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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신 염습에 대한 소망

70151 지요하 [jiyoha] 2004-08-18

 

                                                      시신 염습에 대한 소망




지난 2001년 10월 25일 웹사이트에 올린 「산을 오르며 기도를 하며」라는 글이 내가 웹상에서 최초로 우리 고장의 명산 백화산을 소개한 글이었던 것으로 기억한다. 물론 백화산 이야기를 하면서 나의 '기도 생활'을 고백한 글이었다.

그 글의 일부를 오늘 다시 소개해 본다.

****
내가 백화산을 오르면서 묵주기도를 하는 것은 20년도 더 된 버릇이지만, 묵주기도의 '지향'을 정해 놓은 것도 10년이 넘었지 싶습니다. 내 묵주기도는 매단 지향이 다르지요. 제1단은 '세계교회와 세계평화를 위해서'이고, 제2단은 '한국교회와 한국사회의 공동선을 위해서'이고, 제3단은 '본당공동체와 태안 지역사회의 공동선을 위해서'이지요. 그리고 제4단은 '선친 지동환 안셀모님과 모든 조상님들과 친척 친지 은인들의 영혼을 위해서'이고, 제5단은 '부모 형제 친척 친지들과 모든 은인들의 가정을 위해서'이지요.

지난봄 가족들과 함께 등산을 한 날 내 묵주기도의 그 지향들에 대해서 잠시 얘기를 나눈 적이 있었지요. 올해 중학교 2학년인 딸아이가 제4단과 5단의 '은인'들에 대해서 의문을 표하더군요. 특히 죽은 이들 중에서도 아빠가 기도로 보답을 해 줄 정도의 은인들이 아빠에게 있다는 사실이 딸아이에게는 신기한 모양이었습니다. 대체 그들이 어떤 이들이냐고 딸아이는 물었습니다.

"아빠는 고등학생 때부터 염습을 했단다. 죽은 이의 몸―시신을 잘 닦아서 옷을 입혀 주고 베로 싸서 묶고 하는 일을 염습, 또는 염이라고 하는데, 아빠는 그 일을 많이 했어. 아빠가 정성껏 염을 해서 저 세상으로 잘 가시게 해 드린 이들이 아마 백 명도 넘을 걸."

고등학생 때부터 염을 한 것은 태안 교회 초창기 시절에 신자들이 많지 않아 손이 부족해서였지요. 별의별 시신을 다 만져보았답니다. 지금은 시신을 장지로 옮기는 일을 이 시골에서도 모두 영구차로 해결하지만, 상여를 많이 사용하던 시절에는 상여도 수없이 메었답니다. 완전히 염장이에다가 상여꾼을 겸한 셈이었는데, 염장이 노릇은 아마 죽는 날까지 하게 될 겁니다.

상여를 메던 시절 한번은 이런 일이 있었지요. 시를 공부하던 한 후배가 상여를 멘 나를 보더니 기겁을 하더군요. 그러고는 전화로 항의를 하더군요. 명색이 소설가라는 양반이, 지역에서 유명 인사 축에 드는 분이 어떻게 상여를 멜 수 있느냐고. 나는 웃으며 대답했지요.

"나는 작가이기에 앞서 하느님을 믿는 사람일세. 내가 작가라는 것보다 천주교 신자라는 게 더 중요하네. 그래서 믿음의 형제들과 함께 상여를 멘 거야. 물론 앞으로도 또 그럴 거구…. 난 조금도 불편하지 않으니 아예 그런 걱정일랑 말게."

그 친구는 이해하지 못하는 기색이었습니다. 그 친구가 지금은 태안에서 살지 않고 소식도 없지만 그때로부터 10년도 훨씬 더 지났으니, 지금쯤은 내 말의 뜻을 이해할 수 있으리라 믿습니다.

지금은 교회의 '연령회'도 잘 운영되고 있고 손도 많아져서 상이 날 때마다 매번 내 손이 필요한 것은 아니지만, 그래도 가끔은 상가에 가서 염습 봉사를 하곤 하지요.

