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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사랑은 눈물의 씨앗 * (강력 3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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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현철 [hl1ye] 쪽지 캡슐

2005-10-17 ㅣ No.508

 

                       사랑은 눈물의 씨앗


  십자가를 안테나로!

  오늘 저의 영명축일을 맞이하여 아끼는 대자 몇 명과 함께 점심식사를 하고 그냥 헤어지기가 섭섭하여 영화 한편으로 이른바 문화행사를 했습니다. 대자들과 감동을 받으며 본 이 영화는 ‘강력 3반’이란 한국영화였는데 여러 가지로 열악한 조건하에서 정의구현 사회를 위해 희생과 헌신하는 형사들의 애환을 다룬 내용이었습니다. 그런데 그 영화 내용 중 ‘범인을 보면 잡고 싶은 열망에 눈물까지 난다’는 베테랑 문형사의 말이 저의 가슴을 저미며 파고들어와 대자들 몰래 어둠 속에서 눈물을 훔치게 만들었습니다. 그런데 이 ‘문형사의 눈물’은 어제 소개한 ‘위선적인 악어의 눈물’과는 차원이 전혀 다른 것이지요. ^^*


  오늘 축일은 맞이하는 저의 주보성인인 안티오키아의 성 이냐시오 주교님은 순교하러 끌려가시면서도 ‘천국을 갈망하고 교우들을 걱정하는 사랑의 눈물’을 흘리며 다음과 같은 내용의 편지를 로마 교우들에게 쓰셨다고 합니다.

 

   “나는 하느님의 밀알입니다. 나는 맹수의 이에 갈려 깨끗한 빵이 될 것입니다. 나는 모든 교회에 편지를 쓰면서 여러분이 방해만 하지 않으면 내가 하느님을 위해 기꺼이 죽으러 간다고 모두에게 알렸습니다. 나의 간청입니다. 불필요한 호의를 나에게 베풀지 마십시오. 나를 맹수의 먹이가 되게 버려두십시오. 나는 그것을 통해서 하느님께 갈 수 있는 것입니다.

  나는 하느님의 밀알입니다. 나는 맹수의 이에 갈려서 그리스도의 깨끗한 빵이 될 것입니다. 이 맹수라는 도구를 통해서 내가 하느님께 봉헌된 희생 제물이 될 수 있도록 그리스도께 기도하십시오. 이 세상의 모든 쾌락도 지상의 모든 왕국도 나에게는 아무 소용이 없습니다. 이 세상 극변까지를 다스리는 것보다 그리스도 예수와 일치하기 위해 죽는 것이 나에게는 더 좋습니다. 내가 찾고 있는 것은 우리를 위해서 죽으신 바로 그분이며 내가 원하는 것은 우리를 위해 부활하신 바로 그분입니다. 다시 태어나는 내 출생의 때가 가까웠습니다.

  형제들이여, 나를 잊어버리십시오! 내가 이 생명을 얻는데 방해하지 마십시오. 나를 죽음의 상태에 놔두려 하지 마십시오.  하느님께 가고자 하는 사람을 세상에다 던지지 마십시오. 물질로써 유혹하지 마십시오. 나에게 깨끗한 빛을 받을 수 있도록 해주십시오. 내가 거기 닿아야 사람이 될 것입니다. 내 하느님의 수난을 본받는 자가 될 수 있도록 해주십시오. 아무라도 하느님을 자기 안에 간직한 사람이면 내가 원하는 바를 들을 것이며 나를 재촉하고 있는 것이 무엇인지 알고 동정할 것입니다. 이 세상의 통치자가 나를 잡아가서 하느님을 향한 이 내 마음을 돌려놓으려 합니다. 거기 있는 여러분들은 그 누구라도 이것을 거들지 마십시오. 그것보다는 나를 위해 아니 하느님을 위해 도움이 되도록 하십시오. 입으로는 예수 그리스도를 말하고 마음으로는 세속을 원하는 일이 없도록 하십시오. 나쁜 마음이 여러분 안에 자리잡지 않도록 하십시오. 내가 여러분에게 도착했을 때는 나를 믿지 말아야 할 것입니다. 이것은 내가 부탁하는 것입니다. 내가 지금 여러분에게 쓰는 말을 믿으십시오.

