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4년 5월 16일 (목)
(백) 부활 제7주간 목요일 이들이 완전히 하나가 되게 해 주십시오.

자유게시판

초보신랑 생활기

스크랩 인쇄

김지선 [peterpan65] 쪽지 캡슐

2002-02-02 ㅣ No.29408

 그동안 안녕하셨습니까?

 

결혼식의 흥분이 이제 어느정도 가라앉고 남들이 흔히 말하기 쉬운 깨를 볶는 생활에 푹 젖어있는놈입니다.

 

잠을 자다가도 혹 깨게 되면 웬 여자가 내옆에 자곤해서 화들짝 놀랬다가도, [아! 나 결혼했지!]하며 도통 실감을 못 느끼는 초보자 신랑으로서 오늘 이렇게 오랜만에 글을 남깁니다.

 

글을 남기기전에 알려드릴것은 저희 결혼식을 취재해간 평화신문에서 1월 27일자에 기사가 나간다고 하였지만 지면 할당량이 차는 바람에 이번 2월 3일자에 실린다고 하는군요.

 

괜히 앞선 글에 1월 27일자에 실린다고 밝혔는데 찾아보신분들은 혹시 저희가 거짓이라도 고한것이 아닌가? 하는 오해 없으시기 바랍니다.

 

그럼 본론으로 몇자 꾸며보겠습니다.

 

그녀와 저는 소위 말하는 맞벌이 부부입니다.

 

요근래는 학생들이 개학을 하는 바람에 그녀는 퇴근이 늦습니다.

 

그래서 퇴근을 제가 먼저하는 경우가 아주 잦습니다.

 

냉장고 문에 반찬은 어디어디다 두었고 찌개 재료는 어디어디있으니 잘먹고 잘살아라! 하는 쪽지가 텅빈 신혼집에 제일먼저 저를 반깁니다.

 

그러면 그대로 챙겨서 잘먹습니다.

 

그리고 설겆이도 나름대로 열심히 합니다.(요즘 시대엔 이짓도 자랑이라면서요?)

 

그리고 하릴없이 TV 리모콘 만지작거리며 어지럽게 이쪽방송, 저쪽방송 계속 돌려가며 담배만 뻐끔뻐끔 피워물며 그녀가 퇴근하길 기다리곤 합니다.

 

그런데 언젠가 연애시절 그녀가 제게 했던말이 문득 생각나더군요.

 

자기는 만일 이다음에 결혼하면 남편이 퇴근을해서는 집에서 독서를 하고 있다면 참으로 존경스러울것 같고 그 남편이 사랑스러워 보일것이며 뭐? 섹시해보일거라나? 뭐라나? 아무튼 그런 얘기를 얼핏 들은것이 제머리속을 휙 스치더군요.

 

그렇다면 제가 이 찬스를 놓칠 놈이겠습니까?

 

실컷 TV를 이리저리 돌리며 하품도 하고(요즘 TV 왜그리 재미없습니까?) 몸도 베베 꼬았다가 이리 뒹굴고 저리 뒹굴다가도 그녀의 발소리가 탁! 탁! 탁! 들리며 오는 소리가 들리면 꼭 무슨 도둑질하다 걸린놈마냥 후다닥 급히 TV를 꺼놓고는 얼른 책 하나를 집어서 펼쳐들고 있습니다.

 

그 책 제목은....그러니까...에~~~또...그러니까...아무튼 책입니다.(제목도 생각이 안납니다.)

 

아무튼 그러고 있노라면 현관문을 따고 들어온 그녀가 환하게 웃으며 "자기 뭐했어?"하고 묻더군요.

 

전 그러면 아주 근엄한 표정으로 목소리도 약간 깔면서 "보면 몰라? 책좀 보고 있었지...험!험!"하며 책을 살포시 접습니다.

 

"와아! 자기 정말 멋있다! TV는 안봐?"하며 반색을 하더군요.

 

"TV라니? 그런 바보상자를 왜 들여다 보고 있어? 자고로 그럴시간 아껴서 책 한자라도 더 보는게 살아가는데 있어서 훨 낫지!"

 

이렇게 얘기 하고나면 그녀의 두 눈동자에선 저를 향한 존경심과 사랑이 쏟아지더군요.

 

험! 거 남편 점수따기 아주 쉽더군요.

 

그런데 어제, 오늘 이 모든 X파일이 백일하에 들통이 났다는거 아닙니까?

 

어제 그녀가 저녁때 과일을 깍으며 묻더군요.

 

"자기야! 아주 오래된 농담이 무슨 내용이야?"

 

전 무심코 이녀가 오래된 농담을 묻길래, 아주 가볍게 생각하고 오래된 농담하면 거 뭡니까? 유행이 한물간 옛날 농담들 얘기하는줄 알고 자신있게 대답했죠.

