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4년 5월 16일 (목)
(백) 부활 제7주간 목요일 이들이 완전히 하나가 되게 해 주십시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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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마웠던 선배 신부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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손희송 [hsson] 쪽지 캡슐

2002-05-30 ㅣ No.34367

  

 

   저는 신학교 재학 중에 유학을 나갔다가 1986년 여름 방학 때 귀국해서 서품을 받았습니다. 원래는 제가 공부하던 곳에서 서품을 받을 예정이었지만, 교구장님의 배려로 고국에 와서 서품을 받게 되었습니다. 저로서는 부모, 형제, 친지들이 있는 내 나라에서 서품을 받는 것이 당연히 기뻤지요. 하지만 한 가지 걱정이 있었습니다.

 

  당시에 저희 집은 서울 S 본당 소속이었습니다. 유학을 나가기 일 년 전에 S본당 관할 구역으로 이사를 갔고, 그래서 그 본당 신자들은 저와 저의 가족을 잘 몰랐습니다. 서품준비, 그리고 첫 미사를 지내려면 아무래도 저의 소속 본당의 신세를 많이 져야하는데, 그곳 신자들이 저를 잘 모르는 상태였기에 제반 준비를 위한 부탁을 하기가 상당히 미안했습니다. 다행히 당시의 본당 주임 J 신부님의 배려 덕분에 마음 편하게 서품 준비를 하고, 첫 미사도 그 본당에서 따듯한 분위기 속에서 지낼 수 있었습니다. 참 고마운 신부님, 고마운 신자들이었습니다.

 

  서품 후 얼마 동안은 아는 본당과 수녀원에 첫 미사를 지내러 다녔습니다. 그후의 시간은 신세를 갚는 마음으로 S 본당에 머물면서 미사를 드리고 고해 성사를 주었지요. 그러면서 사목 경험을 쌓으려고 노력했습니다. 다시 외국 나가서 공부를 계속 하게되면 현장 사목과는 떨어져서 살 수 밖에 없을 것 같아서 가능한대로 많은 것을 보고 듣고 체험하고 싶었던 것입니다.

 

  이렇게 거의 석 달을 S 본당에서 지내고 9월 말에 다시 제가 공부하던 곳으로 돌아가게 되었습니다. 토요일에 출국을 할 예정이었는데, 주임 신부님은 그 전 주일 미사 때 신자들에게 작별 인사를 하라고 하셨습니다. 일 주일 전에 작별 인사를 하게되면 송별회 해준다는 사람들이 많을텐데 어떻게 하느냐고 농담 삼아 반문을 했더니, 주임 신부님은 "착각하지마, 그런 일 없을 거야"하고 잘라 말씀하셨습니다. 속으로는 기분이 상했지만, 그 주간을 지내면서 주임 신부님 말씀이 옳았다는 것을 깨닫게 되었습니다. 제 나름대로는 몇 사람 정도 송별 식사를 하자고 초대할 줄 알았는데, 한 건도 없었습니다. 신자들은 새 신부이기에 신선하고 예쁘게 봐 준 것이고 그들의 눈에는 단지 손님 신부일 뿐이었는데, 내가 그들에게 아주 중요한 존재인양 착각한 것이었지요. 실상 손님 신부가 남의 본당에 와서 아무리 잘 한다고 해도 신자들의 마음은 전적으로 그 본당의 책임자인 주임 신부에게 가 있습니다.

 

  아무튼 이 때의 작은 체험은 착각에 빠지기 쉬운 저를 일깨우는 아주 중요한 교훈이 되었습니다. 남의 본당에 가서 도와주더라고 주제를 잘 파악하고 자기 분수에 맞도록 행동하고, 신자들이 나를 알아주고 기억해주기를 바라는 헛된 기대는 아예 갖지 말아야 한다는 사실이 궁극적으로는 제 자신을 자유롭게 해주었습니다. 그래서 저는 정말로 황금 같은 충고의 말씀을 해주신 J 신부님께 지금도 감사하는 마음을 지니고 있습니다.

