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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승정신부님의 성서백주간 제4회 구약과신약2부(3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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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정임 [kr3217] 쪽지 캡슐

2011-12-01 ㅣ No.182591

+샬롬(그리스도의 평화)

최승정신부님의 성서백주간 제4회 
                        
                      구약과신약2부 (3편)


※ 70인역: 70(72)명의 유다인들이 히브리어 성경을 그리스어(헬라어)로 

                           번역한 성경(약어는 LXX)
 
오늘날 그것을 역사적인 사실이라고 믿는 사람은 제가 아는 한은 없습니다.
혹시 있을 수도 있지요? 제가 아는 한은 없습니다.  왜냐?  제가 성서를
번역 할 때도 어제 번역한 것과 오늘 번역 하는게 다른데, 같은 사람이
해도.
그런데 70명이 성서 전체를 70일 동안에 번역할 수가 있을까?
그 다음에 그 내용이 똑 같을 수 있을까? 
 
물론 하느님의 능력이라면 불가능한 게 없겠지만 현실적으로는 조금 생각하기
어려운게 아닌가.  요즘에 학자들이 얘기하는 것은 70인 역의 전체적인
번역은 적어도 150년에서 200년 가까이 걸린 것이 아니겠느냐? 
완결 된 것은 예수님 직전의 시기가 아니겠느냐? 예수님시대 이후는 아니고
예수님 직전의 시기가 아니겠느냐?
 
※ 성서학자들은 70인역의 번역 작업에 150~200년 정도 걸린 것으로 본다.
 
그와 같은 성경의 번역이 이루어진 근본적인 이유는 알렉산드리아나 다른
쪽에 가서 살던 유다인들의 디아스포라
 
※ 디아스포라(Diaspora): 초기 그리스도교 시대에 그리스와 로마 등지로
흩어져 살았던 유다인, 또는 그 지역 
 
여기서 디아스포라란 말은 본래는 섬이라는 뜻입니다만 왜 우리도 LA나 유럽
같은데 가보면 한인 타운 뭐 그런게 있잖아요 그렇게 외국으로 이민가서  
유다인들 촌에 모여 살았는데 2세대, 3세대들은 히브리말을 못하는 겁니다.
 
따라서 그들이 토요일이면 시나고가(Synagoga: 성서에서는 유다교의 회당을
의미함). 각자 그런 것들을 만들어서 크고 작은 시나고가에서 자신들이
하던 전통적인 전례를 했는데 알아 듣지를 못하는 거예요. 그러니까 그런
독서를 하고 났는데 그 말이 그들에게 의미를 갖지 못하는 겁니다.
 
그러니까 그와 같은 텍스트들을 그들이 이해할 수 있는 말로 번역해 주어야
겠다라는 그런 주된 것으로 해서. 그런 동기로 해서 그와 같은 번역이
이루어지기 시작했을 것이다라는 것이 오늘날 학자들의 짐작입니다.
그런데 문제는 앞으로 2달 정도 뒤에 이스라엘 역사를 공부 하면서 다시
한번 말씀드리겠습니다만 본래 그리스도인들은 요즘 식으로 얘기하자면
유다교의 한 부분으로 자신들을 생각한 것 같애요.
 
※ 원래 그리스도교인들은 자신들을 유다교의 한 부분으로 생각했을 것이다.
 
"우리들은 유다교 전통 안에 있다."
요즘도 왜 성당에서 미사하고 나서 레지오 마리애는 밑에 내려가서 따로
화합하지요?  그런식으로 그리스도인들이 같이 유다인들과 함께 모여서
유다교 전례를 다하고 특히 예루살렘 공동체에서는 그게 끝나면 자기네들
끼리 모여서 아가페라는 모임을 했던 것 같애요.
 
그런데 그게 밥먹는 자리인 거지요. 그러다가 밥 먹는 자리가 예수님의
마지막 만찬을 기억하는 자리로 발전을 하면서 오늘날의 미사의 전례적인
형태로 고정된 것이 아니냐 라는 것이 교회사를 연구하는 사람들의 일반적인
짐작입니다. 거기에는 여러가지 가설이 있습니다. 
 
아무튼 그런데 그 유다인들이 따라서 처음엔 자신들의 정체성을 발견하는
과정까지에 오기까지 처음에는 자신들이 유다교의 한 부분으로 생각했던 것
같습니다. 그러다가 어떤 일이 생기느냐 하면 130년 경에 바르 코크바라는
유다의 혁명가가 생겨 나는데
 
※ 바르 코크바(Bar Kokhba): 팔레스타인에서 로마의 지배에 대항해 반란
                          (132 - 135)을 일으킨 유다 지도자. 
 
