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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의미사 (홍) 2026년 6월 11일 (목)성 바르나바 사도 기념일너희가 거저 받았으니 거저 주어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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따뜻한이야기
옴마야!.. 여기가 어디라요? ~~★순례길95처(구포성당/갓등이성당/수원성지)

100445 이명남 [agnes536] 2021-12-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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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반석아부지~ 오늘은 오후2시부터 눈이 펑펑 내린다카네요..

멀리 가지말고 수원교구에서 빼놓은 성당 세군데를 순례하고

눈이 쏟아지기 전에 집에 올라믄 빨리 출발해야 겠네요."


"리노할매가 정신이 나갔네~.. 하늘이 새파랗고 햇빛이

눈이 부시도록 쨍쨍한데 무~슨 눈.,, 같은 소리로 나를 재촉하고있어?"


"어제부터 대한민국 뉴스는 온통 매서운.,, 눈바람 휘몰아치는 이야기로

도배가 되어 있건만..... 지금 눈에보이는 것만보고 고집피워대는 것도

시간앞에, 보이지않는 것들 앞에 겸손하지 못한거 반성해야 될낀데~~어.이.구.!

"시끄러! 말도안되는 소리~"


공베르 신부의 열정이 서려있는 안성포도의 고향

경기도 안성시 구포동 80-1에 우뚝서있는 안성성당

(구)구포동성당이 오늘의 첫번째 순례지이다.


안성 성당하면 초대 주임 공베르 신부와 포도 이야기를 빼놓을 수 없다고 한다. 

1901년 성당 마당에 무심코 심은 독일산 포도 묘목이 의외로 탐스런 과실을 맺자

공베르 신부는 안성 지역이 포도재배에 적합한 기후 및 토양 조건을 갖추고 있다고 판단하곤...

당시 선교활동과 함께 지역민들의 경제적 자립을 위해서도 큰 힘을 기울이던 공베르 신부는

여러 차례 프랑스를 오가며 안성의 토질과 기후에 적합한 포도 종자를 찾았고, 


이를 적극 보급해 안성포도의 효시가 되었다. 또 성당 주변의 토지 50만 평을 매입하여

이웃들이 경작할 수 있도록 임대하며 지역민 전체를 품어 안았다.

 

안성에서 32년 동안 신자들을 돌보던 공베르 신부는 6 ․ 25 동란 때 체포되어 납북,

죽음의 행진을 계속하다가 1950년 11월 12일 동사하였다 한다.


안성문화원은 2012년 5월 공베르 신부를

‘안성을 빛낸 인물’로 선정하고 흉상 제막식을 가지며 고인을 기렸다 한다..

 

박해시대에 이미 복음이 전파된 안성 지역은 1866년 병인박해를 전후해서

여러 곳에 신자들이 거주했다. 그러나 박해로 공동체가 와해되고

훗날 순교자들의 후손이나 다른 지역 신자들이 이주해오면서 새로 교우촌이 형성되었다한다.

 

1883년 두세 신부가 안성 지역을 방문하여 바울 공소를 설립하고,

죽산과 직산 그리고 궁말과 선바위 공소를 차례로 설립했고.

1900년 1월 뮈텔 주교가 이 지역을 방문한 후 본당 설립 운동이 시작되어

안성읍내에 현 부지를 매입한 후 기와집을 성당으로 개조하여

그해 9월 드비즈 신부의 집전으로 낙성식을 거행했다한다.


이어 10월 19일 안성 본당이 설립되었다.

초대주임으로 임명된 공베르 신부는 1909년 사립 초등학교인

안법학교(현 안법고등학교의 전신)를 설립하여 자비로 운영했고,

1912년 여자부를 신설하며 샬트르 성 바오로 수녀회에서 교사수녀를 초빙했다.


또 공베르 신부는 1919년 3 · 1 운동에 참여했다가 왜경에게 쫓기던 사람들을

성당으로 받아들이고 프랑스 국기를 게양해 왜경의 진입을 막기도 했고,

프랑스에서 모금한 기금으로 전답을 매입하여 소작 농민들에게 나누어 줌으로써

가난한 농민들을 도왔으며, 흉년이 들면 사람들에게 양식을 나누어 주는 등

빈민 구제 활동도 벌였다한다.