"아빠가 정성껏 염을 해서 저 세상으로 잘 가시게 해 드린 분들이 모두 아빠께는 은인이란다."
"왜요?"
딸아이는 아빠의 말을 냉큼 이해하지 못해서인지, 또는 뭔가 감이 잡히는 것을 확인하고 싶어서인지, 눈빛이 한결 또렷해지는 것 같았습니다.

"그분들은 대개 살아 계실 때 아빠와 인연을 맺은 분들이야. 죽은 다음에도 아빠와의 인연이 더욱 확실해진 분들이고…. 그분들이 나로 하여금 그런 좋은 봉사를 하게 해 주셨으니 그것도 고마운 일이고, 지금은 또 나로 하여금 묵주기도를 하도록 해 주시니 그것도 고마운 일이지. 내가 그분들을 위해서 하는 기도가 실은 나를 위한 기도이기도 하단다. 내가 그분들을 위해, 즉 남들을 위해 기도를 많이 하면 할수록 하느님은 기뻐하실 테니 말야. 하느님이 나를 얼마나 좋게 보시겠니. 그러니까 결국은 내가 그분들의 덕을 보는 셈이지."

"그래서 그분들이 모두 아빠의 '은인'들이라는 얘기로군요?"
"아빠의 '은인'들은 돌아가신 분들, 아빠가 염을 해 드린 그분들뿐만이 아니야. 살아 있는 분들 중에도 많아. 이 세상에서 아빠와 이런저런 인연을 맺고 살아가는 그 모든 분들이 다 은인이야."
"알아요. 그 모든 분들을 위해서도 아빠가 묵주기도 제5단을 바치니까요."

딸아이는 환한 표정으로 웃었습니다. 딸 자랑을 하면 '팔불출'에 속한다지만, 나는 딸 자랑도 곧잘 하며 산답니다. 공부도 잘 해서지만, 심성이 워낙 착해서 나는 늘 하느님께 감사하곤 한답니다. 유치원 시절부터 지금까지 평일 미사에도 빠진 적이 거의 없지요. 텔레비전 앞에서 재미있는 만화영화나 몹시 좋아하는 그룹 가수 '신화'가 나오는 연예 프로를 보다가도 성당 갈 시간이 되면 군소리 없이 일어서는 아이지요. 중학생이 되고부터는 평일미사 오르간 반주를 전담하는데, 한 달씩 아침과 저녁을 바꾸는 주일 미사의 오르간 반주도 책임을 다 하지요. 성가대 연습 반주에다가 어떤 때는 주일 본 미사에도 반주를 하고….
****

중략도 없이 다소 길게 소개를 했지만, 3년 전에(그새 벌써 3년이 흘렀다니…) 쓴 글을 찾아 다시 읽어보니 재미도 느껴지고 해서 오늘 쓰려는 글과 관계되는 부분을 그냥 모두 소개했다.

위에 소개한 글 중에 "완전히 염장이에다가 상여꾼을 겸한 셈이었는데, 염장이 노릇은 아마 죽는 날까지 하게 될 겁니다."라는 구절이 있다. 그 구절을 보는 내 심정은 다소 무안하다. 그 글을 쓴 이후로 나는 돌연 염장이 노릇도 끝이 난 형국이 되고 말았기 때문이다.

우리 고장에도 장례식장이 생겨서, 이제는 거의 모든 집들이 초상을 장례식장에서 치르게 되었다. 그에 따라 염습도 장례식장에다 맡기게 되었다. 그것은 우리 천주교 신자들도 마찬가지다. 장례식장 측이 자신의 수입과 관련해서 염습도 자신들이 도맡아 한다는 규정을 정해 놓았기 때문이다.

이제는 교우 초상을 당해도 염습 부담을 지지 않으니 일단은 몸과 마음이 다 편한 상황이지만, 왠지 허전하고 아쉬운 느낌이 없지 않다. 생전에 자신 안에 성체를 모심으로써 예수님과 일치를 이루었던 사람들, 그리하여 '성전(聖殿)'이었던 그 시신들을 신자들의 손으로 염습하지 않고, 어떤 거래가 성립된 상황에서 장례식장의 직업적인 염장이들에게 맡겨 비신자들과 똑같은 방식으로 염을 하게 한다는 것은 아무래도 옆구리 한구석이 결리는 느낌을 갖게 하는 일이었다.

