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4년 5월 15일 (수)
(백) 부활 제7주간 수요일 이들도 우리처럼 하나가 되게 해 주십시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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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런 사제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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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정제 [wild306] 쪽지 캡슐

2000-07-12 ㅣ No.12257

"신부님 안녕하세요"

라고 인사를 하면 신부님의 머리와 목은 저만치 먼 산을 향해 있습니다.

"멋대가리라구는, 쥐 털만큼도" 속으로만 중얼거리고 성당 안으로 들어갑니다.

그 멋대가리없는 나이 드신 신부님이 다른 성당으로 가셨습니다.

우리 성당은 행당동 돌산 위 어려웁게 사시는 분이 많은 동네에 있어서 늘 가난하였습니다.

빚더미에 주로 앉아 있었지만 그래도 수천명이 넘는 신자인데도 빚은 줄어들지 않았습니다.

그러나 그 멋대가리없는 신부님이 가신 후에야 우리는 우리 성당에 빚이 남아 있지 않았다

는 것을 알게 되었습니다. 당신 용돈까지 아껴서 성당 빚을 갚아야 한다는 생각으로 멋부릴

틈이 없었을까요.

 

다른 신부님이 오시고 다시 가신후, 새로오신 처음으로 모시는 젊은신부님은 한마디로 천방

지축이였습니다.

이리보아도 싱글벙글 저리보아도 벙글싱글하시는 모습과, 아이들따라 요리조리 뛰놀아 다니

시는 폼이 그랬습니다. 혹시 돌신부님은 아니실까.

잠시 본당을 떠나 일을 본후 다시 본당에 오니까 저희가 중학교때부터 새성당짓기 위하여

폐품수집등으로 푼푼이 모은 돈등을 가지고 장만한, 자애로운 모습으로 두팔을 아래로 다소

곳이 벌린채 당신 자녀들을 맞이해 주시던 그 애지중지하는 성모님이 안보이시고 아기예수

를 팔에 안고 하늘을 쳐다보시는 가정부 타입의 성모님이 마당에 서잇는 것이 아닙니까?

울화통이 터지는 걸 참고 미사에 참예해도 분심이 드는 건 어쩔수 없었습니다.

사람들은 진작 수근거리고 있었답니다.

"젊은 신부님이 오시면 성당을 새로 짓는 거래. 뭔가 해 놓고 가셔야겠는데 만만한게 성전

신축 아니니?"

과연 우리 성당이 대대적인 보수 작업이 시작되었습니다.

멋대가리없는 신부님이 구걸해서 산꼭대기에 아름다운 성당을 지은게 엊그제인데 멀쩡한 성

당을 무슨 수리냐"

그러나 수리는 계속되었고 돌산 성당안에 에어콘 2층 성가대의 전자 올갠 색유리등등이 새

로 장식되었습니다. 불행히도 성당 정면의 색유리화는 없어졌지만(다시 복원 되었음) 최대한

여름이면 시원하게 겨울이면 따스하게 미사를 드릴수 있었습니다. 예전 성모상도 잊혀지고

우리 성당 정말 예쁘고 아름다운 성당으로 바뀌었습니다.

미사 강론때 갑지기 심각해졌습니다.

"내가 여러분이 가만히 있는데 수리하자고 했어요? 성당 수리해 달라고 해서 수리했는데 지

금껏 걷힌 건축비가 얼만줄 아세요? 2-3억 지불해야 하는데 150만원 걷혔어요. 도둑놈 심보

아닙니까.

건축기사가 개신교 신자지만 1500만원 헌금했어요. 성당을 짓게 해주어서 기쁘다구 하면서.

어이쿠 창피해서 나 원 참"

덕분에 그날은 헌금이 3배 이상이나 걷혔습니다.

우리 성당은 어려운 분이 많이 살지만 그래도 신자수가 3000명이 넘는데 헌금은 100만원도

안 나왔습니다. 그러나 새 젊은 신부님이 오신후에는 200만원 이상으로 뛰었습니다.

 

사실 신부님들이 아무리 죽는 말씀하시며 신자들에게 돈 동냥을 하셔도 신자들의 헌금양은

갑자기 뛰지가 않는 법인데 젊은 신부님은  돌신부님이라고 추측을 맘껏 하였던 그 신부님

이 오신후에는 곧바로 2배가 뛰었지요.

그런데 그것은 사실 거져 뛴 것이 아니었습니다.

신부님은 미사전 성당 마당에 나가서 할머니 할아버지를 맞이 하십니다. "우리 할머니 어서

오셔요, 오실 때 무얼 좀 드시고 오셨어요?" 그러면 구교우 할머니들은 머리를 갸우뚱하지

요. "이 젊은 신부님은 공심재도 모르나 ? 쯧쯧"

그러나 신부님의 생각은 더 깊었습니다. 이 돌산 어려운 길을 올라오실 노인 분들이 혹시

공심재 좋아하다가 허기져 쓰러지시면 어떻하나 " 였지요.

