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2년 7월 1일 (금)
(녹) 연중 제13주간 금요일 튼튼한 이들에게는 의사가 필요하지 않다. 내가 바라는 것은 희생 제물이 아니라 자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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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5 부활 제6주간 수요일...독서,복음(주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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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대군 [ahyin70u] 쪽지 캡슐

2022-05-24 ㅣ No.155272

1독서

<여러분이 알지도 못하고 숭배하는 그 대상을 내가 여러분에게 선포하려고 합니다.>
사도행전의 말씀입니다. 17,15.2218,1
그 무렵 15 바오로를 안내하던 이들은 그를 아테네까지 인도하고 나서,
자기에게 되도록 빨리 오라고 실라스와 티모테오에게 전하라는
그의 지시를 받고 돌아왔다.
22 바오로는 아레오파고스 가운데에 서서 말하였다.
아테네 시민 여러분,
내가 보기에 여러분은 모든 면에서 대단한 종교심을 가지고 있습니다.
23 내가 돌아다니며 여러분의 예배소들을 살펴보다가,
알지 못하는 신에게라고 새겨진 제단도 보았습니다.
여러분이 알지도 못하고 숭배하는 그 대상을
내가 여러분에게 선포하려고 합니다.
24 세상과 그 안에 있는 모든 것을 만드신 하느님은 하늘과 땅의 주님으로서,
사람의 손으로 지은 신전에는 살지 않으십니다.
25 또 무엇이 부족하기라도 한 것처럼 사람들의 손으로 섬김을 받지도 않으십니다.
하느님은 오히려 모든 이에게 생명과 숨과 모든 것을 주시는 분이십니다.
26 그분께서는 또 한 사람에게서 온 인류를 만드시어 온 땅 위에 살게 하시고,
일정한 절기와 거주지의 경계를 정하셨습니다.
27 이는 사람들이 하느님을 찾게 하려는 것입니다.
더듬거리다가 그분을 찾아낼 수도 있습니다.
사실 그분께서는 우리 각자에게서 멀리 떨어져 계시지 않습니다.
28 여러분의 시인 가운데 몇 사람이 우리도 그분의 자녀다.’ 하고 말하였듯이,
우리는 그분 안에서 살고 움직이며 존재합니다.
29 이처럼 우리는 하느님의 자녀이므로,
인간의 예술과 상상으로 빚어 만든 금상이나 은상이나 석상을
신과 같다고 여겨서는 안 됩니다.
30 하느님께서 무지의 시대에는 그냥 보아 넘겨 주셨지만,
이제는 어디에 있든 모두 회개해야 한다고 사람들에게 명령하십니다.
31 그분께서 당신이 정하신 한 사람을 통하여
세상을 의롭게 심판하실 날을 지정하셨기 때문입니다.
그리고 그분을 죽은 이들 가운데에서 다시 살리시어
그것을 모든 사람에게 증명해 주셨습니다.”
32 죽은 이들의 부활에 관하여 듣고서, 어떤 이들은 비웃고
어떤 이들은 그 점에 관해서는 다음에 다시 듣겠소.” 하고 말하였다.
33 이렇게 하여 바오로는 그들이 모인 곳에서 나왔다.
34 그때에 몇몇 사람이 바오로 편에 가담하여 믿게 되었다.
그들 가운데에는 아레오파고스 의회 의원인 디오니시오가 있고,
다마리스라는 여자와 그 밖에 다른 사람들도 있었다.
18,1 그 뒤에 바오로는 아테네를 떠나 코린토로 갔다.
주님의 말씀입니다. 하느님 감사합니다.

 

 

 

 

 

주해

15

베레아 전도를 제외하고 데살로니카와 베레아 전조에 대한 사도행전의 기록은 데살로니카인들에게 보낸 바오로 자신의 첫째 편지의 내용과 매우 흡사하다.

