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4년 5월 9일 (목)
(백) 부활 제6주간 목요일 너희가 근심하겠지만, 그러나 너희의 근심은 기쁨으로 바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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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날 - 김민기 │ 1집 197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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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강길 [u90120] 쪽지 캡슐

2007-10-25 ㅣ No.6908

그날 - 김민기

金敏基 / 김민기 1집 1972

Kim, Min-Ki 1951-

No.9 - 그날

 

     

 

그날

(작사:김민기 작곡:김민기)

꽃밭 속에 꽃들이 한 송이도 없네
오늘이 그 날일까,
그 날이 언제일까
해가 지는 날,
별이 지는 날
지고
다시 오르지 않는 날이

싸움터엔 죄인이 한 사람도 없네
오늘이 그 날일까, 그 날이 언제일까
해가 지는 날, 별이 지는 날
지고 다시 오르지 않는 날이

마음 속에 그 님이 돌아오질 않네
오늘이 그 날일까, 그 날이 언제일까
해가 지는 날, 별이 지는 날
지고 다시 오르지 않는 날이

1971년 원본 그대로 복원된 이 앨범은 꾸미지 않은 담백함과 화려하지 않지만 깊이 있는 색갈이 문화적 예술성을 지닌다. 현대 음악에서는 절대로 표현할 수 없는 숙성된 소리는 OLD라는 표현보다 AGED된 사운드로 동시녹음에서 느낄 수 있는 공간감과 진지함이 반드시 보전해야만 될 빈티지로서 의무를 갖게 한다. 김민기가 1971년 발표한 유일한 LP 정규앨범으로 꾸미지 않은 담백함과 화려하지 않지만 깊이 있는 색갈이 문화적 예술성을 지닌다. 70년대 초 국내 포크음악을 대표하는 이 앨범의 역사적 가치와 희소가치만큼 마치 유물을 복원하듯 조심스럽게 디지털 리마스터하여 왜곡되지 않은 당시의 사운드를 CD로 담아 재 발매됨은 수집가들에게 반가운 일이며 가요계에 큰 의미를 지닌다고 할 수 있다.

     

     

김민기 論

언젠가 방송국에서 민기에게 내가 [김민기 논]을 쓰겠다고 했더니 [김민기 놈]하고 그가 되물어 거기 있던 모두가 웃음을 터뜨렸던 일이 생각난다. 민기는 그렇게 나이가 어울리지 않게 씁씁한 친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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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의 노래속엔 대체로 콧대 높고 줏대있는 [젊은 한국]이 도사리고 있다. 시간이 남아 돌아가며 오래 기다려야 하는 스튜디오 밖 한구석에 쭈그리고 않아 기타아로 조용히 클레식 소품을 연습해 보던 그의 모습이나, 어느날 오후 머리부터 발끝까지 함빡 비를 맞아 뼈속까지 젖을을 그가 맨발로 내 사무실에 걸어 들어오던 일(그는 금붕어처럼 뻐끔하니 입을 벌린 구두를 한길가에 내 버렸단다)이며 뭇 사람들에게 미음을 받아가면서도 국산품 노래를 외고집하던 일 등등, 그러한 그의 일상 생활은 그의 음악속에 미화되거나 위장됨이 없이, 있는 그대로 소박하고 순수하게 구현되 있다.

아번 첫 디스크를 위해 특별히 음악적인 헌신을 보여준 정성조 쿼텟과 김광희 양에게 고마움을 금치 못한다. 한마디로 민기는 [복도 많은 놈]이다. 그러나 이제부터다. 앞으로가 그의 가능성과 창조력의 시험대가 될 것이다. 본격적인 [김민기 논]은 그 때 그날로 미루기로 하겠고 끝으로 이 디스크가 민기의 참 가치나 숨은 실력을 알아 볼수 있는 좋은 시금석이 되어 주리라 믿어 의심치 않으며 많은 분들에게 권한다.

1971. 10. 21. 경음악 평론가 최경식

     

[대중음악 100대 명반]김민기-70년대 ‘청년다움’의 결정체

1971년에 나온 김민기의 유일한 정규 앨범은 우리 대중음악사에서 이른바 ‘전설’이란 명칭에 값할 많지 않은 음반 가운데 하나로 꼽힌다. 그 전설은, 이 음반이 세상에 나온 지 얼마 되지 않아 전량 압수 수거되고 이후 초희귀본으로 고가에 거래되었다는 사실, 그리고 무엇보다도 김민기 본인이 오랫동안 정치적 박해와 금지의 사슬에 묶인 채 금기의 시절을 살아야 했다는 사실에 기인한 바 크다.

