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4년 5월 18일 (토)
(백) 부활 제7주간 토요일 이 제자가 이 일들을 기록한 사람이다. 그의 증언은 참되다.

자유게시판

강윤호형제님의 "카르타고 공의회때 나온 성경 목록과 지금 현재 카톨릭이 보는 성경목록이 다르다???정말인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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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정제 [wild306] 쪽지 캡슐

2011-03-31 ㅣ No.173725

 라는 질문에 대하여...간단하게 봅니다.(아무리 간단하게 보려고해도 글이 길어지네요~~@@)
 
1. 형제님은 이미 카르타고 교회회의의 성경목록(구약)과 현 가톨릭의 구약 목록이 일부 다름을 일부 반가톨릭 개신교인들이 만든 엉터리 자료들로 제시하셨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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카르타고 교회회의는 이전 로마회의(381년)에서 확인한 신약정경을 거듭 확인한 교회회의였으나 형제님이 제시하신 아래의 개신교 자료의 주장처럼 구약성경의 목록은 당대의 전승에 따라 그대로 옮겨놓았을 뿐입니다.
주의할 점은 "카르타고 교회회의"는 (세계)공의회가 아닌 지역교회회의임을 아셔야 할 것입니다.
 
구약성경의 정경목록이 교회안에서 공식적으로 공의회를 통하여 처음 결정된 것은 트리엔트 공의회(세계공의회)에서 였습니다.
아래의 개신교 자료들은 이것에 대하여 "교회가 달면 삼키고 쓰면 뱉는다"라며 비방을 하고 있으나 
공의회를 통하여 당대 루터등을 통하여 제기된 구약성경 목록을 점검하고 정립하는 것은 교회가 하여야 할 당연한 일입니다. 마치 신약성경의 정경을 교회가 확립하였듯... 그리고 신약성경 목록도 트리엔트 공의회가 재확인하였습니다.
 
하여 구약의 정경을 정립하는 것에 대하여 왈가왈부할 것이 못됩니다. 이는 가톨릭교회가 할 일이니까요.
오히려 형제님이 제시하신 개신교의 아래 자료를 보면 개신교들이야말로 아예 통체로 70인역 구약성경을 위경으로 작정하고 내 버렸거던요. 루터등이 그렇게 할 권한이 어디에서 나왔는지 궁금할 뿐입니다.
 
참고로 트리엔트 공의회는 루터나 캘빈등 때문에 교회가 혼란을 겪어 소집을 하게되었으나 단순히 개신교를 단죄하기 위해서가 아니었습니다.((그때만하여도 개신교란 없었습니다. 개신교의 출현은 공의회 한참 이후 입니다. 개신교는 루터나 캘빈 쯔빙글리등(그 추종자들)이 프랑스, 영국 일부 독일 영주 등을 업고 가톨릭을 지지하는 스페인-신성독일제국과 일으킨 종교전쟁에서 이긴 전리품으로 생성된 것입니다.))
오히려 서로의 일치점을 도모하였으나 실패한 것이며,  그 과정에서 그때까지 제대로 된 즉 통일된 교리서하나 없었던 그리스도교에 "처음으로" 총체적인 교리를 집합함으로써 교회의 내외적 모습을 쇄신시켰습니다.
예수회등이 주축이 되어 공의회가 개최되고 이끌려갔다는 것은 악의적인 모함입니다.
 
세계공의회란 전세계(그래보았자 당대는 서방<로마>교회에 속하는 유럽, 아프리카, 중앙아시아에 한한 것이겠으나)주교들이 모여 교회의 당면과제를 논의하는 것입니다. 예수회에 의하여 공의회가 소집되고 운영되었다면 당대 주교들은 허수아비노릇을하였다는 것 같은데요.... 일부 개신교인들의 저질 자료들은 앞으로는 부디 거두시기를 바랍니다.
 
2.  아래 개신교 자료는 70인역 성경을 신약성경(주님과 사도들)이 단 한번도 인용한적이 없는 것처럼 주장하는데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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루가 11.49
요한 7.38
교린토전서 2.9, 야고보4.5~6, 에페소 5.14, 유다1. 14~15 등을 참조바랍니다. 이 귀절들은 70인역을 인용한 귀절들입니다.  주님이나 사도들은 성경도 아닌 것을 성경으로 인용하셨다는 건지.... 가톨릭을 비방하려다보니 거짓말까지 일삼는 일부 개신교인들의 주장을 형제님이 제시하신 자료에서 보게됩니다. 그런 짓은 부질없는 짓입니다.
 
3. 얌니아(잠니아) 회의에 대하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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얌니아회의는 예루살렘의 대파괴 후 80년대 이후 얌니아 지방에서 유대교 율사, 랍비들에 의하여 장기간 소집된 유대교 교회회의입니다.
 
주님 승천 이후, 로마제국이 예루살렘을 점령 파괴할 때 그리스도교 유대인들은 예수님의 말씀(예루살렘의 재앙...이때 산으로 도망쳐라... 등등)을 떠올리며 피신을 하여 피해가 별로 없었으나 유대인들은 로마에 대항하여 싸웠기에 엄청난 피해와 파멸이 생겼습니다. 하여 예루살렘 대파멸 후 살아남은 랍비등 유대교 지도자들은 유대민족과 유대교의 재건을 위하여 얌니아에서 회의를 일으키게 되었습니다.
 
회의에서 유대교 지도자들은 그리스도인들은 민족을 배신하여 도망친 반역자로 규정하였고 
유대교 전례개혁에서는 유대교 예배시에 암송하는 16가지 전례기도문을 만들었는데 그중 13번째가 "하느님의 적인 예수와 그 도당들의 머리를 부수어 달라"는 저주의 기도문이었습니다.
또한 그리스도교가 70인역 성경을 사용하는 것에 대비하여 에즈라-느헤미아시대 정립된 유대교 공인 성경을 재확인합니다.  유대교와 그리스도교는 완전히 서로 원수가 되었습니다만 근대에 이루어진 제2차 바티칸공의회의 가르침에 따라 서로 화해하였습니다.
 
얌니아회의에서 히브리어 구약성경의 정경 목록을 결정하였다는 증거는없지만
유대교의 전승에 따라 에즈라시대 이후 확립된 히브리사본을 자기네 성경으로 "재확인"하고 전례개혁을 통하여 유대교 민족을 재건 확장하고자하였음은 틀림없는 일입니다.
 
여하튼 얌니아 회의는 유대교나 그리스도교에 있어서 대단히 중요한 사건이었습니다.
얌니아회의에서 히브리어 사본을 결정, 반포한 증거를 확인할 수 없다하여 얌니아회의에서 일어난 전례개혁-전례에 성경을 봉독하였으므로 당연히 유대교 성경은 70인역을 배척하고 에즈라이후 사용하여 온 유대교 성경에 대한 재확인은 전례개혁에 필수사항입니다.(다수설) 그이후 유대교에서는 오늘날까지 70인역을 성경으로 인정하지않고 있습니다.
 