 

"참새 시리즈 정도 되겠지!"

 

그러자 과일 깍던 이녀의 손동작이 멈추더니 저를 한심한 눈으로 쳐다보더라구요.

 

그래서 전 다시 "최불암 시리즌가?...사오정 시리즈도 있지." 하고 답을 정정 했습니다.

 

그러자 이녀의 대답 한마디에 저의 그간의 범죄(?)가 들통이 나고 말았습니다.

 

"아니 뭐야? 자기가 요즘 읽고 있는 책이 박완서씨의 [아주 오래된 농담]이라는 책인데...뭐? 그 책이 참새 시리즈가 나오고 최불암 시리즈가 나와? 인간아!"

 

ㅡ.ㅡ (그 책이었나?...왜? 박완서씨는 제목을 헛갈리게 지어서리 이 개망신을 시키는고?)

 

오늘은 토요일.

 

오늘은 제가 늦게 퇴근을 해서 들어오니 오자마자 그녀가 쇼핑을 가자고 조르더군요.

 

전 피곤해서 쉬겠다고 하자 자기는 결혼전부터 신혼부부들이 함께 쇼핑을 가는것이 제일로 부러웠는데 꼭 해보고 싶다며 소원한번 못들어주냐고 하기에 정말이지 지친몸 이끌고 억지로 쇼핑을 하러 갔습니다.

 

반찬거리 이것 저것 고르며 사는데 전 난생처음 쇼핑 바구니 한쪽손에 들고 벌려주며 시중을 들고 있었습니다.

 

이거 불과 며칠전만해도 상상조차 할수 없었던 풍경이었습니다.

 

그러다 그녀가 제게 던진 한마디가 그렇게 반가울수가 없더군요.

 

"자기도 뭐 필요한거 있으면 골라봐. 난 이쪽에서 더 고를테니 자기는 자기대로 골라봐." 하지 뭡니까?

 

그래? 이게 웬떡이란 말입니까?

 

그래서 전 제가 고르고 싶은것, 또, 사고 싶은것을 저혼자 돌아다니며 고르고 또 장바구니에 담았습니다.

 

그러나 잠시후 전 그녀의 앙칼진 두 눈동자를 구경하게 되었고 제가 담아놓은 물건을 다시 제자리에 원위치 시킬수 밖에 없었더랬습니다.

 

그 물건은 뭘까요?

 

[참이슬], [하이트]...등등 뭐 이런거였으니 다시 반품이 될수 밖에요.(어쩐지 쉽게 내맘대로 고르라고 하드라...)

 

그리고 한참 잔소리를 들을수 밖에 없었습니다.

 

자기는 고작 필요한게 이거외에는 없냐? 이 쇼핑몰에 보이는거라곤 술밖에 안보이냐?...뭐, 이런 잔소리를 한참 듣다가 제가 잔뜩 불쌍한 표정을 지어보이자 안됐는지 참이슬 한병은 남겨주더군요.

 

집에가서 삼겹살 구워준다나? 뭐라나? (형제님들 가끔은 불쌍한 표정도 지어보십시요. 절대 손해 안봅니다. ^e^)

 

어쨌거나 저쨌거나 이렇게 실수 투성이인 초보 신랑이지만 여러분 미워 보이지는 않지요?

 

하지만 그래도 저녁때 자기전에는 저희 두부부 꼭 기도는 빼놓지 않고 잠든답니다.

 

총각때는 사실 저녁기도 같은거 안드렸거든요.

 

결혼해서 함께 성호긋고 기도드리며 하루를 감사해하고 또, 내일을 부탁하는 기도를 올리고 잠자리에 들면 그렇게 개운하고 좋을수가 없더군요.

 

이런 작지만 큰 행복을 허락해주신 주님께 지금 이순간도 감사드릴뿐입니다.

 

피터팬이 이제 결혼하더니 게시판에 코빼기도 안비치고 여자 하나 낚아 채가더니 볼일 다 봤다! 이거냐? 하는 원성이 들릴까봐 이렇게 가볍게 몇자 적어봅니다.

 

지금 주방에서 지지고 볶고 하는 소리와 함께 술상 준비 다됐으니 와서 먹으라는 소리가 반갑게 들립니다.

 

그래서 오늘 글은 여기서 마감해봅니다.

 

여러분! 내일 주일 평안히 보내시고 새로운 한주간 행복하십시요.

 

그럼 전 쐬주에 삼겹살 한점 얻어먹으러 이만... (너무 약올렸나? ^e^)

 

 

 

 

 

 

 

 

 

 

 

 



1,399 0

추천 반대(0) 신고

 

페이스북 트위터 핀터레스트 구글플러스

Comments
Total0
※ 500자 이내로 작성 가능합니다. (0/500)

  • ※ 로그인 후 등록 가능합니다.

리스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