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그대 이름은 바람 ,바람,바람!~순례길98처(성모순례인천/제물진두순교지/답동주교좌성당/성체순례지김포성당/행주성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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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0462 이명남 [agnes536] 스크랩 2021-12-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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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왜 사는지 모르겠다"
는 SD 알벨또회장님의 말은 칠순을 넘긴 사람들이
한번쯤 푸념처럼 흘리는 말일테다.
84세의 알벨또님은 아직도 건강하시다.
종일을 밭에 나가 온갖채소며 고추농사.... 쉴사이없이 몸을 움직여대며
움직이고, 건강한 먹거리들 다 챙겨먹고 먹고살 걱정또한 없으니
저리도 건강하실 테다.
그래도... 반복되는 매일의 일상들이 가끔씩은 무미건조해서인지..
"내가 왜 사는지 모르겠어~" 라며 리노할배에게 푸념의 한마디
건네더라네... 에구~!
리노할매 역시도 이미 예순이 가까운 무렵부터 매일이 똑같은
일상들의 반복속에 반짝거리는 것 하나없는 일들이
다람쥐 체바퀴 돌듯하는 나날들이라고 푸념하며,
"와 똑같은 날들을 사무실안에 갇혀 이리 재미없게 살아야 하노?..
눈이펄펄 내리는 날도 감동없이 성가시고, 소락소락 떨어져 내리는
낙엽들을 보면서도.. 에구~ 청소부아저씨들 또 힘들겠네...싶고.
이산 저산 뻐꾸기 소리 전해주는 봄소식에도 "아이구~ 저놈의
뻐꾸기들 시끄러 정신 사나바 죽겠네.. 좀 조용히 해라~!"며 소리쳐대는
리노할매의 일상들이.....호강에 겨워 오강에 똥싸는 소리인줄도 모르고...!!
깨방정을 떨어대던 어느날 들이닥친 날벼락...!!
머리수술후 1년이 지나고....6년이 지나가는 동안... 하느님께서는
철없고 오도방정 떨던 딸래미를 사람답게 만들기 위해 공포의
시간들속에 담가놓아두셨다가 꺼내주시며 하루하루의 시간들이
참으로 귀하고 감사함을 알게해 주셨다.
그때 두번째 수술까지 일년이라는 시간이 내게 주어졌다고 느끼는 순간
살아있음의 소중함이 얼마나 감사로왔던고~~!
때로는 성당벗들과 술이라도 한잔 하고 밥이라도 같이 먹으며
어울리는 시간도 없이 내가 뭐하는지도 모르겠다는
리노할배의 어쩌다가 한마디 푸념의 말에도.....
하느님앞에 그런 호강에 받친 소리를 하면 안될 금기의 법을
잘 알기에 " 에구 이를 어쩌나 ..."
그러던 어느날 아침기도시간......
하느님께서 내게 기회의 시간을 주시고 계심을 깨닫게 되었다.
그냥 허탕세월 이리저리 살다갈 생각말고,
반짝이는 유리알 맑은 영혼으로 하느님앞에 설수있도록 시간을
주고 계심이 깨달아 지는 순간 ...
최선을 다해 하루를 살아야 함이 참으로 마땅하고 옳은 일임을
온 마음으로 새겨듣게 되었다.
영하16도의 찬바람 몰아치는 주말 아침이어도 할배를 깨워
멀리 강릉쪽엔 대설폭풍으로 난리가 아니라는 기상정보를 듣고는
오늘도 가까운 인천교구 성모순례지(송림동 인천교구청)를 향해 달려간다.
여느날과 마찬가지로 출발서부터 교구청엔 왜가느냐고 따져오는 할배한데
"몰러요~ 마음에 안내켜도 그냥 오늘도 아부지께서 우리를 요리조리
알차고 뿌듯한 순례길 안내해 주실꺼라 믿으면 믿는대로 된다카데요~!"
매주마다 몇백 킬로 길을 달려가던 것에 비해 산도 강도 보이지않는
아파트와 빌딩의 50여 킬로 짧은 거리도 뭔가 부족해 모자란듯 한데도...
송림동 넓고 큰 건물 인천교구청 주차장에 내려.....
두리번 거리며 발견한 성모님 동굴은 저 멀리 감곡 매괴성지의 성모님
동굴 만큼 크고 웅장하게 우리를 반기고 있더라.~