 

22

바오로가 서서말하는 것으로 되어 있는데, 루카가 연설 장소로 아레오파고의 언덕을 염두에 두고 있음이 분명하다. “아테네 시민 여러분은 연설에서 청중에 대한 매우 정중한 호칭으로 통한다. 바오로는 처음에 아테네가 우상으로 가득 찬 것에 크게 격분했지만 여기서는 그 사실을 오히려 아테네인들의 높은 종교심을 드러내는 표시로 삼고 그들의 종교적 열성을 한껏 칭찬한다.

 

23

바오로는 아테네 도시 전체를 둘러보며 수많은 예배 장소들과 그 제단에 기록된 말을 통해 아테네인들의 종교심을 확인할 수 있었다고 밝힌다. “알려지지 않은 신에게라는 한 신을 가리키는 비명은 아직 발견되지 않았으나 여러 고대 문헌이 아테네의 알려지지 않은 신들에게 바쳐진 제단들에 대해 언급하고 있다.

 

24

바오로가 아테네인들에게 제시하려는 논리는 그들이 하느님과 긍정적으로 동시에 부정적으로 관계를 맺고 있다는 것이다. 그들은 그분을 분명히 공경하면서도 그분이 누구신지 알지 못하고 더불어 공경하고 있다. 아테네인들의 제단에 씌어진 글은 바오로가 전해 생소한 신들을 소개하고 있지 않다는 사실을 증언한다. 따라서 소크라테스에게 붙여졌던 고발 죄목은 바오로에게 해당되지 않는다. 이 하느님에 대한 아테네인들의 무지는 바오로에게 그분을 선포할 기회를 제공한다.

 

루카는 청중을 염두에 두고 성서 말씀을 끌어들이되 관련된 주제만 자유롭게 뽑아 이용한다. 아테네인들이 모르고 섬겨온 하느님은 만물의 창조주이시오 하늘과 땅의 주인이시기 때문에 인간이 만든 신전 안에는 거처하지 않으신다. 비슷한 주제가 스테파노의 설교에도 나온다.

 

25

바오로는 신전에 대해 비판한 뒤에 그곳에서 지내는 제사에 대해서도 비판한다. 하느님은 사람들로부터 물질적 봉헌물을 필요로 하시는 분이 아니다. 우리의 생명. , 모든 것은 다 주신 것이기 때문이다, 하느님이 인간의 봉사를 필요로 하시지 않는다는 생각은 1마카 14.35; 유다고사 8.111참조.

 

26

인류의 기원에 대한 설명은 창세기의 창조설화를 염두에 둔 것이다. 절기와 주거지역의 질서정연한 구분은 하느님의 창조권능에 속한 중요한 요소 중에 하나다.

 

27

하느님이 이 모든 일을 하신 이유는 인간으로 하여금 당신을 찾도록 하기 위해서였다. “하느님을 찾는다는 개념은 구약성서의 중요한 요소다.

 

바오로는 아테네의 청중들이 참 하느님을 알아보지 못하고 더듬거리며 찾고 있는 상태에 있지만 하느님을 찾는 일이 결코 불가능한 것이 아님을 역설한다. 그분은 당신이 창조하고 섭리하시는 피조물 안에 계심으로써 우리와 가까이 계시기 때문이다.

 

28

사실 우리 역시 그의 족속이다라는 표현은 알렉산드리아의 클레멘스에 의해 그리스 시인 아라투스의 시임이 밝혀졌다. 헬라계 유다인 아리스토불루스도 이 시를 인용했다. 루카는 그분 안에 살고 움직이며 존재한다는 표현도 그리스의 일곱 현자들 가운데 하나인 그레데 출신의 시인 에피멘데스의 시에서 간접적으로 인용한 것 같다.

 

29

이 표현안에는 우상에 대한 유다인들의 고전적 비판이 엿보인다. 바오로가 호소하는 이성적 논리는 사람의 기술이나 상상으로 만들어진 것은 사람 아래 있게 마련인데 이런 인간의 작품들은 인간보다 위에 계시는 하느님과 동일시해서는 안된다는 것이다.

