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서 공석 신부님의 강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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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1629 강점수 [sooyaka] 2006-07-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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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 김대건 안드레아 사제 순교자 대축일 2006년 7월 5일
마태 10, 17-22.
오늘은 김대건 신부를 기억하는 날입니다. 그분은 열여섯의 어린 나이로 조국을 떠나 외국을 전전하며 어렵게 공부하여 한국인 첫 사제가 되었습니다. 귀국하여 8개월 동안 활동하다가 체포되어 3개월의 옥고를 치른 후 한강변 새남터에서 참수 순교하였습니다. 1846년 9월 16일, 지금으로부터 160년 전의 일입니다. 당시 겨우 스물여섯의 젊은 나이로 하느님에게 가셨습니다.
그분이 집을 떠난 지 6년 후, 아직 신부가 되지 않은, 스물두 살의 청년일 때, 조선에 입국하기 위해 중국 요동 땅에 머문 일이 있었습니다. 그 때 조선에서 온 신자들로부터 자기 부모에 대한 소식을 전해 들었습니다. 그는 파리 외방선교회 본부로 보내는 보고서에 자기가 들은 소식을 다음과 같이 언급합니다. “저의 부모는 많은 고난을 당하여 부친은 참수되었고 모친은 의탁할 곳이 없는 비참한 몸으로 교우들 가운데 떠돌아다니고 있다 합니다.” 사실 그의 부친 김제준은 아들을 떠나보내고 3년 뒤에 아들을 해외로 보낸 죄 때문에 참수형으로 순교하였습니다. 그때부터 그의 모친 고 우르슬라는 의지할 곳 없이 이집 저집을 떠돌며 살았습니다.
김대건 신부가 체포되어 서울 포도청의 옥에서 죽음을 기다리면서 당시 조선 교구의 교구인장 페레올 주교에게 작별 인사 편지를 쓴 것이 있습니다. 그 편지 마지막에 자기 모친을 부탁하는 내용이 이렇게 적혀 있습니다. “저의 어머니 우르술라를 주교님께 부탁드립니다. 어머니는 10년이 넘는 세월 동안 아들을 보지 못하다가 며칠 동안 한 차례 아들을 볼 수 있었습니다. 그러나 곧 다시 아들과 헤어져 살아야 했습니다. 슬퍼하실 어머니를 부디 위로하여 주십시오. 주교님의 발아래 엎드려 마지막 인사를 드립니다.”
그리스도 신앙은 그 초기부터 순교자들을 많이 배출하였습니다. 오늘 우리가 들은 복음은 초기 교회에 있었던 박해와 순교를 반영하는 내용입니다. 예수님의 제자들은 모두 유대인이었고, 그들은 예수님이 돌아가신 다음에도 유대교 회당의 집회에 참석하였습니다. 신앙인들은 십자가에 돌아가신 예수님이 부활하여 살아 계시다고 믿었습니다. 그들은 유대교 회당에서 예수님에 대해 발언하다가 매 맞고 쫓겨납니다. 오랜 세월 동안 그리스도 신앙인들은 그런 고통을 겪으면서 차차 유대교를 떠나 교회라는 독자적 공동체를 만들었습니다.
복음서들의 여기저기에서 우리는 그 고통의 흔적들을 봅니다. 오늘 우리가 들은 복음도 그 중의 하나입니다. 신앙인들이 ‘법정에 넘겨지고’, ‘회당에서 매질 당하고’, ‘심문을 받는다.’고 말합니다. 바울로 사도는 고린토 사람들에게 보낸 편지에서 “유대인들로부터 40대에서 하나가 모자라는 매를 다섯 차례나 맞았다.”(2고린 11,24)고 기록하고 있습니다. 그런 박해는 처음부터 적대감을 지닌 사람들에 의해서 자행되지 않았습니다. 오늘 복음은 말합니다. ‘형제가 형제를 넘겨 죽게 하고 아버지가 자식을 그렇게 하며, 자식들도 부모를 거슬러 일어나고 죽게 할 것이다.’ 가족의 혈연이 찢어지고 친지들의 따뜻함이 미움으로 바뀌는 아픔을 체험하였다는 말씀입니다. 그것은 한국의 순교자들도 겪었던 일입니다. 순교자들은 신앙인이 되었다는 이유 하나로 가문에서 파문당하고 가족들로부터 외면당하였습니다. 신앙인 한 사람이 발각되면 그 가문 전체가 고초를 겪어야 했습니다. 한 가정에서 신앙인이 체포되면 나머지 가족들은 노비로 전락하는 비극을 겪어야 했습니다.