나는 그런 느낌을 가지면서도 본당 연령회장님이나 교우들에게 내색을 하지는 않았다. 언제 한번 연령회 모임 자리에서 "장례식장 측과 협의하여 천주교 신자들의 염습은 신자들 손으로 하자"는 안을 정식으로 내볼 생각을 갖고 있지만, 아직 실행을 하지는 않고 있다.

지난 7월 11일 서울 금호동의 한 장례식장에서 숙부님의 장례를 치를 때 목격했던 금호동성당 연령회 정 바오로 회장님과 여러 남녀 회원님들의 염습 봉사는 내게 깊은 감명을 주었다. 그 정성스러움과 세밀함과 손발이 잘 맞는 모습은 '기도의 연장'을 느끼게 하리만큼 감동적이었다.

(그 염습 봉사뿐만 아니라, 출관·미사·운구·도묘·하관 등 모든 장례 절차에 시간과 노고를 아끼지 않으신 금호동 성당 연령회의 모든 형제 자매님들께 다시 한번 깊이 머리 숙여 감사한다.)

그때 나는 금호동 성당 연령회 형제 자매님들로부터 내가 깊이 참고해야 할 말을 들었다. 서울대교구의 경우는 서울의 모든 장례식장과 협의를 해서 천주교 신자들의 염습은 신자들이 맡아서 한다는 것이었다. 현재 한양대병원 영안실 한 곳만 장례식장 측에서 모든 염습을 도맡아 하고 있지만 곧 그곳도 천주교 신자들의 염습은 신자들에게 양보를 하게 될 거라는 말도 들을 수 있었다.

그 말을 듣고 나서 나는 서울대교구의 그 경우를 우리 본당 교우들께 널리 알려야 할 필요를 느꼈다. 지금은 새 성전 건립 사업에다가 40주년 행사, 대전교구의 '최우수본당'이 되기 위해 새 입교자 300명을 목표로 전교에 열중하는 등 여러 가지로 어수선한 분위기지만, 곧 본당 주보 등을 통해 서울대교구의 그 염습 경우를 소개할 예정이다.

"생전에 예수 그리스도의 성체를 자신 안에 모심으로써 예수님과 일치를 이루었던 사람들, 고귀한 '성전'이었던 천주교 신자 시신들의 염습만큼은 장례식장 측에 맡기지 말고 우리 신자들의 손으로 해야 한다. 그럴 수 있도록 우리 본당 연령회도 적극적으로 나서서 장례식장 측과 협의를 해야 한다."

이것은 이미 나에게는 참으로 중요한 명제가 되었다. 이것이 나에게는 왜 중요한 명제일까? 우선은 생전에 '성전'이었던 이들(비록 성체는 모시지 않았더라도, 물과 성령으로 새 생명이 된 대세자들도 포함하여)에 대한 신자들의 '신자적 인식'이 너무도 중요하게 느껴지기 때문이다. 그리고 또 하나는 내 어머니에 대한 생각 때문이다. 지난해 팔순을 넘기신 내 노모님을 의식하기 때문임을 숨길 수 없다.

내 노모님께서 언젠가 이승을 하직하시게 되면 생전에 주님의 오랜 '성전'이었던 어머니의 시신을 장례식장의 직업 염장이들에게 맡겨 염습을 하게 할 수는 없다. 당연히 신자들의 손으로 해야 한다. 그게 정 어렵다면 상주인 나라도 해야 한다. 아니, 반드시 내 손으로 할 것이다.

이처럼 '성전 염습'에 대한 명제와 소망은 이미 내 가슴속에 확고하게 자리잡혀 있다. 그리하여 나는 기도한다. 그 중요한 명제와 내 소망이 꼭 이루어지게 되기를…! 내 기도의 청원 사항이 또 하나 늘어난 셈이다.

*참고로, 나와 아내에게는 염습이 아예 필요치 않다. 이미 1995년에 헌안과 장기기증에 이어 시신기증까지 해놓았으므로…. *


(040809)
충남 태안읍 샘골에서 지요하 막시모 적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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