하지만 아무리 훌륭한 충고라도 처음에는 소화시키기가 쉽지 않은 것 같습니다. 저도 처음에 J 신부님이 그런 말씀을 하셨을 땐 상당히 고까운 마음이 들었답니다. 그러나 평소에 그 신부님이 저를 아껴주시고 배려해주신 것이 쓴맛의 충고를 소화시키는 데에 큰 도움이 되었습니다.

 

  훌륭한 충고가 이롭기는 하지만, 그 맛은 달지 않고 씁쓸합니다. 그래요. 좋은 충고는 몸에 이로운 쓴 약에 비교될 수 있겠지요. 그런데 보통으로 쓴 약은 캡슐에 넣거나, 아니면 겉을 달착지근한 재료로 감싸서 주지요. 충고도 마찬가지라고 봅니다. 진심으로 그 사람을 위하고 아끼는 마음에 담아 주는 충고라야만 좋은 효과를 내는 것 같습니다. 안 좋은 감정이나 더 나가서 악의가 섞인 충고는 아무리 사랑이 담긴 충고라고 우겨대도 좋은 효과를 내지 못할 뿐만 아니라 서로의 관계를 악화시키기 쉽습니다. 그래서 충고란 어려운 법인가 봅니다.

 

 그래서 충고에 대해서 대략 이렇게 나름대로의 원칙을 세워봅니다.

1) 먼저 충고하기 전에 정말 내가 충고의 대상이 되는 사람을 아끼고 염려하는 마음에서 충고를 하는 것이냐, 그 사람에 대한 안 좋은 감정이 많이 섞여 있는 것은 아닌가를 양심적으로 살펴봐야 한다. 안 좋은 감정이 많이 섞여 있다면, 차라리 충고를 포기하거나, 아니면 내 마음이 정화된 다음으로 충고를 미루자.

2) 그 사람이 다행히 충고를 받아들이면, 고맙게 여기지만, 그렇지 못하고 부정적인 반응을 보였다고 해서 너무 섭섭해하지 말자. 왜냐하면 충고란 원래 쓴 것이니까. 저를 포함해서 거의 모든 사람들은 단 소리를 즐기고 쓴 소리를 싫어한다. 쓴 소리를 쓴 약으로 받아들여서 자신에게 이롭게 만드는 사람은 그리 많지 않고, 자신에게 쓴 소리를 하는 사람에게 우선 발끈하는 사람들이 대부분이다. 그러니 남에게 쓴 소리를 즐겨하려면, 미움 받을 각오를 단단히 해야 한다. 쓴 소릴 잘 하시던 예수님도 미움을 무척이나 많이 받으시지 않았던가?

3) 내가 남에게 즐겨 충고하기보다는 남의 충고를 고맙게 받아들이는 연습부터 하자.

 

  제 나름대로 원칙은 이렇게 세웠지만, 제 스스로 이 원칙대로 실천을 잘 한다는 것은 아닙니다. 단지 이것을 목표 삼아 노력한다는 것이지요. 인간은 잘못을 범하고 살기에 남의 충고가 필요합니다. 아울러 충고하는 사람은 충고 받는 사람이 어떻게 하면 충고를 잘 받아들일까 세심한 배려를 해야할 것입니다. 또한 충고하는 사람 자신도 약한 사람이기에 남의 충고를 필요로 하는 사람이라는 점을 잊지 말아야 할 것입니다. 바오로 사도의 다음의 말씀을 새겨봅니다.

 

"형제 여러분, 여러분은 성령의 지도를 따라 사는 사람이니, 어떤 사람이 잘못을 저질렀을 때 온유한 마음으로 바로 잡아주어야 합니다. 그리고 여러분도 유혹에 빠지지 않도록 자신을 살피십시오. 서로 남의 짐을 져 주십시오. 그래서 그리스도의 법을 이루십시오. 사실 아무것도 아닌 사람이 무엇이나 되는 것처럼 생각한다면 그는 자기 자신을 속이고 있는 것입니다."(갈라 6,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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