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빛과 소금 / 인동 할머니

101824 노병규 [vegabond] 2006-07-09

 

                   빛과 소금 / 인동 할머니


   누가 내게 “따라 살고 싶은 사람이 가까이 있느냐?”고 묻는다면 나는 ‘인동 할머니’라고 말할 것이다. 인동 할머니는 올해 아흔 살이고 우리 집 바로 아래 살고 계신다. 나이 마흔에 남편을 잃고 오십 년 동안 혼자서 농사지으며 살고 계신다.



   점심 무렵에 딸기 농사짓는 후배가 ‘무농약 딸기’라고 자랑삼아 가져왔다. 나는 할머니 드리면 좋아하시겠다 싶어 작은 소쿠리에 담아 가져갔더니 할머니가 피를 흘리고 있었다. 큰 돌에 치여 집게손가락 뼈까지 훤히 보였다. 내가 보기에는 큰 병원에 가야 할 것 같았다. 그래서 짐차를 할머니 집 앞에 얼른 세웠다.



   “할머니, 병원 가야 할 것 같습니다. 차에 얼른 타시죠. 제가 병원까지 모시다 드리겠습니다.”


   “어이구! 고맙네, 고마워. 몇 년 전에는 이것보다 더 심하게 다쳤는데도 병원 안 갔는데…. 며칠 지나면 다 나을 테니 걱정말고 일 보게.”


   “할머니, 제가 보기에는 병원에 가시는 게….”


   “괜찮네, 괜찮아. 이까짓 것 좀 다쳤다고 병원가면 언제 일하나.”



   아무리 말씀을 드려도 병원에 안 가실 것 같았다. 할머니는 옆에 있는 걸레를 손으로 찢어서 집게손가락에 감았다. 할머니 손에 찢어진 걸레를 보니 적어도 십 년 아니, 이십 년은 된 것 같았다. 얼마나 낡았으면 힘없는 할머니 손에 쉽게 찢어지겠는가.



   할머니는 고무장갑을 끼고 다시 밭일을 하러 나가시려고 했다. 나는 ‘이래서는 안 되겠다’ 싶어 짐차를 몰고 읍내에 가서 소독과 붕대, 바르는 약과 먹는 약까지 사 왔다. 소독하고 약을 바르고 깨끗한 붕대를 감아 드렸다. 집게손가락에 감겨 있던 피 묻은 걸레 조각을 쓰레기통에 버렸다. 그 모습을 본 할머니는 얼른 일어나 걸레 조각을 찾아오셨다.



   “할머니, 다 떨어지고 피 묻은 걸레 조각을 어디에 쓰시려고 가져오세요?”


   “깨끗하게 빨아서 다음에 쓰면 되지, 이 아까운 것을 왜 버리나.”



   나는 할 말이 없었다. 아니, 아무 말도 할 수 없었다. 다 떨어진 걸레 조각 하나 버리지 않고 살아온 할머니의 삶을 생각하니, 이 날까지 환경이니 생명이니 떠벌리고 돌아다닌 내가 얼마나 초라하고 부끄러운지….



   농사짓는다고 다 농사꾼이 아니라는 생각이 든다. 참 농사꾼이 되려면 농사꾼다운 생각과 행동이 따라야 하는 것이다. 여태껏 함부로 쓰고 버리며 살아온 나는 언제쯤 참 농사꾼이 될 수 있을까. 쉽지 않으리라. 검소함이 온몸에 배여 있는 할머니를 따라 살기에는 나는 아직 버려야 할 게 너무 많다는 것을 잘 알고 있기 때문이다.



   도시에서 자가용을 타고 다니며 온갖 더러운 매연을 뿜어대면서, 사람들에게 봉사와 희생을 요구하고 아이들에게 깨끗하고 아름다운 세상을 물려 주자고 외치는 사람들이 많다. 그렇게 환경이니 생명이니 떠들어대는 환경운동가보다 인동 할머니가 더 훌륭한 환경운동가라는 생각이 든다.


           ● 서정홍 안젤로·농부, 시인(前 마산교구 가톨릭농민회 총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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