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4년 4월 20일 (토)
(백) 부활 제3주간 토요일(장애인의 날) 저희가 누구에게 가겠습니까? 주님께는 영원한 생명의 말씀이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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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활 제4 주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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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재형 [umbrella] 쪽지 캡슐

2022-05-07 ㅣ No.154929

지난 부활입니다. 제가 미사를 드리는 부르클린 성당에서는 3개 공동체가 부활절 미사를 함께 봉헌했습니다. 미사경본은 영어, 스페인어, 한국어를 같이 사용했습니다. 강론도 영어, 스페인어, 한국어로 하였습니다. 미사 시간이 길어졌고, 경본을 찾는데 분주했지만 삼위일체이신 하느님께서 친교를 나누듯이, 3개 공동체가 주님의 부활을 함께 축하하는 풍요로운 미사를 체험했습니다. 주님의 부활을 체험했던 제자들은 성령을 받아 복음을 전하였습니다. 그곳에 모인 사람들은 각자 자기들의 언어로 제자들이 전하는 복음을 알아들었습니다. 저는 영어, 스페인어 강론을 잘 알아듣지 못하였습니다. 미국과 스페인 공동체도 한국어 강론을 알아듣지는 못했습니다. 그러나 그것은 큰 문제가 아니었습니다. 같은 신앙 안에서 주님의 부활을 축하할 수 있었기 때문입니다. 묵주기도를 할 때도 한국어, 영어, 스페인어로 했습니다. 묵주기도의 기쁨도 3배가 된 것 같았습니다. 열린 마음이 있으면 언어가 달라도 소통할 수 있습니다. 그러나 닫힌 마음이 있으면 같은 언어를 말해도 소통하기 어렵습니다.

 

오늘 제1독서에서 바오로와 바르나바는 유대인들에게 주님의 복음을 전하였습니다. 그러나 시기심이 많았던 유대인들은 같은 언어를 사용하는 바오로와 바르나바가 전하는 복음을 받아들이지 않았습니다. 마음이 닫혀있기 때문입니다. 하느님의 사랑과 하느님의 은총은 언제나 우리 옆에 있습니다. 우리가 마음을 열고 하느님의 사랑과 은총을 받기만 하면 됩니다. 그릇을 뒤집어 놓으면 빗물을 받을 수 없듯이, 우리의 마음이 닫혀있으면 하느님의 사랑과 은총도 우리를 변화시킬 수 없습니다. 오늘 바오로와 바르나바는 이렇게 이야기합니다. “우리는 하느님의 말씀을 먼저 여러분에게 전해야만 했습니다. 그러나 여러분이 그것을 배척하고 영원한 생명을 받기에 스스로 합당하지 못하다고 판단하니, 이제 우리는 다른 민족들에게 돌아섭니다.” 사랑해서 결혼했지만 혼인한 독신으로 사는 부부들이 있습니다. 하고 싶은 이야기만 하고, 배우자의 이야기를 잘 듣지 않기 때문입니다. 이해받기 보다는 먼저 이해하는 마음을 가져야 합니다. 사랑받기 보다는 먼저 사랑하는 마음을 가져야 합니다.

 

오늘 복음에서 예수님께서는 이렇게 말씀하셨습니다. “내 양들은 내 목소리를 알아듣는다. 나는 그들을 알고 그들은 나를 따른다. 나는 그들에게 영원한 생명을 준다.” 예수님께서는 어떤 언어를 사용하셨기에 예수님의 말씀을 잘 알아들었을까요? 예수님께서는 칭찬을 아끼지 않으셨습니다. 과부의 헌금을 칭찬하셨습니다. 세리의 기도를 칭찬하셨습니다. 백인대장의 믿음과 하혈하는 여인의 믿음을 칭찬하셨습니다. 예수님께서는 능력을 나누어주셨습니다. 제자들에게 마귀를 쫓아내는 능력과 병자를 쫓아내는 능력을 주셨습니다. 부활하신 예수님께서는 제자들에게 성령을 주셨습니다. 예수님께서는 제자들과 함께 계셨습니다. 처음 제자들에게 와서 보아라.’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제자들은 예수님 곁에 머물면서 예수님을 구세주로 알아보았습니다. 예수님께서는 희생과 봉사를 이야기하셨습니다. 벗을 위해 목숨을 바치는 것이 큰 사랑이라고 하셨습니다. 칭찬을 아끼지 않는다면, 능력을 기꺼이 나눌 수 있다면, 기쁨과 슬픔을 함께 한다면, 희생과 봉사를 아끼지 않는다면 우리는 예수님의 목소리를 알아들을 수 있습니다. 이웃의 목소리도 알아들을 수 있습니다.

 

오늘은 하느님의 부르심을 생각하면서, 하느님의 부르심에 온전한 마음으로 응답할 수 있도록 기도하는 성소주일입니다. 성소주일에 생각나는 이야기가 하나 있습니다. 아는 자매님께서 전화를 하셨습니다. 반가운 마음에 이런저런 이야길 하는데 저에게 이런 질문을 하시더군요. “사제로 사는지 22년이 되어 가는데 어떻게 지낼 만한지요?” 저는 그 질문을 받고 잠시 생각했습니다. 내가 사제로 살아가는 것이 지낼 만한 것인지, 아니면 마지못해서 지내는 것인지 생각해 보았습니다. 사제 생활이 재미있으면 하고 재미없으면 시장에서 물건 바꾸듯이 바꿀 수 있는 것은 아니라고 이야기를 해 주었습니다. 자매님은 제게 이런 이야길 하시더군요. 둘째 애가 성당에서 복사를 하는데 사제가 되고 싶어 한다고 합니다. 제가 생각이 나서 전화를 하였다고 합니다. 참 어떻게 대답을 해야 할지 난감합니다. 우리 모두는 하느님의 부르심을 받았습니다. 하느님의 뜻을 따르고, 주어진 십자가를 충실하게 지고 가며, 나의 모든 것 주님께 돌릴 수 있을 때, 우리는 주님의 자녀가 될 것입니다. 



† 성부와 성자와 성령의 이름으로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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