그러나 이 음반의 가치는 그런 데에만 있지 않다. 이 음반은 당시까지 서구 모던 포크의 번안 수준에 머물렀던 한국의 이른바 통기타 가요가 한국 젊은이들의 정신과 감성을 표현하는 음악 양식이 될 수 있음을 보여준 음반이고, 스스로 작사 작곡하고 노래 부르는 싱어송라이터 시대의 도래를 알린 음반이며, 대중가요가 그저 그런 사랑과 이별, 눈물뿐 아니라 깊은 철학적 사색과 시대적 고민을 담는 예술적 산물일 수 있음을 보여준 음반이기도 한 까닭이다.

이 음반이 흔히 통기타 가요로 통칭 되는 70년대 초반 한국적 모던 포크의 대표작 가운데 하나로 평가받지만 자세히 살펴보면 그 음악적 색깔은 의외로 다양하고 폭넓다. 클래식 기타의 어쿠스틱한 사운드를 주조로 한 ‘친구’ ‘저 부는 바람’ ‘꽃 피우는 아이’ ‘그날’ 등이 정갈한 통기타 음악의 진수를 보여준다면, 정성조 쿼텟의 반주로 녹음된 ‘아하 누가 그렇게’ ‘바람과 나’ ‘길’ ‘종이연’ 등은 재즈의 자유분방한 사운드를 연상케 한다. 그런가 하면 피아노와 현악으로 연주된 ‘아침이슬’은 다분히 클래식 느낌을 준다. 말하자면 이 음반은 단순소박한 통기타 사운드에 머물던 한국 포크음악을 음악적으로 한 단계 업그레이드시킨 음반으로 평가받아 마땅하다.

물론 이 음반의 사회사적 가치를 빼놓을 수 없다. 이 음반이 나온 70년대 초가 어떤 시대였던가. 3선 개헌과 함께 한 대통령 선거에서 박정희가 당선되면서 극악한 군사 독재의 영구집권 체제가 예고되고 개발독재의 모순이 터져 나오면서 사회적 갈등이 고조되었는가 하면, 이른바 퇴폐풍조를 추방한다며 젊은이들의 장발과 미니스커트까지 단속의 대상이 되기 시작한 시기이다. 당대의 젊은이들이 이 질식할 듯한 분위기 속에서 어떤 식으로든 불만을 느끼고 자유를 꿈꾸기 시작했을 때, 새롭게 유입된 모던 포크와 록음악, 그리고 장발과 청바지 같은 히피 스타일이 그들의 욕망을 분출시키는 수단으로 채택된 것은 자연스러운 일이다. 이들을 흔히 청년문화라 부르지만 단지 캠퍼스 통기타와 청바지, 장발뿐이었다면 청년문화란 명칭은 적절치 않았을 것이다.

이 음반에 담긴 노래들, 그리고 이후 주로 양희은의 목소리로 표현된 김민기의 노래들은 이 새로운 사조에 하나의 짙은 자의식을 새겨 넣어 주었다. 단순하고 즉물적인 기존 대중가요 노래말과 달리 깊은 정신적 울림을 가진 그의 노래말은 당대의 젊은 대학생들이 사회와 현실 속에서 느끼는 정신적 갈등을 대변해 주었다.

그의 노래가 없었다면, 이 음반이 없었다면, 70년대 초의 청년문화는 그저 하나의 소비적 유행사조 정도로 치부되고 말았을 것이다. 그런 의미에서 이 음반은 70년대 청년문화의 ‘청년다움’을 완성시킨 음반으로 기억되어야 한다.

〈김창남|성공회대 신문방송학과 교수〉

 

한국 모던 포크의 ‘전설’…메시지 시적 언어로 형상화

김민기는 처음부터 신화였고 지금까지도 신화로 남아있는 인물이다. 1971년에 발표된 그의 유일한 음반은 그 이듬해 전량 압수당해 폐기됐고, 모든 곡 자체가 금지곡이 되며 그는 그렇게 (의도하지 않게) 전설이 돼갔다. 69년 서울대학교 미대에 입학한 그는 도깨비 두 마리란 뜻의 ‘도비두’란 듀오를 만들어 활동하였고, 주로 YMCA 청개구리 무대에서 노래를 불렀다고 한다. 평소 김민기의 노래와 재능을 아껴오던 CBS의 김진성 PD는 그에게 독집 앨범의 취입을 권했고, 김진성 PD의 도움을 받아 하루만에 자신의 처음이자 마지막 독집 앨범을 녹음하였다. 그리고 그 앨범은 한국 모던 포크사에 길이 남을 전설의 앨범이 되었다.