 

1922년 공베르 신부는 신자들의 협력을 얻어 성당 건립 공사를 시작해

그해 8월 15일 성모 승천 대축일에 첫미사를 봉헌하고,

10월 4일 드브레 주교의 집전으로 봉헌식을 거행했다.

 

이 성당은 한식(내부)과 바실리카 양식(외부)을 절충한 형태로 토착화의 양식을 잘 보여준다.

1936년 제4대 주임 이복영 신부는 안법학교 교사를 증축하고 4년제에서 6년제

초등학교로 발전시켰으며, 다음해 4월 정규 보통학교로 인가받았다.

 

1947년 9월 김제근 신부는 안법중학교를 인가받아 개교하였고,

1955년 임세빈 신부는 고딕식 벽돌조로 성당 종탑부를 증축하고

독일에서 주문한 종을 설치했다한다. 


신축성당에선 한창 판공성사가 진행중이라 외부인은 들어가지 못하게 해서 

본래의 목적대로 아직도 건재한 아름다움으로 서있는 구포동성전을

올라가 바리케이트 쳐진 줄앞에 꿇어앉아 오늘도 우리주님을 알현하고

안을 들여다보니 세월의 무게를 간신히 견뎌내고 있는 성전안 기둥들이며

기물들은 많은 사람들이 들어가면 곧 무너져 내릴 것처럼 안스런 모습이다. 

          성전뒤뜰을 성모님품에 안긴 모습으로 사형을 언도받고, 십자가의 길을

묵묵히 걸어가는 우리예수님과 함께 오늘도 햇빛 쏟아져내리는 아이러니한

길을 걷는다.

"어머니께 청하오니~ 제맘속에 주님 상처 깊이새겨주소서~"

100주년 기념 고로스탑을 감상하고, 피에타의 성모상앞에 앉아

오늘도 감사와 청원의 기도를 올려보는 세상과 본향의 갈림길에

한쪽발씩 나눠담고 있는 리노할매이다.

성전 저~ 뒤로 천주교 학교(광암)가 있더라며 기어이 꼭대기까지

또 끌고 올라가는 할배덕분에 삼종의 은총을 만나게 되었다.

 

땡~ 땡~ 땡!............12번이든지... 세번만 칠줄 알았던 종소리는

끝없게 이어진다. 중년의 형제가 공중의 하얀줄을 힘껏 열정으로

당겨댄다. 멀리서 보면 꼭 그네타는 모습까지 연상케하는....

 

성호경을 긋고 내려오는 형제에게...

"종을 몇번 치시는 거예요?.. 물었더니 33번이란다.

 

리노할매 머리에 퍼뜩 떠오르는 생각에

"잉?... 대한독립운동가 33명과 상관 있나?...ㅋㅋㅋㅋ"

 

"할배요?... 와 33번이래요?"

"예수님이 33살에 돌아가신것도 몰라?서 하는 말이야?"

"옴마야! 맞다. 그란데 나는 와 그 생각을 못했을꼬?...

참 내... 예수님! 정말 미안합니더... 아직도 리노할매는

사이비 신자 밖에 안되는 기라요..ㅠㅠ"

 

안성성당 종지기아저씨를 만나자 마자 리노할배..

"안성구포성당에도 또 다른 춘복안드레아 형제가 있네...

하며 괴산성당 종지기 춘복씨에게 전화를 걸어댄다.

 

"여보시유~ 오늘은 또 어디성지를 순례하고 있시유"

"응. 오늘 안성성당에 왔는데 마침 삼종을 치는 광경을

목격했는데... 33번 종을 치던데 안드레아형제는 그 알어?"

"그야 당연히 예수님 나이지유~! 세계 천주교성당 모두가 다

33번 종을 치지유~ 

 

깨꼴딱~! 리노할매 쪽팔려 죽겠네...

 

깨어나라~ 맑아져라~ 기억하라~! 댕그랑~ 댕그랑~ 울려대는

종탑의 종소리 또한 요즘에는 옆 아파트 가족들 눈치봐가며

하루에 한두번만 칠수 있다는 말을 들으며 세상이 변해도 참

많이도 변하고 말았구나.... 사랑과 배려는 오데가고 율법의

콘크리트 벽만 높아져 가고 있구나~ ㅠㅠ

 

12시가 넘은 시간을 확인하며 다음목적지 화성 왕림리에 있는

왕림성당(갓등이공소)를 향해 달려간다.

