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패러다임으로 사물평가하기

70304 이은숙 [rbm95443] 2004-08-23

Name  
   지만원 
Subject  
   김구 발언, 왜 망언이란 말인가?

요사이 필자가 김구 선생을 오사마빈 라덴에 비유한 것에 대해 비난이 이는 모양입니다. 김구 선생은 민족의 얼을 나름대로 지킨 어른임에는 틀림없지만 능력과 업적에 대해서는 이승만 대통령에 비할 수 없는 인물이라고 봅니다.

운동선수에게 각자의 장기가 있듯이, 애국자들에도 남름대로의 장기가 있고 능력이 있습니다. 이승만의 능력이라면 미국에서 유능한 정치인들이 양성되는 하버드 대학과 프린스턴 대학에서 석사와 박사를 했고, 그로 인해 미국 대통령을 포함한 요로의 인사들을 움직일 수 있는 능력을 갖추었고, 세상을 보는 눈이 넓고 정치력과 외교력이 뛰어나, 당대에 세계를 움직이는 강대국 지도자들 누구보다도 더 우수한 자력을 가지고 있던 세계인이었다는 사실을 들 수 있습니다.

반면 김구선생에겐 이러한 능력이 전혀 없고, 오직 한학을 공부한 순수 토박이 애국자였습니다.

조선의 독립을 위해 이 두 사람이 할 수 있는 일은 두 사람의 능력이 아주 잘 대변해주었습니다. 이승만 대통령은 미국이라는 초강대국을 이용했고, 김구선생은 젊은 사람들에게 폭탄을 주어 일본 요인들에게 폭탄을 던지게 했고, 국부적일 수밖에 없는 게릴라전을 지휘했습니다.

외교와 게릴라전, 두 가지 대안 중에 어느 대안이 조선을 독립시킬 수 있었다고 보십니까? 겔리라전으로 일본을 굴복시킬 수 있다고 생각한다면 애시당초 일본에 먹히지도 않았어야 합니다. 당시의 일본은 미국 다음의 강국이었습니다. 김구 선생은 이런 일본에 무력으로 대항한 것입니다.

김구선생은 자신의 능력 범위 내에서 최선을 다하면서 백성에게 한 가닥 희망을 주었습니다. 그러나 당시의 백성이라 해도 세계를 보는 넓은 시야를 가진 분들이라면 김구선생의 애국운동이 그 정신에 비해 성과가 없으리라는 것을 잘 알았을 것이라고 봅니다.

결국 조선은 미국의 힘에 의해 해방되었을 뿐, 김구선생의 활동에 의해 해방된 것이 아니었습니다. 해방 후에는 어찌 되었습니까? 일본 낭아사키에 두 번째 핵폭탄이 떨어지던 당일인 1945.8.9에일, 소련은 일본과 맺었던 불가침조약을 내 팽개치고 북한으로 들어와 모든 공장시설과 행정기관을 접수하고 남한까지 적화시키려 헸습니다.

바로 이 때 미국은 오끼나와에서 최후발악으로 덤비는 일본군과 싸운 후 한 달이 지난 9월8일에야 부산에 들어왔습니다. 북한에서는 소련군이 김성주 대위를 내세워 꼭두각씨 정부를 사실상 건설해 놓고, 남한까지 점령할 목적으로 남한 인사들을 꼬시기 시작했습니다. 결국 이승만에 비해 힘은 세지만 머리가 부족한 김구 선생은 김일성에 놀아나 북한을 돕고 남한 건국을 방해했습니다.

미국을 움직이는 이승만의 역량이 없었다면 남한만의 단독정부나마 설치될 수 없었습니다. 지금 북한 인민에 비해 자유와 번영을 누리고 있는 대한민국 국민이라면 이승만 박사에게 제사를 지내야 합니다. 이승만이 없었다면 김구에 의해 우리는 김일성 치하에 편입되어 우리와 우리 부모들은 북한 주민처럼 지옥을 맛보고 있을 것입니다.

