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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수님을 통하여 하느님께로; 성모님처럼 예수님께로

69951 박여향 [cpark] 2004-08-12

예수님을 통하여 하느님께로; 성모님처럼 예수님께로

 

조보경님, 일치된 신앙을 고백하는 "하나이며, 거룩하고, 공번되고, 사도로부터 내려오는" 가톨릭 교회의 일치를 위해 교도권의 결정에 순종하고, 교회에서 가르치는대로 믿고 따르시기를 권면해드립니다.

 

자매님이 올리신 다음의 성경 말씀에도 교회의 가르침에 순명하라 하셨읍니다:† 마태오가 전한 거룩한 복음입니다. (18,15-20):그때에 예수께서 제자들에게 말씀하셨다."어떤 형제가 너에게 잘못한 일이 있거든 단둘이 만나서 그의 잘못을 타일러 주어라.

 

그가 말을 들으면 너는 형제 하나를 얻는 셈이다. 그러나 듣지 않거든 한 사람이나 두 사람을 더 데리고 가라. 그리하여 '두 사람이나 세 사람의 증언을 들어 확정하여라.'한 말씀대로 모든 사실을 밝혀라. 그래도 그들의 말을 듣지 않거든 교회에 알리고 교회의 말조차 듣지 않거든 그를 이방인이나 세리처럼 여겨라.

 

아래에 한국천주교회 주교회의 사이트에 게제되있는 "피조물이신 성모님을 창조주이신 하느님처럼 믿는 그릇된 신심을 가져서는 안된다는 "우리 한국 교회 전체의 일관된 가르침을 올려드리니, 그릇된 신심에서 벗어나시길 바라겠읍니다.

 

올바른 성모신심(한국주교회의 잦은 질문과 답변 8번 중에서):

 

성모님은 신앙의 모델이다. 그런데 오늘날 성모님을 너무 미화시키는 모습이 많다.
그리하여 심지어는 성모님이 수렴청정을 하는 것처럼 오해를 산다.
성모님은 슈퍼우먼이 아니다. 우리를 위해 하느님께 빌어주시는 분이지 구원자가 아니다.
이런 오해에서 빨리 풀려나야 한다. 그렇지 않으면 성모님이 우상처럼 될 수 있다.

 

질문3)
천주교인들은 성모님을 통해 예수님이나 하느님께 기도하면 더 잘 들어주신다고 하는데?
예수님이나 하느님께 직접 기도하지 않고 툭하면 ‘성모님을 거쳐서’ 기도한다고 하는데?
하느님의 구원사업도 성모님이 없었다면 이루어질 수 없었다는데?

즉 마리아가 하느님의 말씀을 받아들이지 않았다면 예수님이 이 세상에 오실 수 없기 때문에 하느님도 인간을 구원하시려는 당신 계획을 펴실 수 없다는 소린데 무슨 말인가!!!
또 예수님께서 첫 번째 행한 가나의 기적도 바로 성모님 부탁으로 이루어진 것이라는데?

 

답변:☞ 물론 성모님은 우리를 위해 기도해 주신다. 그러므로 성모님께 우리의 청을 말씀드리는 것은 잘못된 것이 아니다. 그렇다고 예수님이 원하시지도 않는 일도 성모님이 부탁하면 모두 들어주실거라고 생각하는 것은 크게 잘못된 생각이다.

 

더욱이 성모님 없이는 예수님께서 이 세상에 오실 수 없었다는 이야기나 예수님께서 당신은 원하시지도 않았는데 성모님의 부탁으로 할 수 없이 첫 번째 가나 기적을 행하셨다는 이야기는 주연과 조연의 자리를 바꿔 놓은 이야기라고 할 수 있다. 물론 그리스도교 신자라면 당연히 성모님을 공경해야 한다.

 

하지만 성모님의 역할과 위치를 지나치게 부풀려서 공경하는 것은 오히려 가톨릭 교회는 물론 성모님께도 누를 끼치는 일이다. 마치 성모님을 슈퍼우먼이나 수렴청정하는 것처럼 생각하게 만드는 것이다.

 

한번 생각해 보자!!!

 

정말 성모님이 없었다면 예수님이 이 세상에 오실 수 없었을까? 마리아를 통하지 않고는 하느님께서 인간을 구원하시고자 했던 당신의 계획을 샐행에 옮기실 수 없었을까? 말도 안되는 이야기다.