 

아직도 도로엔 쏟아지는 햇살때문에 선글라스를 써야만 될

정도로 눈이 부시다.

 

"눈은 무슨~ " 궁시렁 거리는 할배의 핀잔소리를 들으며...

 

“갓등이”로 알려진 이곳은 1866년 병인박해를 전후하여 복음이 전해졌으며

“치명일기”에 수록된 최 야고보와 한 안드레아 등 2명의 순교자를 배출한 곳이고.

수원에서 충청도로 가는 산길에 위치한 왕림리는 박해시대에 전교여행을 다니는

선교자들이 많이 이용했던 곳이었다한다.

 

남의 눈에 잘 띄지 않을 뿐 아니라, 교우들이 사는 곳이기에 안전을 도모할 수 있었다하며.

앵베르 주교도 1839년 기해박해 때 이곳 공소에 은신하고 있었다한다.

 

서울의 주교, 신부들이 돌보던 갓등이공소는 1885년경부터 서울의 프와넬 신부가 혼자 맡아보다가,

1888년 7월 앙드레신부가 초대 본당신부로 부임하여 한수(漢水) 이남 경기도 최초의 본당이 되었다한다.

이듬해에 앙드레 신부는 200명을 수용할 수 있는 초가성당을 지었다하며.

 

관할지역은 수원군(현 화성군), 용인군, 안성군, 평택군 등 네 군에 공소는 24개,

신자총수 1,790명에 달하였다 전한다. 


1889년 6월 앙드레 신부는 ‘덕곡 김익제 사건’으로 고발당하여 서울 주교관에 소환되었다가

돌아와 이듬해에 별세하였으며.

2대 본당신부로는 알릭스 신부가 부임하였다한다.

 

교세의 확장으로 1895년에는 미리내본당을 분할하고,

1901년에는 33간의 웅장한 기와집 성당을 신축하였다. 

        본당은 교육사업도 활발했던 곳으로 1890년에는 지역의 문맹 퇴치와 복음 전파를 위해

한문서당인 삼덕학교를 설립했다한다. 본당은 가난으로 교육의 기회를 잃는 일이 없도록

누에를 키운 수익으로 전교생의 수업료를 면제하는 등 활발한 교육사업을 전개하기도 하다가.

6·25전쟁으로 폐교하게 됐지만, 갓등이 지역은 여전히 교육의 장소로서 명맥을 이어오다.

그때의 학교터에는 수원가톨릭대학교가 세워져 사제성소의 요람이 되었다한다.

 

교구는 1984년 한국 천주교 200주년 요한 바오로 2세 교황 방한 기념사업으로 교구

새 신학교 설립을 준비했는데, 그 장소로 왕림(갓등이)을 선택했다.고 전한다. 

갓등이는 성소의 요람도 되어서. 1985년에는 천주섭리수도회가 갓등이에 설립됐다고하며

왕림성당 옆에 자리한 수녀원에는 모원과 함께 수련소가 있어

여러 수도자들이 이곳에서 양성되고있다한다.

 

청소년·청년들을 위한 신앙교육의 공간으로 교구가 마련한 갓등이 피정의 집도

왕림성당 인근에 위치하고 있으며,,

갓등이 교우촌의 ‘갓등이’는 ‘갓을 쓴 등불’이라는 의미를 지닌

‘갓등이’는 신앙선조들이 사용하던 말이었다 전해져온다.

문이 꽈악 잠겨있는 성전계단을 내려와 성모님앞에서 촛불로 봉헌하고 우러러는데,

저만치 성전문 앞에서 열쇄를 기다리고 있는듯한 청년하나가 있어

"옳다구나!" 싶어 가만히 쳐다보고 있었더니 청년이 발길을 옮긴다.

그리고 성모상 뒤쪽 작은 나무쪽문을 열고 나간다.

 

그런데 안경낀 청년의 얼굴모양이 어째 성전현수막에 걸려있는 부제품 받은

분의 얼굴과 비스무리하다 싶기도한데...

"부제님이 저 쪽문넘어 어느작은 집에 사시나보다~" 하여 그것이 궁금한

할매는 호기심 발동하여 또 살며시 쪽문을 밀고 나가본다..

 

대궐보다 쬐끔작은 기왓집이 한채 작은 뜰을 품고 앉아있더라...

