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4년 5월 20일 (월)
(백) 교회의 어머니 복되신 동정 마리아 기념일(교육 주간) 이 사람이 어머니의 아들입니다. 이분이 네 어머니시다.

영화ㅣ음악 이야기 영화이야기ㅣ음악이야기 통합게시판 입니다.

클래식이 있는 詩 낭송 - 김세원

인쇄

서상철 [roserein] 쪽지 캡슐

2010-01-21 ㅣ No.14880

 

 

 

전 화

- 마종기 -  

당신이 없는 것을 알기 때문에

전화를 겁니다.

신호가 가는 소리

 

당신방의 책장을

지금 잘게 흔들고 있을 전화종소리

수화기를 오래 귀에 대고

많은 전화 소리가 당신방을

완전히 채울 때까지 기다립니다.

그래서 당신이 외출에서 돌아와 문을 열 때

내가 이 구석에서 보낸 모든 전화 소리가

당신에게 쏟아져서

그 입술 근처나

가슴 근처를 비벼대고

은근한 소리의 눈으로

당신을 밤새 지켜볼 수 있도록

 

다시 전화를 겁니다

신호가 가는 소리

 

(차이코프스키 : 녹턴,op.19 제4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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치자꽃 설화

- 박규리 -

 

사랑하는 사람을 달래 보내고

돌아서 돌계단을 오르는 스님 눈가에

설운 눈물 방울 쓸쓸히 피는 것을

종탑 뒤에 몰래 숨어 보고야 말았습니다

아무도 없는 법당문 하나만 열어 놓고

기도하는 소리가 빗물에 우는 듯 들렸습니다

밀어내던 가슴은 못이 되어 오히려

제 가슴을 아프게 뚫는 것인지

목탁소리만 저 홀로 바닥을 뒹굴다

끊어질 듯 이어지곤 하였습니다

 

여자는 돌계단 밑 치자꽃 아래

한참을 앉았다 일어서더니

오늘따라 엷은 가랑비 듣는 소리와

짝을 찾는 쑥국새 울음소리 가득한 산길을

휘청이며 떠내려가는 것이었습니다

나는 멀어지는 여자의 젖은 어깨를 보며

사랑하는 일이야말로

가장 어려운 일인 줄 알 것 같았습니다

 

한 번도 그 누구를 사랑한 적 없어서

한 번도 사랑받지 못한 사람이야말로

가장 가난한 줄도 알 것 같았습니다

 

떠난 사람보다

더 섧게만 보이는 잿빛등도

저물도록 독경소리 그치지 않는 산중도 그만 싫어,

나는 괜시리 내가 버림받은 여자가 되어

버릴수록 더 깊어지는 산길에 하염없이 앉았습니다

 

(마이클 호페:엘레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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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계령을 위한 연가

- 문정희 -

 

한겨울 못 잊을 사람하고

한계령쯤을 넘다가

뜻밖의 폭설을 만나고 싶다.

뉴스는 다투어 수십 년 만의 풍요를 알리고

자동차들은 뒤뚱거리며

제 구멍들을 찾아가느라 법석이지만

한계령의 한계에 못 이긴 척 기꺼이 묶였으면.

 

오오, 눈부신 고립

사방이 온통 흰 것뿐인 동화의 나라에

발이 아니라 운명이 묶였으면.

 

이윽고 날이 어두워지면 풍요는

조금씩 공포로 변하고, 현실은

두려움의 색채를 드리우기 시작하지만

헬리콥터가 나타났을 때에도

나는 결코 손을 흔들지는 않으리.

헬리콥터가 눈 속에 갇힌 야생조들과

짐승들을 위해 골고루 먹이를 뿌릴 때에도...

 

시퍼렇게 살아 있는 젊은 심장을 향해

까아만 포탄을 뿌려대던 헬리콥터들이

고라니나 꿩들의 일용할 양식을 위해

자비롭게 골고루 먹이를 뿌릴 때에도

나는 결코 옷자락을 보이지 않으리.

