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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덕경 [peter702] 쪽지 캡슐

1999-12-10 ㅣ No.173

청소년 직업교육 34년 ’외길인생’ 돈보스꼬 청소년센터 마르크 신부

 

 

 

벽안(碧眼) 의 신부가 34년간 직업교육을 통해 불우 청소년들에게 새 삶을 심어주고 있어 화제다.

 

서울 영등포구 신길6동 ’돈보스꼬 청소년센터’ 의 원장 퀴블리에 마르크(한국명 구천규.61.사진) 신부가 그 주인공.

 

한국 가톨릭 살레시오회에 속해 있는 돈보스꼬 청소년센터에는 한때 결손가정 등의 아이로 자라 ’문제아’ 로 낙인 찍혔던 청소년 1백50여명이 현재 ’기능인’ 의 꿈을 키우고 있다.

 

"지금까지 2천여명이 우리 직업학교를 거쳐 어엿한 직장인이 됐지요. 한해도 거르지 않고 취업률과 국가기술자격 취득률이 각각 1백%와 95%에 달해요. "

 

마르크 신부가 한국에 첫발을 디딘 것은 65년초. 전쟁 뒤 입에 풀칠하기도 힘들었던 당시 한국을 찾은 그는 난리의 가장 큰 피해자였던 청소년들을 위해 직업교육을 하기로 마음먹었다.

 

곧바로 동료 신부와 함께 20명의 불우 청소년을 모아 지금의 터에서 직업훈련을 시작했다.

 

여기에는 마르크 신부 자신의 체험이 바탕이 됐다.

벨기에 글라겜시에서 7남매의 장남으로 태어난 그는 가정 형편상 직업고교에 진학, 선반 등을 배운 뒤 3년간 세탁기 공장에서 일했다.

 

67년 벨기에로 돌아가 신학박사를 딴 그는 5년 후 돈보스꼬를 되찾아 강사-경리-기숙사 담당 등 세사람 몫을 혼자 해냈다.

 

78년 원장이 된 뒤에도 낮에는 학생들에게 선반 등의 기술을 직접 가르치고 밤에는 인성교육을 도맡았다.

 

90년대초 경제 사정이 좋아지면서 모집생들이 급감, 문을 닫자는 논의가 일기도 했다.

 

하지만 여전히 소외된 아이들을 찾아 아동보호소.성당 등을 뛰어다니던 마르크 신부의 열정에 녹아버렸다.

 

이곳을 거쳐간 졸업생 중에는 50여명이 중소기업 사장이 됐으며, 이중 경기도 안산에 있는 O정공은 섬유용 노즐을 제작해 세계 특허까지 획득했다고 그는 자랑한다.

 

노동부는 최근 구신부에게 "비진학 청소년의 능력개발에 일생을 바친 산증인" 이란 점을 기려 특별공로상을 수여했다.

 

--중앙일보1999.12.10일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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