‘아침이슬’과 ‘친구’ 같은 노래들을 나직한 목소리와 어쿠스틱 기타의 선율에 맞춰 불렀다. 세션으로 참가한 정성조 쿼텟은 앨범에 클래시컬한 분위기를 입혔다. 무엇보다 김민기의 음악을 말함에 있어 가장 먼저 평가되어야 할 것은 그의 가사쓰기였다. 그는 절대 직접적으로 말하지 않고 선동적이지도 않았지만, 그의 가사는 그 안에 내포된 메시지를 시적 언어로 형상화시키며 새로운 가사쓰기의 방법론을 제시하였다. 이후 정권의 공작에 막혀 정상적인 활동이 불가능해진 그는 자신의 학교 후배들을 이끌고 메아리와 노래를 찾는 사람들 음반제작에 큰 역할을 하였고, ‘공장의 불빛’ ‘개똥이’ 같은 노래극을 제작하였다. 또한 90년대 들어서는 ‘지하철 1호선’이라는 록 뮤지컬을 연출하며 한국 뮤지컬 역사에 하나의 이정표를 세웠다. 현재 학전의 대표로서 창작 뮤지컬·오페라 작업에 전념하고 있다.

<김학선|웹진 가슴 편집인>

     

'기념 음반', 기념비적 음반이 되다

1. Legend
1971년 말에 발표된 이 음반은 이듬해 1972년 3월 서울대 문리대 '신입생 환영 공연' 이후 전량 수거되어 폐기되었다. 이렇게 거의 발매되자마자 '불온' 딱지를 붙인 뒤 이 음반은 '전설'이 되었다. 이후 몇 가지 버전의 음반들이 나돌면서 '컬트'의 대상이 되었다. 공식적인 재발매는 두 번 있었는데 한번은 1987년 9월5일, 다른 한번은 1990년 1월5일이다. 첫 번째 재발매는 보랏빛의 변형된 표지와 수록곡의 일부를 뺀 뒤 "아! 대한민국"(!)이라는 '건전가요'를 추가하여 발표되었고, 두 번째 재발매는 초판과 동일한 포맷(표지과 수록곡)으로 발표되었다. 물론 두 경우 모두 저작자의 허락을 충분히 얻어서 발매한 것은 아니었고 원본(마스터 테이프)이 보존되어있지 않은 상황에서 만족할 만한 음질을 보장할 수 있는 것도 아니었다.

김민기는 1969년 대학교에 입학하여 친구 김영세와 함께 '도비두'(도깨비 두 마리라는 뜻)라는 이름으로 서울 YMCA '청개구리' 무대에서 활동했고 방송에도 이따금 모습을 드러냈다. 도비두는 초희귀판이 되어버린 음반에 세 곡의 레코딩을 남겼고, 모 유명 음악인이 심사를 보는 앞에서 오디션을 보았다는 전설도 함께 전해진다. 김영세가 군에 입대한 후 김민기의 재능을 아끼던 기독교방송국(CBS)의 한 음악 프로그램의 PD와 DJ였던 김진성과 최경식의 주선으로 김민기는 '마장동 스튜디오'에서 하루만에 이 음반을 녹음한다.

2. Personnel
500장이라는 작은 수량을 발매한 것이나, 음반의 대부분이 자작곡이라는 것은 이 음반이 상업적인 고려를 전혀 하지 않은 음반임을 알 수 있다. 대중적으로 잘 알려진 곡을 다시 불러 싣지도 않았고, 유행하던 팝의 번안곡도 없으며, 심지어 알려진 작곡가의 곡조차 들어있지 않은 것은 마음씨 좋은 형들이 재능 있는 동생을 위해 잘 아는 친구들의 도움을 얻어 '기념음반'을 하나 만들어 주었다는 가정을 가능하게 한다.

그렇지만 이런 가정이 올바르기 위해서는 음반 제작에 참여한 인물들의 면면이 만만하지 않다. 음반을 기획한 최경식과 김진성같은 인물은 라디오 방송국의 음악 프로그램를 제작하고 있는 PD와 DJ였으며, 이들 방송계의 '실력자'가 개입한 것은 이 음반이 기념음반의 성격을 넘어선다는 점을 말해준다. 또한 정성조 쿼텟의 연주도 마찬가지다. 미 8군 무대에서 연주한 경력을 가진 정성조는 이 시기 쿼텟을 이끌고 일반무대와 방송에서 활약했으며, 직업적 작·편곡자 경력도 시작하고 있었다.