4,
하여 교회가 70인역의 사용함은 개신교를 배척하고 새로운 교리를 만들기 위해 그런 것이 아니라 주님과 사도들이 사용한 성경이었고 초대교회부터 사용하여 온 교회의 책이였음에 성경이 되었던 것입니다. 70인역을 교회안에서 사용하였다 하여도 트리엔트 공의회에서 일부가(제2경전 중에서) "여러가지 이유"로 교회의 책에서 최종적으로 배척되었다하면 배척되는겁니다.   성경은 교회의 책으로써 교회가 반포하여 사용하는 것이기 때문이지요. 교회에서 이탈한 혹은 이단으로 파문되었던 분들의 추종자들이 이제와서 뭐가 어쩌니 하며 떠들 필요가 없는 것입니다.  
 
정교회나 단성론교회들이 가톨릭보다 구약성경이 서너권이상 더 많은 이유는 트리엔트공의회가 당시 정교회와의 분열때문에 트리엔트 공의회의 권위가 정교회까지 미치지 못했기 때문에 그런 겁니다.
구약의 목록이 서너권 차이가 있다하여도 이것이 가톨릭이나 정교회가 상호 단죄하여야 할 이유가 전혀 없으며 실제로 서로 단죄한 적도 없습니다. 이런 것을 일부 반가톨릭측에서  "제2경전 목록에 있네 없네, 달면 삼키고 쓰면 뱉네" 하며 비방할 사안은 아닙니다.
 
아래 글(자료)들을 쓴 사람들이 앞으로는 좀 제대로 되었으면 좋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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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은 토론 후에 자료를 정리하기 위한 내용으로서 카톨릭게시판에 보관되는 자료입니다.

카톨릭은 성경에 외경을 포함시키며, 개신교는 외경을 포함시키지 않습니다.

그러나 카톨릭은 이와 같이 외경을 포함시키는 것이 교회사적으로 당연하다고 주장합니다. 그 주장을 문헌적으로 살펴보면서 과연 그것이 사실인지를 공부하여 보려고 합니다.

카톨릭이 공식적으로 외경을 정경에 포함시킨 것은 트랜트공의회인데, 다음은 트랜트공의회에 대한 문헌입니다.


- 트랜트공의회는 1545년부터 1563년까지 모두 25회에 걸쳐 열린 교회 회의였다. 이 회의는 예수회 출신의 학자들인 라이네즈와 살메론이 중심이 되어 교령과 교칙을 작성한 공의회였다. 교황 바울3세에 의해 트랜트에서 소집되었는데 그 목적은 루터의 종교개혁운동을 중심으로 한 신교를 배척하려는 것었다. 이 회의에서 결정된 중요한 사항들을 보면 성서와 전통은 동등하게 진리의 근원이며, 교회만이 성서를 해석할 권리를 갖고 있다는 것등이다. 이렇듯 이 결정들은 철저히 반종교개혁적, 즉 반신교적인 성경들을 갖고 있었다. 이 회의는 로마카톨릭 교회와 신교가 서로 다른 방향으로 나아가게 되는 계기가 되었다. 전체 25회기에 걸쳐 개최된 이 공회의 중 특별한 결정을 한 회기들을 간추려보면 제4회기에서는 성서와 성문화되지 않은 전승을 대등한 위치에 두도록 하는 결정을 했는데, 이는 성서만이 권위를 갖는다고 주장하는 신교로서는 받아들일 수 없는 결정이었다. 또한 이 회기에서는 신앙과 도덕의 문제에 있어서도 모교회의 결정에 땅라야만 한다고 못박았다. 다음으로 제6회기에서는 신교의 견해와 비슷하게 율법에 의해 새롭게 되지 못한다고 결정하기는 했지만, 이는 카톨릭 교회의 공로에 의한 의인사상을 완전히 버린 것은 아니었다. 또한 이 회기결정문 14장에는 고해의 4단계, 즉 참회, 고백, 사죄선언, 그리고 보상의 단계를 주장하고 있는데 이것도 신교로써는 받아들일 수는 없는 것이었다. 그리고 제7회기에서는 일곱성례가 그리스도에 의해 제정되었다고 주장하면서 이는 구원에 필수적인 것이라고 주장했다. 제23회기에서는 교회의 일곱성직을 확인했으며, 모든 신자가 사제라고 하는 신교의 주장을 부정했다. 마지막 제 25회기에서는 연옥, 성인을 향한 기원, 성인숭배, 성인의 유물, 성상, 면죄부에 대해서 다루었는데, 여기에서는 이러한 것들을 폐기할 것이 아니라, 단지 올바르고 신중하게 사용할 것만을 가르쳤다. 특히 면죄부의 오용에 대해서 비판하면서도 지나치게 편법화하지말고 그것 때문에 교회의 규율이 약화하지 않도록 하라고 가르쳤다. 이러한 결정은 면죄부의 불필요성을 주장하는 신교의 비판에 대한 대응이었다. 이상에서 살펴보았듯이 이 트랜트에서 개최된 가톨릭교회의 공의회는 신교의 개혁적 이상을 수용할 수 없었으며 신교와의 차이점만을 다시 한번 확연하게 보여주는 역할을 했을 뿐이었다. 그러나 신교의 공격에 동요한 일부 가톨릭 신자에게는 자신들의 위치를 안정시켜주는 역할을 했다고 할 수 있다.(TBC 성서연구, 교욱목회협의회, 612-613쪽)


트랜트공의회는 신교의 종교개혁이후 그 비난에 대해서 가톨릭이 자신들을 방어하고 변명하기 위한 고육지책의 회의라고 할 수 있습니다.

개신교의 비난을 입막음하기 위하여 교리를 임시로 제정한 것이며, 그 교리를 위하여 고의로 합법성을 제공한 것입니다. 즉 교리적인 필요에 따라 외경을 정경에 포함시킨 것입니다.


그런데 아주 흥미로운 사실이 있습니다.

앞에서 잠깐 언급하였듯이, 칠십인역에 있는 외경을 모두 성경으로 인정한 것이 아니고, 일부만 인정하였던 것입니다.

그것은 일부 외경이 자신들의 교리와 다르기 때문입니다.

외경을 정경에 포함시키려면 모두 포함시키든지, 그것도 아니고 자신들의 교리를 입막음하기 위한 방편으로 삼기 위하여, 정경에 일부만을 포함시킨 것입니다.

즉 달면 삼키고 쓰면 뱉는 행위 - 성경을 교리에 짜깁기로 맞추는 행위 - 인 것입니다.


