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4년 5월 14일 (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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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경호 [morningnews] 쪽지 캡슐

2021-05-10 ㅣ No.9874

주님께서는 욥의 여생에 더 큰 복을 내리시고 아들 일곱과 딸 셋을 두었다고 하면서 딸 셋의 이름은 다 명기하면서 아들들의 이름은 하나도 적지 않는데 여기에 무슨 이유가 있었을까요?
† 성부와 성자와 성령의 이름으로 아멘.
금일 필자의 페친께서 아래와 같은 수필을 올리셨기에 욥의 딸 셋과 보이지 않는 아들 일곱 이름을 곁들여 묵상하시면 좋겠다는 생각을 댓글 포함 함께 묵상하시면 어떻겠냐는 생각을 해봅니다.
페친1
오늘은 날씨가 좋지못한 관계로 성지순례를 할 수 없었다. 또한 코로나-19 여파로 집을 나섰다간 위험한 상황이 될 수 있어 집에서 독서를 하였다. 오늘 읽은 도서로는 김훈의 '개'다. 이 책에 나온 배경은 뻘이있는 서해 뻘바다로 고기잡이 배를 타고 다니는 주인 할머니댁도 나온다. 개의 탄생부터 서로 엄마 젖을 물고자 형제 개들과 싸우며 방황하는 줄거리가 나오는대 이 문장이 나에겐 상상에 빠트렸다. 끝내 엄마개는 어린 자식 개들에게 추억과 사랑을 남기지 못한채 주인 할머니에게 잘못된 일로 맞형과 함께 나도 마음 아리개 할 정도로 매로 죽임을 당하고야 말지만 본 도서의 주인공인 '보리'라는 개의 주인 할머니와 함께한 추억을 그린 도서이기에 다시 읽고 싶다는 생각도 들었다. 마지막에선 주인 할머니께서 배에서 돌아가시고야 마는 짧고 가슴 아린 슬픈 소설에 불과했지만 나도 김훈의 문장을 닮고 싶다는 생각도 똑같이 들 정도로 느낌있는 도서같아 좋았다.
댓글
여성들이 모성애 발로로 늑대 음색의 남성 가수들을 좋아하는 것은 청음에 약한것도 있겠지만 시음에 약한 남성이 또한 아담(=아돌프=늑대) 어원을 가진 히스토리속의 그 육감(애피소드) 엠마우스 여정이라는 지금인듯 합니다. 그런 두 남녀가 노래할때는 서로의 장점이 되살아나는 음색을 보이는대 저 개도 시처럼 음악처럼 한 생 스스로를 주인의 종으로 여기는 탤런트로 사람을 친구로 여기는 여심을 기리는듯 합니다. 동물성 양식을 전하는 남성과 식물성 양식을 전하는 여심의 아름다운 하모니 모든이 안의 모든 것 한국인은 그렇게 미리내, 시나브로, 사랑으로 세 꽃을 기리나봅니다.
욥의 딸 셋과 일곱 아들에 대한 묵상론
일전에 어느 신부님께서 강론중에 한국인이 가장 좋아하는 단어는 '미리내, 시나브로, 사랑으로'라 하신 말씀을 벗삼아 하느님께서는 욥의 세 딸을 통하여 신앙인으로서의 생각과 말과 행위를 치유해 주심을 믿게 됩니다. 한편 이름이 알려지지 않는 일곱 아들은 하늘과 땅을 잇는 십자가의 사다리 무지개 원리를 말씀해주실것입니다.
이는 꽃이 필 때도 아름답지만 질 때가 더 아름다운 교회법이 사회법의 어머니로서의 역할을 하기에 사제는 정치인이 될 수 없다.로 규정되어 있으나 정치에 의견을 개진할 수 있는 평신자에게도 세례를 통한 사제직, 왕직, 예언직의 수호천사의 보이지 않는 미덕 비유일 수 있겠다는 생각입니다. 엠마우스 여정의 두 사람은 예수님과 함께 음식을 나눈 뒤 예수님을 알아보았으나 예수님은 곧 보이지 않지요. 이는 성체를 영한 사람의 깊은 너와 나로 자리하셨음을 비유할 수 있겠습니다.
여성은 남중 내편인 신랑에게 사랑을 표현해야 한다고 하지요? 한편 남편은 아내인 안의 해를 위해 꿀 먹은 벙어리가 되거나 말 못할 속사정을 기도로 임하기도 합니다. 이에 아내는 기도만 하지 말고 지팡이를 두드리라 하고 남편은 계속하여 추억을 조명하며 내적인 성찰, 참회 또한 풀어주어 가게 하는 독백을 독해, 고해(홀로이 머물며 다른 사람이 되어 나가는 것)로서 빛과 그림자 자신을 만나게 될텐데, 세상에서 가장 아름다른 욥의 딸 셋은 너와 나의 그리스도 빛으로서 아들 일곱은 또한 그림자 벗을 삼아 기도하시는 성직자, 평신자의 에고(자아)로서 이해하시는 것도 한 방법이 될 듯 합니다.

여성의 달란트 가치, 식별과 남성의 달란트 다만 참여하는 사랑은 사제성소와 수도성소를 아우르는 결혼성소의 신앙인에게 더하기가 아닌 빼기의 영성이기에 성부의 사랑과 성모의 자비로 역시 더하기 아닌 빼기로서 다만 사랑과 자비의 신비를 바라보며 그것을 에덴의 뱀에서 구리뱀 지팡이로의 수덕 열정으로 임하자는 말씀 비유가 아닌가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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