 

아름다운 한계령에 기꺼이 묶여

난생 처음 짧은 축복에 몸둘 바를 모르리.

 

(비발디 : 사계 중 겨울 1악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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석남사 단풍

- 최갑수 -

 

단풍만 보다 왔습니다

 

당신은 없고요, 나는

석남사 뒤뜰

바람에 쓸리는 단풍잎만 바라보다

하아, 저것들이 꼭 내 마음만 같아야

어찌할 줄 모르는 내 마음만 같아야

저물 무렵까지 나는 석남사 뒤뜰에 고인 늦가을처럼

아무 말도 못 한 채 얼굴만 붉히다

단풍만 사랑하다

돌아왔을 따름입니다

 

당신은 없고요

 

(존 필드 : 녹턴 제 10번 e단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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헤어지는 연습을 하며

- 조병화 -

 

헤어지는 연습을 하며 사세

떠나는 연습을 하며 사세

 

아름다운 얼굴, 아름다운 눈

아름다운 입술, 아름다운 목

아름다운 손목

 

서로 다하지 못하고 시간이 되려니

인생이 그러하거늘

세상에 와서 알아야 할 일은

'떠나는 일'일세

 

실로 스스로의 쓸슬한 투쟁이었으며

스스로의 쓸슬한 노래이었으나

 

작별을 하는 절차를 배우며 사세

작별을 하는 방법을 배우며 사세

작별을 하는 말을 배우며 사세

 

아름다운 자연, 아름다운 인생

아름다운 정, 아름다운 말

 

두고 가는 걸 배우며 사세

떠나는 연습을 하며 사세

 

인생은 인간들의 옛집

아! 우리 서로 마지막

말을 배우며 사세

 

(마이클 호페 : Lover's Lamen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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면회 사절

- 정채봉 -

 

오지 마라

오지 마라

오지 마라

 

내 이대로 너를

사모하게 하라

 

내 이대로 죽음을 맞이하면

나의 수의는 너의 사랑

한 벌이면 된다

 

아직은 절망하기 싫다

아직은 소유하고 싶다

면회사절을 할 수 있는 것도

살고 싶기 때문이다

 

꿈길밖에는 길이 없다고

하지 마라

나는 지금 너에게로 가는

출구를 모색하고 있다

 

(쇼팽 : 녹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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엽서 엽서

- 김경미 -

 

단 두 번쯤이었던가,그것도 다른 사람들과 함께였지요

그것도 그저 밥을 먹었을 뿐

그것도 벌써 일년 혹은 이년 전일까요?

내 이름이나 알까, 그게 다였으니 모르는 사람이나 진배없지요

그러나 가끔 쓸쓸해서 아무도 없는 때

왠지 저절로 꺼내지곤 하죠

가령 이런 이국 하늘 밑에서 좋은 그림엽서를 보았을 때

우표만큼의 관심도 내게 없을 사람을

이렇게 편안히 멀리 있다는 이유로 더더욱 상처의 불안도 없이

마치 애인인 양 그립다고 받아들여진 양 쓰지요

당신, 끝내 자신이 그렇게 사랑받고 있음을 영영 모르겠지요

몇 자 적다 이사랑 내 마음대로 찢어

처음 본 저 강에 버릴 테니까요

불쌍한 당신, 버림받은 것도 모르고 밥을 우물대고 있겠죠

나도 혼자 밥을 먹다 외로워지면 생각해요

나 몰래 나를 꺼내 보고는 하는 사람도 혹 있을까

내가 나도 모르게 그렇게 행복할 리도 혹 있을까 말예요...

