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4년 5월 11일 (토)
(백) 부활 제6주간 토요일 아버지께서는 너희를 사랑하신다. 너희가 나를 사랑하고 또 믿었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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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든 재산을 팔아 여행할 수 있다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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석영미 [sukmaria] 쪽지 캡슐

2001-01-04 ㅣ No.2327

내가 모든 재산을 팔아 여행할 수 있다면...

 

제가 바라는 삶 중에 하나입니다.

 

제가 여행에 대해 과감하게 투자하기 시작한 것은 93년부터입니다.

제가 하는 신앙모임에서 93년 세계젊은이대회에 참여하기 위해 미국순례가 있었습니다. 당시만 해도 서민들이 미국여행 꿈이나 꾸었겠습니까? 비자 나오는 것도 많이 어려운 시기였지요.

저는 거금 백만 원하고도 몇십만 원 더 보태서 순례길에 기어이 끼어 갔습니다.

물론 제 돈은 아니었지만 그 앞 해에 제가 일년동안 부모님을 도왔으니 그 정도의 혜택을 받을 권리는 있다고 생각했습니다.

그 당시 함께 가톨릭학생회연합회 일을 보았던 김종봉 선배가 그랬지요.

"그 돈이면 학생회 자료를 만들고 여러 가지 사업도 할 수 있는 돈인데 꼭 그 많은 돈을 쓰면 미국여행을 가야겠냐?"

저는 그 순간 번쩍 이런 생각이 들었습니다.

성서에, 보석장수가 진짜 귀한 보석을 밭에서 발견하곤 자신의 전 재산을 팔아 그 밭을 산다는 이야기! 보석을 얻겠다는 그 보석장수는 어리석은 사람일까?

나는 내 인생에서 보석을 찾고 싶었지요. 전 재산을 다 내고라도...

저에겐 거금이었지만 사실 그 정도의 여행경비로는 왕복비행기값 정도 되는 돈이었습니다. 한국, 일본, 대만 젊은이들이 함께 가는 단체순례였기 때문에 정말 싼 가격으로 10박하고도 더 많은 시간을 보내고 왔지요.

미국 엘에이에 도착해서 뎀버까지 서부사막을 횡단하는 동안 잠자리며 먹는 거며 참 풍족했습니다. 저는 그게 좀 불만스러웠지요. ’이게 순례냐?’

미사시간 함께 복음을 나누는 때에 제가 한마디했습니다.

진짜 순례라면 정말 힘들고 어려워야하는데 너무 풍족한 것 같다고...

제 불만에 대해 저희를 인도하고 지도하신 이탈리아인 안토니오라는 지도자님의 답변은 지금도 잊을 수 없습니다. 진정한 크리스찬의 삶은 풍족함도, 부족함도, 즐거움도, 고통스러움도 모두 감사하게 받아들이는 삶이라고 하셨지요.  

지금 생각해보면 우리 순례가 그렇게 호화사치 순례는 아니었습니다. 미국 고등학교 기숙사에서도 자고, 대학 기숙사에서도 자고, 유스호tm텔에서도 자고, 강당에서도 자고, 들판에서도 잤지요.   

 

풍족함도, 어려움도 모두 감사하게 받아들이는 것이 크리스챤의 삶!

 

아마 제 인생에서 그렇게 멋지고 풍족한 순간이 있었기에 어쩌면 인간적으로 지옥 같고, 악몽 같은 제 긴 투병생활도 살아낼 수 있지 않았나 싶습니다.

저는 산타페 성 프란치스코 대성당 앞에서 양팔을 벌리고 서 있는 23살의 명령하고 환한 제 모습을 무척 사랑합니다. 하느님에 대한 영성으로 가득한 내 모습! 제 인생에서 가장 행복한 시기를 말하라면 저는 미국순례 때 그때라고 강하게 말할 수 있습니다. 어떤 상황 속에서도 미국순례 때 나에게 보여주신 하느님의 사랑을 생각할 때면 저는 그분의 사랑에 대해 의심할 수가 없어요. 그랜드 케년의 광활함 앞에서 저는 더 이상 신이 있다 없다를 두고 고민하길 그만 두었고, 뎀버의 광야에서 교황님과의 만남을 통해 하느님이 저를 끝까지 책임지고 사랑하실 것이라는 것을 느끼게 되었지요. 우리 단체 세계 모임에서 봉쇄수녀원으로 가겠다고 일어나는 몇 천명의 젊은 아가씨들과 선교사 사제가 되겠다는 몇 천명의 젊은이들을 보면서 더 이상 나에게 성소가 없다고 말하지는 못하겠더군요.

 

저는 23살의 제 모습을 저의 신혼집 부엌에서 잘 보이는 벽에 걸어 두고 싶은데 남편 토마는 내 모습이 웃기다며 그냥 작은 방 한쪽 벽에 걸어두랍니다. 토마에게는 말괄량이 미운 아가씨처럼 보일지 모르는 그 사진이 저에게는 생애 최고의, 잊을 수 없는 멋진 사진이지요. 다른 사람은 모르지만 저만큼은 그 사진 속의 제 모습에서 하느님을 보기 때문입니다.   

 

만약 제가 아프지 않았다면 저는 몇 해에 걸쳐 올해도 제 전 재산을 털어 순례를 떠났을 것입니다. 프랑스, 로마, 이탈리아, 이스라엘  아마 제 생애가 다 하는 날까지, 제 건강이 허락하고 조건만 된다면 저는 재산을 탈탈 털어 또 순례를 갔을 겁니다.

 

전 재산을 팔아 멋진 진주가 있는 밭을 사는 보석장수처럼....

 

우리가 어디에 가치를 두고 살 것인가 하는 것은 그 사람 개인의 가치 기준일 것입니다. 하지만 크리스챤의 삶이 어떤 것인가? 에 대해 함께 생각해 본다면...

크리스챤의 삶은 모험하길 두려워하지 않는 삶이 아닐까 싶습니다.

전 재산을 파는 행위도, 거금의 돈을 쓰는 것도, 순례를 떠나는 것도, 여행을 떠나는 것도 우리가 일상이라고 생각하는 이 보이는 세상을 과감하게 박차고 일어나는 작은 행위가 아닐까 싶어요.

 

나는 내가 하던 모임을 떠났지만

지금도 그 모임을 하고, 올해도 이스라엘로 순례를 떠난 친구와 공동체 식구들에게 희망을 걸어봅니다. 물질 그 너머의 세계를 향해 모험할 준비가 되어있는 그 사람들을 지켜보는 것만으로도 저에게 힘이 되니까요.  그들을 보며 저도 용기를 얻는 거지요.

나도 물질의 집착 너머로 나아가고도 남는 하느님의 자녀라는 것을...

 

몇 주 후면 부제품을 받을 김종봉 학사님께서 대학시절 사치가 아니냐고 저에게 충고했지만 저는 그 돈으로 제 믿음을 얻고 풍요로움과 고통을 함께 받아들이는 삶이 무엇인지 알아듣게 되었음을 확신합니다. 제 전 생애를 살아낼 힘을 사온 거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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