 

30

무지는 이전 설교에서는 예언자 예수를 배척한 유다인들에게 해당되었는데 여기서는 이방 세계 안에 판을 치는 우상숭배자들에게 적용된다. 하느님이 이제까지는 무지를 벌하시지 않았지만 이제부터는 하느님의 태도에 결정적인 변화가 일어난 것이다. 그분은 회개가 온 세상 모든 사람들에게 선포되도록 하신다. 하느님은 더 이상 알려지지 않은 신이기를 거부하신다.

 

31

이 구절 전까지는 유일신을 알지 못한 사람들을 대상으로 설교의 내용이 전개되다가 여기서부터 갑자기 그리스도교 메시아가 나타난다. 회개의 명령은 하느님이 심판의 날을 정해 놓으셨다는 사실과 연결된다. “심판의 날은 구약의 예언서에 바탕을 둔 주제로서 신약성서 곳곳에 나오며 루카의 저서에서는 루카 10.12; 12.46; 17.24.30; 사도 2.20에 등장한다.

 

이 심판의 날에 하느님은 상선벌악의 정의로써 세상을 심판하실 것이다. 따라서 눈감아주시던시절은 끝났다. 이 심판은 하느님이 선택하신 한 사람을 통해 이루어질 것이고 이 사실을 증명하기 위해 그분은 이 사람을 죽음에서 다시 살리셨다.

 

32

부활에 대한 선포는 아직도 이방인들이 이해하기 어렵다. 그래서 18절에서처럼 또다시 두 그룹으로 나누어진다. 비웃는 그룹과 더 배우고 싶어하는 그룹으로 갈라지고 후자는 이런 모임에 다시 오겠다고 바오로에게 약속한다. 바오로의 설교가 여기서 끝난 것은 새로운 상황으로 방해를 받아서가 아니라 설교가 갖출 내용을 다 갖추었기 때문이다. 따라서 더 이상의 보충 설교는 필요없다.

 

33

루카는 아레오파고의 이야기를 끝내면서 바오로가 석연치 않은 심정으로 아테네를 떠난 것처럼 기록하지 않는다. 우상으로 가득 찬 이방인들의 도시에서 바오로는 하고 싶은 이야기를 다 하고 떠난다. 석연치 않게 느끼는 사람들은 오히려 청중이다. 그러나 청중들 가운데 디오니시오라는 아레오파고 법정의 판사와 다마리스라는 부인을 비롯하여 몇몇 사람들이 바오로의 말을 믿게 되었다. 아테네에도 그리스도교 공동체가 성공적으로 설립된 것이다. 유력인사와 여인의 개종은 성공적으로 설립 된 것이다. 유력인사와 여인의 개종은 16-17장의 계속되는 주제 중의 하나다.

 

181

옛 고린토 시는 기원전 146년 로마의 뭄미우스에 의해 완파되었지만 율리우스 체사로가 새로 완전히 재건하여 로마인들을 정착시키고 코로니아(로마시민의 정착도시)로 삼았다. 기원전 27년에 고린토는 아카이아 지방의 수도가 되었다. 항구도시로서 고린토는 무역과 상업의 중심지가 되어 수많은 인구를 끌어들였다. 이 도시는 정적 부도덕과 각종 우상숭배로 좋지 않은 평판을 지니고 있었다.

 

 

 

 

 

 

 

 

복음

<진리의 영께서 너희를 모든 진리 안으로 이끌어 주실 것이다.>
요한이 전한 거룩한 복음입니다. 16,12-15
그때에 예수님께서 제자들에게 말씀하셨다.
12 “내가 너희에게 할 말이 아직도 많지만 너희가 지금은 그것을 감당하지 못한다.
13 그러나 그분 곧 진리의 영께서 오시면 너희를 모든 진리 안으로 이끌어 주실 것이다.
그분께서는 스스로 이야기하지 않으시고 들으시는 것만 이야기하시며,
또 앞으로 올 일들을 너희에게 알려 주실 것이다.
14 그분께서 나를 영광스럽게 하실 것이다.
나에게서 받아 너희에게 알려 주실 것이기 때문이다.
15 아버지께서 가지고 계신 것은 모두 나의 것이다.
그렇기 때문에 성령께서 나에게서 받아
너희에게 알려 주실 것이라고 내가 말하였다.”
주님의 말씀입니다. 그리스도님 찬미합니다.

