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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랑은 인동초 (忍冬草) - 돈수 (頓修)의 길이다

101365 김영악 [skrghkdka] 2006-06-28

사랑은 인동초 (忍冬草) - 돈수 (頓修)의 길이다

진흙 한 덩이로 당신의 모습을 빚고 나의 모습을 빚습니다. 그리고 그 진흙을 한데 짓눌러 뭉갭니다. 그러고 나면 안에 당신의 모습이 있고, 당신 안에 나의 모습이 있습니다. 송(宋)나라 시(詩)「부부 」

일본 시골에서 흔히 보는 광경으로 밭 두렁 구석에 앙징맞은 화단(花壇)이 있다. 두 평(坪)도 될까말까한 그곳에 볼품없는 몇 가지의 꽃이나 오이가 심겨진 것을 보는데 오이가 늙어 비틀어진 것을 보면 결코 반찬용으로 키운 것은 아닌 것 같았다.

또 하나는 동구(洞口)에 있는 올망졸망한 묘지(墓地) 앞에 갓 올려진 듯 아직 생생한 야생화 한 송이나 생나무 가지를 볼 수 있다. 저들은 아마도 일 나가며 또 끝내고 귀가할 때에 저렇게 고인(故人)들과 정감(情感)을 나누는가보다.

거기에 비하면 우리의 밭떼기는 숟가락 꽂을 틈도 없는 치열한 각축장(角逐場)이요 공동묘지(共同墓地)는 귀신(鬼神)이 손짓하는 으스스한 냉골이다. 너무나 각박(刻薄)하고 살풍경한 풍경이다.

하루도 빠짐없이 조석(朝夕)으로 성당에 들려 조배(朝拜)를 드리고 가는 농부가 있었다. 제대(祭臺) 앞에서 감실(龕室-성체를 모신 상자)을 바라보고 있는 농부의 얼굴 - 무슨 기쁜 이야기를 나누는 듯 환희와 평화가 넘쳐있었다. 궁금함을 이기지 못한 신부는 집으로 돌아가는 농부를 불러 아까 무슨 대화(對話)를 나눴느냐고 물어 보았다.

" - 대화(對話)요? 저는 그냥 기뻐서 성체(聖體)를 바라만 보고 있었는데요. -"

불교에서는 「돈오(頓悟)」의 깨우침 뒤에 맞는 길이 그만 두 갈레로 갈라져 수 백년을 자기가 옳다고 으르렁댄다.

점수(漸修)냐? 돈수(頓修)냐?

돈오(頓悟)로 「혼돈(混沌)의 알(卵)」에서 해탈(解脫)의 밝음은 얻었다. 그런데 그 다음의 지향(指向)이 맹진(猛進)할 것이냐? 아니면 토대(土臺)를 굳건히 할 것이냐의 갈림길인 것이다.

여기서 「사랑」의 길만을 택한다면 그것은 점수(漸修)의 길인 것이다. 즉 사랑은 끝없는 교감(交感)속에 자라는 것이지 「백년의 고독(孤獨)」 을 뚫고 솟는 「천년의 사랑」이 얻어지는 것이 아니다.

죽순(竹筍)의 사랑이 아니고 쑥(野菊)처럼 인고(忍苦)속에 다져지며 커가는 사랑인 것이다.

씨를 뿌리는데 어떤 것은 흙이 많지 않은 돌밭에 떨어졌다.

싹은 곧 나왔지만 흙이 깊지 않아서 해가 뜨자 타버려 뿌리도 붙이지 못한 채 말랐다.

마태복음 13, 5

TV나 잡지에 스위트 홈이라며 소개되는 젊은 부부들의 행복과 사랑 타령을 보면 어찌 그리도 속물(俗物)의 먼지와 남에게 보이기 위한 화장(化粧)만이 덧칠해져 있는지 메스껍다. 부부간에도 범접(犯接)치 못하는 「독립된 시공(時空)」을 따로 갖고 있다고 「별빛 같은」눈초리로 말하는 모습에는 차라리 소름이 돋는다.

.............너희가 내 안에 있고 내가 너희 안에 있다는 것을 깨닫게 될 것이다. 요한 복음 14, 20

다음은 어느 중로(中老)의 여인(女人)에게서 들은 이야기다. 여인이 젊었을 때였다. 남편이 거듭 사업(事業)에 실패(失敗)하자, 이들 내외는 갑자기 가난 속에 빠지고 말았다.

남편은 다시 일어나 사과 장사를 시작했다. 서울에서 사과를 싣고 춘천(春川)에 갔다 넘기면 다소의 이윤(利潤)이 생겼다.

그런데 한 번은, 춘천으로 떠난 남편이 이틀이 되고 사흘이 되어도 돌아오지를 않았다. 제 날로 돌아오기는 어렵지만, 이틀째에는 틀림없이 돌아오는 남편이었다.

아내는 기다리다 못해 닷새째 되는 날 남편을 찾아 춘천으로 떠났다.

"춘천에만 닿으면 만나려니 했지요. 춘천을 손바닥만하게 알았나 봐요. 정말 막막하더군요. 하는 수 없이 여관(旅館)을 뒤졌지요.

여관이란 여관은 모조리 다 뒤졌지만, 그이는 없었어요. 하룻밤을 여관에서 뜬눈으로 새웠지요. 이튿날 아침, 문득 그이의 친한 친구 한 분이 도청(道廳)에 계시다는 것이 생각나서, 그분을 찾아 나섰지요. 가는 길에 혹시나 하고 정거장(停車場)에 들러 봤더니……."

매표구(賣票口) 앞에 늘어선 줄 속에 남편이 서 있었다. 아내는 너무 반갑고 원망(怨望)스러워 말이 나오지 않았다.

트럭에다 사과를 싣고 춘천으로 떠난 남편은, 가는 길에 사람을 몇 태웠다고 했다. 그들이 사과 가마니를 깔고 앉는 바람에 사과가 상해서 제 값을 받을 수 없었다.

남편은 도저히 손해(損害)를 보아서는 안 될 처지(處地)였기에 친구의 집에 기숙(寄宿)을 하면서, 시장 옆에 자리를 구해 사과 소매(小賣)를 시작했다. 그래서, 어젯밤 늦게서야 겨우 다 팔 수 있었다는 것이다. 전보(電報)도 옳게 제 구실을 하지 못하던 8·15 직후였으니…….

함께 춘천을 떠나 서울로 향하는 차 속에서 남편은 아내의 손을 꼭 쥐었다. 그 때만 해도 세 시간 남아 걸리던 경춘선(京春線), 남편은 한 번도 그 손을 놓지 않았다.

아내는 한 손을 맡긴 채 너무도 행복해서 그저 황홀에 잠길 뿐이었다.

그 남편은 그러나 6·25 때 죽었다고 한다. 여인은 어린 자녀(子女)들을 이끌고 모진 세파(世波)와 싸우지 않으면 안 되었다.

"이제 아이들도 다 커서 대학엘 다니고 있으니, 그이에게 조금은 면목(面目)이 선 것도 같아요. 제가 지금까지 살아 올 수 있었던 것은, 춘천서 서울까지 제 손을 놓지 않았던 그이의 손길, 그것 때문일지도 모르지요."

여인은 조용히 웃으면서 이렇게 말을 맺었다.

김 소운 「가난한 날의 행복」

「성인전(聖人傳)」 을 보면 그분들은 정말 하찮은 일들을 가지고 예수님과 이야기를 나눈다. 저 이름 모를 야생화(野生花)와 나비가 꾸미는 그런 사굄이 사랑의 진면목(眞面目)인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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