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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의미사 (홍) 2026년 8월 10일 (월)성 라우렌시오 부제 순교자 축일누구든지 나를 섬기면 아버지께서 그를 존중해 주실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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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결 되었습니다. (나는 천주를위해 죽습니다)

69656 김광태 [cosma] 2004-08-06

이종민은 누구인가? -1-       원만히 해결 되었으므로 삭제합니다.

 

(경향잡지 2002년 7월호)

 

   


성 김대건 안드레아 사제 순교자

7월 7일은 한국 성직자들의 수호자 성 김대건 안드레아 사제 순교자 대축일이다. 김대건 신부의 삶은 잘 알려져 있다. 어린 시절부터 복자가 되기까지 성인의 일대기를 그린 이 그림들은 고 탁희성 화백이 그린 것이다. 20여 장 가운데 그 첫 그림은 이렇게 시작한다.
“김대건은 한국인 최초의 신부이다. 소년 시절은 마카오에 유학, 신학과 외국어 등 근대학문을 배워 외국과의 문호개방을 주장한 선각자이다. 김해김씨 김제준의 둘째아들로 1821년 8월 21일 충청도 내의 솔뫼에서 태어났다. 제준의 조부 진후(비오)는 조선교회 창설기부터 입교 십 년 옥고로 순교하였다. …  유년에 조부에게 수학하고 천주교 문답 교리를 배웠다. 쉬는 때면 뒷산 노송바위에서 동네아이들과 놀며 조부께 배운 것을 외웠다.”
 

+ 1836년 12월 9일
모방 신부의 선발로 신학생이 된 최방제, 최양업, 김대건은 정하상, 현석문 등의 인솔로 출발, 연말 의주 변문을 무사히 통과, 중국 옷으로 변장하고 샤스탕 신부댁으로 향하다.
 

+ 1845년 8월 17일
김 부제, 구사일생으로 오송에 도착하다. 이상한 모습과 파선된 배를 보고 부두에는 구경꾼이 인산인해고 관헌의 감시는 심하다. 8월 17일(일요일) 상해 김가항성당에서 25세 김 부제의 서품식을 페레올 주교 집전으로 거행, 11명의 선원과 신부 몇 분이 참석한 조촐한 예절.

+ 1845년 8월 21일
상해에서 선박을 수리하여 페레올 주교, 다블뤼 신부와 함께 귀국길에 오르다. 같은 배, 같은 항로였고 폭풍우마저 똑같이 뒤따랐으므로 처음 목표인 연평도와는 엉뚱히 제주도에 표착. 다시 북상하여 황산포에 도착하여 교우가 미리 준비한 상옷으로 변장 상륙하다.

+ 1846년 4월
경기도 용인 골배마실을 중심으로 은이, 텃골, 은다리의 교우들에게 성사를 주며 성직자로서 활약.

 

+ 1846년 4월 8일
용인 골배마실 은이공소에서 교우들과 최후 미사를 올리다.



 

+ 1846년 6월 5일
김 신부는 만주에서 방황하는 최양업 부제를 모실 계획으로 1846년 5월 14일 마포에서 출발, 황해도에 이르러 주교의 편지와 자신이 그린
근해지도를 중국 어부에게 전하였다. 6월 1일 중국 배를 쫓아내기 위해 배를 빌리려는 관장의 명을 김 신부가 불응하였다. 결국 김 신부의 신분이 밝혀져 체포되다.

+ 1846년 9월 16일
한강 새남터에 오색이 찬란하게 하늘을 누비고 12명의 희광이가 미친 듯이 칼춤을 춘다.
웅대한 그 자세 그 얼굴은 관중을 보고 “나는 천주를 위하여 죽습니다. 내 앞에는 영원한 생명이 시작될 것입니다. 여러분! 영원한 복락을 누리려면 반드시 천주를 믿으십시오. 천주께선 당신을 알아 공경하는 이는 영원히 저버리지 않고 영원한 불가마에서 구해주실 것입니다.” 최후 유언의 설교를 남기고 사라지다.

+ 1925년 7월 5일
로마 베드로 대성전에서 교황 비오 11세 집전 아래 병오 교난에 순교한 79위 복자 시복식이 거행되다. 복자 안드레아여, 모든 치명자여, 우리를 위하여 빌어주소서.


 

성인의 후손이라는 것이 자랑스럽습니다
-김경준 사도 요한 씨
한국교회는 1984년 103위의 성인을 탄생시켰다. 이후 한국 성인을 주보로 모시고 세례명을 한국 성인명으로 하는 것이 유행하였다. 그런데 20년이 채 못 지나 그러한 움직임은 현저하게 줄어들었다. 성인들은 조금씩 잊혀져 갔다. 이즈음 한국교회가 초기 순교자를 포함해 126명의 시복시성을 추진하고 있다.
“반가운 소리지. 성인의 후손이라는 것을 자랑스럽게 생각하면서도 너무 무관심하게 살았어. 우리 교회 안에서 순교자들의 정신을 본받고 순교 신심을 되새길 수 있는 계기가 되었으면 좋겠는데….” 전주교구 부안성당 등룡리공소 회장 김경준 사도 요한 씨(73세). 그이는 김대건 성인의 조부인 순교자 김진후 비오의 9대 후손이다.
그이의 증조부는 1900년대에 전북 부안지역 신앙생활의 중심지인 등룡리공소를 키우고 발전시킨 김양배 회장이고 그이의 양부는 김대건 신부의 조카이며 부부 동정생활로 일생을 마쳤다.
“우리 집안은 순교자를 13명이나 배출했고 성인도 낸 훌륭한 집안인데 다른 신자들보다 더 열심히 살아야 한다고 늘 생각하지.” 김경준 씨는 부친이 그랬던 것처럼 자녀들이 어릴 때부터 죽음으로 믿음을 지켜낸 신앙 선조들의 이야기를 들려주었다. 그래서인지 큰딸이 평신도 사도직 단체인 ‘아피(국제 가톨릭 형제회)’ 회원으로 활동하고 있다.
김씨는 4년 전에 콩팥 하나를 떼어내는 대수술을 받아 지금은 농사를 짓지 않는다. 그래서 신앙선조들이 피와 땀으로 일궈온 신앙생활의 터전을 가꾸고 지켜나가는 데 더 힘을 쏟을 수 있단다. 그이는, “등룡리공소는 부안지역 신앙공동체의 초석”이라며 순교자들의 신심을 본받아 교회 발전의 견인차 역을 게을리 하지 않겠다고 다짐했다.

취재/김민수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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