오사마빈 라덴이 쌍둥이 빌딩을 폭파시켰을 때, 한국의 좌익들은 그를 영웅이라 불렀습니다. 오사마빈 라덴은 미국을 미워하는 사람들에게 그야말로 영웅입니다. 미국과 대한민국의 건국을 부정해온 좌익들 역시 김구 선생을 영웅으로 생각합니다.

김구도 적국을 향해 테러를 가했습니다. 오사미빈 라덴도 적국을 향해 테러를 가했습니다. 제가 김구를 오사미빈 라덴에 비유한 것이 왜 잘못이라는 것인지 이해되지 않습니다.

제 발언을 망언이라는 사람들은 대부분 좌익들입니다. 좌익들은 오사마빈 라덴을 영웅시했습니다. 저는 제 표현에 대해 누구보다 좌익들이 박수를 치며 반길 것으로 생각했습니다. 그런데 어째서 제 발언을 망발이라 하는지 알 수 없습니다. 아시는 분들은 의견 주시기 바랍니다.

좌익들이 이승만 박사를 매도하지 않았다면 저 역시 이런 표현을 하지 않았을 것입니다. 그러나 저들이 과거사를 왜곡하고 있는 지금 우리는 이승만과 김구 모두에 대해 정확히 이해해야 합니다. 이승만의 동상은 이 나라에 우뚝 서야 합니다. 그런데 어째서 이 나라에는 김구 선생만 높이 평가받고, 국부 이승만 대통령은 하와이에 묻혀 있어야 하는지 알 수 없습니다.

독재라고요?  당시 아시아 권에 독재 아닌 나라가 어디 있었습니까? 싱가프르에서는 껌을 씹지 못합니다. 거리에 침을 밭거나 화장실을 더럽히는 사람은 곧비로 끌려 갑니다. 지금도 그렇습니다. 세상에 이런 독재가 어디 있습니까? 싱가포르의 누가 이광요를 독재자라 하던가요?

지금도 북한, 중국, 베트남, 미얀마 등 많은 아시아 국가들이 독재를 합니다. 좌익들은 어째서 이승만과 박정희만 독재자라 하고 김일성과 김정일을 독재자라 하지 않습니까? 아니 김일성을 만족의 태양이라 하지 않습니까?

많은 한국인들은 역사도 수학도 냉철한 두뇌로 배우지 않고 외웁니다. 이렇게 외운 것은 지식이 아니라 외움물일 뿐입니다. 외운 것이 많을 수록 고정관념만 높이 쌓고 새로운 것에 저항합니다. 경험과 줏어들은 이야기만 많고, 학문적 이론을 배우지 못한 사람을 저는 원주민이라 칭합니다. 원주민은 과학을 몰라 사회를 발전시키지 못합니다.

과학을 공부한 사람은 패러다임으로 사물을 평가합니다. 더러는 이렇게 말합니다. 김구는 무고한 민간인을 죽이지 않고 요인만 꼭 찝어 살해했기 때문에 빈라덴과는 다르다 합니다. 이렇게 생각하는 사람은 과학을 배우지 않은 사람이라고 봅니다. 패러다임 측면에서 보면 빈라덴과 김구는 테러와 게릴라를 무기로 적과 싸운 사람들이며 같은 류, 같은 과에 속하는 사람들입니다.  

똑같이 독립운동을 했지만 독패러다임 측면에서 보면, 김구와 인도의 간디는 현저히 다릅니다. 간디는 철저한 비폭력 저항운동을 펼쳤습니다. 왜 그랬을까요? 그리고 간디의 비폭력 운동과 김구의 폭력 운동 중 어느 운동이 더 많은 효과를 얻었을까요?  