  지금은 내가 살아서 이 글을 쓰고 있지만 죽음을 열망하고 있습니다.  나의 지상적인 모든 욕망은 십자가에 못 박혔고 세상 물질을 사랑하기 위한 불은 내 안에 더 없습니다. 다만 내 안에 있는 것은 샘솟는 물이고, 이 샘물이 ‘성부께로 오라.’고 내 안에서 속삭이고 있습니다. 이제 썩어 없어질 음식이나 인생의 쾌락이 내 마음을 기쁘게 할 수 없습니다. 다윗의 자손이신 예수 그리스도의 살인 하느님의 빵을 먹고 영원한 사랑이신 그분의 피를 마실 것만 나는 바라고 있습니다. 나는 인생을 더 살고 싶지 않습니다. 여러분이 여기에 동의하면 내 원의는 이루어질 것입니다.

  동의하십시오! 그러면 여러분의 원의도 하느님께서 이루어 주실 것입니다. 이 짤막한 편지로써 내가 여러분에게 그것을 청하고 있습니다.

  나를 믿으십시오! 내가 진실로 말하고 있다는 것을 예수 그리스도께서 여러분에게 나타내 보이실 것입니다. 그리스도께서는 거짓말을 모르시는 입이며, 이 입을 통해서 성부께서 진실을 말씀하셨습니다. 나의 원의가 채워지도록 나를 위해 기도하십시오. 내가 육의 원의를 따라 이 편지를 쓰는 것이 아니라 하느님의 뜻을 따라 쓰는 것입니다. 내가 수난을 당한다면 여러분이 나에게 호의를 보인 것이고 수난에서 제외된다면 여러분이 나를 미워한 것입니다....

                      (성 이냐시오 주교 순교자의 「로마인들에게 보낸 편지에서)


  그런데 우리나라의 전통 유교 못지않게 남자의 눈물을 금기시(?) 했던 유대교 영향하에서도 예수님께서는 예루살렘을 내려다보시며 “오늘 네가 평화의 길을 알았더라면 얼마나 좋았을까!”(루가 19, 41)하시며 눈물을 흘리십니다. 그리고 ‘참된 행복’(마태 5 장 참조)을 가르치시면서 ‘예수님 때문에 슬퍼하고 눈물을 흘리는 사람은 진복자’라고 하십니다. 따라서 앞으로 형제님들은 남과 싸워서 또 분통을 참을 수 없어 흘리는 눈물 즉 ''자기 때문에 흘리는 눈물‘보다는 ’예수님 때문에 또 하늘나라를 위한 사랑의 눈물을 많이 흘려 행복한 사람이 되어야겠습니다. 물론 자매님들도 이 ‘눈물 흘리기’에서 예외가 아니지요. 통회의 눈물과 비싼 향유로 예수님의 발을 닦아준 여인(루가 7, 36-50)처럼 말입니다.^^* 참고로 이규태님의 신문칼럼과 영화 ‘강력 3반’을 소개합니다. 가브리엘통신


                                      <눈물 흘리기>


  달레의 ‘조선교회사’ 서설(序說)에, 남편 뒷바라지하느라 굶기를 밥먹듯 하고 겨울에 여름옷 걸치고 살던 아내가 죽었다는 소식을 듣고 돌아앉아 ‘눈물 좀 흘렸다’는 오로지 그 이유만으로 어느 선비가 벼슬사회에서 완전히 따돌림받는다는 이야기가 나온다. 이처럼 사나이로서, 그 더욱 엘리트 신분으로 눈물을 보인다는 것은 그당시 인격적인 결함이 돼 왔으며 이 정신적 전통은 지금이라고 달라지진 않았다.

  그런데 최근 이 울음이 일본에서 일상의 감정적 맺힘이나 응어리를 풀어줘 ‘행복의 길을 틔워 주는 활력소’로 각광받고 있다는 보도가 있었다. 즉 ‘울자’는 뜻인 ‘Nakoyo’ 인터넷운동이 번지고 있다고도 한다.

  우리나라는 감정표출을 악덕시해온 유교문화뿐 아니라 신분, 관권, 부권, 남존여비 등등에 억눌려 양산돼온 눈물인지라 흘려서는 안 되는 악이 돼 왔으며 따라서 몰래 우는 문화가 우리나라만큼 발달된 나라도 없을 것이다. 다만 초상이 나거나 제사를 지낼 때만은 많이, 크게 울수록 좋았다. 초상이 나면 상청(喪廳)을 차리고 삭망(朔望)에 상식을 올리고 곡을 했다. 한데 망인의 혈족이 아닌 마을의 부인들이 와서 구슬피 우는 것을 자주 볼 수 있었는데 망인과의 옛정을 못 잊어 찾아와 우는 것이 아니다. 울고 싶은 사람은 아무나 와서 울어도 되며 이 외인들의 곡소리가 가족보다 구슬프고 길며 소리도 크다는 것이 상식이다. 왜냐하면 억눌려온 자기 설움의 카타르시스를 위해 울 수 있는 공간을 빌린 것에 불과하기 때문이다. 우리나라 흔한 지명에 ‘울음고개’(泣嶺)라는 게 있다. 대체로 뒷산 고개 너머 오목한 분지로 밭일 하러 가느니 나물 캐러 가느니 구실을 삼아 고개 넘어가 억눌러온 울음을 터뜨려 앞치마 하나를 흠뻑 적시도록 울고 돌아오곤 했다.

