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4년 5월 10일 (금)
(백) 부활 제6주간 금요일 그 기쁨을 아무도 너희에게서 빼앗지 못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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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 프란체스코의 기도입니다 (가톨릭성가 71) ♬ 평화의 기도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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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현 [kimhh1478] 쪽지 캡슐

2014-08-28 ㅣ No.82702

(십자성호를 그으며)
† 성부와 성자와 성령의 이름으로 아멘.

 

 

 [가톨릭성가 -71- ] ♬...평화의 기도...

 

이 곡의 가사는 그 유명한 성 프란체스코의 기도입니다.
성 프란체스코는 오늘의 아시시 성 프란체스코 성당을
탄생하게 한 장본인이자 성자로 높은 존경의 대상이 되고있습니다.
젊은 시절 방탕한 생활에 빠져 인생을 허비하기도 했던 그는 고통과

희생을 감수하면서 사랑을 실천해 성인으로 거듭나게 됩니다
.

 

 

 

주여 나를 평화의 도구로 써 주소서.
미움이 있는 곳에 사랑을
상처가 있는 곳에 용서를
분열이 있는 곳에 일치를
의혹이 있는 곳에 믿음을 심게 하소서.
오류가 있는 곳에 진리를
절망이 있는 곳에 희망을
어둠이 있는 곳에 광명을
슬픔이 있는 곳에 기쁨을 심게 하소서.
위로받기 보다는 위로하며
이해받기 보다는 이해하며
사랑받기 보다는 사랑하며

자기를 온전히 줌으로써 영생을 얻기 때문이니
주여, 나를 평화의 도구로 써 주소서.

 

 

 

 

 

 

 


이 곡의 가사는 그 유명한 성 프란체스코의 기도입니다. 

성 프란체스코는 오늘의 아시시 성 프란체스코 성당을
탄생하게 한 장본인이자 성자로 높은 존경의 대상이 되고있습니다.


젊은 시절 방탕한 생활에 빠져 인생을 허비하기도 했던 그는
고통과 희생을 감수하면서 사랑을 실천해 성인으로 거듭나게 됩니다.

 

그가 27세이던 1209년, 성 메시아의 날인 2월 24일 프란체스코는
포티운쿨라라는 작은 교회에서 기도를 하고 있었습니다.


그 때 그리스도가 그의 사도들에게 가르친 '병든 자를 고치고,
죽은 자를 살리며, 문둥이를 깨끗하게 하며...


너희 전대에 금이나 은이나 동을 가지지 말며,
여행을 위하여 주머니나 두벌 옷이나 신이나 지팡이를
가지지 말라'는 마태복음 10장의 글을 듣게 됩니다.

 

그는 이 말이 자신을 깨우치는 가르침으로 받아들였고
그 가르침대로 신발과 지갑과 지팡이를 모두 던져 버렸습니다.


고대 그리스도인들이 걸쳤던 겉옷 튜닉과 세 겹으로
매듭지어진 밧줄을 허리에 매고사랑의 실천에 헌신했습니다.
바로 성 프란체스코의 탄생입니다.

 

이때부터 1226년 생애 말기까지 병자와 가난한 자들을 위해
인생을 바쳤고 말년에는 급기야 눈이 멀어 앞을 보지 못하고
손과 발에 수종이 생겨 고생을 하여도 죽는 순간까지
'피조물들의 노래'를 부르며 미소를 지었다고 합니다.

 

 


한국교회에서 부르는 가톨릭성가 중에서 가톨릭교회
밖에서도 소위 ‘히트’를 한 곡이 있을까요? 있고말고요.


바로 이달의 성가로 소개하는 김영자 수녀의 곡 ‘평화의 기도’입니다.


1960년대까지는 우리 성가집에 우리나라 음악가가 작곡한
성가가 실리기로는 이문근 신부님의 작품 몇 곡뿐이었습니다.


그러다가 1970년대에 공동체 성가집이 발간되면서
속칭 토종성가들이 대거 수록되었습니다.


그렇지만 옛날이나 지금이나 가톨릭성가는
개신교 찬송가에 비해서 재미가 없고 딱딱하다는
일반적인 평가에는 변함이 없었습니다.


또 토종성가의 대부분은 작곡기법으로 볼 때 수준 이하의 곡들이어서
작곡 전문가들의 눈에는 유치하게까지 보이기도 했습니다. 
 


그런 중에 이 ‘평화의 기도’는 특별히 예외로,
우리 교회 밖에서 더 인기가 있었습니다.
당시 남자 고등학교에 있는 합창단이나 중창단들은
거의가 다 이 노래를 애창곡 목록에 올렸습니다.
그런 학교들은 대부분 보수적인 개신교 재단의 학교들이었지만
노래하는 학생들은 작사자나 작곡자의 신분도
모른 채 그저 곡이 좋아서 불렀습니다.
남성4부로 부르는 후렴도 아름다웠지만
특히 1, 2절의 그레고리오 성가 시편 낭송율풍의 노래는
그들에게 낯설면서도 매력적이었습니다.
거기에다 성 프란치스코의 기도문 내용은 또 얼마나
아름답게 느껴졌을지 쉽게 상상할 수 있을 것입니다.

 


“오, 주여 나를 평화의 도구로 써 주소서. 미움이 있는 곳에 사랑을,
다툼이 있는 곳에 용서를, 분열이 있는 곳에 일치를,
의혹이 있는 곳에 믿음을 심도록 나를 도와 주소서,
위로받기보다는 위로하며, 이해받기보다는 이해하고,
사랑받기보다는 사랑하게 하소서.”
해님을 형님이라 달님을 누님이라 부르고,
새들을 모아놓고 강론을 하고,
늑대도 형제라 부르며 쓰다듬었다는 사랑 많던
아시시(Assisi)의 프란치스코 성인의 이 기도는
언제 되새겨도 감동적입니다.
이 기도 가사에 음악의 옷을 잘 재단해서 입힌
작곡자 덕분에 기도도 선율도 함께 유명해졌습니다.
 
이 성가는 신자들의 개창보다는 합창단이 노래할 때
그 화성(和聲)의 매력에 힘입어 더 좋게 들립니다.
이렇듯 약간의 전문성 때문에 성당에서는 신자들의
사랑을 기대보다 덜 받고 있는 일이 안타깝습니다.
일반인들에게는 음역이 약간 높아서 부르기 편하지 않은 것도 사실입니다.
그래서 신자들이 개창을 할 경우에는 음을 전체로
한 음(2도) 정도 낮추어 부르면 좋습니다.
또 중간에 박자가 바뀌는 곳도 있어서 부담스러울 수 있습니다.
그렇다고 박자를 바꾸어 부를 수는 없으므로,
이런 경우 노래를 잘 부르는 분이 앞장서서 자신 있게 끌고 가면
주위에서는 자기도 모르게 목청을 돋우어 모두 잘 부르게 됩니다.
우리의 보배로운 성가를 우리가 열심히 부르고 자랑함으로써
우리 스스로도 은총을 받고 또 이웃들에게 선교하는 데도 도움이 된다면
작곡자에게는 최고의 보람일 것입니다.
이렇게 해서 많은 작곡가들이 더 좋은 성가를 더 많이 짓는 데 힘쓴다면
주님의 영광과 우리의 기쁨이 날로 커지리라 믿습니다.

[소공동체모임길잡이, 2008년 7월호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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