 

(필 콜터 : 마리노 월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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겨울 나무

- 장석주 -

 

잠시 들렀다 가는 길입니다

외롭고 지친 발걸음 멈추고 바라보는

빈 벌판

빨리 지는 겨울 저녁 해거름

속에

말없이 서있는

흠없는 혼

하나

 

당분간 폐업합니다 이 들끓는 영혼을

잎사귀를 떼어 버릴 때

마음도 떼어 버리고

문패도 내렸습니다

그림자

하나

길게 끄을고

깡마른 체구로 서 있습니다

 

(드보르작 : 피아노 트리오 "둠키" 1악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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넥타이

- 나해철 -

 

그렇게 말고 이렇게

매듭을 묶을 수도 있다고

가르쳐주지 않았니

그 후로 그렇게 말고

이렇게도 인생을

묶으며 살아왔다

아니 늘 이렇게만

살았다

이렇게 묶을 때마다

네가 준 내 인생 때문에

사무쳐 목이 메인다

 

(마이클 호페 : Belove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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네가 그리우면 나는 울었다

- 고정희 -

 

길을 가다가 불현듯

가슴에 잉잉하게 차오르는 사람

네가 그리우면 나는 울었다

 

너를 향한 기다림이 불이 되는 날

나는 다시 바람으로 떠올라

그 불 다 사그러질 때까지

스스로 잠드는 법을 배우고

스스로 일어서는 법을 배우고

스스로 떠오르는 법을 익혔다

 

네가 태양으로 떠오르는 아침이면

나는 원목으로 언덕 위에 쓰러져

따스한 햇빛을 덮고 누웠고

누군가 내 이름을 호명하는 밤이면

나는 너에게로 가까이 가기 위하여

빗장 밖으로 사다리를 내렸다

 

달빛 아래서나 가로수 밑에서

불쑥불쑥 다가왔다가

이내 허공중에 흩어지는 너,

네가 그리우면 나는 또 울 것이다

 

(포레 : 꿈꾸고 난 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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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을 저녁

- 이동순 -

 

오늘은 비가 오고 바람이 불었습니다

길에 떨어진 나뭇잎들이 우수수 몰려다녔습니다

그대에게 전화를 걸어도 신호만 갑니다

이런 날 저녁에 그대는 어디서 무얼 하고 계신지요

혹시 자신을 잃고 바람 찬 길거리를 터벅터벅

지향없이 걸어가고 계신 것은 아닌지요

이 며칠 사이 유난히 수척해진 그대가 걱정스럽습니다

스산한 가을 저녁이 아무리 쓸쓸해도

이런 스산함쯤이야 아랑곳조차 하지 않는

그대를 믿습니다 그대의 꿋꿋함을 나는 믿습니다

 

(포레 : 파반느op. 5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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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을

- 강은교 -

 

기쁨을 따라갔네

작은 오두막이었네

슬픔과 둘이 살고 있었네

슬픔이 집을 비울 때는 기쁨이 집을 지킨다고 하였네

어느 하루 찬 바람 불던 날 살짝 가 보았네

작은 마당에는 붉은 감 매달린 나무 한 그루 서성서성 눈물을

줍고 있었고

뒤에 있던 산, 날개를 펴고 있었네

 

산이 말했네

 

어서 가보게, 그대의 집으로

 

(사티 : 짐노페디 1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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너를 기다리는 동안

- 황지우 -

 

네가 오기로 한 그 자리에

내가 미리 가 너를 기다리는 동안

다가오는 모든 발자국은

내 가슴에 쿵쿵거린다

바스락거리는 나뭇잎 하나도 다 내게 온다

기다려본 적이 있는 사람은 안다

세상에서 기다리는 일처럼 가슴 애리는 일 있을까

네가 오기로 한 그자리, 내가 미리 와 있는 이곳에서

문을 열고 들어오는 모든 사람이

너였다가

너였다가, 너일 것이었다가

다시 문이 닫힌다

사랑하는 이여

오지 않는 너를 기다리며

마침내 나는 너에게 간다

아주 먼데서 나는 너에게 가고

아주 오랜 세월을 다하여 너는 지금 오고 있다

아주 먼데서 지금도 천천히 오고 있는 너를

너를 기다리는 동안 나도 가고 있다

남들이 열고 들어오는 문을 통해

내 가슴에 쿵쿵거리는 모든 발자국 따라

너를 기다리는 동안 나는 너에게 가고 있다.

