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4년 5월 10일 (금)
(백) 부활 제6주간 금요일 그 기쁨을 아무도 너희에게서 빼앗지 못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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믿고 의지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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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만형 [largo7a] 쪽지 캡슐

2001-09-20 ㅣ No.4655

나는 회사 일로 가끔 비행기를 탈 때가 있다.

짧은 거리의 국내선은 물론이고, 먼 거리인 국제선을 타야하는 경우 모두, 비행기를 타는 것이 싫고, 두려웠다.

젊었을 때는 비행기를 타면, 특히 국제선인 경우, 그 긴 시간을 휴식시간

으로 삼아 평소의 부족한 수면을 충족시켰을 뿐, 두려움 같은 감정은 나와는 무관하였다.

그러나 이젠 나이 탓인지 왠지 비행기 타는 것이 두렵다.

하찮은 삶일지라도  나의 준비 안된 삶에 두려움이 숨어 있는 지도 모를 일이다.

 

긴 잠에서 깨어났다.

기내의 중앙 벽에 설치된 스크린에는 내가 탄 비행기의 속도와 고도 그리고 출발지의 시간, 도착지의 현지시간 등을 알려주는 기록과 비행기의 현 위치를 알려주는 비행 행로가 펼쳐지고 있었다.

비행기는 중간 기착지인 시카고 오헤어 공항을 향하여 캐나다 영공을 날고 있었다.

38,000 피트 상공에서 기내 창으로 내려다보이는 넓디넓은 평야는 거의가 네모꼴로 구획된 경지(耕地)였다.

대지는 황금빛, 초록빛, 연초록빛으로 곱게 물들어 그 아름답고, 부드러운 작물의 색상들로 모자이크를 이루고 있고,

가을빛으로 채색되고 있는 광활한 들녘 풍경은 풍요로움에 잠겨 있었다.

코발트 빛 하늘과 비행기 옆을 스치며  유영(遊泳)하는 하얀 실구름은 아름다움과 평화로움을 모두 다 지니고 있었다.

나는 바지주머니에서 묵주를 꺼내, 묵주기도를 드렸다.

그 때 까지 비행기에서 짧은 기도를 드린 적은 있지만, 묵주기도를 드린 것은 처음이었다.

마음을 다하여 사도신경, 주기도문, 성모경, 구원송, 영광송을 암송하였다.

청명한 하늘을 날며, 하느님이 창조하신 하늘과 땅을 함께 보며 드리는  기도는, 평소의 기도와는 달리 내 영혼 속에 또 다른 기쁨과 하느님의 크신 사랑을 새겨주었다.

문득 우주를 비행하는 우주인이나, 천체물리학자들 중 무신론자는 없다, 라는 사실이 기억에 떠올랐다.      

 

출장의 목적을 완수하고, 귀국 길에 딸이 있는 뉴욕으로 갔다.

나는 딸아이와 많은 얘기와 사랑을 나누었다. 딸아이의 마음 씀씀이가 나이와 걸맞게 성숙해 있어 너무 기뻤다. 떠나오기 전날 저녁, 뉴욕의 맨하탄에서 딸아이와 저녁을 함께 하는 자리에서 여러 가지 담소를 하던 중, 비행기에 관한  나의 두려움을 얘기하였더니,

"아빠! 지상에서 자동차는 물론이고, 단순한 사고로 불행한 일을 당하는 비율이 하늘의 비행기 사고 보다  더욱 높아요. 아빠 걱정하지 마세요."

하며, 딸아이는 미소지었다.  

원래의 귀국 비행기는 9월 11일 오후 1시에 존 에프 케네디 공항을 이륙하는 대한항공 082편으로 예약이 돼있었으나, 9월 10일로 귀국일정을 하루 앞당겼다.

 

보고싶은 딸을 만날 수 있었다는 기쁨의 여운 그리고 다소는 힘들었던 먼 여정을 끝내고 12일 오후 인천공항에 도착하였다. 서울에 도착하는 즉시 전화하라는  딸아이의 당부대로, 서울에 도착한 날 12일 저녁 9시35분 경, 딸에게 아빠의 무사한 귀가를 알려주었다.

그리고 잠시 후 , TV의 긴급속보는 월 트레이드 센터와 펜타곤의 충격적이며, 슬픈 소식을 보도하고 있었다.

월 트레이드 센터의 쌍둥이 빌딩과 인근 거리에 있는 딸아이가 염려되었다.

딸의 집으로 전화를 하였다.

전화 사용폭주로 연결이 불가능하니, 나중에 다시 걸어 달라는 AT&T의 녹음만이 수화기에 들려왔다. 전화 걸기를 몇 시간을 시도한 이후 새벽 2시경, 딸의 셀루라 폰으로 뚜 하고 송신음이 가고 있었다.

딸의 음성이 들려왔다. 딸은 안전하였다.

친구 집에 함께 있으니, 걱정하지 말라고 아빠를 안심시켰다.

9월 14일 딸애로부터 전화가 왔다.

딸아이는 흐느끼고 있었다.

현지인들 모두가 겪는 충격다음의 슬픔이 딸을 흐느끼게 만들었나 보다.

수많은 죽음과 상처를 목격한 사람이라면 어찌 눈물이 없을 수 있겠는가?

더구나 평소에 알던 사람이 테러로 유명을 달리하였다면.......

나는 딸에게 말했다. "너의 슬픈 감정을 극복해야만 한다. 얘야!."

그리고 다음날 토요일 딸을 위한 생미사를 올렸다.

딸의 안전과 마음의 평화를 위하여 내가 온전히 믿고 의지할 분이라고는 하느님뿐이었다.

일요일 딸아이의 음성은 평상시의 목소리를 되찾고 있었다.마음의 평정을 되찾은 전화음성이었다.

하느님 감사할 뿐이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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