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별로 재미도 없고 긴글 3

71548 석일웅 [urnice] 2004-09-22

 

국가보안법과 신앙인

 

3. 민족의 화해와 신앙인의 역할


제2차 세계대전이 끝나 일제의 식민지에서 벗어난 우리는 남북의 분단으로 이념적 대립이 심화되고, 한국전쟁으로 수많은 인명과 재산을 잃었다. 이 때문에 같은 말과 전통을 가지고 있는 한 민족이면서 남과 북은 서로 상대방을 비방하고, 긴장 관계를 고조시켜 씻을 수 없는 상처를 안겨 주었다. 국가보안법은 북한을 반국가 단체로 규정하여(제2조) 일반 시민들에게 북한과의 접촉을 차단했고, 이산가족들이 서로 소식도 전하지 못하는 한심스러운 상태를 지속해 왔다.


1972년 7·4 남북공동선언이 발표될 때 우리는 민족의 화해가 이루어지고 평화가 찾아올 수 있다는 희망을 가졌었다. 그러나 남북은 독재 체제를 강화했고, 박정희는 유신 체제를 구축하여 국가보안법으로 국민을 더욱 핍박했다. 이는 독재자의 탐욕이 무엇을 말해 주는지를 새삼 일깨우게 한 것이다. 남북 기본 합의서가 채택되고 남북이 동시에 UN에 가입하여 서로가 체제를 존중하기로 합의했는데도 북한을 적대시하고 정권의 편의에 따라 이른바 북풍을 적절히 이용해 온 것은 참으로 부끄러운 일이다.


남북은 서로 이념적 대립을 하는 냉전 시대에도 적대 감정을 심어 주기보다는 공동선을 추구하고 민족의 화해와 일치를 위한 노력을 하는 것이 마땅했다. 우리는 오늘날 동서의 벽이 무너지고 하나의 세계를 지향하는 시대에 살고 있다. 더구나 지난해에 김대중 대통령과 김정일 국방 위원장이 평양에서 만나 채택한 '6·15 남북 공동 선언'에서 서로 이해를 증진시키고 평화 통일을 모색한다는 합의가 이루어지고, 이산가족의 만남에서 우리는 한 핏줄이고 한 가족임을 확인했다. 그런데도 북한이 변화하지 아니했다는 이유로 국가보안법을 유지하고 이에 따라 사람을 옥에 가두겠다는 생각을 할 수 있는가?


물론 북한도 변화해야 한다. 인간의 보편적 권리와 의무를 존중하는 사회로 바뀌어야 한다. 남과 북은 적대 관계를 청산하고 공동선을 실현하는 정치 체제를 갖추어 서로 신뢰할 수 있을 때 평화적인 통일이 이루어질 것이다. 이를 위하여 서로 신뢰를 쌓아 나가야 한다. 우리는 북한이 아무런 변화를 보이지 않고 있다는 소리로 대응할 것이 아니라 먼저 국가보안법을 폐지하고, 우리 사회에 만연한 부정부패를 청산하여 국민의 신뢰를 바탕으로 굳은 안보 태세를 갖추어 북한의 변화를 이끌어 내야 한다.


우리는 국내외적으로 어려운 시기에 살고 있다. 오늘 우리나라의 정치, 경제, 사회의 각 분야에서 부정부패가 만연되고 있는 현상은 그리스도를 믿고 따르는 신앙인이 세상의 소금과 빛(마태 5,13-14)으로서 제구실을 다하지 못한 데서도 비롯한다. 예수님께서는 제자들에게 "나를 따르는 사람은 누구든지 자기를 버리고 제 십자가를 지고 따라야 한다. 제 목숨을 살리려고 하는 사람은 잃을 것이며 나를 위하여 제 목숨을 잃는 사람은 얻을 것이다."(마태 16,24-25)라고 가르치셨다. 이는 모든 신앙인에게 내려진 엄숙한 명령이다.


