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4년 5월 13일 (월)
(백) 부활 제7주간 월요일 용기를 내어라. 내가 세상을 이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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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형! 존경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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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일봉 [cib2586] 쪽지 캡슐

2011-05-15 ㅣ No.28

통일 운동가 “최 형!” 감사합니다.

 

“ 나를 총살하는 것은 결코 두렵지 않습니다. ”

1967년 서슬퍼른 군사 정권 시절 22세의 젊은 나이에 목숨을 걸고 평양을 방문하여 북한 노동당 간부에게 최선웅 선생이 던진 말입니다. 그러나 그 여파는 21년이라는 장기수의 멍애와 부모 형제 그리고 먼 친척들까지 철저하게 망가뜨린 패륜아 신세로 전락했습니다. 그럼에도 불굴의 투지로 장기수 통일운동가를 자처하며, 오히려 ‘후배들에게 미안하다. 내가 좀 더 열심히, 다른 방법으로 통일을 위해 길을 뚫어 놓았다면 지금 통일 세대들은 덜 고생해도 될텐데” 하고 말합니다. 최선생을 의형으로 맺어주심에 감사하는 저는 20여년을 육군 정훈장교로 봉직한 바 있습니다. 연금도 받고 대우를 받았으며, 스스로 지금도 자랑스럽습니다. 그러나 가정이지만 내가 만일 북한에 있었다면 역시 군인으로서 거의 비슷한 대우를 받았을 것입니다. 그러나 반드시 올 수 밖에 없는 민족통일이 오면 어느 쪽이던 치우침 없이 통일을 위해 헌신한 사람은 과연 어떤 사람일까 , 특히 세상 속에서 주님의 뜻을 실천한 사람은 과연 누구인가를 자문해 봅니다. 전역 후 건강식품 업계 판매사장 당시 외판원 면접으로 최선생과 첫 인연을 맺게 되었습니다. 수년 동안 그를 지켜보면서 신앙적 예언자들, 특히 안중근 의사를 연상케 합니다. 1909년 일제 강압시절 풍전등화 같던 나라를 되찾기 위해 ’이등박문‘을 처단한 안중근 의사에게 고해성사를 주고 성체를 영하도록 배려한 ’빌렘‘신부에게 2개월 미사집전 중지 징계를 내리고 그를 단순 살인자로 왜곡 매도한 ‘뮈델 주교님이 어쩌면 통일에 무관심한 우리들 자신이 아닌가 사료됩니다. 역사 속에 살아가는 우리는 어느 시기든 반드시 해야 할 일이 있습니다. 일제 강점기에는 자주 독립을 위해, 그리고 강대국에 의한 우리 민족의 의지와 상관없이 갈라진 오늘 우리들의 과제는 갈라진 민족을 평화적 방법으로 통합하는데 일조하는 일입니다. 최 선생은 96년 출소 후 한결같은 집념으로 그가 처한 최악의 열악한 환경에도 굴함 없이 5권의 저술을 통해서 어느 한 쪽에 치우침 없이 평화통일을 구현할 수 있는 길을 제시하고 있습니다. 최선생이 저술한 책 5권을 요약하면

 

1. [해뜨면 돌아가리라] 민족의 평화적인 통일을 열망하는 한 청년이 1967년 10월 30일 일본해안에서 북에서 파견한 공작선으로 평양에 들어가 7개월을 머물면서 당시 당중앙위원회 문화부 통일일꾼들과 통일문제에 대해 토론한 내용과 1968년 8월 3일 김포공항을 통해 귀국한

다음 두 번에 걸쳐 21년 징역을 살게 되는 과정을 자전적인 소설로 쓴 책입니다.

2. [통일 열차가 곧 출발합니다] 분단 시대를 살고 있는 민중들의 삶을 밑바닥에서부터 쓴 소설,시,수필,단문을 엮은 최선생의 문학입니다.

3. [천기를 움직이는 사람들] 지금과 같은 반목과 갈등을 극복하지 못하면 비극적인 전쟁이 계속 이어질 것이니, 지구적인 작은 눈으로 보지 말고, 우주적인 큰 눈으로 세상을 보면서 서로 사랑하고 아껴주자는 내용입니다.

4. 시집[우주 바깥에서 좁쌀만한 지구를 보다] 제국주의적인 탐욕스러운 인간들이 식민지를 통해 자기국가 개인의 이익을 증대시키는 것을 비판하면서 서로 해원상생하자는 뜻으로 쓴 작품입니다.

5.소설[2015년] 6,25전쟁을 겪어본 우리는 통일을 위한 방법으로 다시는 전쟁이 있어서는 안된다. 정보와 통신, 교통수단의 급속한 발전으로 세계가 한 지붕 밑에서 살고 있다. 따라서 현대에 알맞게 남북 자유 총선거를 통해 통일국가를 창립하자는 내용입니다.

 

* 연변동포들에게 책 보내기 운동 전개

2000년부터 연변대학 대학원 국제관계학과 김정호 교수의 초청으로 [인간, 그리고 미래]라는 주제로 열두번 정도 특강을 하였고 룡정작가협회 3,13(항일투쟁) 기념사업연구회 최근갑

회장의 연변 사회과학원 역사 연구소에서 통일문제에 대한 특강을 10여 차례 하였습니다. 최선생은 특강을 하면서 당시 연변 조선족 자치주에 거주하는 조선족 아이들이 4세대 정도인데 낮에는 중국 아이들과 어울려 놀다보니 점차 우리말과 글을 잊어간다는 위기의식을 느낀 어른들이 [한중독서사]를 만들어 책 읽기를 권장하고 있었는데 막상 책이 없어 고민하는 것을 보고는 힘 닿는데 까지 헌책을 모아 보내기 시작한 것이 10년 째 됩니다.

*. 출소 후 생활 문제

1996년 12월 중순 11년 만에 출소. 갈 곳이 없어 개포동 다리 및 거지들이 사는 움막에서 같이 살면서 헌 옷, 파지 등을 수집하며 살았고 지금은 2년 전에 현재의 아내를 만나 주택공사에서 준 전세 집에서 기초생활수급자로 살면서도 계속 연변동포들에게 책보내기 운동을 전개 하고 있습니다.

최선생의 마지막 계획은 ‘목숨이 붙어 있을 때 통일되면 얼마나 좋겠는가. 그러나 하루 아침에 되는 게 아닌 이상 나의 노력이 훗날 통일의 밑거름이 되는 것’입니다. [민족화합과 통일을 이루는 데 한 몫을 다하는 것이 죽을 때까지 계속 될 나의 소명입니다.] 라는 최선생의 평화 통일에 대한 한결같은 노력과 “아버지를 원망하여 피하는 아들에게 미안하기 그지없고 아들을 이해합니다. 그러나 한 민족이 갈라진 시기에 다시 태어난다면 나는 어쩔 수 없이 똑같은 선택을 할 수 밖에 없습니다.” 라며 온 몸으로 불태우는 통일에 대한 한결같은 집념은 통일시대를 열망하는 우리 모두의 존경의 대상이 되어야만 할 것입니다.

최형! 참으로 존경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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