저희 어머니가 저만 보면 " 네 아버지가 내가 자식을 아홉이나 낳았는데도 보약한번 해 주

지 않아서 내가 이렇게 허리가 아프고 다리가 이픈기라" 하시곤 하였습니다.

그래서 제가 아버지 죄를 대신 속죄하는 의미로, 어머니를 차에 모시고 성당으로 오곤 하였

습니다.

우리 성당은 2층에서 미사를 보는데 사실 층계같지도 않는 거지만 저희 어머니에게는 연옥

의 칠층산 만큼이나 높은 거였습니다. 그래도 자존심은 있어서 부축도 싫다하며, 혼자서 죽

을힘을 다해 계단을 오르시며 성당으로 들어가시곤 하였지요. 그 모습을 보신 신부님은 "

할머니 앞으로 성당에는 오지 마세요. 제가 할머니 집으로 예수님 모시고 갈께요" 하셨지요.

봉성체 때만 되면 어머니는 목욕재계하고 신부님을 기다리십니다.

신부님을 볼 때 웬만한 자식은 저리가라였습니다. 어머니는 "저 신부님은 내 입에 혀다. 아

무도 저 신부님처럼 남의 마음을 잘 헤아려 배려해 주는 신부도 없다. 너도 한번만 더 내

앞에서 돌 신부 운운하다가는 경 칠 줄 알거라"

 

저는 중고등학생 미사를 좋아하였습니다. 미사가 생기가 있고 성가가 좋았습니다.

사실 우리 신부님은 성가를 잘 못하셨습니다. 품위있게 하려해도 곧 품위가 떨어질때는 성

가를 선창할 때입니다.

성가대에서 단장이 강론시간에 학생을 일러바쳤습니다. " 신부님 얘가 잘 안부르려고 해요"

그러자 신부님은 " 그러면 그냥 밀어 버려" 하셨지요. 성가대석은 2층이었습니다.

미사에는 학부모들도 있었지만 누구하나 얼굴을 찌푸리지 않았습니다.

오히려 2층 성가대 석을 바라다보며 킥킥대고 웃었지요. 참 좋은 강론 시간이었습니다.

 

어느 고귀한 신학교 학장신부님의 강론 말씀이 떠 올랐습니다. ( 학장 신부님께 신학생들과

함께 피정을 받을 수 있는 은혜가 있었습니다.)

" 신부들이 강론을 위해 3시간 공부하고 묵상하면, 강론 시간은 20분 걸릴게고 1시간 공부

하면 강론 시간은 40분 걸릴게다, 그래도 무슨 말을 했는지 들었는지 신부나 신자가 서로가

모르겠지, 그러니 성당 살림 어렵다고 궁상떨어봐야 신자들이 눈 하나 깜빡 하지 않는다. 그

렇지 않습니까. 신부들이 신자에 대한 배려가 자상하고 기도와 공부를 많이 하여, 좋은 강론

을 하게 되면, 가만히 있어도 신자들은 주머니 돈을 모두 꺼내 놓는 법이다 "      

 

우리 신부님은 학자가 보기엔 강론 잘 못하는 신부님일 겁니다.

그러나 강론 시간에도 싱글 벙글 , 성이 나서 " 도둑놈 심보 아닙니까" 할 때도 반은 웃어

가면서.

그래도 성당 층계에서 노인들이나 장애인이 난간을 억지로 잡고 내려가면 신부님이 부축해

주십니다. 애들 어른 젊은이 중늙은이 할머니 할아버지 할 것 없이, 손 내밀면 손 잡아주고,

쳐다보면 바라보고, 묻기전에 가서 말을 건네고, 미사후에는 "차한잔 하세요. 비싼거 아닙니

다. 500원입니다. 드시고 가세요. 주일학교 애들 좀 기 살리게 커피 드세요."

커피 안마시고 그냥 갈 간 큰 신자가 어디에 잇겠습니까.

 

그 젊은 우리 주임 신부님 전근 가실 때, 우리 어머니 매우 힘들어했습니다. " 가시면 나는

어찌 살꼬" 하면서요.  " 큰 소가 나가면 작은소가 또 큰소가 될텐데 무얼 그리 염려하고

난리야 청승 맞게" 하고 떠들지만 제 마음도 아픕니다.

전혀 거룩하게 보이지 않아도 거룩한 향기가 풍기고, 전혀 성스러울 것 같지 않은데 성스럽

습니다. 그야말로 " 신부님 가시면 나도 어찌 살꼬 "입니다.

 

그 신부님 가실 때 우리 신자들 마음 아파 모두가 눈물을 흘렸습니다.

하여 제가 힘들 때 이런 생각을 합니다 " 이런 사제가 있다. 기뻐 할줄 알고 기쁘게 사시며

기쁜 소식을 전하는 사제가 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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