2017.10.13 파티마성모님 발현 100주년을 기념하면서 기공미사를
봉헌한 인천교구는 1년뒤
2018.10.13. 3대 정신철 세례자요한 주교님이 미사집전가운데 이곳을
성모순례지로 봉헌하였고,
"평화의 염원을 담은 성모당을 봉헌하며"를 주제로 사목서한을 발표하고
교구 공식 순례지로 선포하였다 한다.


자연과 우주를 상징하는 돔의 형태로 최대높이 11.5미터에 이르는 장중한 공간의
성모당은 양쪽에 회랑을 두어 기도의 공간을 조성하였고 회랑 끝에는
인천 교구 전 본당을 순회한 성모상이 유리관속에 전시되어있기도 하더라.
바람이 쌩쌩 불어대고.... 모든것이 쨍쨍 얼어붙는 매서운 날씨에
승리의 모후 왕관을 얹고 계신 파티마의 성모님상은 오늘 무지한
기적으로 우리에게 다가오실 것같은 예감~!이다.


남양성모님과 감곡매괴성모님과 수리치골 성모성지와 더불어
인천교구청 파티마의 성모님이 계신 여러곳의 성모순례지는
오늘도 우리에게 발현하시어...
많은 기도와 도움을 필요로 한다고 부탁하시고 있는 성모님의
거룩한 땅이다.
발이 꽁꽁... 손도 꽁꽁.... 얼굴도 시려대지만....
"할배요...이런 날에 묵주5단이라도 하면 파티마의 우리 성모님
엄청 감동하실것 같지않능교?^^"
(오늘도 속으로 계산기 두드리는 리노할매는 어쩔수 없는 에휴~ ...)
환희의 신비를 발을 구르며 하고있는데 허리가 꼬부라진 노인네 한사람이
미사를 드리러 왔다며 야외 의자에 앉아 떨고 있다가 그냥 집으로 돌아간다.
아마도 평소에는 야외미사가 봉헌되고 있나 보다.
이 춥고 떨리는 날 차도없이 구부정한 걸음으로 성모님과 함께하는 미사를
드리러 온 노자매의 지극정성에 쪽팔리는 리노할매 경의를 표하며,
구유앞 아기예수께 엎드려 인사하고... 옆 유리문을 열고 들어가본 전시장처럼
생긴 곳에 온갖 모습의 성모상들이 나라비서서 하느님 아버지를 경배하고 있다.
이름하여 성모님 콘테스트 장이라도 되는 곳인가 보다.
그것이 나중에 알고보니 온세계에서 그동안 발현하신 성모님 모습들을
제작하여 유리관 속에 전시형태로 모셔두고 있는 것이라는 기록을 확인했다.
때마침 또 문을 열고 들어오는 젊은 자매 한사람에게 인사하며
사진한장 찍어달라고 부탁하자 기꺼이 이곳저곳 소개까지 해주며
여러장의 사진을 찍어 주는 양미란(아녜스) 50대 의 젊고 생기넘치는
자매로 친절하게도 전화번호까지 건네주며 비대면속 친구가 되기를
약속하며 헤어져 왔다..
"저도 내년부터는 전국 성지를 순례하고 싶다"며 여러곳의 정보를
전해주십사는 부탁의 말도 곁들인다.



다음코스는 제물진두 순교성지가 있는 제물량로240길로 달려간다.
제물진두 순교성지는 병인박해 이후, 종교적 신앙을 위해 목숨까지 내 놓은,
10명의 천주교 순교자들의 넋이 서린 순교지이며, 1845년 4월 김대건(안드레아) 부제님이
사제 서품을 받기 위해, 중국 상해로 떠났던 역사적인 곳이라 한다.