3. Text (1): 김민기 클래식 ≠ 클래식 김민기
우선 표지의 이미지가 독특하다. 마치 컴퓨터 그래픽 작업을 거친 것 같다(물론 아니다). '김민기'라는 문자 밑으로 옆 모습의 '초상화'가 실려 있다. 점을 찍어 표현한 그림, 이른바 점묘화에 가깝다. 김민기가 '미술학도'라는 것을 새삼 떠올리게 하는 대목이다. 물론 멀리서 보면 그의 형상이 점점 또렷해진다. 음반에 담긴 음악도 비슷하다. 반복해서 새겨서 들을수록 묘미가 살아나고 색다른 뉘앙스로 다가온다.

음반에 수록된 곡들은 크게 두 범주로 나눌 수 있다. 한 부분은 어쿠스틱 기타(클래식 기타) 중심으로 연주하는 "친구", "저 부는 바람", "꽃 피우는 아이", "그 날" 등이고, 다른 하나는 정성조 쿼텟과 함께 연주한 "아하 누가 그렇게", "바람과 나", "길", "종이연" 등이다. 물론 이는 편의적 구분일 뿐이다. 먼저 전자의 범주에 속하는 곡들을 들어 보자.

김광희의 키보드와 어쿠스틱 기타의 아르페지오가 수놓는 "친구"는 처음 듣기에는 다소 밋밋한 멜로디를 가지고 있다. 예를 들어 처음 3마디의 멜로디는 '미'음으로 일관하고 있다. 그렇지만 이렇게 단순해 보이는 멜로디는 메이저 세븐쓰 코드와 (도미넌트) 세븐쓰 코드로 이어지는 화성의 진행을 통해 '시각적'이라고까지 말할 만한 변화무쌍한 효과를 주고 있다. 그 뒤의 코드 진행은 Gm6 코드와 A코드까지 동원되면서 '클래시컬'한 향기를 풍긴다. 고뇌와 자의식 가득한 가사와 다른 사람이 불러서는 좀처럼 맛을 내기 힘든 노래에 대해서는 더 이상의 평을 삼가겠다. 한편 번안곡인 "저 부는 바람"의 경우 사용되는 코드는 단순하지만 이번에는 '주법'이 특이하다. 클래식 기타의 반주법을 차용한 듯 하이 포지션의 코드와 ' / '의 아르페지오 패턴을 통해 동시대의 '포크송 반주'와는 격이 다른 느낌을 만들어 내고 있다. 넓게 보아 비슷한 주법에 속하는 반주가 등장하는 "꽃 피우는 아이"는 '금지곡'의 대명사이므로 여기서도 평을 '금지'하도록 하겠다. 이런 '클래시컬'한 느낌은 (양희은의 음성으로 더 많이 알려진) 피아노와 현악이 합주되는 "아침이슬"에서 클라이맥스를 이룬다. '취향'에 따라 '논란'이 있는 편곡이지만 이후 이 곡에 대해 이루어진 어떤 편곡보다도 특이하다(이때 편곡은 '음반' 뿐만 아니라 '공연'을 포함한다). 굳이 오케스트라로 편곡하여 우아한 공연장에서 김민기의 곡들을 연주하지 않더라도 그의 음악은 그때부터 이미 '클래시컬'했고 지금 '한국 대중음악의 클래식'으로 남아 있다. 그렇다고 이런 곡들과 조금 다른 스타일의 곡들이 고전이 아닌 것은 아니다.