  고려 말 이색(李穡)이 이성계의 쿠데타에 울분을 못 가누고 있는데 그의 아들마저 무고로 죽음을 당하자 서생 하나 데리고 울음고개 넘어가 실컷 땅과 가슴을 번갈아 치고 울더니 “이제야 가슴이 좀 후련해졌다”면서 하산했다. 조광조가 처형당한 후 그를 흠모한 신진 선비들은 산 넘어가 실컷 통곡, 울분을 푼 것을 이심전심으로 관례화하기도 했다. 눈물의 과학적 효과를 잘도 누렸던 조상들이다.

                                                                                          (이규태 / 조선일보)

 

 

                                           <강력 3반>


  단 3초만 지켜봐도 범인을 알아보는 타고난 형사이지만, 사생활이 보장되지 않는다는 이유로 호시탐탐 형사질(?)을 그만 둘 기회만 엿보고 있는 초보 형사 김홍주(김민준 분). 그리고 ‘범인을 보면 잡고 싶은 열망에 눈물까지 난다’는 강력계 15년 차의 베테랑 형사이지만 최근 부쩍 심해진 건망증에 위축된 문형사(허준호 분), 죽어라 범인을 쫓지만 언제나 허탕만 치는 재칠(김태욱 분), 아기 만들 시간이 없어 마누라한테 맨날 구박만 받는 고형사와 이들을 이끄는 육반장(장항선 분)은 정의구현 사회를 위해 헌신하는 이른바 ‘강력3반’이다. 여기에 ‘총을 쏘는 형사’가 되고 싶은 어리버리한 교통경찰 해령(남상미 분)은 덤. 강도나 절도범 한 놈이면 채워지는 고과 점수가 모자라 그 흔한 회식 한번 못해본 ‘강력 3반’은 늘 1반과 2반에 뒤쳐지는 만년 꼴찌 팀이다. 범인들은 갈수록 지능적이고, 수법은 나날이 최첨단으로 발전해가는데, 강력 3반은 변변한 무기는커녕 몇 푼 안 되는 수사비마저 하루가 멀다 하고 깎이기 일쑤인 열악한 수사반이다. 하지만 범인을 잡겠다는 열정과 패기만큼은 누구에게도 뒤지지 않지만, 눈앞에 닥친 현실에 허덕이는 강력 3반에 돌아오는 건 언제나 무시와 비웃음뿐이다.

  그러던 어느 날, 잠복근무까지 땡땡이 치고 여자 친구인 태희의 동창 모임에 참석한 홍주는 그곳에서 묘한 범죄의 냄새를 맡는다. 즉 한 달 고과를 한큐에 해결할 수 있는 대형 마약사건에 맞닥뜨린 강력3반 형사들은 그 어느 때보다 사기가 충천. 수사반 내부 금고에 비밀스럽게 감춰뒀던 수사비 천만 원을 ‘올인’하면서 그 사건을 파헤쳐가던 강력3반은 이 사건의 정점에 국제 마약 조직을 진두지휘하는 국제적 거물 서태두 회장이 있음을 알게 된다. 워낙 그 조직이 국제조직이라 ’검찰과 인터폴에 넘기고 손을 떼라‘는 주위의 만류도 뿌리치고 언제나 무시만 당하던 ’강력 3반‘은 이번에야 말로 본때를 보여주겠다며 맨주먹과 집념으로 대형 마약사건 해결을 위해 목숨을 건다...


                                    <성서묵상>


  “나는 대단히 괴롭고 답답한 마음으로 눈물을 흘리며 여러분에게 그 편지를 썼습니다. 그러나 그것은 여러분의 마음을 아프게 하려고 쓴 것이 아니고 내가 여러분을 얼마나 극진히 사랑하고 있는지를 여러분에게 알리려고 쓴 것입니다.” (2고린 2, 4)

 

                        (마르코니 문화영성 연구소 / http://hompy.dreamwiz.com/hl1ye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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