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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얀 흔적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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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얀 흔적
1955년 삭풍이 매섭게 휘몰아치는 어느 겨울 날 새벽녘이었습니다. 아직도 검푸른 하늘엔 별들이 초롱초롱 빛나고 있었습니다. 만상이 아직도 어둠과 고요에 잠든 때, 이 마리아는 미사경본과 묵주를 챙긴 후 새벽미사에 참여하기 위하여 마당으로 내려섰습니다. 한 줄기의 찬바람이 마리아의 얼굴을 스치고 지나 갔습니다. 그녀가 대문을 향하여 발걸음을 내딛자 , 마당에 하얀 물체가 가는 선을 이루며 담으로 향 하고 있었습니다. 그녀는 걸음을 멈추고 허리를 굽혀 하얀 물체를 손으로 확인해 보았습니 다. 그 건 쌀이었습니다. 밤손님이 꼬리를 남겨 놓고 간 것입니다. 광문은 열려있고, 어제 낮 방앗간에서 벼를 찧어 쌀을 가득 채워 놓은 쌀독은 거의 바닥나 있었습니다. 대문을 열고 밖으로 나와 보았습니다. 역시 담밖에도 하얀 흔적이 새벽길에 선명하게 드러 나 보였습니다. 그녀는 하얀 선이 인도하는 방향으로 따라 가보았습니다. 그 하얀 선은 네 자매를 홀로 기르는 정말 어려운 청상과부의 다 쓰러져 가는 초가집 사립문으로 이어져 있었습니다. 마리아는 행상을 하는 그 과부와 네 자매의 가난에 찌든 모습, 특히 국민학교를 졸업한 후, 매일 산에 가서 나무를 한 지게 가득해와서 장터에서 팔아 엄마를 돕고 있는 과부의 큰 아들의 애처로운 모습이 눈에 밟혀 왔습니다. 그녀는 갔던 길을 되돌아 집으로 돌아 왔습니다. 싸리 빗자루로 담 밖에서 시작된 그 하얀 흔적을 없애기 시작하였습니다. 새벽녘 찬바람에 얼굴과 귀, 맨손이 참을 수 없을 정도로 시려와도 그녀는 쓰레질을 멈추지 않았습니다. 드디어 그녀가 초가집 사립문 앞의 그 하얀 흔적들을 깨끗이 지워버릴 때, 별들이 빛나는 새벽하늘에 삼종이 은은히 울리기 시작하였습니다.
이 순재 마리아님은 천수를 누리시고, 7년 전에 하느님 나라로 돌아가셨습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