 

 

 

주해

12

문맥상 협조자의 세상에 대한 역할과 제자들 가운데서 활동을 연결하면서 설명한다. 예수가 제자들에게 더 말할 것이 무엇인지 추측할 필요는 없다. 예수의 계시가 오히려 성령에 의해 더욱 밝혀질 것이다. “지금은 감당할 수 없다는 말은 아직 제자들이 체험하지 않은 상황, 즉 앞으로 있을 공동체의 상황을 암시한다. 그것은 예수의 말들이 구체적으로 이해되고 그 계시가 현실적으로 새롱누 의미를 가지게 되는 항상 열려 있는 미래다. “감당하다는 표현은 더욱 무거운 짐을 시사한다. 가뜩이나 슬픈 제자들의 상황에 더욱 짐스럽다는 것도 뜻한다. 신앙공동체는 세상과의 대면 가운데 무거운 짐을 강당해야겠지만 협조자가 도와 세상 안의 실존 의미를 깨닫게 해줄 것이라는 뜻이 시사된 셈이다.

 

13

협조자진리의 영으로서 제자들을 모든 진리 안에 인도하는 일을 한다는 뜻이다. 이것이 협조자의 원래 역할이다. “진리는 예수가 이 세상에 계시한 진리, 곧 생명을 보장하고 약속한 계시를 가리킨다. “협조자는 제자들을 이런 계시에 더 깊이 접하도록 이끈다는 것이다. 이 역할은 협조자의 다른 역할에 초대 그리스도인들의 체험으로 인해 가장 강하게 부각되었을 것이고, 특히 요한 교회에서는 당연하게 받아들여졌을 것이다. 이런 맥락에서 예수의 복음에 관한 요한 교회의 역적 해석도 정당하게 여겨졌으리라 본다.

 

예수가 지사 계시자로서 자신을 파견하신 아버지와의 관계를 말한 내용과 맥락을 같이한다. 이 파견사상 맥락에서 협조자와 예수의 결속관계, 즉 계시의 연속성을 시사한다고 이해할 수 있다.

 

예수의 계시를 능가하거나 미래사건들을 드러내는 어떤 전혀 새로운 것을 알려준다는 뜻은 아니다. “협조자는 계시된 내용을 새롭게 설명해 줌으로써 제자들을 미래로 인도하고, 또한 제자들이 처한 상황을 분명하게 밝혀주어 진리에 따라 살도록 해줄 따름이다.

 

14

예수를 영광스럽게 하는 것은 원칙적으로 아버지로 말미암아 이루어진다. “협조자는 예수의 신비를 계시하고 예수의 구원행위에 참여함으로써 즉 예수의 구원행위를 계속 수행함으로써 예수의 영광에 기여한다는 뜻이다. “내 것을 받아서란 표현은 예수가 아버지께서 자기에게 주신 말씀들을 제자들에게 주었고 그들은 그 말씀들을 받아들였다는 표현과 밀접한 관계를 지닌다. , 예수의 계시가 강조되고, “협조자가 예수의 것을 받아 활동한다는 언급으로 더욱 부각된다.

 

15

내용상 17.10과 같다. 아버지께서 당신 계시를 위해 아들에게 모든 것을 맡겨주셨다는 뜻이다. “협조자가 이 예수의 것을 받아 활동함으로써 모든 것이 예수에게 위탁된 사실을 드러낸다. 14-15절은 계시의 절대성과 충만성을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드러내 보이고자 하는 그리스도론적 관심이 기조를 이룬다. 이것은 예수가 아버지께서 맡기신 모든 일을 끝내어 아버지 당신을 영광스럽게 했다는 것과 맥락이 같다.

 

 

 

 

 

 

 

200주년 신약성서 주해/ 분도출판사에서 옮김

 



† 성부와 성자와 성령의 이름으로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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