1868년에 <순교자들의 행적 증거자>박순집(베드로)의 집안인 이모 김시, 남편 손넙적이(베드로),
사위 백치문(사도요한), 이 마리아의 손자 등 4명이 처형되었고,
1871년에는 한국인 최초의 세례자 이승훈(베드로) 성현의 후손인 손자 이재겸의 부인 정씨,
증손자 이연구.균구 형제, 그리고 이(손)명현, 백용석, 김아지 등 6명이 이곳에서 처형되었다.
는 기록과 함께 그분들의 사진들이 벽에 쭉 걸려있었다.











그리고 한국인 첫 성직자인 김대건(안드레아)부제가 입국하여 1년여간
조선교회의 사정을 둘러보고, 1845년 4월 사제 서품을 받기위해 이곳
가까운 포구에서 작은 목선을 타고 중국 상해로 떠났던 역사적인 곳임을 또한 알게되었다.
아울러 1888년 샬트르 성 바오로수녀회 소속 수녀 3명이 조선 선교를 위해
입국한 곳으로 한국 천주 교회사뿐 아니라 역사적으로도 중요한 의미를 지니는 장소라 한다.
도심한가운데 한귀퉁이에 주차장도, 화장실도 없는 아주 협소한 골목길같은좁은 입구엔 오른손이 반질반질하게 달아 빛이나는 예수님상이 허리숙여
할매의 손을 붙잡아주며 "그래도 내 손놓지않고 끝까지 따라오면 모든게
다 잘될거야~"라며 위로의 온기를 전해주는 듯해 든든하다.
성지의 모양이 주님께서 우리를 팔로 감싸안은 형상인양 제작되었다는
글을 읽고, 팔로 안아주고, 손을 잡아주시는 주님의 사랑을 그려보며
좁은골목길에서 촛불로 성모님께 부탁드리고 나온다.


가는곳마다 영하16도의 꽁꽁얼어붙은 찬바람은 이제 몇겹의 옷속까지
냉기를 들여보내며 빨리 집으로 돌아가라고 재촉하여도....
10시간 비바람 쏟아지던 저 폭풍의 언덕 한라산 꼭대기 백록담을 오른
리노할배와 할매의 저력은 아직도 건재하다 ....^^
이번에는 답동주교좌 성당을 또 순례한다.
성당 입구에 큰 칼을 들고있는 바오로성인을 주보성인으로 모시고 있는,
성당은 벽돌조 고딕양식으로, 1890년대에 건축된 대한민국의 성당 중에서
성공회강화성당 등과 더불어 가장 오래된 서양식 근대 건축물 중 하나라고 한다.
프랑스천주교 선교사 코스트 신부의 설계로1897년에 처음 건립되었고,
1937년 코스트 신부와 같은 소속인 피.시잘레 신부의 설계로 증축되었다하며.
앞면에 설계된 3개의 종탑은 건물의 수직 상승감을 더해주며,
8개의 작은 돌로 된 기둥이 8각의 종머리 돔을 떠받들고 있는 형상의 아름답고
웅장한 성전이다.


예전에 조레사와 조카 레오가 인천 답동성당을 가끔씩 들러 기도하고 온다
더니 왜 인천까지 가나 그냥 흘려들었는데, 이곳이 그들의 고향성당이었고
이토록 아름다운 성전을 못잊고 자주 들르는 이유를 오늘에사 조금 알게되었다.