- 외경서의 14권이 모두가 트랜트공의회에서 승인받지 못한 것을 보면 트랜트공의회의 행동강령이 분명히 논쟁 위주였을 뿐 아니라, 편파적이었음도 엿볼 수 있다. 에스드라 1서와 2서(천주교는 에스드라 3서, 4서)와 므낫세의 기도는 제외되어졌다. 에스드라 2서를 제외시킨 것은 특히 의심스러운 일이다. 그것을 제외시킨 이유라면 그것은 사자(死者)에 대한 기도를 강력히 반대하는 구절이 들어있기 때문일 것이다.(에스드라2서 7:105) 실제로 중세의 서사(서기관) 중 몇사람은 에스드라 2서의 라틴어 필사본에서 이 구절을 삭제시켜 버렸으며, 이 사실이 로버트 벤틀 리가 1874년 프랑스 아미엔에 있는 한 도서관에서 라틴어로 된 것을 다시 찾았을 때까지는 그것이 아랍어 필사본으로 알려 졌던 것이다.(성경의 유래, 노오만가이슬러, 생명의 말씀사. 113쪽)


또 카톨릭은 외경이 어떻게 정경에 포함될 수 있는가라는 신교의 질문에 대해서 발견된 칠십인역의 사본에는 원래 외경이 포함되어 있으므로 정당하다고 주장합니다. 그러나 외경은 시대마다 또 발견되는 사본마다 모두 달랐습니다.

칠십인역은 발견되는 사본마다 외경이 서로 다르게 포함되어 있으며, 그것은 모두 후대의 칠십인역입니다.

그리고 제롬이 외경의 삽입을 강렬히 반대했던 불가타역의 외경은 지금의 카톨릭의 제2경전과 그 목록이 또 다릅니다.

발견된 칠십인역 사본은 주후 4-5세기의 것입니다. 그리고 BC 2세기에서 주후 1세기의 칠십인역에 외경이 포함되어 있었는가하는 것은 오히려 외경이 포함되어 있지 않다는 증거가 있을 뿐입니다.

그리고 제2경전(제2 정경이라는 뜻)이라는 용어는 트랜트공의회에서 처음 사용하였습니다. 아래는 대한성서공회의 자료입니다.


- 제2경전에 들어가는 책은 역사적으로 변천되어 왔다. 또 편집 형태에 따라, 책의 권 수도 일정하지 않다. 1977년에 나온 우리나라의 신.구교가 번역한 '공동번역성서'(1977)에 보면, ‘토비트’ ‘유딧’ ‘에스델(제1경전 에스더기의 추가부분)’ ‘지혜서’ ‘집회서’ ‘바룩서’ ‘다니엘서(제1경전 다니엘의 추가부분)’ ‘마카베오상’ ‘마카베오하’ 이상 9권이다. ‘바룩서’ 안에는 ‘예레미야의 편지’가 마지막장으로 편집되어 있고, ‘다니엘서의 추가 부분’에는 ‘세 젊은이의 노래’ ‘수산나’ ‘벨과 뱀’이 들어 있다. 영어개역표준성서(Revised Standard Version) (1957)에 실린 제2경전에는 ‘제1에스드라’ ‘제2에스드라’ ‘므낫세의 기도’가 더 들어 있다. 제2경전에 속하는 이러한 책들은 본래 유대교가 번역한 그리스어역 구약인 ‘칠십인역’에 들어 있던 것들을 초기 기독교가 받아들이고, 그것이 그대로 가톨릭의 경전이 된 것이다. 그러므로 제2경전에 속한 책들이 제1경전과 합본된 것은 기독교의 작업이 아니라 유대교의 경전사와 관련된 것이다. 히브리어구약성서에 익숙하지 않던 초기 기독교가 그리스어로 번역된 ‘칠십인역’ 구약을 읽게 되면서 거기에 들어 있는 제2경전에 속한 책들까지 함께 받아들이게 된 것이다. 고대 라틴어역 성서(Old Latin Version)는 바로 ‘칠십인역’에서 번역된 것이다. 교부들 사이에서도, 히브리어로 된 구약에는 없고 그리스어로 번역된 구약에만 나오는 책들에 대한 경전으로서의 권위를 문제삼기는 하였으나, 1546년 트렌트 회의에서는 그리스어 외경을 히브리어 성경에 들어 있는 39권 책과 동일하게 영감 받은 권위 있는 경전으로 인정하게 된다. 히브리어 구약에 들어 있는 39권의 책은 이미 경전으로 전해져온 것이므로 이것을 ‘제1경전’이라고 하였고, 그리스어 구약에 들어 있는 나머지 책들은 늦게 경전이 되었다고 하여 ‘제2경전’이라고 부르게 된 것이다.(논의의 편의상 여기에서 ‘제1경전’ ‘제2경전’이란 말을 쓰지만, 이런 용어는 16세기 트렌트회의 이후부터 사용되기 시작한 것이다). 그러나 ‘므낫세의 기도’ ‘제1에스드라’ ‘제2에스드라’는 불가타역 성서에 들어 있었음에도 불구하고 경전으로 인정 받지 못하였다. 따라서 불가타역은 이 세 책을 부록으로 취급하여 별도로 편집하였고, 나머지 책들은 구약의 여러 곳에 적절히 재배치하였다. ‘토빗트’와 ‘유딧’은 ‘느헤미야기’ 다음에, ‘에스더기 추가 부분’은 ‘에스더기’ 안에, ‘마카베오상’과 ‘마카베오하’는 ‘에스더기’ 다음에, ‘지혜서’와 ‘집회서’는 ‘아가’ 다음에, ‘바룩서’는 ‘애가’ 다음에, ‘다니엘서 추가 부분’은 ‘다니엘서’ 다음에 각각 편집해 넣었다.(대한성서공회)


예를 들자면 시내산 사본(Codex Sinaiticus)에는 "바나바서, 헤르마서의 목자를 제외한 외경이 실려 있고, 알렉산드리아 사본(Codex Alexandria)에는 클레멘트 1서, 2서와 솔로몬의 시편의 외경만이 실려 있습니다.

또 에브라임사본은 솔로몬의 지혜서와 전도서 두개의 외경이 실려 있었으며, 바티칸사본에는 일부 삭제된 외경들이 실려 있습니다.

외경이 전혀 없는 칠십인역 사본도 발견됩니다.

이렇게 발견된 사본들마다 외경이 모두 달랐다는 증거들은 외경이 동일한 목록이 아니었다는 증거이며 정경에 포함된 것이 아니었다는 것을 증거하여 줍니다.

그리고 더욱 특이한 것은 시대마다 다른 외경이 트랜트공의회에서 결정한 지금의 카톨릭 외경과 또 다르다는 것입니다.


카르타고 회의에 대해서 카톨릭은 어거스틴이 외경을 정경에 포함시켰다고 주장합니다. 그러나 그것도 그렇지 않습니다.

물론 히포지역의 감독이었던 어거스틴이 참석하였던 히포회의(A.D. 393)와 카르타고 회의(AD 397)에서 어거스틴이 말했던 외경은 지금과 달리 바룩서를 생략하고 위경 에스드라 전서를 삽입할 것을 주장하였습니다.

