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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세상에서 가장 따뜻한 밥 나눠요"

70636 노재성 [worbdj] 2004-09-02

 (퍼온글)

"세상에서 가장 따뜻한 밥 나눠요"
 
 무더위가 아직 가시지 않은 8월의 마지막 날 정오. 서울 중랑구 망우동의 한 구부정한 골목길 끝에 위치한 '나

 

눔의 집'에는 한산한 거리와는 대조적으로 많은 사람들의 시끌벅적한 웃음 소리가 들린다. 23평 조그만 공간에

 

100 여명의 노인들이 큰 웃음소리로 대화를 이어가며 차례로 맛있게 점심식사를 하고 있다. 흔한 고기 반찬 하

 

나 없이 김치를 비롯한 대 여섯 가지의 밑 반찬과 된장국이 전부지만 식사를 하는 노인들은 모두 '"맛있다"를 연

 

발하며 소박한 오찬'을 즐긴다.

나눔의 집'은 홀몸 노인과 지역 거주 노인들을 위한 무료 급식소. 회장인 박대성(55)씨는 이 곳에서 자원 봉사

 

자들과 함께 월요일부터 금요일까지 매일 100 여 명의 식사를 준비한다. 박씨는 노인들이 식사를 하는 내내 물

 

을 떠다 주고, 모자란 반찬을 채워 주느라 정신없지만 그 와중에도 환한 웃음과 "맛있게 드세요"라는 말을 잊지

 

않는다. 외로운 노인들에게는 배를 채워 줄 밥도 중요하지만 마음을 채워줄 따뜻한 말 한 마디도 필요하다고 생

 

각하기 때문.

 

이곳에서 매일 점심을 해결한다는 이태섭(75)씨는 "집에 혼자 있으면 귀찮기도 하고 힘에 부쳐 식사를 거르기

 

일쑤지만 이곳에 나오면 친자식 처럼 웃으며 환영해 주는 사람과 따뜻한 밥이 있어 즐겨 찾는다" 며 "박 회장이

 

네 자식들보다 낫다"고 고마움을 표한다.


 오후 2시쯤 '나눔의 집'의 식사가 마무리 되자 박씨가 발걸음을 옮긴 곳은 인근에 있는 '노숙자 쉼터'. 이 곳에

 

있는 '사랑의 나눔회'에서 매주 화, 수요일마다 서울역 노숙자들에게 제공하는 저녁 식사를 준비해야 되기 때문

 

이다. 오늘의 메뉴는 '오뎅국밥'. 대형 취사장에서나 볼 수 있는 큰 솥과 냄비에는 벌써부터 맛있는 냄새가 솔솔

 

나고 있다.

 

박씨는 "석 달 전만 해도 500인 분의 식사만 준비해도 충분했지만 요즘에는 사람이 늘어 800인분 가까운 식사를

 

준비해야 된다"며 바쁘게 움직인다. 그는 " IMF 때보다 요즘이 경기가 더 어려워 식사를 원하는 노숙자가 계속

 

늘고 있다"며 "지속적으로 늘고 있는 노숙자들 모두에게 식사를 제공하고 싶지만 민간 단체의 힘만으로는 한계

 

가 있어 충분하게 제공하지 못해 안타깝다"고 말했다.

 

이런 박씨를 가리켜 주위 사람들은 '거지 대장'이라고 부른다. 하루 하루의 식사를 준비하기 위해 이곳 저곳 가

 

리지 않고 도움의 손길을 요청해 붙은 별명. 인근 우림시장 등에서 식재료가 남는다는 후원자들의 제보가 오면

 

그는 언제든지 봉고차를 몰고 가 남김없이 실어 온다. 그는 "늘 다음 날 재료를 걱정해야 될 형편이라, 사람이

 

먹을 수 있는 재료가 있다면 어디든 달려가기 때문에 언제나 대기중"이라며 "'거지대장'이라 불려도 못먹고 굶

 

주린 사람들에게 식사대접만 할 수 있다면 도둑질 빼놓고는 다 할 것"이라며 웃는다.