??.... 뭐꼬... 사제관 현판도 붙어있고.... 글씨가 다지워져 낡아버린

비석? 같은 길다란 돌덩이들도 있고.... 참 이상타~~!!

할배요... 일루 와보소 빨리....!

저 위로 오르는 높은 돌계단너머엔 또 어떤 세상이 나타날지....

할배와 함께 은행알이 뭉그러져 널려있는 낙엽길을 밟으며 약간은

미로같은 계단을 올라가니~~ 세상에! 여긴 또 어디야~~??

 

20여 년전 명봉산 꼭대기 용미리 공동묘지를 발견했을 때 신천지를

만났던 당황스런 감동을 오늘또 갖게 될줄이야....

 

그날 19살 아들놈과 추석미사를 끝내고 돌아오다 집뒤의 산이라도 한번

올라가보자고 처음으로 명봉산을 올랐던 것이다.

 

숨을 헐떡이고 땀을 줄줄 흘리며 올라선 산꼭대기 정상에 펼쳐진

컨츄리클럽 같은 넓다란 골프장? 같은 광활한 산등성이를 보곤 놀라서

환희에 찬 리노할매

 

"반석아! 여기가 오데고? 우리가 무신 골프장에라도 왔나보다 야~"

"그러게요.... 여기가 어딜까요?"

그렇게 확트인 신천지가 우리의 할배., 할매 부모들이 안식을 취하며

잠들어 있는 공동묘지였다는 걸 한참이 지난후에야 알게되었던 에피스드

를 오늘 또 만났는데..... 도대체 여기는 또 어딘고?

 

아늑한 산아래 말쑥한 건물들 이며.... 넓다란 주차장엔 몇대의 차들 또한 세워져 있고.

간간이 왔다갔다 산책이라도 하는듯한 남정네들 몇명....

저 아래 문으로 부터 올라온 택시에 함께 타려는 듯한 젊은 남정네를 보며..

 

"아저씨.... 도대체 여기가 어디라요?... 뭐하는 곳이라요?"

 

"네?,,.... 여기는 수원카톨릭 신학교 인데... 어떻게 여길 들어오셨어요?"

 

"여기가 신학교라꼬요?... 세상에...수원카톨릭신학교라니...

반석아부지~ 오늘 우리 아부지가 이리도 은혜로운

땅까지 밟게 하시다니.... 아이구 고맙습니더... 잘못들어왔으니

금방 내려갈께요... 꾸벅~~ 꾸벅~~"

 

"반석아부지..! 이기 우찌된 기라요? 우짜다가 수원카톨릭신학교 까지

왔능교?.. 수원에 있어야 될 학교가 화성 갓등이 성당뒤에 있는게

말이 되요?...참 내,,,"

"그러게.... 나도 잘 모르겠어... "

 

그리고 보니 지나쳐가는 젊은 형제들이 모두 신부님 들인가보다.

세상에~ 얼굴은 또 와저리 예쁘고 맑게 생겼을꼬....!!

순종과 청빈의 맑은 영혼들이 세상속에 들어와 사람들속에 부닥끼다 보면

어둑어둑 어슴프레하게 탁해가니 참 안타깝도록 아까운 젊음 들이다.

 

잠깐동안 청정의 오아시스에서 심호흡을 하고나온 리노할매 부부는

천천히 왔던 길을 걸어 되돌아 천국의 돌계단을 내려온다.

 

"오늘 우리가 참으로 상상도 못했던 땅을 밟고 왔네요...수원교구니까

황창연신부도., 스테파노신부도... 비오부제도... 여게서 공부했겠네...요"

  

"반석아부지. .. 수원성지를 갈라몬 빨리 움직여야 하겠네요.. 눈이 올텐데.."

"눈 소리 그만하라니까.... 맞지도 않는 기상청말은 왜 자꾸하고 있어..."

2시7분...... 차유리에 나풀나풀 눈가루가 날아내린다.

 

"어! 진짜로 눈이 오네... 파란 하늘은 어디간거야?"

속으로 쌤통을 연발하는 리노할매 그저 단정히 앉아만있다.

'알아들을수 있는 귀는 알아듣겠지...'하고선.....ㅎㅎㅎ

 

수원성지는 다산 정약용(세례자요한)이 십자가신앙으로 설계한

둘레 5,743미터의 수원화성 전체로서 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이며,

박해시대를 거치며 2천여명이 순교한 성지로 기록되어 있다.