 

(사티 : 그노시엔느 제 3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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선운사

- 전연옥 -

 

시간이 좀 늦었지만 우리 모두 선운사에나 가지요

삶이란 무엇인가 따위로 심사가 사나와 있는

중년의 애인을 데리고

마음은 한결같으나 의견은 한다발로 묶여지지 않는 저녁날

우리 모두 선운사에 가

마음 고생에 헐벗은 영혼을 달래며

좀 늦은 저녁 공양이나마 청해 들지요

 

막차를 타고 선운사에 가보면 모두 다 알게 되지요

남의 상처도 내 것처럼 아프고

별스러운 게 다 슬프고

서러워 밤새도록 불면의 베개에 이마를 파묻을 때

그것이 바로 삶의 방식이 아니겠냐고

아득히 물어오는 동백꽃이 있다는 것을

선운사 붙박이 식구들은

아주 오래 전부터

그 애절한 사연을 알고 있었지요

 

(맨델스존 : 무언가 op. 10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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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만든 꽃다발

- Pierre de Ronsard (삐에르 드 롱사르) -

 

 

활짝 핀 꽃을 꺾어서 꽃다발을 바칩니다

이 저녁 꺾지 않으면 내일이면 시들 이 꽃들을

그대는 이걸 보고 느끼겠지요

아름다움은 머지않아 모두 시들고

꽃과 같이 순간에 죽으리라고

 

그대여

세월은 갑니다. 세월은 갑니다

아니 세월이 아니라 우리가 갑니다

그리고 곧 묘비 아래 눕습니다

우리 속삭이는 사랑도 죽은 뒤에는

아무 것도 아니랍니다.

나에게 사랑을 주세요

그대 살아 있는 아름다운동안....

 

(비발디 : 류트 협주곡RV93,라르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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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안하다

- 정호승 -

 

길이 끝나는 곳에 산이 있었다

산이 끝나는 곳에 길이 있었다

다시 길이 끝나는 곳에 산이 있었다

산이 끝나는 곳에 네가 있었다

무릎과 무릎 사이에 얼굴을 묻고 울고 있었다

 

미안하다

너를 사랑해서 미안하다

 

(쉰들러의 리스트 테마 음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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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랑

- 김용택 -

 

당신과 헤어지고 보낸

지난 몇개월은

어디다 마음 둘 데 없어

몹시 괴로운 날들이어읍니다

현실에서 가능할 수 있는 것들을

현실에서 해결하지 못하는 우리 두 마음이

답답했읍니다

허지만 지금은

당신의 입장으로 돌아가

생각해 보고 있읍니다

받아들일 건 받아들이고

잊을 것은 잊어야겠지요

그래도 마음속의 아픔은

어찌하지 못합니다

계절이 옮겨가고 있듯이

제 마음도 어디론가 옮겨가기를

바라고 있읍니다

추운 겨울의 끝에서 희망의 파란 봄이

우리 몰래 우리 세상에 오듯이

우리들의 보리들이 새파래지고

어디선가 또

새 풀들이 돋겠지요

 

이제 생각해 보면

당신도 이 세상의 하고 많은 사람들 중의 한사람이었읍니다

당신을 잊으려 노력한

지난 몇개월 동안

아픔은 컸으나

세상이 더 넓어져

세상만사가 다 보이고

사람들의 몸짓 하나하나가 다 이뻐보이고

소중하게 다가오며

내가 많이도

세상을 살아낸

어른이 된 것 같읍니다

당신과 만남으로 하여

세상에 벌어지는 일들이

모두 나와 무관하지 않다는 것을,

이 세상에 태어난 것을 고맙게 배웠읍니다

당신의 마음을 애틋이 사랑하듯

사람 사는 세상을 사랑합니다

길가에 풀꽃 하나만 봐도

당신으로 이어지던 날들과

당신의 어깨에 내 머리를 얹은 어느 날

잔잔한 바다로 지는 해와 함께

우리 둘인 참 좋았읍니다

이 봄은 따로따로 봄이겠지요

그러나 다 내 조국 산천의 아픈 한 봄입니다

행복하시길 빕니다

안녕.

 

(알비노니 : 아다지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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