그러나 그 회의는 구약정경 목록을 결정하는 회의가 아니었고, 신약정경을 확정하는 회의였습니다.

그리고 처음에는 제롬의 불가타역은 다른 사람에게도 환영을 받지 못하였습니다.

어거스틴이 제롬의 불가타역을 비난한 것은 외경이 포함되어있는가 아닌가하는 관점이 아니라, 그 번역본의 내용이 전통적으로 읽어온 본문과 달랐기 때문입니다.


- 제롬은 라틴어 성서를 히브리어 원문 성서에서 직접 번역하기 시작하였다. 390년에 시작하여 405년에 끝냈다. 그러나 이미 서방 교회 안에서는 그리스어 칠십인역이 굳게 자리를 잡고 있었으므로, 제롬의 라틴어역은 처음에는 교회 안에서 정착하기가 어려웠다. 더욱이 제롬의 라틴어 번역이 칠십인역의 내용과도 달랐고 고대 라틴어역과도 다른 곳이 많았기 때문에, 전통적으로 읽어 오던 본문과 다르다고 하여서, 오히려 라틴어역의 권위가 도전을 받았다. 어거스틴 같은 지도자는 제롬의 라틴어역 성서가 그리스 교회와 라틴 교회를 갈라지게 할 것을 두려워하였다.

그러나 결국 제롬의 새 라틴어역의 우수성이 인정을 받게 되기까지는 많은 세월이 걸렸다. 8세기에 가서야 비로소 그의 번역은 "라틴어 불가타가 되어서, 종교개혁 때까지 서방 교회의 성서로 자리를 잡았다.

그러나 그 후로도 상당 기간 동안 고대 라틴어역과 제롬의 불가타역을 손으로 베껴서 보급하는 과정에서 번역문에 많은 변화가 가해져서 일종의 종합 본문이 되버리고 말았다. 손으로 베끼는 과정에서 본문의 와전까지 겹치게 되었다. 현재 남아 있는 약 8천여 개의 사본들 사이에 이독 현상이 많이 나타난다. 중세기에 불가타역 회복을 위한 몇 번의 시도가 있었으나 번번히 실패하다가, 1546년에 트렌트회의에서 불가타역을 공인하게 됨에 따라, 개정본의 필요성이 더 절실해졌고, 거기에다가, 15세기 중엽부터 발달된 인쇄술은 번역 본문을 정착시키는데 큰 공헌을 하였다. 교황 식스투스 5세의 식스타인판(Sixtein edition, 1590)이 광범위한 지지를 받지 못하였으므로 교황 클레멘트 8세가 1592년에 새 판을 간행하였다. 이것이 로마 교회의 공인 불가타가 되었다(대한성서공회)


- 제롬은 히브리어 본문을 존중하였으나, 교리적인 난점이 있는 곳에서는 기독교를 위하여 가끔 칠십인역을 따르기도 하였다. 루피노스는 이 개정판을 이단적이라고 하였고, 어거스틴은 불필요한 번역이라 혹평하였으나, 그레고리에 의하여 공인되었다(구약개론, 구관덕저, 대한기독교출판사 69쪽)


위의 두 문헌이 보여주는 것과 같이 제롬의 불가타역은 칠십인역을 번역한 것도 아니라, 일부만 번역한 것으로서 내용 분문상의 문제로 비판을 받은 것입니다.

즉 제롬의 불가타역에 외경이 포함되어 있었다는 증거로는 그 당시 칠십인역에 외경이 포함되어 있었다는 증거가 되지 못하며, 특히 불가타 역의 저자인 제롬 자신은 “외경은 정경에 포함되지 않는다”고 기록하였다는 것은 카톨릭의 주장이 거짓임을 밝혀주고 있습니다.

즉 제롬의 불가타역은 외경을 정당화시켜 주지 못합니다.


또한 어거스틴은 지금과는 다른 몇 개의 외경을 인정하기는 하였지만, 외경을 정경이라고 말하지는 않았습니다.

오히려 어거스틴은 마카비서에 대해서 선지적이 아님을 말한 적이 있으며, 유딧같은 책에 대하여 언급하기를 "그것들은 하나님의 백성들이 받은 정경에서 나타나지 않는다. 이는 그것을 역사가의 부지런함이 있는 자라면 쓸 수 있는 것이요, 정경은 신적 영감을 받은 선지자가 기록할 수 있는 것이요, 전자는 지식증가에 속한 것이요 후자는 종교의 권위에 속한 것으로 그 권위로 정경이 유지된다" 고 말하였습니다. (Augustine, De Civitate Edi, xviii, 26.)


또한 주후 600년경의 카톨릭의 교황 그레고리는 마카비전서를 인용하면서 “우리는 정경은 아니지만 교회의 덕을 위하여 책들로부터 증거를 출판하게 되었다”고 말했습니다. 오류가 없다고 하는 교황권의 주장이 오류였다고 말할 것인가요?


또한 추기경 시메네스는 "Complutensian Polyglot" (교황 레오 10세에게 증정되고 그에게 인정되었다) 서언에서 "여기에 포함된 '외경서'는 '정경'은 아니지만 덕을 위하여 사용되었다" 고 진술하였습니다.

카톨릭의 많은 학자들은 외경이 정경에 포함될 수 없다고 주장해 왔습니다. 그들은 파문을 당하거나 이단이었던가요?


이제 과연 초대교회 교부들과 문헌들이 외경을 정경에 포함시켰는가를 살펴 보겠습니다.


(1) 신약성경에서 볼 때에, 예수님과 제자들은 많은 구약성경을 인용하였는데, 구약성경을 인용할 때에는 “성경에 이르되” 혹은 “기록하였으되”라는 표현을 사용하였는데, 그 중에서는 외경의 구절을 인용한 적이 한번도 없습니다.


(2) 오랫동안 구약성경을 유일한 정경으로 간주했던 유대인들은 외경을 성경이라고 하였던 적이 없었습니다. 탈무드에서는 유대인의 성경목록이 열거되어지는데, 12 소선지서를 하나로 묶고, 사무엘서와 열왕기서, 역대기서 상하를 한권으로 계산하여 22권으로 열거하였습니다.


(3) 사데교회의 감독이었던 멜리토가 쓴 주후 170년경의 성경목록에 의하면 구약성경은 지금의 성경과 동일하며 단지 에스더서만이 포함되어 있지 않았습니다.


주후 170년 경에 사데교회의 감독 멜리토에 의하여 기록된 것이 현재 우리가 보유하고 있는 가장 오래된 기독교인의 구약정경목록입니다.

그 내용은 유세비우스의 교회사에 있는 내용(Eusebius, The Ecclesiastical History 2권, 1:393)으로 다음과 같습니다.