당시에 유다교 전체를 이끌던 랍비 아키바가 바르 코크바를 메시아로 선포를
합니다.  그러니까 그리스도인들에게 어떤 문제가 생기겠습니까?
우리는 그건 못 받아들인다. 우리에게는 이미 예수 그리스도, 그리스도는
메시아라는 뜻이거든요.
 
예수님이라는 메시아가 있는데, 우리는 그 메시아가 이미 세상에 왔다고
믿는데, 또 바르 코크바라는 메시아가 있다는거는 못 받아 들인다라고
얘기를 하면서 아마 유다교와 그리스도교가 영원히 결별하는 것이
아니었겠는가. 그러면서 그리스도교는 사실은 초대 예루살렘 공동체가
주도권을 잡고 그것을 중심으로 그리스도교의 중심이 되어 있었지만 하지만 
그런 바르 코크바의 혁명이라든지 전에 있었던 60년대의 유다 전쟁의 이후로
 
※ 1차 유다전쟁(68년-73년): 로마에 대항한 유다인들의 첫 번째 전쟁으로
                           예루살렘은 함락되고 백만명 이상이 죽었다.
 
유다인들이 팔레스타인 지역에서 다 쫒겨 납니다.
따라서 유다인들의 피를 가졌던 그리스도인들도 팔레스타인지역에서 쫒겨
나면서 이제 다른 지역에서 그리스도교 전통이 자리잡게 되는데 대표적인
곳이 안티오키아와 알렉산드리아 입니다.
 
※ 그리스도인들은 팔레스타인 지방을 벗어나 안티오키아와 알렉산드리아
   등지에 자리 잡았다.
 
그런데 그 다른 지역에 있던 사람들은 유다인들이 아니거든요.
그 다른 지역에 있던 유다인들이 아닌 사람들이, 곧 공동체의 지도자들이
히브리말을 당연히 못합니다.
 
※ 이 지역 사람들은 히브리어를 몰랐기 때문에 그리스어로 번역된 성경을
   사용했다.
 
그러니까 구약성경을 인용할 때 그리스말로 번역된 성경을 이용 하겠습니까?
아니면 히브리말을 배워서 히브리말 성서를 읽겠습니까?  그냥 자신들에게
편한 그리스말 성서를 읽은 겁니다. 그것과 함께 신학적인 자신들의 이론들을
전개 해 나가고, 알렉산드리아와 안티오키아에서 그런 신학이 점차적으로
자리를 잡고, 나중에 그와 같은 중심으로써 로마를 그와 같은 교회 발전의
중심이 콘스탄티누스 황제의 칙령이후 로마쪽으로 옮겨오게 되는, 그와 같은
동쪽에서 계속 서쪽으로 가는 그와 같은 흐름을 우리가 볼 수 있습니다.
 
※ 콘스탄티누스 황제의 밀라노 칙령(313년)이후 그리스도교의 중심이 로마로
   옮겨가게 된다.
 
자, 따라서 초대 교회의 교부들은 많은 경우에 그리스말 성서를 하느님의
말씀으로 고정해서 생각을 해왔습니다. 그리고 그것이 교회 안의 하나의
고정된 전통으로 자리 잡고 있었습니다.
 
※ 따라서 초대교회 교부들은 그리스어 성경(70인역)을 하느님의 말씀으로
  고정해 생각해 왔고, 전통이 되었다.
 
그런데 16세기에 와서 독일에서 루터라는 인물이 나타납니다.
 
※ 마르틴 루터 (Martin Luther) 1483년 ~ 1546년
 
당시의 중세 교회는 조금은 우리에게 있어서 실망스러운 어떤 교회사적인
발자취를 보여 줍니다. 하지만 그게 꼭 나쁜 거는 아닙니다.
얼마든지 변화할 수 있습니다. 어떤 거냐? 그 당시 중세 교회가 그 시대의
신학이 어떤식의 신학을 갖고 있었느냐하면 하느님의 영광을 드러내야 한다.
 
※ 중세신학의 특징은 "하느님의 영광을 세상에 드러내야 한다"는 것이다.
 
우리도 역시 마찬가지 입니다. 하느님의 영광을 세상에 드러 내야 하는것!
그리스도인의 아주 중요한 일 중에 하나입니다. 그런데 하느님의 영광이
어떻게 해야지 세상에 드러나느냐?  크고 웅장한 성당을 짓는것. 이게 중요
하다고 생각을 한 겁니다. 그게 세상에 하느님의 영광을 드러내는 길이다.
 
