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4년 5월 16일 (목)
(백) 부활 제7주간 목요일 이들이 완전히 하나가 되게 해 주십시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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난 샷다맨이 좋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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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지선 [peterpan65] 쪽지 캡슐

2002-07-09 ㅣ No.35959

 나탈리아는 학원을 합니다.

 

뭐 거창하게 하는것은 아니고 중학생들 몇명 데리고 보습학원이라는것을 하는 정도입니다.

 

요즘처럼 아이들 기말고사철이면 거의 밤늦게까지 일에 매달리느라 아내 얼굴 제대로 보기 힘들지요.

 

저의 보금자리에서 버스를 타고 몇 정거장을 가야 학원이 있는데 아마도 제가 시험때는 혼자 저녁밥을 해먹는것이 안타까웠던지 학원을 집근처로 옮겨 놓았습니다.

 

하지만 이사라는것이 다 그렇듯이 어디 학원 옮기기가 말처럼 쉽겠습니까?

 

기존에 있던 학생들 떨어져 나가는것 감수해야하고 새로운 곳에서 새로이 시작한다는것이 사실 두렵기도 하겠고 웬만한 배짱이나 모험심을 갖지 않으면 안되지요.

 

저는 소위 남편이라고는 하지만 어디까지나 그 일은 아내의 일이니까 제가 이래라 저래라 하는식의 참견 따위는 결코 안합니다.

 

그것을 나탈리아도 바라지만 어떤때는 섭섭해 하기도 합니다.

 

요즘은 집근처 가까이로 옮겨놓는 바람에 수업 도중에 잠깐와서는 제게 저녁밥을 챙겨주고 갑니다.

 

그러지 말라고 회유도 해보고 화도 내봤지만 저 좋아서 하는 일이라며 막무가내 입니다.

 

학원을 새로 옮겨와서 기존의 학원보다는 학생수도 적고 당장은 수입이 형편없이 떨어졌지만 오히려 전화위복 시킬수 있다며 항상 자신감에 차있는 모습을 보면 어쩌면 우리 부부는 性이 뒤바뀐것이 아닌가 착각도 하게 됩니다.

 

밤늦은 시각 시간을 맞추어 저는 소위 말하는 샷다맨(?)을 하기 위해 집을 나섭니다.(셔터라고 써야 옳은가?)

 

아내의 키보다 높은곳에 열쇠장치가 있고 셔터를 내리는데도 불편해 하길래 제가 거의 매일 셔터맨 노릇하러 집을 나서지요.

 

그리고 손을 잡고 집으로 걸어오며 오늘 있었던 일들을 도란도란 얘기를 하며 걷습니다.

 

오늘 상담하러 온 학부모가 몇명이다. 혹은 가르치는 학생들이 성적이 이러이러한데 이번에 이만큼 올려 놨다...등등.

 

그렇게 아내의 수다를 들어줍니다.

 

그럼 저도 저녁때 집에서 혼자 있으면서 컴퓨터 고스톱을 쳐서 오늘은 얼마 땄다. 혹은 얼마 잃었다. 등등을 얘기하다가 몇대 쥐어 맞기도 합니다. ㅠ.ㅠ

 

덩치는 작은 여자가 왜그리 손맛이 매운지...여자한테 맞고 울수도 없고 환장할 노릇입니다.

 

어쨌든 이렇게 시작하는 우리 병아리 부부의 삶이 혼자일때 보다는 누군가에게 큰 믿음을 갖고 의지할수 있다는것이 마치 당장이라도 큰 부자가 된것마냥 가슴 벅차옴을 숨길수는 없습니다.

 

매일 아내에게 용돈을 타갈때도 전에는 내가 이게 뭐하는짓인가? 하는 생각도 없지 않았지만 지금은 오히려 그게 더 편하고 든든함을 느낍니다.(하다못해 주일미사때 헌금도 타서 씁니다.*^^*)

 

오늘은 잠시 아내가 학생들과 공부하는 학원을 들렀습니다.

