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은희: 고운노래모음 스테레오 제3집 (1972 Jigu) │ My Favorite Gayo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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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강길 [u90120] 쪽지 캡슐

2011-03-18 ㅣ No.18376

고운노래 모음 스테레오 第3集

은희: 고운노래모음 스테레오 제3집 (1972 Jigu)

은희 Eun-Hee / 본명:김은희 (남제주 1951년- )

1. 등대지기 (작사:유경손) - Track 전곡연주

고운노래 모음 스테레오 第3集 (1972, Jigu)

아티스트: 은희 (변혁 편곡)
음반 이름: 고운노래 모음 스테레오 第3集
음반 구분: 정규, studio
발매 일자: 1972 / 대한민국
Album Releases: 1972
Label: Jigu

     

레크레이션 (1979년 강원도 정선)  

     

 A01. 등대지기 (작사:유경손)
 A02. 노래는 즐겁다
 A03. 은발
 A04. 연가
 A05. 고향생각
 A06. 라스파뇨라
 
 B01. 사모하는 마음
 B02. 물망초
 B03. 산골짝의 등불
 B04. 에델봐이스
 B05. 고향집과 어머니
 B06. 스와니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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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0년대초 국내 포크계를 평정한 여군(女軍) 출신의 포크 싱어, 은희

이슬같은 느낌의 女子, 큰 눈망울을 가진 사슴같은 女子, 70년대초 가요계 최고의 아이콘, 고두심과 함께 제주도를 대표하는 女子 연예인, 女軍을 지원 입대했던 대찬 女子, 불후의 명곡 "사랑해", "꽃반지 끼고"의 女子. 70년대초 대한민국을 들썩거리게 했던 은희이다.

은희
김은희는 1951년 5월 13일 南제주시에서 태어나 제주남초등학교와 제주여자중고등학교를 졸업하였으며, 고두심과는 초등학교와 중학교를 같이 다닌 동기동창생이다. 그리고, 어릴적부터 예쁜 목소리와 노래 실력으로 주위의 귀여움을 독차지하는 톡톡 튀는 아이였다.

高1 겨울방학 때인 1968년 1월 그녀는 여군에 지원하여 입대하였지만, 6개월후에는 싫증이 나서 탈영을 하며 서울예고 2학년으로 전학해 그곳에서 졸업을 한다. 하긴, 시절이 호랑이 담배 피우던 시절이니 가능하겠다. 여고 1학년이 입대를 하고 탈영후 다시 학교를 다니고... 아니면 요즈음 말로 4차원의 사고를 가졌던 소녀이었나?

고등학교를 졸업하고 서울의 다운타운가에서 무명가수 생활을 하던 은희는 1970년 여름, 한민과 함께 '라나 에 로스포(개구리와 두꺼비)'를 결성, 국내 포크계에 '뚜와 에 무와'와 함께 혼성 듀오의 쌍웅(雙雄) 시대를 열게 되지만, 은희가 듀오로 활동한 시기는 사실 불과 6개월 남짓하다.

당시 여학생들에게 폭발적인 사랑을 받았던 "사랑해"는 中大生 오경운의 작품이란 사실이 나중에 밝혀졌고, 신중현의 "상처입은 사랑", 유진상의 "그대는 떠나고"를 제외한 모든 곡들은 당시 유행하던 Pop Song을 번안한 것이다. 은희는 이 음반 발표직후 한민과의 성격 차이를 이유로 팀을 탈퇴한다고 발표하며 곧 바로 솔로로 음반 취입 준비에 들어가 음반을 낸다.

"본명은 金銀姬, 1951年生으로 멀리 남쪽 섬마을 제주도에서 귤과 생선만 먹고 자라온듯한 아가씨입니다. 피아노와 기타 그리고 작사와 춤과 MC에도 남다른 才質을 갖고있는 은희양은 서울藝高 出身의 재원입니다. 날로 변해가는 폭界의 새기수로 은희양은 분명 제맡은바 구실을 다해 나갈 것을 믿어 의심치않습니다. 끝으로 은희양은 히트곡 <사랑해>를 부른 人氣혼성듀엣 '라나 에 로스포'의 창단멤버로서 디스크化된 목소리의 진짜 주인공임을 밝혀둡니다. 많은 격려와 충고의 말씀을 부탁드립니다." 1971년 7월, 企劃者 황우루拜

은희의 솔로 데뷔LP에 실려있는 추천사로 당시 대중음악계에 막강한 영향력을 가졌으며 가요계의 기인으로도 불렸던 황우루씨가 쓴 글이다.

