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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통 노조 농성 유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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백남용 [baekny] 쪽지 캡슐

2000-12-20 ㅣ No.15795

한국 통신 노조의 명동 성당 점거 사태 유감

 

1. 명동 성당은 이 민족 근대사의 제 1성지입니다. 우선 신앙적 차원의 성지인데, 이는 우리 나라 최초의 그리스도 공동체가 형성되었던 장소라는 것과 순교 성인들의 묘역이라는 점 그리고 한국 가톨릭 교회의 모교회요 상징적인 대표 교회이기 때문입니다.

또 근대 민주화 과정에서 민주를 열망하는 사람들이 독재 권력의 횡포에서 피신하는 마지막 보호처였기에 흔히 민주 성지라고도 불리웁니다.

 

2. 민주 성지라는 역할은 애초부터 신앙의 성지라는 기본 개념 위에서 형성된 것이지 단독으로 존재할 수는 없었습니다. 따라서 성지에서의 정상적인 신앙 집회(미사나 각종 성사 및 기도회)를 차단하는 여타 집회는 있을 수 없습니다.

 

3. 성지로의 피신은 폭력으로부터의 피신을 뜻합니다. 따라서 공권력으로 부터의 피신자들이 또 다른 폭력을 자행한다는 것은 모순입니다. 그런데 민주 노총 산하의 몇몇 노조들은 본 성지에서의 농성중 규찰대 혹은 유사 조직을 동원하여 이탈하려는 농성자들에게 폭력을 사용하거나 혹은 신자들의 출입 심지어는 본 성지에 기거하고 있는 성직자들의 출입까지도 간섭 또는 방해하곤 하였습니다. 그러면서도 외부에는 자발적인 평화 시위라고 홍보하여 왔습니다. 언어 폭력도 때로는 극심합니다.

구호가 성지에 어울리지 않게 폭력적이기도 하고 또 어떤 때는 부르는 노래가 차마 입에 담을 수 없는 욕설들로만 구성된 것도 있었으니, 이는 성지에 대한 폭행입니다. 또 본 성지의 시설로는 감당이 안되는 인원이 머무는 동안에 방뇨 문제는 심각의 도가 넘는 경우가 허다합니다.

 

4. 2000년 12월 17일(일)에 난입한 한국 통신 노조도 위의 사례들을 많이 재현하고 있습니다. 우선 당일 오후에 있던 4, 5, 6, 7시 미사들로 부터 시작하여 12월 20일(수) 새벽까지 미사에 참석하려던 신자 다수가 경내 진입을 못하였습니다. 이탈하려던 노조원이 사수대에게 폭행을 당하고 머리에 부상을 입고 병원으로 후송되는가 하면, 몸이 불편하여 도움을 청한 여성 노조원을 태워 나가던 본당 사목위원 차량이 심한 저지를 받기도 했습니다. 한 여교우는 고해성사를 보고 나가려다가 얻어 맞기도 하였습니다. 사수대가 후문 출입구의 철문을 여닫는 동안 막상 책임을 진 관리 직원은 무서워서 물러서 있는 주객 전도의 모습과 각목으로 무장하고 있는 사수대의 모습은 성지에는 전혀 어울리지 않습니다. 일부 농성자들은 야간에 문화관 비상 출입구를 깨고 문화관을 점거하려고도 하였으며, 아무데나 방뇨하는 것은 물론이고 마당에 이미 설치 완료된 구유에 방뇨를 하다가 현장을 잡힌 농성자도 있고, 문화재인 본 성당 건물 벽에 못을 박고 비닐 천막 끝을 고정시키는 일도 벌어졌습니다.

이런 현상들을 대형 집회의 부수적인 현상들로 간과하기에는 성지라는 성격과 너무도 모순적이며, 또 강제 점거라는 농성의 시작 자체를 놓고 보면 이번 농성 전체가 성지에서 벌어져서는 안될 불행한 사건이었습니다.

 

5. 본인은 이런 일련의 성지 모독 사건들을 마음 아프게 바라보며 본 성지 관리 책임자로서 하느님 앞에 이런 사건을 예방하지 못한데 대하여 속죄하는 마음을 갖으며, 앞으로 성지에 대한 존경심을 갖지 않은 또 막강한 힘을 지닌 대형 노조들을 포함한 각 집단 이권 단체들의 사전 허가 없는 농성을 찬성할 수 없습니다. 이런 농성들은 성지를 이용하고 훼손할 뿐입니다. 또 공권력의 무자비한 횡포가 사라지고 정당한 법절차가 존중되는 현 시점에서 명동 성당 구내에서의 모든 천막 농성은 허락될 이유가 없다고 생각합니다.

 

6. 작년도에 명동 본당은 이미 1998년에 기획하였던 성당 축성 100주년 기념 학술 세미나를 열고, 우리 민족사 안에서 명동 성당의 앞으로의 모습을 함께 고민하였습니다. 과거가 민주화의 광장(Agora)이었다면, 지금은 원하건 원치않건 이권 투쟁의 광장이 되었고, 앞으로는 문화의 광장으로 변모되어야 한다는 것이 초빙된 전문인들의 제안 이었습니다. 이런 전문인들의 진단에 공감하면서 교회 내에서는 물론이고 사회 각계 각층의 같은 뜻을 갖으신 분들의 지원을 감히 청합니다. 그럴 때 명동 성당은 우리 민족사 안에서 성지로서의 모습을 오래 보존하고 정신적 지주로서의 역할을 다 할 수 있을 것입니다.

 

2000년 12월 20일 수요일

천주교 서울대교구 주교좌 명동교회

주임신부 백남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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