정치권력은 공동선을 목적으로 행사되어야 하고, 국민이 자발적으로 정치권력에 복종하는 것은 그 정치권력이 정당성이 있을 때에만 가능하다. 우리의 헌정사에서 5·16 쿠데타에 의한 군사 정권이나 12·12 반란으로 성립한 전두환 정권은 강압적인 힘으로 국민의 복종을 강요했고, 이에 저항한 사람들을 긴급 조치나 국가보안법으로 다스린 것은 일종의 폭력 행위라 할 수 있다. 여기에서 신앙인이 하느님의 진리를 거슬러 독재자의 힘에 기대어 인간을 고문하고 가혹 행위를 했다면 이는 자신의 생명을 잃는 행위를 한 것이다. 박종철의 고문에 가담한 자 가운데 기독교 신자가 있었다는 사실은 이를 드러내는 것이고, 독재자의 비위를 맞추면서 세속적인 출세를 하고 있는 신앙인도 예외는 아니다.


1974년 4월 긴급 조치 4호가 발표되고 이른바 민청학련 사건으로 250여 명이 검거되었을 때 발생한 지학순 주교의 구속 사건은 교회가 유신 헌법의 허구적 기만성과 그 폭력성을 깨닫게 해 주었다.12) 지 주교는 내란죄로 기소되어 재판을 받아 군법 회의에서 실형 선고를 받은 후, 1974년 8월 10일자 항소문에서 "나는 1974년 7월 23일 아침 양심선언을 통하여 소위 비상 군법 회의라는 것은 그 스스로 법과 양심에 따라 독립하여 판단할 수 없는 꼭두각시로 규정하고 비상 군법 회의에서의 재판을 부정한 바 있다. 따라서 본인이 항소를 제기한 것은 주어진 판결의 감형을 구걸하기 위해서가 아니라 독재 권력의 직접적인 하수 기관이 비상 군법 회의의 법이라는 이름을 빌린 폭력을 나 스스로 확인하기 위함이며 극형과 무기 징역 등 혹형에 시달리는 여타의 민주 학생 및 민주 시민과 동열에 서기 위함이다."13)라고 밝히고 있다.


정의가 없는 정치권력은 폭력 집단일 뿐이다. 이러한 상황에서 신앙인의 역할은 무엇인가? "교회가 언제나 어디서나 참된 자유를 가지고 신앙을 선포하고, 사회에 대한 교리를 가르치며 ...... 인간의 기본권과 영혼들의 구원이 요구할 경우에는 정치 질서에 관한 일에 대해서도 윤리적 판단을 내리는 것은 당연하다."14) 여기서 신앙인은 누구나 사회 교리에 입각하여 부당한 권력 행사에 대해서 고발하고 저항하는 것은 마땅하다.15)


죄인을 부르러 오신 그리스도께서는 모든 인류를 당신의 품안으로 불러들이고 죄인의 회개를 이끄신다. "하느님께서는 모든 사람이 구원을 받게 되고 진리를 알게 되기를 바라신다."(1디모 2,4)라는 바오로 사도의 말씀이 이를 말해 준다. 그리하여 교회는 정의에 어긋나는 권력을 행사하는 자라 하더라도 그의 구원을 위하여 그 잘못을 지적하고 고발하여 회개하도록 이끄는 것이 필요하다. "어떤 형제가 너에게 잘못한 일이 있거든 단 둘이 만나서 타이르고, 말을 듣지 않으면 둘이나 셋이 가서 타이르고 그래도 말을 듣지 않으면 교회에 알려라."(마태 18,15-17 참조)라고 가르치신 예수님의 말씀은 신앙인의 자세를 일깨운 것이다. 그리고 신앙인까지 권력의 타락에 편승하여 자신의 안일이나 영달을 꾀한 잘못에 대하여 모두 함께 참회하고 이를 바로 잡으려는 노력을 해야 할 것이다.


신앙인들은 가톨릭이든 개신교이든 불교이든 가리지 않고 민족의 화해와 일치를 위한 기도와 희생을 바치고 있다. 신앙인들이 증오와 갈등을 풀고 하느님의 정의와 사랑으로 서로 화해하고 일치할 수 있는 길을 모색하는 것은 당연한 요청이다. 가톨릭교회는 그동안 꾸준히 북한 교회를 위하여 기도하고, 특히 1995년 서울대교구는 민족화해위원회를 설치하여 북한의 형제를 돕는 일에 적극적으로 나서고 있다.