"꽃반지끼고/모래위의 발자욱", (1971. 8. 그랜드)는 은희의 솔로 데뷔LP이며, "꽃반지 끼고"의 선풍적 인기로 스타의 반열에 오른다. '혜성처럼 나타난 신선한 감각의 폭 싱어'로 표현된 은희는 그야말로 청아하고도 아름다운 목소리로 우리의 심금을 울렸다. "꽃반지 끼고"는 재일교포가 쓴 곡에 은희가 가사를 부친 곡이며, 앨범의 전편에 통기타와 함께 어우러진 그녀의 목소리는 이 판 한 장으로 국내 가요계를 정복해버린 것이다. 또한, 그녀는 데뷔하던 해인 1971년에 'mbc10대 가수상 여자신인상'을 거머쥐면서 비주류인 포크 뮤직을 주류로 끌어올린 인물이다. 상황이 이쯤 되자 각레코드사들은 은희를 잡기위해 엄청난 물량 공세를 펼쳤고, 결국 그녀는 지구레코드사로 적을 옮겨 활동한다.

은희는 데뷔하던 1971년에 워낙 큰 힛트곡들을 내서 그런지는 몰라도 사실 지구로 옮긴 이후인 1972년부터 발표한 앨범들에서는 그다지 큰 힛트곡을 내지 못했고, 당시 수많은 루머에 휩쓸리면서 어수선한 시기를 보냈고 연말에는 일본에서 20일간의 장기 콘서트를 가진다.

"은희 고운노래모음 스테레오 제3집", (1972. 11. 지구) 지구로 옮긴 이후 은희는 72년에만 세 장의 독집앨범을 발표하게 되는데, 지구에서 은희를 스카웃하기 위해  투자한 걸 만회하기 위해서인지, 아니면, 은희 자신의 인기 회복을 위한 계속된 도전이었는지는 나로선 알 길이 없다. 하지만 "사랑해"나 "꽃반지 끼고"와 같은 대형 힛트곡들이 안나왔다는 것이지 그녀의 인기가 완전히 꺽인건 아니었다. 여전히 그녀의 목소리는 전국의 다방가나 집에서 흘러나왔고 인기있는 여성 포크 싱어 중 한사람이었다.

은희는 1973년과 74년에도 꾸준히 음반을 내면서 활동을 하였지만, 역시 데뷔 초기와 같은 몰사랑을 받지 못하였고, 1974년에는 결혼을 하면서 뭇남성들의 가슴에 멍을 만든다. 이후 1976년에는 미국으로 이민을 떠나 뉴욕 주립대에서 패션을 공부하면서 사업가로서의 기초를 닦는다. 1980년에는 귀국 기념 음반을 내는 등 잠깐 가요계에 복귀를 하기도 하였지만 그걸로 마지막이었다. 80년대 이후에는 가수로서가 아니라 여성 사업가로서 활발한 활동을 하고 있는 그녀인데, 현재는 서해 바다가 내려다보이는 전남 함평에서 남편(김화성씨)과 연염색 문화공간 '민예학당'을 오픈하여 천연염색 전문가로 의류사업가로 여유로운 初老를 보내고 있다.

"생각난다 그 오솔길 그대가 만들어 준
꽃반지 끼고, 다정히 손잡고 거닐던
오솔길이 이제는 가버린 가버린 아름다운 추억"

시대가 완전히 바뀌어버린 지금도 그런 오솔길은 있겠지? 설령 없다하더라도 은희의 노래가 들리는 길은 그런 길일 것이다. 나도 70년대에는 저런 풀밭에 누워서 하늘을 바라보던 때가 있었다. 그러고 보니 누워서 하늘을 본 게 족히 30년은 지난 것 같다.

수많은 70년대 추억의 가수들 중에서 가장 먼저 '추억'이라는 단어를 떠올리게하는 사슴을 닮은 은희는 지금도 "즐거웠던 지난 추억도 잊어야겠죠 쌍뚜와 마미 당신 생각에 눈시울이 뜨거워지네 쌍뚜와 마미"라고 속삭인다. 사슴을 닮았으면서 이슬같이 촉촉한 그녀가 오늘 새삼 더 보고 싶다.

글 출처:  배수비오는 영원하다 (안톤)

     

잘생긴 꾀꼬리 꽃미남 리차드강 어리버리 돈키호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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