 

아니, 솔직히 말해서 들른것이 아니라 저녁때 혼자하던 컴퓨터 고스톱 게임도 신물이 나서 심심한차에 그냥 학원 근처에 가서 기웃거리며 수업 열심히 하고있나 시찰(?)을 나선것이죠.

 

멀찌감치 떨어져 기웃거리는데 나탈리아가 저를 발견하고는 문을 열어 들어오라고 하더군요.

 

앗! 교실 기피 증후군(?)에 시달리는 저는 도망치려 했지만 선생님의 남편이라는 소리에 학생들이 환호를 해대는 통에 어쩔수 없이 멀쓱한채로 들어갔습니다.

 

선생님의 남편이 어떤놈인가? 궁금했던지 아이들은 공부하다 말고 아주 신기한 눈빛으로 저를 머리끝에서 발끝까지 살펴대며 킥킥 대더군요.

 

할말을 미리 준비 못해간 저는 그냥 "어때요? 공부하기 힘들죠?"라는 기본적인 인삿말과 모르는것 있으면 집요하게 물어보라는 당부를 던졌습니다.

 

"선생님도 저희 가르칠수 있죠?" 한 여학생이 저를 감격스럽게도 선생님이라 부르며 질문을 던지고는 웃었습니다.

 

"그럼요! 가르칠수 있지요. 아무거나 물어보세요."라는 책임 못질 말을 그만 자존심은 있어 갖고 해버렸습니다.(까짓 어떻습니까? 설마 정말로 물어보겠어요?)

 

그러자 옆에 있던 나탈리아가 비수를 꽂았습니다.

 

"그럼 잘 가르치시지. 이차 방정식만 빼놓고!" - 이말이 무슨 말이냐면 며칠전 무심코 중학생 수학책을 펴들고 혼자서 이렇게 저렇게 풀다가 그만 실수로...정말 실수로 이항하는 과정에서 착각을 해서리 잘못 풀었던 일이 있었는데 그녀가 막 웃어대며 놀리지 뭡니까? 자기는 실수 안하나 뭐?...어쨌든 그일로 인해서 무슨 말만 하면 방정식! 하며 놀리더니 급기야는 학생들 앞에서까지 개망신을 주지 뭡니까?...방정식 하나 착각한것 갖고 방정맞게시리...

 

학생들은 와하! 하고 웃고 저도 웃었습니다.(전 왜 웃었냐고요?...이럴땐 웃어줘야지 농담인줄 압니다. 만약 그때 제가 정색을 하고 나서면 오히려 시인하는 꼴 아니겠습니까? 이게 다 살아가는 요령 아니겠습니까? 험! 험! *^^*)

 

그렇게 학생들 공부하는데 방해 안되게 급하게 나와서 다시 심심한 집으로 혼자 돌아와 이렇게 글을 올립니다.

 

학생들을 잠시 만나고 오니까 괜히 기분이 좋아집니다.

 

이따가는 셔터맨 노릇하러 다시 나가야지만 혼자서 괜히 기분이 좋아져 이렇게 글을 올려 봅니다.

 

덩치는 아주 작은 여자이지만 살아가는 의욕은 참으로 거인 같이 느껴질때가 있습니다.

 

일 욕심이 많아서 자기가 맡은 학생들에게 쏟는 열정을 보면 참으로 대단할뿐입니다.

 

비록 아내이지만 전 아내에게서 살아가며 배우는점이 참으로 많습니다.(드뎌 팔불출의 독백이 시작됩니다.)

 

늦게나마 제게 이런 거인같은 아내를 허락해주신 하느님께 감사함을 느껴봅니다.

 

이따가 오는길에 아내가 좋아하는 맛난것도 사줘볼까 합니다.(몰래 꼬불친 돈으로...)

 

더 잘해주어야지 하면서도 잘 실천이 안되는 제 자신을 잠시 채찍질 해봅니다.

 

 

 

사족: 끝 문장이 죽이지 않습니까?*^^*

 

     기쁨주고 사랑받고픈 남편들은 한번씩 써먹으셔도 좋습니다.

 

     그럼 게시판 형제, 자매님들 내일 하루도 건강하고 푸근하시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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