 

수원성지는 1800년 정조대왕 사후 천주교가 사학으로 규정되면서

1801년 신유박해를 비롯하여 4대 박해를 겪으며 조선 후기 하느님의 종

순교자 원프란치스코를 비롯한 17위, 근·현대 하느님의 종 순교자 심뽈리 신부를 비롯한 3위,

이렇게 총 20위 하느님의 종을 포함한 수많은 무명 순교자들이 피를 흘려 주님을 증거한 순교성지였고.

 

특히 일제강점기에 수원성당(현 북수동성당) 주임 신부를 역임했던

파리외방선교회 심뽈리 데시데라도 신부가 6.25때 인민군에게 체포되어

총살형으로 순교함으로써 순교의 역사가 지속적으로 이어져가는 성지라고 한다.

현재까지 토포청, 이야, 화성행궁, 간이옥, 종로사거리, 형옥, 동남각루,

팔달문 밖 장터, 동북포루, 동암문, 남암문, 북암문, 사형 터, 화서문,

매향다리 서남쪽, 동북포루, 동장대, 용주사 표교당 자리 등 수원화성 안에 순교지,

증거지가 총 19군데가 발견되었고.

 

매월 첫 금요일 저녁 7시30분에는 달빛순례를 실시하고 있다하며.

또한 수원화성 도보성지순례는 총 3개의 코스가 있으며 순례시

성지순례해설을 안내(가이드) 받을 수 있다.

 

또한 수원성지 내에는 야생화(800여종)와 어우러진 십자가의 길과

묵주기도 길이 조성되어 있으며,

아울러 일제 강점기에 심뽈리 신부가 건립한 수원 최초의 사립 초등학교

자리인 뽈리화랑(구 소화학당)이 지금은 관리가 전혀 되지않은채 방치되어

있는것 같아 괜히 보는 리노할매가 송구하다. 


간간이 흩날리는 눈바람을 가르며 수원시 팔달구 정조로에 자리한

북수동성당 주차장에 차를 세우고 성전꼭대기 지붕에서 내려다보며

서슬이 시퍼런칼로 성령의 위엄을 세우고 있는 미카엘 대천사가

버티고 있는 성전 안으로 들어가 주님께 인사드리고....나와

현양비앞 촛불로 얼어붙은 세상속의 일들에 따스한 온기를

불어 녹이며 오늘도 간구의 기도 올린다.

앞에 서있는 길다란 오래된 이 건물은 마치도 학교 기숙사라도 되었던

건물인지 을씨년스런 남루함으로 앉아있다.

 

건물뒤 성모님앞을 돌아 묵주의 기도길을 걸으며 신비의1단을 바치고

뽈리신부의 화랑이라고 적혀있는 기숙사? 건물로 발을 들여놓는다.

전혀 관리가 되지않은 듯한 어두컴컴한 건물의 방방의 화랑전시장엔

순교자들의 실태와 형구들과 ....성전기물들이 으시시하게

등골을 서늘케 하는듯해 빠른걸음으로 달려나오는 리노할매...다

폐자재들이 잔뜩 쌓여있는 공터를 지나 뒤쪽 후미진 곳에 우리의

십자가길을 재촉하는 눈보라길이 펼쳐진다.

 

"어머니께 청하오니~ '빨리 끝내고 집에 가야되는데..'

마음은 콩밭에 가있는 리노할매에게

"영혼을 담아라~ "어머니가 애태워 댄다.... 

                                                                                              

오늘의 순례를 다하고 사무실에 들러 스템프를 찍고 돌아나오며

"참 이상스럽네요. 성지검색에는 굉장히 으리으리한 성문같은 것도

있던데 실제로 와본 여기는 너무 좁고 으슥한 곳같아요.."

 

"아 네~ 그것이 실제성지는 수원.화성 온 땅이 성지랍니다.

무려 19군데나 되는 순교터가 자리해 있는데 눈이 오지않으면

도보로 한시간이 채 걸리지않는 곳을 순례하시면 좋을텐데...

어쩌지요?ㅠㅠㅠ

 

그리고 지금 구 수원성당을 복원하기위해 그옛날의 터를

재매입해서 복원하려고 기금들을 조성하고 있답니다."