“내가 동쪽에 와서 이와 같은 것들이 전파되고 행해진 장소에 와서 구약의 책들을에 관해 정확히 배웠을 때 그것을 기록하여 너희들에게 보내었노니 그들의 이름은 다음과 같다: 모세의 오경인 칭세기, 출애굽기, 레위가, 민수기, 신명기, 눈의 아들 여호수아, 사사기, 롯기 왕국에 관한 책 네권, 역대상, 하, 다윗의 시편, 솔로몬의 잠언과 지혜서, 전도서, 아가서, 욥기, 이사야서, 예레미야서, 하나로 된 열두선지서, 다니엘서, 에스겔서, 그리고 에스라.”

 

(위의 지혜서는 외경이 아니라, 솔로몬의 잠언을 지혜서라고 불렀음: 유세비우스의 교회사, 213쪽)주후 170년경에 멜리토는 단 하나의 외경도 성경이라고 말하지 않았습니다.

 

만일 주후 170년경에 외경이 성경에 포함되어 있다면 당연히 멜리토는 서신에서 그 목록을 기록하였을 것입니다.


(4) 유세비우스 자신도 오리겐을 인용하면서 현재 우리가 가지고 있는 구약성경의 대부분을 열거하면서(에스더서 포함) 외경 중에 어느 하나도 정경에 포함시키지 않았고, 매우 특색이 있는 내용은 “마카비서는 정경에 포함되지 않는다”(그밖에는 마카비서가 있다)라고 기록한 점입니다.


(5) 유대인의 역사가 요세푸스는 오리겐에 대해서 언급하면서 AD90년경에 유대인이 받은 22권의 책을 정경에 포함시켰고 “유대인들은 이런 성경을 바꾸거나 부인하기 보다는 차라리 죽는 것을 택할 것이다”고 설명한 바 있습니다. 그리고 공공연하게 마카비서(외경)는 정경에 포함되지 않는다는 설명을 언급하였습니다.

요세푸스는 히브리아 알파벳 22글자와 같은 22권의 성경에 대해서 언급하였습니다.


(6) 주후 367년에 아타나시우스는 유월절 편지를 쓰면서, 현재 우리가 가지고 있는 모든 신약성경과 에스더서를 제외한 모든 구약성경을 열거하였습니다.

그는 특별히 솔로몬의 지혜서, 시락의 지혜서, 유딧, 토빗등의 외경에 대해 언급하면서 “이것들은 정경에 속하지는 않지만, 새로 입교한 사람과 경건의 말씀으로 교훈을 받기 원하는 자들이 읽도록 교부들이 지정한 책들”이라고 말했습니다.(아타나시우스의 서신 39)


(7) AD 90년경에 유대인들은 잠니아 회의를 개최한 적이 있습니다. 카톨릭은 그 회의에서 기독교인을 증오하는 유대인들이 칠십인역에 포함된 외경을 정경에서 분리하여 배척하였으며 그것을 발표하였다고 주장합니다.

그러나 그 회의는 전도서와 잠언에 대해 정경성을 의논하기 위함이었습니다. 어떤 문헌을 보아도 이 회의에서도 외경에 대해서는 전혀 논의된 적은 없었습니다.

또한 그 회의에서는 외경을 정경에 포함시키지도 않았습니다.


- 이른바 잠니아회의(Council of Jamnia)에서 기록서의 제3부분이 정경화되었다는 주장은 있었지만, 확인되지는 않았다. 그것은 다만 학자들의 모임이었을 뿐이다. 그렇기 때문에 이 회의에서는 권위를 인정할만한 인물도 참석하지 않았을 뿐만 아니라 정경을 인정하고 논할만한 사람도 없었다. 따라서 잠니아회의는 정경에 관한 어떤 논의도 없었다.(노오만가이슬러, 성경의 유래, 97쪽) 


카톨릭이 왜 잠니아(얌니아)회의를 자꾸 주장할까요?

얌니아 회의에서 유대인들이 기독교인들을 배척하기 위하여 외경과 정경을 분리시켰다는 것입니다.

카톨릭인들은 얌니아회의가 기독교를 배척하였다는 사실에 초점을 맞추고 있습니다. 그러나 외경의 배척을 논의하였다는 문헌적인 기록은 전혀 찾아볼 수 없습니다. 그러한 문헌적인 증거는 다른 책에도 분명하게 기록되어 있습니다.


- 얌니아회의에 대한 이해에도 설명이 필요하다. 루이스(J. P. Lewis)는 주장하기를 (1) 얌니아회의 유대교 교권자들의 회의가 아니라 학파 혹은 회증들의 집회이고 (2) 거기서 경전에 대한 토론이 있었다는 기록이 없다고 하였다. 우리가 가진 유일한 증거는 B. Yadim 3:5 이다. 랍비 가마리엘을 대신하여 그 자리에 랍비 엘르아살, 벤 아자리아를 지도자의 자리에 앉히기 위하여 72인의 장로들이 모여 전도서와 아가서를 성서로 선포하였다. 이 두 책은 예수님 당시에도 유대교의 저명한 학자 힐렐학파와 샴마이학파간에 있었던  논쟁 문제를 종결 짓기 위하여 내린 결정이었다.(구약개론, 구관덕저, 대한기독교출판사 37쪽)


(8) 사해사본에서 일부 외경이 발견되었다고 주장하지만, 그들은 종말론을 주장하던 공동체적인 엣세네파였습니다. 또 쿰란에서 발견된 사해사본에서는 성경을 모세와 선지자라고 표현하고 있었지만, 외경을 성경이라고 부른 적이 단 한번도 없었습니다. 더욱이 쿰란동굴에서는 외경뿐 아니라 위경도 발견되었고, 공동체 지침서와 다른 문서들도 발견되었습니다.

만일 쿰란에서 발견된 일부의 외경이 정경에 포함된 증거라면, 위경과 공동체지침서도 정경에 포함되었다고 주장하여야 합니다.

더욱이 쿰람사본에서 주류를 이룬 사본은 칠십인역이 아니라 맛소라본문계열의 본문이었으며, 약간의 칠십인역도 발견되었지만, 거의 대부분은 맛소라계열의 본문과 다른 본문도 결국 동일한 맛소라본문 원문에서 파생된 본문이었으며, 주후 1000년의 맛소라 본문과 그 내용이 거의 일치하였던 것입니다. 즉 쿰란에서 발견된 성경은 외경이 포함된 약간의 칠십인역은 그 주류가 아니며, 주류는 맛소라본문이었다는 것입니다.


(9) 제롬은 주후 404년에 벌게이트역이라고 불리는 라틴어성경을 번역하였습니다. 그가 외경을 번역하였다는 것이 카톨릭에서 자주 외경의 정당성으로 주장하지만, 막상 제롬 자신은 외경은 교회의 책은 될 수 있지만 정경이 되지 못한다고 설명을 덧붙혔던 것입니다.


