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103위 성인전 1, 聖 김대건 안드레아 신부..2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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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1288 신성구 [xhak59] 2004-09-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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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은 김대건 신부님이 1846년 9월16일 새남터(옛지명:노들,사남기)에서 군문효수형으로
참수된 날입니다. 聖김대건 안드레아 신부님..우리나라를 위해 빌어 주소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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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편 이어서..두 군함은 1842년 가을 양자강 어구에 다다르게 되었으나 때마침 영국과 청국 사이에
남경조약이 맺어지고 전란이 끝나게 되자 신부들과 신학생들을 그곳에 내려놓고
돌아가게 되었다. 김대건의 조선 입국 시도는 이때부터 무수한 장벽과 고난의 길이었다.
조선교회의 소식을 듣기 위해 메스트로 신부와 김대건은 거지 행세를 하고 입국의 길을
찾았으나 외국인의 입국이 무모한 계흭이라 판단되어 김대건만을 보내기로 하고
1842년 12월23일 두 명의 중국인 교우와 함께 변문으로 향한다. 변문에서 20리쯤 떨어진
곳에서 북경으로 가는 300명 가량의 동지사 일행과 만나게 된다, 그들중 한 사람은
조선교회가 보낸 밀사 김 프란치스코였다. 이때 그는 품속에서 앵베르 범 주교가 잡히기
전날까지 기록한 순교 행적과 모방,샤스탕 신부의 마지막 편지와 다시 성직자를
보내달라는 조선 교우들의 탄원서를 김대건에게 내어주었다.7년만에 만난 고국의 교우와
헤어져 홀로 변문으로 들어가 다음날 의주를 향해 길을 떠난 김대건은 중국인 교우에게
김프란치스코로부터 받은 문서를 메스트로 신부에게 보내주길 부탁하고 130리 길을 하루에
걸어 멀리 의주가 바라보이는 곳에 이르렀다.아슬아슬한 순간을 수없이 겪고 관문을 통과해
조국땅을 달리던 김대건은 추위에 못이겨 주막에 들렀는데 사람들이 그의 얼굴과
중국신 등을 수상히 여겨 첩자나 도망치는 죄인으로 보고 고발하겠다고 떠들어대는 것이었다.
체포될것같아 김대건은 다시 의주로 발길을 돌렸다. 굳센 김대건도 이틀 동안 아무것도
먹지 못하자 지쳐서 눈속에 쓰러져 잠들었다.이때 어디선지 "일어나 걸어라"하는
소리가 들리고,그림자 같은것이 어둠속에서 길을 가르쳐주는 것이 보였다.
훗날 김대건은 이일을 천주의 섭리였다고 말했다. 고난의 여행뒤 1844년 12월 15일
페레올 고주교에게 부제품을 받았다.김대건과 최양업은 소정의 공부를 끝냈으나
만25세가 되지않아 신품을 받지못하고 있다가 부제품을 받게된 것이다
1845년 1월초 의주쪽으로해서 몰래 김대건 혼자 입국하니, 참으로 10년만에 대하는
고국산천이었다.그에게는 교회의 실정을 자세히 보고하고 주교를 맞아들여야 하는
중대한 임무가 주어져 있었다. 서울 돌우물골에 작은 짐을 지고 꼭 만나야 하는
교우들만 접촉하면서 순교자들의 자료를 수집하는 동안,긴장이 풀린탓인지 열병을 몹시앓았다.
하느님 보호로 건강이 회복되자 준비해온 150냥으로 배 한척을사서 성직자를 맞을 채비를했다
어머니 고 우르술라가 기해박해때 남편이 순교하고 이리저리 떠돌며 걸식하고 있음을
알고서도 어머니를 찾아뵈올 엄두도 못내니 김대건은 현석문등 11명의 교우들과 그해 4월에
상해쪽을 향해 배를 띄웠다.교우들 중에는 배를 타본일조차 없던 6명의 농부도 있었다.
폭풍우를 만나 3일 동안 밤낮없이 시달리어 김대건은 끌고가던 종선과 두 개의 돛대를
베어 버리고 무거운 짐들도 바다에 던져 버렸다. 김대건 역시 심하게 배멀리미에 시달렸으나
힘써 아무렇지도 않은듯이 성모 마리아의 성화를 내보이면서 "겁내지 마시오.
성모 마리아께서 도와 주실 것입니다."하고 안심을 시켰다.
이렇게 일행이 곤경에 빠져 있을 때 산동 배가 가까이에서 그대로 지나가려는 것을
김대건이 옷을 흔들고 북을 치면서 구조를 청해 상해까지 배를 끌고 가주기로 하엿다.
김대건부제 일행이 상해에서 페레올 고주교를 기다리고 있을때 주교는 마카오에 있었다.
반가운 소식을접한 고 주교는 다블뤼 안신부를 대동하고 상해로와서 김대건을 반갑게 만났다.
조선입국 준비가 완료 되었다는 보고를 받고 고주교는 서둘러 김대건 부제에게 서품식을
올릴 차비를 서두르도록 지시했다.
1845년 8월 17일 상해로부터 20리쯤 떨어져 있는 김가항이라는 교우촌의 성당에서 열명도안되는 조국 동포들이 지켜보는 가운데 김대건은 페레올 고 주교 집전하에 한국인
첫사제로 서품되었다. 이는 조선 천주교회 설립후 실로 60 여년만에 최초의 방인 사제가
탄생되는 감격적인 순간이며 역사적인 순간이라 아니할수 없습니다, 그 달 24일 주일에는
만당 소신학교에서 안 다블뤼 신부가 복사하는 가운데 첫 미사를 드리게 되었다.
우리의 탁덕 김대건 신부는 곧 교우들이 수리하고있는 배로 돌아가서 조선으로 돌아갈
즐거움을 그들과 나누고 있었다. 그해 8월 31일 페레올 고 주교는 길이가 25척이고 폭이 9척 깊이가 7척인
그작은 배를 라파엘이라는 이름을 붙이고 김대건 신부,안 신부, 조선교우들은 그 밤으로 조선을 향해
바닷길을 떠나게 되었다. 라파엘호는 처음에는 다행히 요동 방면으로가는 중국 교우의 배에
끌리어 산동성까지 무사히 이르렀으나 갑자기 거센 풍파를 만나게 되어 키는 부러지고
돛은 찢어져서 더 이상 항해할 수 없게되었다. 물결이 치는 대로 배를 맡기고 있자 풍파가
차차 가라않게 되었다. 새로 키와 돛대를 마련해 동쪽으로 뱃머리를 향했다.
라파엘호는 수호천사의 인도를받아 9월 28일에는 제주도의 해안에 닿게 되니, 이로부터
전라도와 충청도 사이에 있는 금강으로 접어들어 60리쯤을 올라가서 은진군 강경리
나바위라는 조그만 교우촌에 닻을 내리게 되었다. 사제가 되어 돌아온 김대건과, 꿈에도
조선 입국을 그리워하며 6년을 준비한 페레올 고 주교의 기쁨은 어떠했으랴!!...
...3 편으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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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각계 원로들, "국보법은 한국판 파시즘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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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1294
이윤석
2004-09-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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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인권을 침해하고 있는 법 - 국제 앰네스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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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윤석
2004-09-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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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03위 성인전 1, 聖 김대건 안드레아 신부..2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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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1288
신성구
2004-09-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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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양 안드레아 형제님, 한숨쉬고 잘 생각해보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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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1287
정재훈
2004-09-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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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나는 결국 무엇을 가르치게 될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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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1285
지요하
2004-09-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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