라는 말을 듣고 오늘도 달려가 벽돌몇장 이라도 보태겠다는

리노할배 봉헌함에 또 천국행 티켓한장 살포시 넣는다.

여기저기서 차들이 미끄러져 크고작은 사고들이 난다는

뉴스를 들으며 오늘의 순례길은 일단 접기로 하고

집으로 의 키를 잡는다.

 

"반석아부지~ 천상 내년봄에나 다시 들러 19군데 순교형장

발품팔이 또 해야 겠네요.... "


 

2022.08/20 수원성지 2차순례길~

 

10시07분 수양버드나무가 축축 늘어져 겸손의 극치를 이룬듯한

수원성당 가는길 개천가를 지나가며

"반석 아부지~ 근데 저 나무는 우째 저리 부드럽고 우아하게 땅을

바라보믄서 늘어져 있는교? 세상에 처음보는 아름다운 모습이네....

전번에 올때는 눈오는 겨울이라서 못봤나 보네요.. "


낯설지않은 성당 입구를 찾아들어 차를 대고 곧장 성전으로 들어가

감실앞 주님께 오늘도 여느때와 같이 인사드리며 신고식 한다.

마침 10시 반 아침미사가 있는지 신자들이 띄엄띄엄 앉아있어 얼른 돌아나와

전에 못다한 순례길을 더듬어 간다.


안내자의 조언을 따라 1코스에서 3코스까지 있다는 그 길을 1코스로 정하고

수원화성 성곽 걷기 가이드 화성의 길이는 5.7km의 긴걸음을 시작한다.

팔달문을 출발하여 성곽을 한 바퀴 도는 데 2시간30분쯤 걸린다는 안내문을 읽으며

뜨겁게 내리쬐는 성곽길을 묵주의 성모님께 의지하며 걸어간다.

가는길 군데군데 왠 깃발들이 펄럭펄럭 나부끼며 뭐라카고 있어도 또 띄엄띄엄

버티고 있는 포대초소?... 망루같은 것들앞에 무슨문... 무슨*** 써 있었지만

뭐가 뭔지 기억속에 남아 있지는 않을테고... 싶어 그냥 걸으며 묵주알만 돌려댄다.

관광나온 많은 사람들속에 간간이 섞여있는 순례자들과 목례를 나누며 걸어가는

뜨거운 콩크리트와 돌길이 쉬어가기를 재촉해대어 몇군데를 앉아 쉬어간다.


찻길때문에 끊어진 성곽길을 다시 찾아 오르는 길이 너무 가팔라져 길을 잘못들었나

할배를 채근해 대지만 "나만 믿고 따라오라"는 높고 가파른 성곽길을 오르며 그옛날

젊었을 시절 절대카리스마 아오스딩만 믿고 살아온 세월이 스쳐 지나가 슬며시

한웃음 머금어 본다.

힘들고 어렵던 그 시절보다는 지금 넘어가는 이 절벽의 시간이 참으로 숨이차누나.

"헉헉~ 반석아부지 .. 내 죽겠네.. 아이고 힘들어... 죽는다..ㅠㅠ"

할배도 역시 힘들어 기둥잡고 몇번을 숨을 진정시키는 걸 보며 웃는다.

젊은날의 시간과 북망산천 가까운 지금의 시간의 인내는 결코 정신력 문제가 아니란 걸...ㅋ


편의점에서 할배가 좋아라하는 월드콘이며 시원한 물을 사들고 나와 나무그늘 의자에 앉아

가쁜숨 고르며 쉬어가는 잠깐의 시간에도 작은 행복의 상쾌함이 우리를 위로한다.

아마도 성곽의 제일 꼭대기 서장대를 올라보면 누구라도 함께 느껴보는

힘듦의 시간일 테다.

3시간의 시간을 견디어 내고 처음의 출발지 수원성당을 찾아드니 한낮의 시간이

지나는 2시경이나 되어있었다.

1차때와 약간 변화된 마당 성물들이며 , 조각상들에 성지지기님의 충실한 봉사

에 감사드리며 예수성심상에 깊은 절올리며 오늘의 순례길을 마무리 한다.

이담에 또 기회가 되면 2처 3처의 순례길도 올수 있을려나~~ 우리 하느님

허락하신다면~!!




† 성부와 성자와 성령의 이름으로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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