초기 신앙인들은 박해를 받으면서, 십자가에서 돌아가신 예수님의 삶을 산다고 생각하였습니다. 잡혀갔을 때에 ‘어떻게 말할까? 무엇을 말할까 걱정하지 마라.’는 말씀도 오늘 복음에 있었습니다. 그 시대 신앙인들은 예수님 안에 하느님의 영이 살아 계셨듯이 그들 안에도 아버지의 영이 살아 계셔서 말씀하신다고 믿었습니다.
초기 그리스도 신앙인들은 이렇게 죽음을 각오한 이들이었습니다. 그리스도 신앙의 초기 팔레스티나에서도 그러했고, 19세기 우리나라에서도 그러하였습니다. 그러나 그리스도 신앙은 죽음을 향한 여정이 아닙니다. 신앙은 하느님의 자비와 용서를 사는 삶의 운동입니다. 죽기 위한 길이 아니라, 하느님과 더불어 자비롭게 크게 살기 위한 길입니다. 세상은 단죄하고 벌주면서 그 질서를 유지합니다. 예수님 시대 유대교 기득권층이 만든 질서가 있었습니다. 율법을 철저히 지키고 성전 제사 의례에 충실하여, 하느님으로부터 벌을 받지 않고 많은 축복을 얻어내자는 것이었습니다. 그러나 예수님이 믿고 계셨던 하느님은 그런 분이 아니었습니다. 하느님은 당신의 자비와 용서를 사람들이 실천할 것을 원하십니다. 예수님의 그런 주장과 삶은 그 시대 유대교 기득권층이 만들어 놓은 질서에 혼란을 초래하는 일이었습니다. 그들은 예수님을 제거하여 그들이 만든 질서를 지키고자 하였습니다.
그리스도 신앙이 우리나라에 들어온 것은 18세기말이었습니다. 그 시대 조선 정부는 철저한 유교적 질서를 지향하고 있었습니다. 효(孝)와 충(忠)을 지상 가치로 보는 질서였습니다. 그리스도 신앙은 사람들의 시선이 하느님에게로 가는 질서를 가르쳤습니다. 효와 충은 그 질서 안에 있지만 이차적이었습니다. 이런 이념적 이질감에다, 사분오열되어 다투던 그 시대 당파싸움이 가세하여, 그리스도 신앙을 사악한 종교로 낙인찍었습니다. 그래서 순교의 피를 흘린 사람들의 수가 20,000명에 육박합니다. 순교까지는 하지 않아도 순교자의 가족이기 때문에 겪어야 했던 고통까지 생각한다면, 참 많은 생명이 희생당하였습니다.
예수님이 믿고 계신 질서는 강제로 또 획일적으로 통제하는 질서가 아니었습니다. 하느님의 자비와 용서를 자유롭게 배우고 실천하는 질서입니다. 그 질서에서는 아무도 희생당하지 않습니다. 우리의 자발적 희생이 있어서 다른 사람들이 사는 질서입니다. 예수님은 당신의 죽음 앞에 혼자 나서십니다. “나를 찾고 있다면 이 사람들은 보내주시오”(요한 18,8). 체포되면서 하신 말씀입니다. 예수님은 스스로가 죽어서 다른 사람을 살리는 질서를 지향하십니다. 그것이 그리스도인이 살아야 하는 질서입니다. 교회 초기부터 신앙인들은 박해를 당하고 목숨을 잃으면서, 예수님이 여신 질서를 산다고 생각하였습니다. 순교는 예수님의 삶을 자기 안에 실현시키는 일이었습니다. 죽음이 중요하지 않습니다. 죽음의 경계를 넘어서도 하느님은 우리와 함께 살아 계십니다. 하느님의 자비를 실천하여 하느님 나라의 질서가 우리 안에 실현되게 하는 신앙입니다. 그것을 위한 예수님의 죽음이었고, 그것을 위한 신앙인의 순교였습니다. ◆
서 공석 신부님의 강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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