니다. 지금 험난한 파도에 돛단배처럼 떠다니는 배가 굳이 우리 항구로 오지 않더라도 어떻습니까? 어차피 항구에 도착한 배는 또다시 어디론가 떠나야 하는 것입니다.

 

사람의 아들은 섬기러 왔고, 많은 이들의 몸값으로 자기 목숨을 바치러 왔다. 막지마라 너희를 반대하지 않는 이는 너희를 지지하는 사람이다.” 



† 성부와 성자와 성령의 이름으로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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