그래서 여러분들 왜 중세 때 지어진 바로크성당을 보면은 그 성당 안에 다
금칠이 되어 있습니다. 그게 금 값이 싸서 그렇다거나 아니면 금을 좋아해서
그런게 아니라 어떤 걸 얘기하는 겁니까? 아까 말씀드린대로 하느님 나라는
이런 곳이야라고 사람들에게 가르쳐 주기 위한 겁니다. 아니면 고딕성당이
하늘 높이 쳐올라가지요? 정말 끝을  볼 수 없를 정도의 높이로, 뾰족히
솟아 있습니다.  왜 입니까? 하늘과 땅이 이렇게 이어진다라는 것을 보여
주기위한 겁니다.
 
그런데 그때 16세기에 들어와서 교회가 이미 그 전에 두 번인가 요즘의
용어로 하면  베드로 성당을 리모텔링을 했었습니다. 그런데 요번에 다시
한번 해야겠다고 생각을 하는겁니다.
 
※ 베드로 대성전 개축: 176년에 걸쳐 완공 했으며, 1626년에 헌당식
 
요즘에 여러분들 베드로 성당 가보면 입이 딱 벌어지지요?
어떻게 저런 것을 지었을까? 그런데 그게 무슨 기계가 발달 했던 시절이
아니잖아요? 그러니까 얼마나 많은 돈이 들었겠습니까?
한 나라 예산 가지고도 되지 않았던 모양입니다. 따라서 로마에서 전 세계에
기부를 받는데, 여러분들 역사 안에서는 면죄부라고 얘기하지만 면죄부는
아닙니다. 여러분들 왜 몇년 전에 바오로 해나 다른 때에 우리 교구장님께서
전대사라는 걸 말씀하시지요. 그 전대사를 베푸는데 어떻게 베푸느냐?
 
※ 전대사: 죄를 지은데 따른 벌을 전부 없애주는것 (고해성사후 해야 할
           보속을 면제 하는것)
 
전대사를 받는데도 그 때도 조건이 있었지요.
어디 어디를 순례 해야 되고, 어떤 기도를 해야되고, 그랬을 경우에 전대사를
받는다라는 건데 그건 중세교회 때도 있었던 겁니다. 그런데 그 때는 어떤식
으로 사람들이 얘기를 했느냐?
"베드로 성전 건립 기금을 내면 전대사를 준다" (따라서 전대사는 면죄부가
아닌 면벌부에 해당)라는 건데 요즘에는 면죄부라는 이야기를 한거지요.
 
그러면서 기부금을 받기 위해서 전체를 돌아다니던 설교가들이 신학적으로
하지 말아야 될 그런 내용들의 지나친 말들도 한 것 같습니다.
그러니까 그걸 듣고서 루터가 발끈하는 겁니다. 그러면서 당시의 새로운
신흥정치의 어떤 세력이었던 북유럽에 있던 여러 영주들이 그런 루터의
신학을 정신적인 근거로 삼아서 이제 프로테스탄트 운동이라는 하나의 개혁이
생기고 독일에서는 30년 전쟁이라는 오랜 전쟁의 시간을 거치면서 많은
사람들이 전쟁에 휘말리게 되고 그와 역사를 우리는 되돌아 보고 있습니다.
 
※ 30년 전쟁(1618년~1648년)
   유럽의 여러 나라들이 종교와 왕조, 영토등 다양한 이유로 벌인전쟁.
 
자, 그런데 루터가 전체적인 새로운 흐름을 이어 받으며 면서, 루터는 성서
학자였습니다. 성서 학자인데 히브리말도 할 줄 알고, 그리스 말도 할 줄
아는. 그리고 또한 당시 성서 번역은 대단히 훌륭한 성서 번역입니다.
오늘날 까지도 루터 비벨이라는 독일말 성서가, 물론 지금은 개정된 옛 독일어
에서 오늘날 독일어로 번역 됐지만 아직도 루터가 번역한 그 전통을 따르는
루터 전통의 독일말 성서 해석이 독일 성서에서 굉장히 중요한 역활을
합니다. 성서 학자 였습니다.
 
그런데 여러분들이 그런 학자라면은 전문적인 학자라면은 원문인 히브리말이
더 중요하다고 생각하겠습니까? 아니면 히브리어에서 번역된 그리스말이 더

중요하다고 생각 하겠습니까?  히브리말이 더 중요하다고 생각하겠지요.

4편에서 계속됩니다.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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