4. Text (2): 김민기 + 정성조 + ... = ???
첫 번째 범주가 '클래시컬'하다면, 두 번째 범주는 '재지'하다? 이런 표현은 너무 진부하다. 전자의 범주가 잘 짜여지고 절제된 구성미를 가지고 있다면, 후자의 범주는 즉흥연주의 묘미를 더하고 있다고 말한다면? 이런 말도 맥빠지기는 마찬가지다. 음악이나 들어 보자. "아하 누가 그렇게"에서는 기타의 짤막한 인트로에 이어 경쾌한 터치의 피아노, 림(rim)을 때리는 드러밍 등이 연이어 등장하고 나직이 푸념하는 김민기 특유의 목소리가 나온 뒤 음반에서는 처음으로 예의 그 '정성조의 플루트'가 등장한다. 플루트 소리는 간주부에서 솔로까지 담당하면서 '욕구불만'에 차 있는 가사에 화답하면서 화자를 다른 세계로 인도해 간다. 뒷면의 첫 트랙인 "길"은 보다 활기찬 분위기를 가진 이 트랙의 쌍둥이다. 한편 플루트 소리는 "바람과 나"에서는 아예 외계에서 흘러나온 소리처럼 청자의 정신을 홀려 댄다. 그럴 만도 하다. 이 곡은 스스로 '외계인'이라고 부르는 사람이 만든 곡이니까...('한'자 '대'자 '수'자 쓰시는 분이다).

한편 "종이연"(원제: 혼혈아)에서는 정성조의 '부전공'인 색서폰이 등장한다. 한국 민요로부터 영향받은 것인지 ('미국 민요'에 속하는) 블루스로부터 영향받은 것인지 3박자의 리듬 위에 5음계의 멜로디가 등장한다. 멜로디는 "라라라(혹은 아하하).."로 이루어진 여흥구에서는 단조로, 가사를 담은 부분에서는 장조로 조성을 바꾸는데, 1분 20초쯤 지나서 2절의 장조의 멜로디가 등장하는 시점에서 색서폰 소리가 울려 나온다. 그건 마치 파주나 동두천의 미군 클럽의 창고에서 '하우스 밴드'의 악사(樂士)가 연습하는 소리처럼 들린다. '실력'이 그렇다는 이야기가 아니라 '느낌'이 그렇다는 이야기다. 아무튼 종이연이 하늘 끝까지 날아가면서, 색서폰 소리는 자유분방하면서 그로테스크해진 뒤 진한 여운을 남기며 사라진다. 워킹 베이스의 잔향과 더불어... 종이연은 하늘 끝까지 자유롭게 날아가지만 그 하늘은 먹구름이 잔뜩 끼어 있는 듯하다. 이런 음악에 장르와 스타일을 논하는 것이 무슨 가치가 있을까.

5. After...
이 음반에 수록된 곡들은 '대중가요'일까. 그렇다고 말하기에는 품격이 높다. 그렇다면 '운동권 가요'일까. 이건 조금 더 복잡하다. 어쨌든 이 음반이 발표된 뒤로 김민기는 같은 시기 활동했던 포크 싱어들과는 다른 길을 걸었다. 당시의 미디어에서도 그는 "언더그라운드"로 분류되었고, "드러나지는 않았지만 실력 있는 싱어송라이터"로 평가받았다. 밥 딜런(Bob Dylan)에 비유되기도 했고, "프로와 아마를 통틀어 가장 실력 있는 기타리스트"라는 찬사를 듣기도 했다. 이러한 정황으로 미루어 볼 때, 처음부터 김민기는 당시의 대중음악의 일반적인 지형과는 다른 곳에 위치했고, 유신 정권의 '철망'만 아니었다면 한국 대중음악을 풍성하게 번영시킬 새로운 재목이 틀림 없었던 모양이다.

그 후 그의 경력이 통상적인 '대중음악인'의 경력과 달라지면서 그에 대한 신화는 더욱 공고화되었다(지금도 그의 직업은 '음악인'이 아니라 '연극인'이다). 그런데 지금은? 그의 노래는 'IMF의 국난을 극복하는 국민가요'("거치른 들판에 푸르른 솔잎처럼")가 되기도 하고, '북한동포도 애창하는 곡'("아침이슬")이 되기도 한다. 신화가 생활이 되어 가고 있는 지금 '부처를 만나면 그를 죽이라'는 선(禪)불교의 금언을 떠올려야 할까. 하지만 지금 현재 생산되는 음악 가운데 이 음반에 담긴 음악을 넘어선 한국산 음악은 찾아볼 수 없다. 그저 '필적하는' 음악만 간간이 나오고 있을 뿐이다. 대단히 유감스럽게도.  20021015

* 신효동이 쓰고, 신현준이 확대·수정함.
** '김민기 노래모음'이라는 부제는 음반 표지에 적혀 있지 않고 LP의 '라벨'에 수록곡과 함께 쓰여 있다. 재발매된 음반에는 쓰여 있지 않다.

text | 신효동 terror87@chol.com
출처 : http://www.conermusic.com/

     

잘생긴 꾀꼬리 꽃미남 리차드강 어리버리 돈키호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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