 

우주 만물과 인간을 창조하신 전능하신 하느님께서 마리아를 통하지 않고선 아무 일도 하실 수 없다는 것은 말도 안되는 소리다.(막말로 하느님이 마리아 없으면 시체란 말인가!)

 

하느님은 우리가 생각할 수 없는 다른 방법으로도 얼마든지 예수님을 보내시어 당신의 구원사업을 이루실 수 있는데도 가장 인간적이고도 자연스런 방법인 어머니와 아들의 관계를 택해 예수님을 이 세상에 보낸 것이다.

그렇기 때문에 하느님의 뜻에 순명하신 마리아의 위대함만을 찬미하기 보다는 오히려 인간의 편에 서서, 하나의 보잘 것 없는 인간인 마리아를 구세주의 어머니로 삼으신 하느님께 더 큰 감사를 드려야 하는 것이다.(비천한 내가 구세주의 어머니가 되다니...)

 

이제 가나 혼인잔치에 관해 이야기 해 보자.

가나 혼인 잔치 이야기는 요한복음 2장 1-12절에 나오는 내용이다.

그런데 요한복음에서 말하려고 한 주제는 처음부터 끝까지 “예수님은 참으로 하느님의 아들이시다”라는 내용이다. 가나의 기적 이야기도 바로 이런 맥락에서 쓰여진 것이다.

 

요한 복음을 보면 가나 혼인잔치가 있기 전 예수님께서 제자들을 한 사람씩 부르는 내용이 나온다. 그런데 이렇게 따라나선 제자들이 예수님께 대한 확고부동한 믿음을 갖게 된 것이 바로 가나 혼인잔치에서 행하신 예수님의 기적을 통해서이다. 가나의 혼인잔치 맨 끝 부분을 보면 쉽게 알 수 있다. “그리하여 제자들은 예수를 믿게 된 것이다.”

러니까 가나 혼인잔치 이야길 통해서 사도 요한이 말하려는 것은 “예수님이 하느님의 아들이심”을 제자들이 굳게 믿게 되었다는 것이지 성모님이 어떤 일을 하셨냐가 아니라는 것이다. 그래서 권위있는 정통 요한 복음학자들은 심지어 이렇게까지 이야기 한다. “이 복음을 쓴 사도요한은 거저 제자들이 이 기적을 통해 예수님을 굳게 믿게 되었다는 데에만 관심이 있는 것이다”  즉 마리아의 역할에 대해선 전혀 관심이 없었다는 것이다.

 

물론 어떤 사람들은 이 이야기야말로 “성모님께서 중개자 역할을 하신다”는 걸 밝혀주는 성서 구절이라고 주장하기도 한다. (여기서 중개란 성모님이 하시는 전구를 뜻함)

 

어쨌든 성서를 어떻게 이해하든지간에 중요한 것은 모든 일을 판단하고 결정하는 권한(주도권)은 하느님. 예수님이 갖고 계시는 것이지 성모님이 갖고 계시는 것이 아니라는 이야기다. 성모님의 역할은 우리가 예수님께 대한 믿음을 갖고, 그분의 뜻을 따를 수 있도록 도와 주는 것이다. 성모님의 일생을 보더라도 그분은 늘 하느님과 예수님의 뜻을 따르려고 했다.

 

예를 들면 아기 예수를 잉태할 때도 그랬고, 어린 예수를 잃어 버렸다가 사흘만에 성전에서 다시 찾았을 때도 그랬다. 예수님 일에 간섭하신다거나 예수님이 원하시지 않는 일까지 졸라대서 이루려고 했던 분이 아니시라는 것이다. 만일 그랬다면 어떻게 순명정신의 최고 모범이 될 수 있었겠는가!


◐예수님을 통하여 하느님께로

☞예수님만이 하느님과 인간을 이어주는 유일한 중개자이시다. 즉 하느님이시자 인간이신 예수님을 통해서만이 하느님께로 갈 수 있다는 뜻이다. “나는 길이요, 진리요, 생명이다. 나를 거치지 않고는 아무도 아버지께 갈 수 없다(요한14,6).”

 

◑성모님을 통하여 하느님께로

☞예수님께로 가려면 성모님을 거쳐야 한다. 혹은 성모님을 통해 부탁드리면 예수님이 더 잘 들어 주신다는 뜻이 아니다. 성모님이 사신대로 따라 살다보면 예수님께로 갈 수 있다는 뜻이다.
이 때 “통하여”라는 말은 글자 그대로 받아들여선 안되고 다음과 같이 생각해야 된다.

-성모님을 따라 예수님께로 혹은 성모님처럼 예수님께로 번역되어야 한다.

