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유게시판
[ 영혼의눈을뜬20대神父의죽음 ] |
---|
[영혼의 눈을 뜬 20대 神父의 죽음]....위령성월을 맞이하며
-김수환추기경님의 참으로 사람답게 산다는 것中에서-
80년 7월에 김재문 신부라는 젊은이가
신부된 지 1년밖에 안 되었는데 죽었습니다.
신부전증이었습니다.
그런데 김 신부는 합병증으로 죽기 4~5 개월 전,
약 한 달 남짓 되는 사이에 두 눈의 시력을 잃게 되었습니다.
시력을 잃는 과정은 육체적으로나 정신적으로
굉장히 고통스러웠습니다.
어느날, 김 신부는 나에게
"주교님 제 나이 이제 겨우 스물여섯인데,
왜 이렇게 되어야 합니까?" 하고 울면서 말했습니다.
나는 그를 껴안고 위로의 말을 하고자 했으나,
사실 위로 할 수가 없었습니다.
김 신부가 실명한 지 얼마 안 되어 다시 병실로 가 보았을 때
김 신부는 마침 수녀님 한 분과 간병하는 이와 함께,
실명된 뒤 처음으로 미사를 봉헌하고 있었습니다.
내가 갔을 때에는 말씀의 전례가 다 끝나고
봉헌이 시작되고 있었습니다.
김신부는 봉헌 기도문을 읽을 수 없으니 말로써 ,
"하느님 아버지, 이 제물을
저보다 더 고통 받는 병자들을 위해 바치오니 받아 주소서"
라고 말했습니다.
나도 옆에서 성찬전례를 도우면서 미사를 계속 진행했습니다.
"주의 기도"를 바치게 되었는데,
김 신부는 ’천주의 자녀되어 구세주의 분부대로 삼가 아뢰오니....’
라고 일상하는 말씀을 외우는 대신, 이런 말을 했습니다.
"제가 갑자기 두 눈의 시력을 잃고 앞 못 보는 소경이 된 이래,
누구의 도움 없이는 한 걸음도 걸을 수 없습니다.
그래서 저는 지금 ’예수님은 참으로 나의 길 이시다’ 라는
말씀을 굳게 믿습니다.
그분 없이 저는 한 순간도 살 수 없습니다.
그분은 참으로 우리의 길 이십니다.
우리의 길이신 주께서 가르쳐주신 주의 기도를 바칩시다."
나는 이 말을 들었을 때 깊이 감동했습니다.
무엇이 그렇게 그 신부로 하여금
그리스도가 길임을 확신하게 하였고,
또 다른 이들에게 그렇게 전달할 수 있게 하였습니까?
나는 김 신부가 그 불치병의 고통을 통해서
그리스도와 깊이 일치되어 있었기 때문이라고 생각합니다.
그리스도는 분명히 실명으로 말미암아
실망과 좌절에 빠져있는 김 신부와 함께 했으며,
그의 마음을 당신의 빛으로 밝히고 있었습니다.
김 신부는 "육신의 눈"은 잃었으나 "영혼의 눈"은 떠서
주님을 보고 있었던 것 입니다.
우리는 "영혼의 눈"을 떠야 합니다.
그것은 많은 경우, 김 신부나 앓는 병자들,
또는 사형수들이 기쁘게 죽음을 맞이 하는 경우에서 보듯이,
고통을 통해서 우리 마음이 정화될 때 입니다.
우리 마음이 참으로 주님 앞에 가난하고 겸손한 마음,
빈 마음이 될 때,
우리는 그리스도의 수난의 의미를 더 깊이 깨닫고
그 분을 볼 수 있을 것입니다.
그리고 그분이 길이요 진리요 생명임을,
또 빛임을 깨닫게 될 것 입니다.....! 안녕하세요. 11월 위령성월이네요. 추기경님이 쓰신 이 글을 감동 깊게 읽으며 몇 년 전 광주 교구에서도(제가 광주교구에 있었을 당시) 사제로 서품되신지 일년여 만에 29세의 꽃다운 나이에 교통사고로 선종하신... 신부님의 존함은 정확히 기억나지 않지만... 아마 오신부님으로 기억되어지는 <어느 젊은 한 사제의 죽음>을 새삼 추모하면서 이 글을 통해 [죽음에 대한 묵상]을 잠시 나누어 보고 싶습니다. 저는 선종하신 오신부님을 개인적으로 잘 모르지만 오신부님께서 서품 받으신 후 동창 신부님들 첫미사에 오셔서 눈이 많이 내리고 몹시 추웠던 저녁, 성당 마당에서 많은 신자분들과 함께 제 머리에도 안수와 강복을 해 주셨었답니다. 아마도 초겨울로 기억되는 이즈음 어느날, 광주 교구 홈피에 들어갔더니 오신부님 영전 사진과 함께 선종 소식이 있어 무척 놀라고 가슴아파 했었던 기억이 새롭습니다. 위령성월에 연옥 영혼들과 모든 죽은이들을 기억하며 특히, 이 글을 통해 너무 짧지만 아름답게 살다간 지금은 우리들 기억속에서 잊혀져 가고 있는 ...[우리의 두 청년들]을.... 잠시 추모해 드리고 싶습니다.
+ 주님 은혜 안에서 늘 평안하시기를! 소피아 드림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