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누가 더 예언자다운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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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학천 [khc5595] 쪽지 캡슐

2014-01-23 ㅣ No.203571

(십자성호를 그으며)
† 성부와 성자와 성령의 이름으로 아멘.

오늘(1월 23일)자 한겨레 신문에 기고한 성염 전 서강대 교수의 글을 퍼옵니다. 신약의 공관복음 중 하나라도 읽어보면 다음의 글에 큰 이의가 없을 것으로 보입니다. 내가 깃발를 들지는 못해도 참 예언자를 위해 기도하며 그 뒤를 따라 갈 수는 있지 않을까 생각합니다:

 

제목;정진석 추기경의 “거짓 예언자” 발언에 대해 / 성염

 하얼빈에 문을 연 기념관을 두고 “안중근은 일본 초대 총리를 살해해, 사형 판결을 받은 테러리스트”라는 일본 관방장관과 “안중근 의사는 우리나라 독립과 동양의 진정한 평화를 지키기 위해 몸을 바치신 위인”이라는 우리 외교부의 설전이 요즘 한창이다. 1909년 10월26일 하얼빈역에서 안중근 의사가 이토 히로부미를 권총으로 처단하자 경성(서울)의 영자신문에 “천주교인 안응칠”의 거사로 보도되었다. 조선대목구(지금 서울대교구) 뮈텔 주교는 안 의사가 천주교인이 아니라고 항의하였다. 토마스라는 세례명이 밝혀지자 “교회 밖의 인물”(냉담자)이라고 응수했다. 빌렘 신부 밑에서 복사로 활동한 독실한 신자였음이 밝혀졌고 사형 전에 고해성사를 하고 싶다고 두 동생을 주교에게 보내자 안 의사에게 성사를 못 하게 금하였다. 그래도 빌렘 신부는 교도소를 찾아갔고 안 의사는 고해성사를 하고 천주교인으로 순국하였다. 서울대교구는 결국 빌렘 신부를 조선에서 추방하였다.

 

1974년에 발족한 ‘천주교정의구현사제단’(이하 ‘사제단’)은 한국 천주교에서 ‘신앙의 시금석’이었다. 성직자도 신도도 그 앞에서는 속마음을 못 숨기고 ‘까발리고’ 만다. 10·26이 일어나던 그 주간에 “주교님들, 사제단 좀 처벌하시오!”라는 요지의 광고를 낸 49명의 한국 ‘원로사제들’은 역사에 ‘구국사제단’으로 남았다. 90년대 교황청의 보수 관료나 주한 교황대사는 이 집단을 왜 제재하지 않느냐고 한국주교단에 거듭 훈계했지만 주교들은 안중근(토마스) 의사를 박대한 전철을 밟지 않으려 모르쇠로 넘겼다.

 

그런데 현 정권이 성당에서 미사 강론 중에 나온 한 사제의 북방한계선 관련 발언을 빌미삼아 대통령을 내세우고 언론을 총동원하여 ‘사제단’을 난타하는 도중에 서울대교구 전·현직교구장이 합세하였다. 먼저, 염수정 대주교가 지난해 11월24일 명동성당 미사 강론에서 “사제들의 정치참여는 잘못된 일이고 정치구조나 사회생활조직에 개입함은 사제가 할 일이 아니다”라고 단언하였다. 미국 시사주간지 <타임>이 2013년도의 인물로 뽑은 프란치스코 교황이 같은 달 같은 날에 “성직자들은 사회질서와 공동선의 성취에 필요하다면 인간 생활의 모든 면에서 의견을 개진할 권리가 있다”(‘복음의 기쁨’ 182항)고 공표하였지만 염 대주교는 현직 교황의 첫 교서를 휴지 조각으로 만들어버린 것이다.

 

그 한 주간 대한민국 주류 텔레비전과 라디오, 신문들이 천주교 대주교 한 명의 말씀을 홍보하는 데 올린 열을 보면, 종교의 정치적 중립을 가장한 염 대주교의 정치적 발언이 기득권층에 얼마나 학수고대하던 ‘복음’이었는지 알 만하다. 교회는 ‘인권의 보루’인데 ‘반공의 보루’로 착각하는 일부 신도들이 염 추기경에게 고무받아선지 ‘종북사제 월북하라’, ‘종북주교 타도하라’는 피켓을 들고 성당 앞에서 시위하고 신부의 강론이 귀에 거슬리면 괴성을 지르며 성당 문을 박차고 나가거나 미사 중인 성당에 난입하기도 한다.

 

그 소동이 잠잠해지는 게 못마땅했던지 이번엔 서울대교구 전직 교구장이 인터뷰 기사(1월15일)를 띄웠다. 아무리 언론이 외면하는 늙은이라지만 <중앙일보>는 “한시간가량 진행된, 2012년 5월 은퇴 이후 가진 첫 언론 인터뷰”치고는 고작 385자 120개 단어를 본인 발언이라고 인용하고서는 “일부 사제들 욕심에 엉뚱한 일 … 거짓 예언자다”라는 제목을 뽑아 정진석을 ‘구국추기경’으로 서품하는 해프닝을 벌였는데 이 기사를 실어 나르는 언론과 보수신자들은 또 한 번의 ‘종교적 오르가슴’으로 몸을 떠는 품새다. 정 추기경의 성서적 논거는 모세가 영도하는 이스라엘의 이집트 탈출이다.

