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4년 4월 27일 (토)
(백) 부활 제4주간 토요일 나를 본 사람은 곧 아버지를 뵌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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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생활성서사]지혜 여정 - 마르코 복음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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생활성서사 [ibiblelife] 쪽지 캡슐

2021-07-15 ㅣ No.1191

 

*지혜 여정 - 마르코 복음서 [구입하기]


또 하나의 갈릴래아인 삶의 자리에서

부활하신 예수님을 찾고 만나다

『지혜 여정』 구약 편에 이어 신약 편을 시작하며 마르코 복음서를 먼저 선보입니다. 구약 편에서는 이스라엘의 장구한 발자취를 돌아보며 하느님의 섭리를 깨달을 수 있었다면, 신약 편은 예수 그리스도를 통해 우리의 삶 안에서 언제나 함께하시는 하느님의 현존을 느끼게 하는 신앙의 이정표가 되어 줄 것 입니다.

『지혜 여정 마르코 복음서』 는 성공이나 화려함과는 거리가 먼 이스라엘의 한 청년의 이야기를 통해 신앙의 근본 진리에 대한 질문과 의문을 제기하고, 또한 이에 대한 답을 찾아가도록 이끌어 줍니다. 마르코 복음서와 함께하는 이와 같은 여정은 우리에게 예수님을 깊이 있게 찾고 만나는 ‘복음’, 곧 ‘기쁜 소식’의 장이요, 은총의 여정이 되어 줄 것입니다.

 

복음과 복음서

“인류의 역사는 전쟁의 역사다.”라는 말이 있습니다. 인정하고 싶지않지만, 인류와 문명의 역사는 수많은 전쟁, 그것도 야만과 폭력으로 점철된 전쟁들로 얼룩져 있는 것이 사실입니다. ‘전쟁이 끝났다!’ 하는 외침으로 한순간에 온 나라는 기쁨에 가득 차게 됩니다. 이렇게 사람들을 죽음에서 생명으로 넘어가게 해 준 기쁜 소식, 사지로 떠나보내야만 했던 사랑하는 사람과 재회할 수 있다는 기쁜 소식, 그래서 절망과 좌절을 희망과 환희의 순간으로 바꾸어 주는 그 기쁜 소식. 바로 이것이 ‘복음’이란 말의 어원입니다. 

『지혜 여정』 신약 편을 시작하며, 마르코 복음서를 먼저 선보입니다. 네 복음서 중에 분량이 가장 짧은 마르코 복음서는 가장 먼저 집필되었으며 그 내용이나 표현법이 가장 단순하다고 알려져 있습니다. 이 복음서 역시 위에서 언급한 ‘기쁨과 환희의 소식’, 곧 ‘복음’을 담고 있습니다. 그런데 마르코라고 알려져 있는 이 책의 저자는 기존의 ‘복음’이란 말이 지니고 있던 것과는 조금 다른 내용을 이 책에 담아 놓았습니다. 한순간에 모든 이를 기쁨으로 가득 차게 만들어 줄 소식으로, 전쟁에서의 승리가 아니라 이스라엘의 한 청년의 이야기를 들려주고 있기 때문입니다. 성공이나 화려함과는 거리가 먼, 오히려 십자가 위 비참한 죽음으로 끝을 맺는 이 청년의 이야기를 담고 있는 책을 ‘복음서’, 곧 ‘기쁜 소식을 담고 있는 책’으로 제시하고 있는 것입니다.

 

마르코 복음서의 역사적 배경 

기원후 66년, 로마 총독으로 팔레스티나 땅을 다스리던 게시우스 플로루스Gesius Florus가 예루살렘 성전의 금고를 약탈하는 일이 벌어진 것을 계기로 유다인들의 분노는 극에 달하게 되고, 결국 열혈당원들과 분노한 유다인들이 로마 제국과 총독의 통치에 항거하며 예루살렘 성전을 무력으로 장악합니다. 바로 이것이 유다가 로마를 상대로 벌인 ‘제1차 유다 항쟁’입니다. 그러나 이 항쟁은 희대의 폭군으로 알려진 로마의 네로 황제가 보낸 군대에 속수무책으로 무너져 내리고 맙니다. 

마침내 기원후 70년 예루살렘 전역은 로마군에 의해 완전히 포위되었고, 결국 예루살렘 성전이 완전히 파괴되어 불타 버림으로써 항쟁은 패배로 끝납니다. 이때 항쟁에 동조했던 유다인들과 당시 선교에 주력하며 동조하지 않았던 유다계 그리스도인들 사이에는 갈등과 경계의 벽이 점점 높아지기 시작합니다.  

기원후 70년대를 살아가던 그리스도인들은 외적으로는 유다교와 로마 제국의 박해에 둘러싸여 있었고, 공동체 내적으로도 예수님의 직제자 이후 세대가 시작되면서 그리스도교 신앙의 핵심이 단절되고 변질될 위험에 놓여 있었습니다. 이처럼 그리스도교는 외적인 압력으로부터 그리스도교 공동체를 안전하게 지켜 내야만 했고, 내적으로는 그리스도교 신앙의 핵심을 확고한 방식으로 정립해야만 하는 상황에 놓여 있었습니다. 바로 이것이 마르코 복음서가 집필된 역사적 배경이라 말할 수 있습니다. 

