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4년 5월 10일 (금)
(백) 부활 제6주간 금요일 그 기쁨을 아무도 너희에게서 빼앗지 못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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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대는 지금 누구의 손을 잡고 있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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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정미 [kjm1384] 쪽지 캡슐

1999-12-28 ㅣ No.846

  나는 가끔씩 삶이 힘들어지면 생각하는 여자아이 하나가 있다.  언젠가 지하철에서 본 대여섯살 가량의 어린이였다.  매우 예쁘게 생긴 눈을 가진 아이.  그때 급한 일이 있어 차를 놓고 충무로로 가는 길이었다.  지하철을 타면 가끔씩 보이는 걸인이 내가 타고 있는 칸으로 넘어오고 있었다.  그는 휠체어를 타고 있었다.  마침 여러 가지 복잡한 문제에 시달리던 나는 귀찮은 생각이 들어 고개를 돌려 외면했다.

  그러자 그 걸인은 나의 맞은편에 엄마와 같이 앉아 있던 그 아이에게 다가가 손을 내밀었다.  물론 적선을 구하는 것이었지만, 언뜻 보면 악수를 청하는 것 같은 모습이었다.  여느 걸인이 그러하듯이 그 역시 더럽고 거친 손이었다.  나는 아이가 놀라지 않을까 걱정을 하였다.  그 걸인 역시 그런 생각이 들었는지 얼른 내밀은 손을 다시 집어넣었다.

  그런데 그 여자아이가 엉거주춤 일어나더니 그 자리를 벗어나려 하는 걸인에게 아주 가깝게 다가가서 손을 내미는 것이 아닌가.  걸인은 잠시 당황하더니 그 여자아이의 작고 흰 손을 잡았다.  가까이서 보니 천사가 지친 인간의 손을 잡아주는 모습이었다.  무료하고 지친 지하철 안에서 실제로 일어났던 일이다.

 

     작은 손 하나가 나의 가슴을 만진다

    꽃잎이 핀다

    다섯장의 꽃잎은 막 태어난 아이처럼 울음을 운다

    작은 손가락을 잡는다

    가까이 다가가 손을 잡으면 향기가 난다

    삶이 이렇게 시작되는 것이라는 것을

    나는 줄기를 꼭 쥐고 태어나는 꽃잎을 보고 배운다

 

  삶에서 어떤 진실을 발견한다는 것은 꼭 아름답고 순수한 것에서 나오는 것은 아니다.

그것은 항상 그것과 반대되는 것과 있을 때 등잔처럼 빛을 내는 것이다.  너무 지나치게 순수하고 아름다운 것은 왠지 공허하고 기교만 있는 것 같아 오히려 불결하다.  빛이 어둠을 밝히는 것과 같은 이치이다.  그 여자아이는 걸인이라는 우리 사회의 아픔의 손을 잠시 잡았던 것이다.  그러면 우리는 가까이에 있는 사람들 특히 자신의 가족들의 손이나마 따뜻하게 한번 잡은 적이 있는가?

  그날 오랜만에 일찍 집에 들어가 아내의 손을 한번 잡아보았다.  아무말도 하지 않고 그냥 아내의 손과 딸아이의 손을 잡고 조금씩 흔들어보았다.  그것은 내가 당신들을 얼마나 소중하게 생각하고 있는지, 내가 힘들고 지칠때면 항상 당신들을 떠올린다는 메시지였다.  처음에는 어색해 하던 아내와 딸아이는 조금 지나자 활짝 웃으며 나에게 사랑한다는 말을 했다.  참으로 오랜만에 들어보는 말이었다.

  그때 지하철에서 만난 한 여자아이가 나의 손과 우리 가족의 손을 잡게 한 것이다.  그 아이가 따뜻하게 잡은 손은 더럽고 거친 걸인의 손만이 아니었다.  아주 오랫동안 아무것도 잡지 않아 하얗게 얼어버린 내 마음의 차디찬 흰 손이었다.  타인의 고통에 대해 철저하게 무관심한 우리 사회의 비정한 현실의 손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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