때마다 그리운 언니라며 아무도 없는 빈집에 손편지와 함께 작은 선물꾸러미
하나 놓고 갔던 인정많고 마음여린 레사가 지금은 어디서 살고있는지....
또 다른 연의 꼬리로 우리를 만나게 하실지는 하느님만이 아실테다.
성탄낮미사가 끝나고 쏟아져 나오는 신자들을 뒤로하고 성전안 구유앞에 앉아
목동들 이웃되어 우리속을 기웃거리며 아기예수님과 부모님께 인사드리고
영광의 신비로 아기께 예물을 드린다.
그날밤.... 우리신부님의 끝내주는 폭탄메들리송 만큼은 아니되더라도....^^
기도가 끝나도록 아기예수님 코올콜 여엉 일어나실줄 모른다.


예수님~ 김포성당 구유에서 또 만나요~!! 하며 부지런히 일어나
김포시 북변로길로 또 차를 몰아간다.
인천교구 김포 성당은 신앙 선조들의 숨결이 여전히 생생히 살아있는 곳이다.
1946년 11월 서울대교구 행주 본당(현 의정부교구)에서 분리되어
매괴(로사리오)의 성모를 주보로 설립된 김포 성당은 현 인천교구에서는
답동 주교좌성당과 소사 성당에 이은 세 번째 본당이다.


김포 지역의 전교는 1900년경 약현(현 중림동약현) 본당 전교회장 유공현에 의해 시작되었다한다.
1910년 김포읍 걸포리 34번지에 행주 본당 걸포리 공소가 설립되었고,
공소의 발전과 신자 수 증가로 1946년 11월 22일 걸포리 본당으로 승격되었다하며.
초대 주임으로 부임한 김병호 베네딕토 신부는 장차 발전이 기대되는 김포읍에 새 성당 부지를 마련하고,
1949년 본당명을 김포 본당으로 개칭한 후 1950년 초 사제관을 김포읍으로 이전하면서
본격적인 성당 건립 공사를 시작하였으나 6 · 25 전쟁의 발발로 중단되고 말았다한다.
1952년 제2대 주임으로 부임한 김피득 베드로 신부는 현재의 본당이 위치한
북변리에 아담한 목조 성당을 건립하고, 장래의 발전을 위해 2,700여 평의 대지를 추가 매입한 후
김포읍을 중심으로 전교활동을 전개하였다한다.
그러나 불행히도 김피득 신부는 건강 악화로 인해 1954년 11월 선종하였다는 안타까운 소식이다.
1955년 5월 제3대 주임으로 부임한 신인식 루카 신부와 신자들은 힘을 합하여 새롭게
성당 터를 닦기 시작하여 마침내 석조 성당(99평)을 준공하고
1956년 12월 17일 노기남 바오로 대주교 주례로 축복식을 가졌다한다.
당시 마송에 주둔해 있던 해병대의 장비 지원을 받기도 했으나
지금처럼 건설 장비가 충분한 시절이 아니었기 때문에 신자들은
대부분의 성당 공사를 직접 손으로 해야 했다는 감동의 이야기다.





오늘날 총 1만여 평에 달하는 성당 부지는 피정의 집에서나 볼 수 있을 법한
넓은 야외 십자가의 길과 야외 미사 장소로도 활용되고 있다고 하며.
특히 조경에 많은 노력을 기울인 덕분에 봄 · 가을이면 도심 속 공원처럼 꽃들에
둘러싸인 아름다운 성당으로 탈바꿈, 지역 주민들의 사랑을 듬뿍 받고 있다고 한다.


2015.11.01.
“인천교구 김포성당 내 옛 성전을 성체 성지로 선포합니다!”
“살아계신 예수님을 만나고 그 사랑 안에서 숨쉬기를”
인천교구장 최기산 주교가 한국교회 처음으로 김포 옛 성당을
성체 성지로 선포하며 오늘까지 참으로 아름답고 보기드믄 근사한
넓고 푸른 아늑한 요람으로 후대에 전해옴을 감사드린다.


성지를 둘러보며 할배와 둘이 연발하는 감탄사를 감출길이 없다.
우리 가까이 이토록 훌륭한 거룩한 성이 자리하고 있을 줄이야....
옛성당. 신축성당... 넓고도 긴 십자가의 길이며... 마치도
멀리 떨어진 숲속나라로 여행이라도 온듯 핏속까지 맑아지는 듯하다.