 

프란치스코도 자기의 교황직 백서에 해당하는 위 문서에서 구약성서 ‘탈출기’와 모세를 인용한다(20항과 187항). 교황은 “나는 내 백성이 겪는 고난을 똑똑히 보았고, 울부짖는 그들의 소리를 들었다. 내가 이제 너를 보낼 터이니, 내 백성을 이집트에서 이끌어 내어라”는 말씀을 인용하고 “모든 그리스도인과 모든 공동체(교구)는 가난한 이들의 해방에 하느님의 도구가 되도록 부르심 받았다. 따라서 교회는 밖으로, 사회로 나가야 한다”고 선언한다. 또 프란치스코는 문서 97항에서 교회 안에서 예언의 진위를 구분하는 기준으로 “교회를 교회 밖으로 이끌어가는 움직임”, “가난한 이들을 편드는 투신”, “예수 그리스도를 중심에 모시고 십자가의 길을 가고 있음” 셋을 꼽는다. 따라서 독자들에게는 당연히 의문이 생긴다.

 

먼저, “한반도의 번영을 위하여 남북한 사이에 간극과 긴장을 완화하십시오”(요한 바오로 2세), “한반도의 비핵화라는 목적을 달성하기 위하여 평화로운 방법을 통해서, 모든 당사자들에 대한 존중 가운데 해결이 모색되어야 합니다. 북한에 있는 백성들에게 인도주의적 원조를 추구하고 강화할 것을 요청합니다”(베네딕토 16세), “한반도에 화해의 선물을 주십사 하느님께 빕니다. 한국민 전부의 이익이니 양편에서 회담과 가능한 해결을 모색하도록 축원합니다”(프란치스코)는 교황 3대의 염원에 따라서 꾸준히 남북 화해를 시도해오다 ‘북방한계선’의 정치적 악용을 지적한 ‘사제단’과, 평양교구장서리를 맡고 있으면서도, 북한을 방문한 남한 사제들에게 평양 장충성당에서의 미사를 금하고 신자들의 자발적 대북원조를 실질적으로 차단하고 대교구 민족화해위원회를 마비시킨 대주교 정진석, 둘 중 누가 더 예언자다운가?

 

그다음, “21세기의 새로운 복음 선교는 가난한 사람들을 편드는 정의 구현”이라는 사회교리대로, 주거권을 지키려던 ‘용산참사’ 희생자들, 수천명 부당 해고에 항의하여 20여명이 자살로 항의한 쌍용자동차 노동자들을 위해 1년여 길거리에서 미사를 드리며 그들의 목소리가 되어주었고 제주를 ‘평화의 섬’으로 지키기 위해 제주교구장과 함께 여러해 몸으로 저지해온 성직자 수도자들과, 그런 주민과 노동자들의 눈물과 비명에 일체 귀를 막아왔고, 정부 당국에 중재를 나선 적도 없었고, 2010년에 한국주교회의가 “4대강 사업이 이 나라 전역의 자연환경에 치명적인 손상을 입힐 것”을 우려하는 시국선언을 내놓자 단독 회견으로 4대강 사업을 옹호하여 한국주교단 전체를 물먹인 서울대교구장 정진석, 둘 중 누구의 자세가 더 예언자다운가?

 

끝으로, 지난 40년간 관제언론의 부단한 중상모략 속에 공안당국의 도청과 연금은 다반사였고 체포와 고문과 투옥을 무수히 겪어온 ‘사제단’, 늘 변두리 성당으로만 발령받아 ‘변방사제’로 불리는 신부들, 이 땅의 인권과 민주를 꿈꿔온 모든 사람들이 기득권층으로부터 ‘빨갱이’라고 욕먹으며 이 사회에서 ‘문둥이’ 취급을 받는 현실에서 늘 그들을 품어왔기에 그 옷에서 문둥이 냄새가 나다 못해 ‘종북사제’라는 죄목까지 목에 걸고 그 신부들이 지고 가는 피 묻은 십자가와, 화려한 비단옷 가슴팍에서 달랑거리는 추기경의 황금 십자가, 둘 중 어느 것이 더 예수가 진 십자가와 닮았는가?

 

‘가난한 이들의 아버지’로 칭송받는 프란치스코 교황과 그의 가르침을 40년 앞당겨 실행해온 저 사제들은 ‘하느님의 사람’(‘예언자’의 다른 이름)으로서 “오늘도 내일도 그 다음날도 그 길을 계속 가야 한다. 예언자는 예루살렘이 아닌 다른 곳에서 죽을 수 없기 때문이다.” 다만 그들의 뒤를 멀찌감치 따라가는 신앙인들은 “세상 창조 이래 쏟아진 모든 예언자의 피에 대한 책임을 이 세대가 져야 할 것이다. 아벨의 피부터, 제단과 성소 사이에서 죽어 간 즈카르야의 피에 이르기까지”(루카 11, 50 및 13, 33)라는 예수의 노한 음성에서 속마음 들키지 않고 두려운 결단을 내려야 한다.

 

 

성염 전 서강대 교수·전 주교황청 대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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