 

마르코 복음서의 집필 목적과 의도 

마르코 복음사가는 복음서 첫머리에서부터 분명하고 단호한 어조로 예수님의 신원에 대해 ‘예수님은 그리스도이시며 하느님의 아들’이라고 선포합니다. 바로 이 선언이 마르코 복음서가 집필된 목적이라고 말할 수 있겠습니다. 갈릴래아에서 하느님의 말씀을 선포하다가 예루살렘에서 십자가에 못 박혀 죽은 나자렛 사람 예수가 바로 구약에서부터 이 세상에 오시기로 약속된 메시아, 곧 그리스도요, 그분이 바로 하느님의 아들이라는 것입니다. 이 사실을 확고하고 분명한 방식으로 선포함으로써 이 복음서를 읽는 사람들로 하여금 예수님이 그리스도이심을 믿게 하고, 그 믿음을 통해 사람들을 진정한 구원, 곧 영원한 생명으로 이끌어 주는 것이 바로 마르코 복음서가 집필된 목적이자 의도입니다.  

 

마르코 복음서의 저자와 독자  

마르코 복음서 안에서 발견되는 몇 가지 특징들을 바탕으로 저자가 누구였는지를 다음과 같이 유추해 볼 수 있습니다. 

유다계 그리스도인이었던 저자는 이방인들을 위해 아람어와 히브리어를 그리스어로 번역하였고, 또 유다인들의 풍습에 대해서도 잘 설명해 놓았습니다. 게다가 마르코 복음서에서는 이방인들에 대한 관심과 배려가 돋보이는데, 이는 예수님께서 이스라엘 사람만이 아니라 이방인들을 상대로 복음을 선포하셨음을 강조한다는 점 (참조 : 5,1-20; 7,24-30), 또한 빵의 기적을 한 번은 유다인들을 상대로(6,30-44 참조), 다른 한번은 이방인을 상대로(8,1-10 참조) 일으키셨다고 묘사한 점에서 잘 드러납 니다. 특별히 시리아 페니키아 여인과(7,24-30 참조), 이방인 백인대장을(15,39 참조) 신앙인들의 귀감으로 내세우는 장면에서 이방인들에 대한 저자의 관심 이 최고조에 달해 있습니다. 

 

그뿐만 아니라 마르코 복음서 전체적으로도 유다인들이 가지고 있던 구원사적인 특권이 이방인들에게 넘겨지고 있다는 사실이 시사되고 있고(12,9 참조), 유다 민족주의적 사고 방식에서 벗어나 온 인류에 대한 보편적인 구원관이 강조되고 있음을 볼 수 있습니다(참조: 11,17; 13,10; 14,9). 따라서 이러한 사실들을 바탕으로 마르코 복음서의 저자가 염두에 둔 일차적인 독자가 유다인이 아닌 이방인, 곧 그리스도인으로 개종한 이방인계 그리스도인임이 분명하다고 말할 수 있겠습니다.

 

마르코 복음서의 구조  

마르코 복음서의 구조를 한마디로 규정짓는 일은 쉬운 일이 아닙니다. 복음서의 구조가 일목요연하게 짜여 있는 것도 아니고, 복음서의 저자 역시 일정한 틀에 맞추어 복음서를 집필하지 않았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마르코 복음서가 전해 주는 예수님에 관한 이야기가 갈릴래아에서 출발하여 예루살렘에서 마무리된다는 것만은 분명합니다. 따라서 복음서 전체가 보여 주는 이러한 지리적 관점을 중심으로 마르코 복음서를 크게 세 부분으로 나누어볼 수 있겠습니다. 곧 갈릴래아에서의 예수님의 활동을 다룬 전반부(1,1-8,30)와, 예루살렘에서의 예수님의 활동을 다룬 후반부(11,1-16,8), 그리고 갈릴래아로부터 예루살렘까지의 여정을 다루며 전반부와 후반부를 이어 주는 연결부(8,31-10,52)가 바로 그것입니다. 

 

 

추천의 말

출간에 즈음하여

마르코 복음서 입문 / 10

마르코 복음서 둘러보기 / 24

제1과 하느님의 아드님 예수 그리스도 (마르 1,1) / 30

제2과 세례자 요한 (마르 1,2-8) / 42

제3과 세례를 받으시다 (마르 1,9-11) / 54

제4과 유혹을 받으신 후 복음을 선포하시다 (마르 1,12-15) / 68

제5과 제자를 부르시다 (마르 1,16-20) / 82

제6과 병든 이들과 마귀 들린 이들을 고쳐 주시다 (마르 1,32-39) / 96

제7과 비유로 말씀하시다 (마르 4,1-9) / 110

제8과 한 이방인 여인의 믿음 (마르 7,24-30) / 122

제9과 수난을 예고하시며 제자들을 가르치시다 (마르 8,27-38) / 136

제10과 영광스럽게 변모하시다 (마르 9,2-10) / 148

제11과 예루살렘에 입성하시고 성전을 정화하시다 (마르 11,1-18) / 162

제12과 수난을 당하시고 십자가 위에서 죽으시다 (마르 15,22-39) / 176

제13과 빈 무덤 (마르 16,1-8) / 190


글쓴이 박문수

전주교구 소속으로 2002년에 사제로 서품되었습니다.

교황청립 우르바노 대학교에서 성서신학 박사 학위를 취득하고 같은 대학에서 히브리어와 구약 성서신학을 강의했습니다. 

현재 광주가톨릭대학교에서 구약 성경을 가르치며 후학 양성에 힘쓰고 있습니다. 

저서로 『지혜 여정 시서와 지혜서1 잠언·지혜서·집회서』와 역서로 『잉크 한 방울』, 인간의 이야기에 깃든 하느님의 말씀』, 『너는 이것을 믿느냐』(공역)가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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