다리가 아플정도로 다 돌아 내려오는 4시 다된 시간에 차들이 몰려들 온다.
아마도 성탄저녁미사라도 있는 모양이다.
아직도 어두워지려면 1시간 넘게 남아있는 시간이 아까와 또 집으로 가는길에
있는 옛날고향집 같은 행주성당을 향해 차를 돌린다.


몇년전 추교윤?신부님이 주임으로 계시던 시간속.... 영성교육 특강을
와서 몇달 들은적이 있었는데...
그때 신부님의 숙원사업이 행주성당에 성모동산을 꾸미는 것이라고
모금을 시작하는 것까지는 알았는데 몇년이 지난후 이렇게 단아하고
나름대로 경건한 작은 성모동굴이 모든이의 발길을 끌고 있다니...



여늬곳의 공소와 같은 옛스런 고풍으로 엎드리고 있는 행주성당의.jpg)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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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기 예수님은 작고 소박한 평화로움으로 순례자의 마음을 끌어댄다.


뒤로 벽에 매달려 타임머신을 타고 아기 예수를 내려다 보고계신
십자가의 예수님의 상념엔 어떤 영상들이 흔들거리고 있을 까?....
리노할매는 별 생각을 다하고 있다.^^
시메온의 칼날예언이 그토록 혹독하고 고통스러울거라 생각도
못하는 아기예수는 지금 평안히 엄마 아빠 옆에서 잠들어 있는데
이천년을 훌쩍 뛰어 넘어온 리노할매 눈에는 그냥 짜안~하게 보인다.
아기를 들여다보고 있던 리노할배
"추자도에서 만났던 그 아기와 참 많이도 닮았네~"
"잉?..."
"뭐라카노... 그 얼라는 정난주마리아 아들 황경한이 아인교?"
"그래~~? 헷갈리네.."
"하기사~ 그때나 지금이나 짜~안 한 마음은 똑 닮았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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에필로그)
눈이와도 비가와도 바람이 불어도~ 리노할매는 못말린다
옹고집?같은 대지도 않는 고집으로 영하16도
엄동속을 돌아다니다가 기어이 고뿔을 만난 리노할매다.
며칠전부터 콧물이 뚝뚝 떨어져도 그런가보다 했는데
목이칼칼... 머리가 지끈지끈... 콧물은 줄줄~
세천사놈들도 열이 39도 넘어 올라가고... 기침들 하고..
6살 밖에 안된 꼬맹이들을 외할매가 비가오나 눈이오나 어른기준으로
산을 잡아 돌린다며 친할매는 그저도 마음이 아파 전전긍긍
냉가슴 앓아 대는 풍동 식골공원 삼둥이네 집은 어제 오늘
적막강산이다. 산길운동도 접어둔채 감옥살이 집콕으로.
할배가 "코로나 아니냐고?... 겁도없이 농담을 해대길레
"방구 냄새가 지독한걸 보면... 코로나는 아닌가벼~"
† 성부와 성자와 성령의 이름으로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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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2. 하느님의 뜻이 하느님에게도 사람에게도 낙원이 되는 이유 - [하느님의 뜻이 영혼을 다스릴 때] / 교회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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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0464
장병찬
2021-12-3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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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1. 하느님의 뜻 안에서 사는 것은 무한한 높이의 삶이다. - [하느님의 뜻이 영혼을 다스릴 때] / 교회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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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0463
장병찬
2021-12-3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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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그대 이름은 바람 ,바람,바람!~순례길98처(성모순례인천/제물진두순교지/답동주교좌성당/성체순례지김포성당/행주성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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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0462
이명남
2021-12-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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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믿음'의 동기에 관하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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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0461
신주영
2021-12-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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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영적순례 제24시간 - 예수님의 승천 자리에서 / 교회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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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0460
장병찬
2021-12-2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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반대 0신고 0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