지난 2000년 6월 25일 민족의 화해와 일치를 위한 기도의 날에 민족화해위원회 위원장이신 강우일 주교는 "지난 세기를 마감하는 마지막 시대에 이미 세계 역사는 큰 전환점을 맞고 이념의 대립과 냉전 구도는 막을 내렸습니다. 다만 오직 이 한반도만은 예외적으로 지구상에서 유일하게 이념과 체제의 대립을 극복하지 못하고 전쟁의 위협을 항시 내재하고 있었습니다. 그러던 이 한반도에도 이 대 희년에 드디어 역사의 새 장이 열리려 하고 있습니다. 분단 55년 만에 성사된 남북 정상 회담은 평화 공존과 통일의 길을 모색하며 이산가족의 상봉을 약속하고 상호 협력과 교류를 다짐하며 7천만 겨레에게 희망을 안겨 주었습니다."라고 말하고, 우리는 북한 동포도 우리와 한 핏줄이며 같은 문화적 동질성을 갖춘 사람들임을 확인하고 존중하는 마음부터 배워야 할 것임을 강조하고 있다.


이 시대를 사는 신앙인들은 그리스도의 정의와 사랑으로 분단 반세기의 벽을 허물고 민족의 화해와 일치를 이루는 평화의 도구가 되어야 한다. "미움이 있는 곳에 사랑을, 다툼이 있는 곳에 용서를, 분열이 있는 곳에 일치를, 의혹이 있는 곳에 신앙을, 그릇됨이 있는 곳에 진리를, 절망이 있는 곳에 희망을, 어둠이 있는 곳에 빛을, 슬픔이 있는 곳에 기쁨을 가져오는 자 되게 하소서."라는 프란치스코 성인의 평화를 구하는 기도를 생활화하도록 하는 것이 우리 사회의 갈등을 해소하고 하나로 모으는 길이 될 것이다.


4. 맺는 말


우리는 남북의 분단뿐 아니라 동서의 지역감정으로 얼룩진 참으로 서글픈 모습을 지니고 있다. 그리스도의 사랑을 생활화하여야 한다는 신앙인까지도 그 탁류에서 크게 벗어나지 못하고 있는 것이 우리 현실이라 여겨진다. 냉전이 종식되고 각 나라는 국가 이익을 앞세워 각축을 벌이고 있는 것이 오늘의 세계이다. 우리는 민족의 동질성을 살려 남북의 분단을 극복해야 한다. 민족의 화해와 일치를 이루기 위하여 상호 존중하고 공동선을 실현하여 북한의 변화를 이끌어야 한다. 물론 우리도 집단적 이기심을 버리고 지역적 갈등을 해소하여 서로 화해하고 용서하는 풍토가 자리 잡도록 해야 한다.


성 토마스 데 아퀴노가 "공동선에로 질서 지우는 것이 법의 근거이다."16)라고 가르치고 있는 것처럼 법은 사람이 지켜야 할 사회적 규범으로서 공동선의 실현을 그 목적으로 하고 있다. 국가보안법은 그 제정이 적법 절차를 밟았다고 보기도 어렵고, 게다가 그 법의 내용도 이성을 통해서 비추어진 자연법의 원리에도 맞는다고 볼 수 없다.


"인간의 법은 올바른 이성과 일치하는 한도 내에서, 따라서 영원한 법에 기원을 두는 한도 내에서 법이다. 그러나 그 법이 이성과 모순 될 때 그것은 악법이 되며, 이런 경우에 그 법은 더 이상 법이 아니라 폭력 행위가 된다."17)라는 성 토마스의 가르침에 따라 보면 국가보안법은 폭력 행위에 악용된 전형적인 악법이다. 남북 정상 회담 이후 민족의 화해와 일치를 위하여 힘을 기울여야 할 이 시기에 국가보안법의 개폐를 놓고 정치적 논쟁을 일삼기보다는 이를 폐지하고 사회적 갈등을 풀어야 한다. 신앙인은 진리를 증언하고 실천하는 것이 그 소명이다.


"진리를 따라 사는 사람은 빛이 있는 데로 나아갑니다"(요한 3,21). <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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