 

 

 

 서울역 지하 통로에서 노숙자들이 '사랑의 나눔회'에서 준비한 밥을 먹기 위해 줄을 서서 기다리고 있다. 

  전화 제보가 없으면 그는 주위의 후원자들에게 전화를 돌려 도움을 요청한다. 그의 사무실 벽에는 후원자들

 

전화번호가 한 면 가득 붙어 있다. 그가 '거지 대장' 소리 들어가며 후원받은 쌀, 멸치, 당면, 김 등의 각종 식재

 

료는 비좁은 사무실에 발 디딜 틈 없이 쌓이고 다음날에는 노인들과 노숙자들의 허기를 달래준다.

 

10년전만 해도 잘나가는 핸드백 생산업체 사장님이었던 그가 '거지대장'으로 변신한 것은 1996년의 일. 그는

 

"중형차도 굴리고 골프도 치며 남부럽지 않게 살았다"며 "하지만 외형적으로는 풍족했지만 끼니를 거르며 고통

 

스러워 했던 기억들이 늘 머리에 남아 마음이 편치 않았다"고 말했다. 어릴 적 소년 가장으로 부산 대청동에서

 

동생 둘을 데리고 하루 하루 끼니를 걱정하며 살았던 기억이 계속 마음에 걸렸던 것.

 

박씨는 "그 때는 정말 배를 채우기 위해 안해 본 일이 없었다"며 "배고픈 고통을 알기에 나중에 돈을 벌면 꼭 못

 

먹고 굶주린 사람들을 위해 봉사해야 겠다고 다짐했었다"고 회상했다.

 

박씨는 사재를 털어 1996년에 처음 100 인분의 김밥을 싸들고 서울역 인근의 노숙자들에게 나눠주기 시작했다.

 

이 후 점점 봉사의 범위를 넓혀 1999년 부터는 '나눔의 집'을 만들고 본격적으로 배고픈 사람들을 위한 무료 급

 

식을 하기 시작했다. 원래 서울 중랑구 상봉동에 자리잡았던 '나눔의 집'이 계약 만료로 옮겨야 되자 자신의 아

 

파트를 저당 잡혀가며 지금의 자리인 망우동 나눔의 집터로 옮기기까지 했다.

 

가족들은 처음에는 아파트를 저당 잡혀가며 봉사하는 박씨를 원망했지만 그의 끈질긴 설득으로 지금은 '나눔의

 

집' 일을 열성적으로 거들고 있다. 그는 "남편으로서 아버지로서 나는 그야말로 빵점이다"라며 "하지만 금전적

 

으로 얻을 수 있는 풍요보다 내 가족들에게 마음의 풍요를 얻게 하고 싶었다"고 말한다.

 

오후 7시 지하철 1호선 서울역 7번 출구 통로에는 700여 명의 노숙자들이 50여 m의 긴 줄을 선다. 매 주 화요일

 

과 수요일에 박씨와 봉사자들이 준비한 저녁을 먹기 위해서이다. 7시 반이 되자 차례 차례 노숙자들이 일어나

 

'오뎅국밥'을 타가며 그에게 스스럼없는 농담을 건넨다. 한 노숙자는 어디서 구했는지 캔커피 하나를 뽑아와 그

 

에게 건네주며 감사의 뜻을 표한다. 마다하는 박씨에게 기어이 캔커피를 건네고야 마는 그 노숙자는 행복한 미

 

소를 지으며 어디론가 사라진다. 박씨는 "내가 배고팠던 기억이 있기에 그들의 고통을 공감할 수 있다"며 "봉사

 

를 하려면 그들과 같아져야 된다 "고 말했다.

 

 

2시간 가까이 걸려 노숙자들을 위한 배식이 끝나자 박씨는 그들이 남기고 간 쓰레기를 정리하며 분주하게 움직

 

인다. 그는 "주위에선 봉사를 많이 한다고 얘기를 하지만 난 항상 아쉽고 부족하다"며 "앞으로 살 날보다 살아온

 

날이 더 많지만 얼마 남지 않은 인생 다른 사람을 위해 살고 싶다"며 지친 몸을 이끌고 집으로 향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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