- 70인역으로 라틴어 불가타역을 번역한 제롬 자신도 성경에 외경을 포함시켰으나, 제롬은 이 외경이 “신자들에게 유익한 교회의 책”이지 “정경의 책”은 아니다라고 말한 바 있습니다. AD 90년에 유대인 역사가 요세푸스도 구약성경이 22권이라고 기록하고 있습니다. 오리겐도 250년경 외경을 제외한 성경목록을 3부분으로 22권을 제시한 적이 있습니다. (레어드 헬리스, 성경이란 무엇인가, 생명의 말씀사, 57-60쪽)


(10) 최근에는 바로코치오 사본(Codex Barococcio, AD 206년)이 발견되었습니다. 신약의 초기성경을 뒷받침해주는 또 하나의 증거는 “육십권서”라고 일컬어지는 한 사본에서 비롯됩니다. 이 60권을 면밀히 검토해 보면 성경에서 잘알려진 66권의 정경 중에서 실제로는 64권이 포함되어 있습니다.

구약에서는 에스더서가 제외되어있고, 신약에서는 요한계시록이 제외되었습니다.

그러나 이 사본에는 외경이 전혀 발견되지 않았습니다.


(11) 카톨릭이 말하는 소위 “알렉산드리아 정경”이라는 것은 주전부터 실제로 있었던 것이 아니라, 주후 4세기에 발견된 칠십인역을 말합니다. 즉 오리겐의 헥사플라 이후의 것입니다.

BC에 만들어진 헬라어 칠십인역은 히브라어 성경을 헬라어로 번역한 것입니다.

즉 최초의 70인역은 히브리어를 헬라어로 번역한 것이었기에 히브리성경과 다른 내용이 아니었음이 명백합니다.

다시 말하여 처음 칠십인역은 히브리어 성경과 다른 것이 아니었습니다.

그것이 번역상의 오류, 필사의 오류, 철자법의 오류, 혹은 교리적 차이등에 의하여 조금씩 차이가 나게 된 것입니다.

그 차이점을 보완하기 위하여 오리겐이 여섯 개의 사본으로 된 번역을 하였습니다. 특별히 히브리성경과 칠십인역이 다른 곳에는 표시와 주역을 달아놓았다고 전해 집니다. 그 헥시플라의 칠십인역도 현재 발견되지 않습니다.... 그것이 하나라도 발견된다면 성경사는 정확히 알 수가 있을 것입니다.


즉 발견되지도 않은 칠십인역을 카톨릭은 외경이 포함되어 있었을 것이라는 추측을 하고 있습니다. 정작 헥사플라를 집필한 오리겐 자신은 성경을 22권으로 기록하고 있습니다.

앞에 잠깐 언급하였지만, 유세비우스의 교회사 기록을 보면 오리겐(185-254년)을 언급하면서 외경이 정경에 포함되지 않음을 말하고 있다는 것입니다.

여러 가지 문헌적인 증거는 카톨릭의 추측을 여지없이 반박하고 있는 것입니다.


유세비우스가 누구인지 잠깐 소개하겠습니다.

유세비우스는 콘스탄틴황제의 측근 교부입니다. 그가 황제의 명령으로 오리겐의 헥사플라에서 칠십인역을 50권 필사하였다고 합니다.

우리가 가장 온전히 보관되었다고 하는 칠십인역이 바티칸사본(B사본)인데, 그 바티칸사본이 50권의 칠십인역 중에서 한권이라고 학자들은 추정하고 있습니다.

다시 말하여 오리겐은 구약의 목록을 22권이라고 확정하고 있었습니다.

그런데 유세비우스가 필사한 50권에서부터 성경에 외경이 포함되어 있었던 것입니다.


- 바티칸사본에 아무런 장식이 없다는 것은 일반적으로 이것이 시내산사본보다 조금 전의 것이라는 것을 나타내는 것으로 보인다. 반대로 어느 학자들은 이 두 사본이 본래 콘스탄틴황제가 유세비우스에게 명해서 기록하게 한 50권의 성경 사본중에 있었다고 믿는다. 대영박물관의 스키트는 “바티칸사본은 유세비우스의 정경표에서 빠져있고, 여러 서기관에 의하여 많이 교정되어있으며 그리고 앞에서 말한 50권 중에서 불합격된 것”이라고 현재의 작가에게 말했다. 그러나 불합격되었든 합격되었든 간에 거기 있는 본문은 많은 학자들에 의하여 아주 훌륭한 신약의 알렉산드리아 본문형태의 대표적인 것으로 생각되었다(브루스 M 메증거의 사본학 63쪽)


이와 같이 후대의 칠십인역에 외경이 포함된 것을 카톨릭은 외경이 정경에 포함되었다는 증거라고 말합니다. 그러나 그들의 주장은 앞에서 설명한 바와 같이 외경이 성경에 포함되지 않는다는 증거만 발견될 뿐입니다.

또한 더욱 우스운 것은 후대에 발견된 칠십인역들은 서로 포함된 외경이 동일한 목록이 아니라 각각 다르다는 것입니다.


예를 들자면 시내산 사본(Codex Sinaiticus)에는 "바나바서, 헤르마서의 목자를 제외한 외경이 실려 있고, 알렉산드리아 사본(Codex Alexandria)에는 클레멘트 1서, 2서와 솔로몬의 시편의 외경만이 실려 있습니다.

또 에브라임사본은 솔로몬의 지혜서와 전도서 두개의 외경이 실려 있었으며, 바티칸사본에는 일부 삭제된 외경들이 실려 있습니다.

이렇게 발견된 사본들마다 외경이 모두 달랐다는 증거들은 외경이 동일한 목록이 아니었다는 증거이며 정경에 포함된 것이 아니었다는 것입니다.

그리고 더욱 특이한 것은 트랜트공의회에서 결정한 지금의 카톨릭 외경과 또 다르다는 것입니다.


(12) 동방정교나 성공회등에서는 외경이 예배의 의식에서 사용된 적은 있다고 할지라도, 정경에 속한다고 정의한 적은 없었습니다. 또한 동방정교가 주장하는 외경은 카톨릭과 다릅니다.


외경은 트랜트공의회에서 카톨릭이 그 교리를 정당화시키기 위하여 고의적으로 삽입시킨 것입니다. 교회사에서 단 한번도 트랜트공의회의 외경목록과 동일한 성경목록은 없었으며, 인위적인 성경목록이 된 것입니다.

카톨릭은 일부 교회사를 조작하고 거짓으로 만들면서 그 당위성을 조작하고 있습니다.

더욱이 마리아에 대한 교리를 비롯하여 카톨릭의 비성경적인 교리를 정당화시키기 위하여 교회의 전승을 성경의 권위와 동등하다고 주장하였습니다.


그들은 로마의 교황권을 수호하기 위한 인위적인 제사장 집단으로서 만인제사장인 성도들을 미혹하는 곳으로서 이미 기독교가 아닙니다. 우리가 이단이라고 부르는 교회들 중에는 이들 카톨릭보다 이단성이 훨씬 적은 곳이 더욱 많습니다.

자신들의 교리를 수호하기 위하여 인위적으로 선택한 외경을 정경이라고 부르고, 또 전승을 성서의 권위와 동등하다고 주장하는 곳은 기독교라고 볼 수가 없습니다.

