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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느님을 눈으로 본 자의 공의 선포와 귀로만 들은 자의 공의 선포는 다르다]

101631 사두환 [kbecc] 2006-07-04

욥의 고난은 나의 고난입니다.

욥은 당대의 의인으로서 성경 인물 가운데 가장 처절한 고난을 받은 자 가운데 한 사람일 것입니다.

욥이 당한 고난은 하느님의 허락 하에 이루어진 고난입니다.

욥의 입장에서는 죄로 말미암음 보다는 애매히 당하는 그런 고난이었습니다.

 

베드로 사도는 증거 하기를 애매히 고난을 당할 때 하느님을 생각하므로 슬픔을 참으면 아름다운 은혜가 있을 것이라고 하였습니다.

욥에게 주어진 애매한 고난은 바로 이 아름다운 은혜를 더하시기 위한 하느님의 고귀하신 뜻입니다.

그러나 욥의 입장에서는 고난의 한 가운데서 자기의 당하는 고통의 애매함을 논하며 자기 생명의 시작이 된 근원에 대하여 많은 원망과 탄식으로 이어진 것을 봅니다.

또한 전지전능하신 하느님께서는 왜, 이런 애매한 고난으로 보잘 것 없는 인생 하나를 상대로 이처럼 전쟁을 치루시듯 하느님의 능력을 보이십니까 라는 원망도 수없이 쏟았습니다.

 

욥은 도무지 이러한 고난에 뜻을 당시는 알 길이 없었던 것입니다.

그저 자신은 최선을 다해 하느님을 섬기는 일생으로 살아 왔을 뿐인데 이에 비하여 당하는 자신의 고난이 너무 비애스럽다는 것입니다.

욥은 그러한 가운데서 위로차 찾아온 세 친구를 향하여 진리의 변론을 하였으며 욥은 하느님의 공의에 대하여 조금도 물러서지 않으며 그 힘든 자리에서도 일일히 세 친구를 능가하는 바른 공의를 내 세웠습니다.

욥은 진정 하느님의 공의를 세 친구 보다 제대로 알고 있었던 것입니다.

하느님의 역사는 바로 이렇게 귀로만 듣고 바로 알고 바로 말하는 욥에게 이 보다 더 할 그 무엇이 계셨던 것입니다.

 

그것은 욥이 고난의 끝 무렵에 스스로 고백합니다.

하느님은 무슨 경영이든지 못 이루실 것이 없습니다. 저는 공의를 바로 아는 정도이었을 뿐 인 것을 가지고 하느님의 경영 하심에 대하여는 무지한 입장을 취한 것이었습니다.

이러하신 경영에 대하여 공의의 말씀만 가지고 내 스스로 깨달을 수도 알 수도 없고 헤아릴 수도 없는 말을 하였다고 고백하였으며 이제는 공의의 말씀을 귀로만 듣고 바로 아는 것의 수준이 아니라 하느님의 저를 향한 이러하신 경영으로 인하여 그동안 하느님을 귀로 듣기만 하였으나 이제는 그 하느님을 눈으로 뵈옵나이다 라는 놀라운 은혜의 고백으로 욥에 신앙의 그 모든 시련이 마침을 합니다.

 

위에서 지적한 사도 베드로의 증거는 비록 단 마디의 증거 이지만, 바로 이러한 욥의 입장을 충분히 이해하고 수용한 증거인 것은 이미 베드로 자신도 이러함에 깊은 체험한 자 이었던 것입니다.

신앙에 우리는 누구든 크고 작은 애매한 고난을 평생을 통하여 감당해야 할 때가 있습니다.

동시에 다 그 자신의 입장에서 걸맞는 곧 받을 만한 시련이므로 시련의 비중으로 본다면 욥과 같은 것입니다. 

외형으로 보기엔 욥의 시련이 더 막중히 크게 보이나 그것이 아닙니다.

각자가 이런 시련을 받음은 그 나름대로 다 욥과 같이 처절한 시련인 것입니다.

 

문제의 이러한 시련에 대한 핵심을 놓치지 말아야 합니다.

우리는 공의의 말씀을 귀로 알고 듣고 배워서 잘 아는 수준의 것으로만 가지고는 안된다는 것이 하느님의 경영하심인 것입니다.

하느님은 자신을 우리들에게 스스로 보이시기를 원하시는 것입니다.

이 보이심을 위한 하느님의 경영에 뜻은 우리가 귀로만 듣고 입으로만 바로 알고 이해하고 증거하는 하느님에 대한 것만을 원치 않으시는 하느님 이십니다.

우리가 여기에만 머물면 입만 당차고 똑똑해지는 정당한 공의의 선생에만 머물 것입니다.

하느님은 그 입만으로만 아니라 눈으로도 직접 보게 하는 자리에 이르게 하시길 원하신 것입니다.

우리는 욥과 같이 그때서야 진정한 하느님의 양면을 다 보게 될 것입니다.

눈으로 본 자의 공의 선포는 하느님 은혜와 사랑의 공의 선포가 될 것입니다.

그러나 귀로 듣고 바로 알아 입으로 전하는 공의 선포는 하느님의 공의 증거는 될 지언정 은혜와 사랑이 거의 없을 정도로 결여 된 공의 선포라는 사실을 알아야 할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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