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4년 5월 9일 (목)
(백) 부활 제6주간 목요일 너희가 근심하겠지만, 그러나 너희의 근심은 기쁨으로 바뀔 것이다.

우리들의 묵상ㅣ체험 우리들의 묵상 ㅣ 신앙체험 ㅣ 묵주기도 통합게시판 입니다.

[부활 제4주간 토요일]

스크랩 인쇄

박영희 [corenelia] 쪽지 캡슐

2024-04-27 ㅣ No.171882

[부활 제4주간 토요일] 요한 14,7-14 “내가 너희에게 하는 말은 나 스스로 하는 말이 아니다. 내 안에 머무르시는 아버지께서 당신의 일을 하시는 것이다.“

 

 

 

 

신앙생활을 하면서도 하느님을 온전히 바라보지 못하고 다른 것에 ‘한 눈을 파는’ 분들이 많습니다. 하느님으로 충분하지 않아서가 아닙니다. 하느님 말고 딱히 더 바라는 무엇이 있어서도 아닙니다. 하느님을 제대로 보지 못하고 그분이 주시는 충만함을 누리지 못하다보니, 그러면서도 자신은 여러가지로 부족하고 믿음도 약하다며 하느님을 제대로 만날 엄두를 내지 못하다보니, 다른 것으로라도 만족하고 싶은 겁니다. 소위 ‘대리만족’이라는 것인데, 세상의 것들로는 내 마음을 완전히 채우지 못하니 지속적인 결핍 상태에서 마음에 헛헛함을 느끼게 되지요. 더구나 그 ‘한 눈 팔기’에 적극적이라면 문제가 더 커집니다. 하느님 말고도, 신앙 말고도 대리만족할 것들이 많아지면 굳이 하느님으로 만족하려는 마음을 품지 않게 되기 때문입니다. 세상이 주는 여러 즐거움들 중 하나를 골라 몰두해보다가, 그것이 영 성에 안차면 다른 것을 찾을지언정, 굳이 하느님을 필요로 하지는 않는 것이지요. 신앙생활을 수박 겉핥기 식으로 하는 이들이 자주 빠지곤 하는, ‘실천적 무신론’이라는 함정입니다.

 

그런 점을 생각한다면, 오늘 복음에서 예수님께 하느님 아버지를 뵙게 해달라 청하는 필립보의 모습은 천만다행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그런데 한 가지 유의해야 할 점이 있습니다. 하느님 아버지를 만나 그분의 현존을, 그분의 사랑을 느껴보고 싶은 열망을 마음에 품는 것은 바람직한 일이지만, 하느님을 어떻게 만날 것인가 하는 ‘방식’이 문제가 되는 겁니다. “아버지를 뵙게 해 주십시오”라는 필립보의 말에서 ‘보여주다’라고 번역된 그리스어 동사의 원뜻은 ‘과시해 보여주다’라는 뜻입니다. 즉 필립보는 예수님을 통해 드러나는 하느님의 모습과 뜻을 믿음으로 식별하고 양심으로 판단하며 행동으로 따르는 어려운 길을 걷기보다, 그것이 하느님의 뜻임을 누구도 부정할 수 없는 100% 확실한 메시지를 그대로 따르기만 하면 되는 쉬운 길을 걷고자 한 것입니다.

 

물론 필립보는 그렇게 하는 것이 보다 쉽고 확실하게 구원받는 길이라고 생각해서 예수님께 그렇게 청했을 것입니다. 하지만 하느님께서 우리에게 바라시는건 100% 확실한 근거 앞에 어쩔 수 없이 굴복하는 수동적이고 굴욕적인 자세가 아닙니다. 구원의 진리를 그저 머리로 인정하는데에 그치면, 마음으로 온전히 받아들이지 않으면 자꾸만 다른 것에 한눈을 팔게 되기 때문입니다. 하느님께서 바라시는 참된 신앙은 그분의 외아들 예수 그리스도를 통해 선포되는 하느님의 뜻을 우리가 귀기울여 잘 듣고 그것에 맞지 않는 것들은 양심으로 잘 걸러내며, 그 뜻을 실천하는게 힘들고 어렵더라도 하느님을 향한 사랑으로 기꺼이 그리고 기쁘게 행하는 것입니다. 그렇게 하느님 뜻을 스스로의 의지로 적극적으로 행하는 과정에서 우리는 잘못된 점을 바로잡고 부족한 부분을 채워 하느님 보시기에 좋은 모습으로 점점 변화되어 가기 때문입니다. 그러니 쉽고 편한 길을 찾겠다며 여기저기를 헤매다 삥 돌아서 가는 어리석음을 범하지 말아야겠습니다. 예수님을 통해 드러나는 하느님 아버지의 뜻을 있는 그대로 받아들이고 따르는, 힘들지만 단순한 그 길을 묵묵히 걸어가야겠습니다. 

 

* 함 승수 신부님 



† 성부와 성자와 성령의 이름으로 아멘.

70 1

추천 반대(1) 신고

 

페이스북 트위터 핀터레스트 구글플러스

Comments
Total0
※ 500자 이내로 작성 가능합니다. (0/500)

  • ※ 로그인 후 등록 가능합니다.

리스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