마리아를 그리스도와 구원과 심판의 공동 사역자로 만들어버린 카톨릭, 모든 성도들 위에 제사장의 위치로 군림하며, 자신들 사제를 통한 일곱성례로 죄사함을 받을 수 있다고 주장하면서도, 정작 자신들의 주장은 오류가 없다고 공언하는 사제들......


카톨릭인들은 그러한 가증스러운 집단에서 하루 빨리 돌아오기를 바랍니다.

카톨릭인들과 토론은 외경이 무엇인지 정리를 하는데 많은 도움을 주었습니다. 지저분한 덧글 토론이 아니었다면 더욱 좋은 내용의 글을 정리할 수 있었습니다.


# 외경의 오류:(외경이 정경이 될 수 없는 이유)


지혜서 11: 17 무형의 물질로부터 세계를 만들어 내신 주님의 전능하신 손이 곰과 사나운 사자들의 무리를 그들에게 보내시는 것은 어려운 일이 아니었다.


무형의 물질(형태가 없는 물질)로부터 세계를 만들어 내신 것이 아닙니다.

무(無)로부터 창조하신 것입니다.

이것은 성경이 말하는 하나님의 창조가 아닙니다.


가난한 사람에게 베푸는 자비

집회서3:30 물은 뜨거운 불을 끄고 자선은 죄를 없앤다.


자선이나 구제가 죄를 없애는 것이 아닙니다. 오직 의인은 믿음으로 살리라고 하였습니다.


바룩3:4 이스라엘의 전능하신 주 하느님, 죽은 이스라엘 사람들과 그들의 후손들이 드리는 기도를 들어 주소서. 그들은 당신께 죄를 지었고 그들의 주 하느님이신 당신의 말씀을 듣지 않았읍니다. 그래서 그들은 재난을 당하게 되었읍니다.


죽은 사람이 하나님께 기도를 드리지 않습니다.


- 지혜서가 솔로몬이 저자라는 것은 조작이며, 지혜서의 기록시기는 주전 2-3세기로 봅니다. 솔로몬의 명의를 도용한 것은 위경적 성격을 나타내고, 지혜서의 시리아역본 표제에는 솔직하게 솔로몬의 명의 도용을 시인하고 있습니다. 제롬과 루터는 필로의 것이라고 했고, 어거스틴은 벤시락의 것이라고 했습니다.(구약개론, 하권 356쪽 참조)


유딧과 토빗트는 역사적, 연대적, 지리적 오류가 있으며, 거짓과 술수를 정당화시키고 구원을 개인의 공적과 행위에 의존하도록 만든다....마카비 1서는 역사적 지리적 오류들이 상당히 있다.(웨인그루뎀의 조직신학 상권,  70쪽)


마카비 2서( 2 Maccabees) 12장에서 우리는 유다 마카비(Judas the Maccabean)가 기도회를 연 후 율법에서 금하는 바, 우상을 부적으로 지닌 채 전사한 자들의 죄가 용서받도록 그들을 위하여 기도한 것과 또한 그들을 위한 속죄의 제사에 쓰일 비용으로 많은 돈을 모금하였다는 기사를 보게 됩니다.

하지만 우리는 그러한 사실에 동의할수 없습니다.

그 책의 저자에 따르면, 마카비가 죽은 자를 위해 기도하고 속죄 제물을 바친 것은 영생 및 그 죽은 자들의 부활을 믿었기 때문이라고 하는데, 과연 그러한 확신이 어디서 온 것인지 우리는 묻지 않을 수 없습니다.


로마 카톨릭 교회는 죽은 자들에 대한 자신들의 교리를 성경적으로 뒷받침하기 위해 항상 그러한 구절들을 원용하여 왔습니다.

따라서 우리는 그러한 구절들을 대할때마다, 어째서 로마교회가 외경을 정경의 일부로 삽입시키려는 일에 그토록 열성적이었는지를 쉽게 납득할수 있습니다.


만일 우리가 외경에서 농부, 기술자, 대장장이, 옹기장이 또는 그와 비슷한 다른 종류의 일을 하는 모든 사람들은 성경 학자가 될수 없다는 부분(집회서:Ecclesiasticus 또는 Sirach 38:24~34)을 읽게 된다면 아마도 놀라움을 금치 못하리라고 생각됩니다.


그러한 구절들을 통해서 우리는 노동 계층의 사람들을 업신여기는 랍비들의 교만을 엿보게 됩니다.

랍비들은 노동 계층의 사람들 없이 세상을 지탱해 나갈 수 없음을 인정하면서도, 그들이 "교회"안에서 지도자가 되기에는 부적합하다고 선언함으로써 자신들의 우월성을 자랑했던 것입니다.


우리는 또한 솔로몬의 지혜서에서 그 제자가 자신을 가리켜 묘사한 글을 보면서 그 내용 역시 오해의 여지가 많고 허황되다는 사실을 발견하게 됩니다.


그 저자는 자신을 "좋은 기질을 타고 난 어린이였으며 훌륭한 영혼을 받은 자였다"라고 밝히면서, 따라서 자신은 더럽혀질수 없는 몸을 부여 받았노라고 말합니다.(8:20)


우리가 이상과 같은 그의 말을 받아들일때 그는 원죄가 전혀 없다는 것과 그 영혼은 이미 육체와 결합되기 이전부터 존재했다는 인상을 받게 됩니다.


이상에서 외경이 가르치는 바가 반드시 "성경적"인 것만이 아니라는 사실을 규명해 보이기 위해 몇 가지 명백한 실례를 들어 설명하였습니다.


교회가 외경을 정경의 일부로써 받아들이지 않는 이유는 이제까지 논거한 대로 그 가르침의 대부분이 성경적이지 않으며 기괴하고 허황되기 때문이었습니다.


그렇다고 해서, 외경이 전혀 쓸데없는 책이라는 뜻은 아닙니다.

2쳔년전 헬라 지역에 살고 있던 유대인들이 집회 때에 낭독용으로 사용했던 것 같이, 오늘날에도 그것은 성경과 함께 편집되어 더러 읽혀지고 있습니다.


카톨릭에서 왜 그토록 외경을 정경 안에 포함시키려 하는지 그 이유는 연옥이나 성모승천설 무오성, 천사숭배등 모든것들을 외경책안에서 교리를 만들수 있기 때문입니다.

외경에 나오는 대부분의 이야기는 성경의 내용과는 거리가 멀므로 우리는 그것을 액면 그대로 받아들이는 오류를 범해서는 안됩니다.