 

왜냐하면 “예수님을 통하여 하느님께로”의 통하여는 본래적 의미로 쓴 것이고, “성모님을 통하여 예수님께로”의 통하여는 비유적 의미로 쓴 것이기 때문이다.

 

예를들면 “목자”란 원래 양치는 사람을 가리키는 말이다. 그런데 예수님게서 “나는 착한 목자이다.(요한 10,11)”라고 말씀하신 다음부터 그리스도교에선 “목자”라고 하면 “예수님”을 뜻하게 되었다. 그런데 우리는 또한 “사제”나 “목사님” 같은 분들도 사목자 혹은 목회자라 부른다. 그것은 그분들이 예수님을 대신하여 양들인 신자들을 돌보고 이끌어 주기 때문에 붙여진 이름이다.

 

이렇게 우리가 똑같이 “목자”라고 부르는 분들이지만 그리스도교에서 본래적 의미의 목자는 예수님을 말하는 것이다. 그리고 사제나 목사는 비유적 의미에서 목자인 것이다. 그렇기 때문에 이분들에 대한 우리의 의무도 아주 다르게 나타난다. 즉 우리는 사제나 목사님께 상담도 하고, 좋은 가르침도 얻지만 그렇다고 그분들을 무조건 따라야 한다거나 안따른다고 해서 큰 일이 나는 것은 아니다. 다시 말해 선택의 자유가 있다는 것이다.

하지만 예수님을 안 따르면 우리 영혼이 잘못 되기 때문에 무조건 따라야 한다. 이처럼 “예수님을 통하여 하느님께로”의 “통하여”는 본래적 의미로 쓴 표현으로서 하느님께로 가기 위해선 반드시 예수님을 거쳐야 한다는 뜻이다.


반면 “성모님을 통하여 예수님께로”의 “통하여”는 비유적으로 쓴 표현이기 때문에 예수님께 가려면 반드시 성모님을 거쳐야 한다거나, 성모님을 통해 부탁하면 예수님이 더 잘 들어주신다는 뜻이 아니라 성모님을 따라 성모님처럼 살다보면 쉽게 예수님께 갈 수 있다는 뜻이다.

왜냐하면 성모님이 가장 모범적인 신앙의 길을 걸어셨기 때문이다.

 

그럼 처음부터 아예 다르게 표현할 것이지 똑같은 말을 써서 사람 헷갈리게 만드는가?
처음에는 이렇게 하나는 본래적 의미에서 또 다른 하나는 비유적 의미에서 “통하여”란 말을 쓴 것인데 시간이 지날수록 사람들이 이런 처음의 의도는 잊어버리고 둘 다 똑같은 의미로 받아들이게 되어 많은 혼란을 빚게 된 것이다.

 

특히 우리나라의 경우는 전통적인 유교사상과 맞물려서 그 부작용이 더욱 크다. 우리나라에선 옛날부터 유교의 효도사상 때문에 부모님, 그 중에서도 어머니는 대단히 중요한 존재였다. 그래서 가정에선 물론 왕실에서도 어머니의 영향력은 대단했다. 다시 말해 우리나라에서 어머니는 그지없이 자상하고 모든 것을 품어주는 분이시면서 동시에 그 어떤 권력자도 그분 앞에선 꼼짝 못하는 그런 분이셨다.(수렴청정)

 

그런데 바로 이런 어머니의 모습(자상한 어머니와 막강한 어머니)이 성모님과 연결되어 예수님 보다 더 호소력이 있는 중요한 모습으로 자리잡게 된 것이다.또한 공적인 일과 사적인 일을 구분 못하고 소위 “빽(치마바람)”이 잘 통하는 우리 사회의 습성이 덧붙여져서 성모님께 열심히 청하면 성모님이 예수님께 빽쓰며 졸라대서 반드시 들어 주시게 할 것이라고 믿게 된 것이다.

 

그래서 이론적으론 아니라고 하면서 실제적으로 성모님을 예수님처럼 생각하는 사람들이 생기는가 하면, 스카풀라나 기적의 패 같은 것에 집착하는 사람들이 많이 생기게 된 것이다. 따라서 이젠 더 이상 “성모님을 통하여 예수님께로”란 말을 사용하지 말고 본래의 의미를 살릴 수 있는 말(성모님을 따라 예수님께로 혹은 성모님처럼 예수님께로)을 사용함으로써 그릇된 생각에서 벗어나 올바르게 성모님을 공경할 수 있는 기틀을 마련해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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