간디는 영국에서 공부하면서 영국의 힘을 알았고, 힘으로 영국에 대항했다가는 더 많은 인도인이 탄압을 받고 고통을 받을 뿐이라는 사실을 너무나 잘 알고 있었습니다. 영국에 대해 무력 저항을 한다는 것은 그야말로 무모한 선택이며 수억의 인도인에게 더 많은 고통을 줄 뿐이라는 사실을 그는 매우 잘 알고 있는 것입니다. 그래서 그는 무력으로 대항하려는 인도인들을 꾸짖었습니다.

김구 선생이 몇몇 일본 요인들을 암살하면서 얻은 것은 무엇이었고, 지불한 대가는 무엇이라고 생각하십니까? 폭탄을 던진 청년들이 고통속에서 죽었고, 수많은 동족들이 고통을 받았습니다.

김구선생의 독립운동에는 얼이 있었습니다. 민족의 혼을 살린 상징적인 존재였습니다. 그러면 인도의 간디에게는 그런 혼이 없었던가요?

김구의 정신은 훌륭한 것이지만 그는 대한민국을 김일성에게 내줄번 한 사람입니다. 옳곧은 정신만으로 큰 일을 할 수는 없는 것입니다. 정신력으로 말하자면 청학동 한문 할아버지도 상당할 것입니다. 국가를 경영하려면 이승만 박사처럼 넓은 세계로 나아가 많이 보면서 신학문과 신사고를 갈고 닦아야 합니다.

옳돋은 정신만 간직한 채, [돌아가는 세상]을 읽을 능력이 없는 사람은 지금 이 순간, 어째서 좌익들이 케케 묵은 독립운동을 따지고  친일파를 따지는 지, 그 의도를 읽지 못합니다. 이 시점에서 저들이 독립운동을 최고의 미덕으로 가꾸는 이유는 김일성을 부각시키기 위해서입니다. 김일성 한 사람 만을 내세우면 좀 그러니까 구색을 갖추기 위해 김구를 내세우는 것입니다. 기둥을 치면 대들보가 울린다고 김구를 내세워야 김일성을 자연스럽게 들이밀 수가 있는 것입니다.

좌익들은 지금 이승만을 죽이고, 김일성을 부각시키려 합니다. 그렇게 하기  위해 김구를 내세우고 있다는 것을 왜들 모르는지요? 최근 좌익들은 박정희를 죽이기 위해 장준하를 내세웁니다. 좌익들은 상해 임시정부와 김대중을 곧바로 연결시키려 합니다. 그렇게 하기 위해서는 이승만과 박정희는 죽어야 합니다. 제가 왜 이 시점에서 새삼스럽게 김구와 이승만을 비교하는 이유를 알아차려 주시는 분들이 많이 계시기를 고대합니다.

배운 사람은 자간을 읽어야 합니다. 배운 사람은 패러다임으로 사물을 판단합니다. 원주민이 아는 것이 많다 해서 그 지역을 진보시킵니까?  과학적 이론이 그 지역을 진보시키는 것입니다. 과학을 하는 사람은 사실을 배우는 게 아니라 패러다임을 배웁니다. 수 백개의 수학문제를 모두 풀려고 대드는 사람은 바보입니다. 수많은 문제 중에서 패러다임을 발견해내고 패러다임 별로 문제를 푸는 방법을 개발할 때에 비로소 응용능력이 길러집니다. 인문과학을 배우는 것도 같을 것입니다.

역사를 연구하는 것도 과학입니다. 끝없이 [왜]를 반복하지 않는 사람은 그냥 남의 것을 외울 수밖에 없습니다. 이런 사람에겐 창의력이 없습니다. 오직 두꺼운 고정관념의 벽이 있을 뿐입니다. 고정관념은 사회발전의 걸림돌입니다. 저는 연구소에서 군간부들을 설득하는 데 많은 시간을 보냈습니다. 발전에 가장 큰 걸림돌이 바로 기득권들의 고정관념이었습니다.



             2004. 8. 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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