예를 들면, 토비트서(the Book of Tobit)에 나오는 토비아(Tobias)의 이야기는 참으로 허황됩니다. 눈 멀고 가난한 처지가 된 토비트는 그의 아들 토비아를 메대(Media)에 있는 채권자 가바엘에게 보내어 약간의 돈을 빌려 오도록 합니다.한 사람이 토비아와 함께 길을 떠나는데 나중에 그는 천사 라파엘(Raphael)임이 밝혀졌습니다. 그 둘은 길을 가다가 밤이 되어 티그리스 강 가에서 하룻밤 묵게 되었는데. 마침 토비아가 발을 씻으려고 물 가에 내려갔을때에 한 커다란 물고기가 물에서 뛰어올라 그의 발을 잘라먹으려고 하였습니다.

그 때에 라파엘은 고기를 잡아 죽이되, 그 쓸개와 염통과 간은 먹지 말고 잘 보관하라고 했습니다. 여행을 계속하는 중 토비아는 남겨 둔 그 물고기의 쓸개와 염통과 간을 무엇에 쓸 것인지를 물었습니다.

라파엘은 대답하기를 쓸개는 눈이 먼 자의 시력을 회복시키는 데 쓰일 치료약이요, 염통과 간은 악마를 퇴치하는데 쓰인다고 하였습니다.

즉, 악한 귀신이나 악령에 사로잡힌 자 앞에서 그것들을 태워 연기를 피우면 그 악한 것들이 주던 괴로움이 깨끗이 사라지고 다시는 그 괴로움이 그 사람에게 찾아 들지 않는다는 것입니다.


토비아는 라파엘의 인도를 받아 그의 친척 라구엘의 집에 들어서게 되었습니다. 그는 라파엘이 일러준 대로 그의 친척 라구엘의 집에 들어서게 되었습니다. 그는 라파엘이 일러준 대로 그의 친척의 딸인 사라(Sarh)를 자신의 아내로 맞아들였습니다. 사라는 이미 일곱 번의 결혼 경험을 가진 여자였습니다.

그런데 불행히도 그녀는 그녀와 결혼한 신랑들이 한결같이 결혼 첫날 밤 비명에 감으로써 졸지에 과부가 되어야만 했습니다.

이제 토비아는 그녀의 여덟번째 신랑이 되었습니다.

그의 장인어른은 일찌감치 여덟번째 사위의 무덤을 파놓고 대기하고 있었습니다.

그러나 그날 밤에 토비아는 무사하였습니다. 오히려 그가 물고기로부터 취한 염통과 간을 태워 만든 연기로 인하여 사라의 몸 안에 들어 있던 귀신 아스모데우스 (Asmodeous)는 그녀의 몸에서 나와 애굽 땅 먼 곳까지 도망을 갔습니다.

마지막으로 물고기의 쓸개는 그의 아버지 토비트의 눈을 고치는 데 사용되었습니다. 이렇게 해서 이 이야기는 결국 행복하게 끝(happy ending)을 맺게 됩니다.


이제까지 이 외경의 대강 줄거리를 살펴보았습니다.

그렇다면 이 이야기는 어떤 종류의 글이라 생각되십니까? 이 외경의 이야기는 한낱 유대인 우화 중의 하나에 불과한것입니다.


내용출처 : 연세대 종교교재출판위원회[성서와기독교] 참조


이러한 내용이므로 초대교회 교부들이 정경이 될 수 없다는 것이었습니다.

이러한 것이 카톨릭의 교리 수호를 위하여 트랜트공의회에서 정경의 목록에 포함된 것입니다.

반면에 트랜트공의회에서는 카톨릭의 교리와 다르다는 이유로 몇몇 외경들은 정경의 목록에서 빠지게 된 것도 있었습니다. 그리고 전승도 성서의 권위와 동등하다고 발표되었습니다.


외경이 정경에 포함될 수 없는 가장 큰 이유는 다음과 같습니다.


# 정경의 기준적인 조건 :

 

1) 사도적권위

2) 오래된 역사성

3) 정통성

4) 보편성

5) 전통성

6) 영감성

7) 신앙성

 

 

# 외경의 가치:

 

외경은 성경으로서의 권위를 갖지 못한다. 그러나 한번쯤 읽어서 참고를 삼는 것이 좋은 일이다. 우리는 설교집이나 간증서 같은 경건 서적들을 통해서 많은 유익을 얻는다. 심지어는 종교와는 전혀 관계가 없는 소설이나 잡지들을 통해서도 유익을 얻는 경우가 얼마든지 있다. 그렇다면 외경을 한번쯤 읽어보지 못할 이유가 없다. 앞에서 지적한 것처럼, 외경이 등장하게 된 이유가 바로 여기에 있었다. 그러나 외경을 읽을 때는, 그것이 오류가 없고 권위가 있는 하나님의 말씀이 아님을 명심하고 읽어야 한다. 만일 이 사실을 잊은 채, 외경이 마치 성경이나 되는 것처럼 높이고 신뢰를 하게 되는 일이 생겨난다면, 차라리 읽지 않는 것만도 못하게 된다. 거짓 신을 참 하나님처럼 여기는 것은 우상숭배에 해당된다. 외경을 성경으로 여기는 것도 역시 우상숭배와 같은 너무나도 엄청난 잘못을 범하는 것이다. 적당한 영양은 건강에 도움이 된다. 그러나 지나친 영양 섭취는 오히려 독이 된다. 사람의 본성은 항상 이러한 지나침에 이르게 될 위험성이 매우 높다. 그러므로 우리는 항상 외경에 대한 경각심을 늦추어서는 안 된다. 오늘날 우리의 주변에서는 새로운 형태의 외경들을 만들어 놓고, 이것들을 성경처럼 여기는 사람들의 활동이 여전히 계속되고 있다. 몰몬경, 내가 본 천국, 새로운 계시록, 교회의 규칙과 법령, 교리서, 설교집, 간증서 등 새로운 형태의 외경이라고 여겨질 만한 책들이 매우 많다. 또 그 종류도 다양하다. 우리는 이러한 책들이 가지는 위치와 역할이 무엇인지를 분명하게 알고 대할 수 있어야 한다. 그래서 자신도 알지 못하는 사이에 독에 몰리는 일은 결코 없어야 한다. 이단이나 사이비 집단일수록 이러한 의미의 책들을 많이 가지고 있다. 그리고 그런 책들을 성경보다도 더 권위 있는 책으로 여긴다. 참으로 무서운 일이 아닐 수 없다. 성경중 일점이나 일획을 더하거나 빼는 자는 성경에 기록되어 있는 저주를 면하지 못한다(계 22:18, 19). 그러므로 우리는 어디까지나 성경인지를 바로 알아야 한다. 그래서 거기에다 무엇을 더하는 일이 없어야 한다. 또 빼는 일도 없어야 한다. 외경은 성경이 아니다. 우리는 외경을 성경으로 여겨서는 안 된다. 제 2의 경전으로 여겨서도 안 된다. 그리고 우리는 우리들이 또 다른 어떤 것들을 새로운 외경처럼 여기기 쉬운 처지에 노출되어 있음을 알아서, 스스로 자신 살피기를 게을리 하지 말아야 한다  (박일민 칼빈대학교 조직신학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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