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오늘 미사에서 꽂힌 말씀
-
226351 윤종관 [gabie] 스크랩 2022-11-09
-
오늘 미사에서 꽂힌 말씀
라테라도 대성전 봉헌 축일(11월 9일)
“Zelus domus tuæ comedit me. · 당신의 집에 대한 열정이 나를 삼켜버립니다.”(요한 2,17 : 시편 69,9)
오늘 11월 9일, 라테라노 대성전(Basilica Lateranensis)의 봉헌 축일이다. 이 성전을 ‘성 요한 대성전 · Basilica San Giovanni’이라고도 한다.
로마에는 일곱 곳의 언덕이 있다. 현 교황청의 성 베드로 대성전은 ‘바티칸 언덕(Collis Vaticanus)’이라는 곳에 있고, 본래 로마 교구장 즉 교황의 최초 주교좌 성전은 ‘라테라노 언덕(Collis Lateranensis)’이라는 곳에 있다, 본디 로마 황실 소유였던 라테라노 궁전이 4세기부터 교황의 거처가 되었다. 그 옆에 구세주(Salvator)께 봉헌된 성전이 건립되고 교황좌(Cathedra)를 두게 되었다. 그래서 그 성전에서 특별히 부활성야에 세례를 거행하여 요한 세례자와 복음사가 요한 사도의 이름이 헌정되었다. 이런 연유로 인하여 로마의 ‘모체 성당’으로 인식되고 많은 공의회의 개최 장소이기도 했다. 하여 세계의 모든 교회가 일치하는 사랑의 품처럼 이 로마의 성전을 ‘어머니 교회’로 인식하게 되었다.
그러므로 각 지방에서도 주교좌 성당은 그 자체로 모든 본당(지방 모임)을 하나의 끈으로 엮어주는 ‘어머니 교회’로 상징이 되며, 이와 같은 세계 교회의 어머니 교회로 인식하게 해주는 라테라노 대성전 봉헌을 오늘 기념하는 것이다. 이런 관점에서 교구의 주교좌 성당은 교구장 주교의 거처이며 모든 교구민이 바라보는 ‘어머니의 품’ 같은 곳이어야 하는데, 현실은 편의주의로 말미암아 주교의 거처가 별도로 마련되어 그 주교좌 성전에서 일상적으로 기도하며 주교를 만날 수 없는 씁쓸한 아쉬움이 있다. 중세기 교회의 타락상을 지적하는 것 중의 하나로 주교가 주교좌 성당에 거처를 두지 않고 별도의 관저(궁전)에서 살았기 때문이라고도 한다.
사실상 모든 성당은 하느님께 봉헌되어 ‘구원의 신비(Mysterium Salutis)’가 현현되는 곳을 의미하여 그 현관에 ‘D.O.M.’이라고 새긴다. 즉 ‘최고 존엄의 하느님께 · Deo Optimo Maximo’라고 현관에 새긴 걸 보면서 우리는 성전에 들어가서 주님을 뵈옵게 되는 것이다. 그와 같은 실제적 느낌을 얻을 수 있도록 그곳의 살아있는 주인인 주교님이 그곳에 계시므로 ‘주교좌·Cathedra’라고 한다. 그리고 실제로 그 성전에는 그 머리이신 분이 부활하여 계신다. 그분이 그리스도이시다. 그래서 성전의 중심부에 부활하신 그리스도의 가시적 실재가 제대이다. 이 머리를 중심으로 하여 공동체가 생명의 음식을 나누면서 주님께 기도한다. “우리와 함께 머무소서 · Mane nobiscum.”(루카 24,29) 하는 기도와 더불어 미사 때 사제는 교우들에게 “주님께서 여러분과 함께·Dominus vobiscum” 하며 인사한다. 실제로 성전 안에서는 우리가 서로 이렇게 인사한다. 거기 주님께서 계시므로…!
그렇다!. 성전은 그런 곳이다! 그런 성전에 대한 애정 가득한 열정을 보여주신 이야기를 오늘 복음으로 읽는다. “Zelus domus tuæ comedit me. · 당신의 집에 대한 열정이 나를 삼켜버립니다.”하고 읊은 시편 69장 9절의 그 열정으로 예수님께서 성전 뜰의 지저분한 장사치들을 몰아내셨다. 오늘 읽는 요한복음서의 기록에는 “내 아버지의 집을 ‘장사하는 집(domus negotiationis)’으로 만들지 말라.”(요한 2,16)고 호통치셨다는데, 마태오와 마르코 복음서에는 “너희는 이 집을 ‘강도의 소굴(spelunca latronum)’로 만들었구나.”(마태 21,13 : 마르 11,17)하고 말씀하셨다고 기록되어 있다. ‘장사하는 집’이든 ‘강도의 소굴’이든 예루살렘 성전의 그런 타락상을 예수님께서 정확히 지적하신 것이다. 그 성전(domus orationis 기도하는 집 = Domus Dei 하느님의 집)을 장사치들이 점령하여 백성들이 바치러 온 제물에 트집을 잡아서 바가지 씌우고 강제로 바꿔치기하여 폭리를 남겨서 성전 당국자들(사제들)의 호주머니를 채우는 작태가 벌어지고 있었으니, 그 장사치들 뒤에 강도들(사제들)이 있었다. 그 더러운 현장을 보신 예수님께서는 ‘하느님의 집에 대한 열정이 그분의 숨을 막히게 하여’ 둘러 엎으시면서 그 정도로 호통치신 말씀은, 그분께서 예수님이시기에 망정이지 나 같은 속물이 그걸 보았더라면 윤 아무개처럼 “이 XX들아”라고 고함쳤을 것이다.
오늘의 복음을 이쯤에서 가름하면서, 오늘날 우리의 현실을 말하지 않을 수 없다. 성당에 가면 허구한 날 돈타령이고, 무슨 물건 사라고 하고, 성지순례 가면 기도보다 주머니 털릴 불안감에 휩싸이게 된다. 이래도 되는가 기도하러 온 우리 교우들이 이렇게 털려도 되는가 그리고 더욱 ‘성지개발’이라면서 또는 ‘국제성지 프로젝트’라면서 해괴한 사업(장묘 사업 : 납골당 건립)을 한다고 하니…, 뭐라 평할 수 있는 언어를 찾지 못하겠다. ‘장사하는 집’과 ‘강도의 소굴’을 뛰어넘는 현장을 오늘날 목격해야 하는가…! 예수님의 분노 혹은 모욕당하는 순교자들의 슬픔…, 이에 대하여 뭐라 평할 수 있단 말인가…!?!?!
성전은 3가지가 있다. ①기도하는 집(건물), ②모든 믿는 이들 안에 계시는 하느님의 그윽한 성소(영혼 聖所), 그리고 ③예수님 당신 자신 즉 죽으시고 부활하신 그분이다. 그런데 모든 성전은 ③의 성전과 같아야 한다. 즉, 이 세상에서 죽어서 부활해야 하는 새로운 성전…! 그것을 오늘 복음에서 예수님 친히 말씀하셨고, 그 상징으로 우리 모든 본당의 성전과 주교좌와 그리고 오늘 축일의 라테라노 대성전…, 이 모든 성전은 우리가 그리워하고 또 거기서 주님 만나서 하나 되는 그런 곳이어야 한다.
“주님의 집에 가자 할 제, 나는 몹시 기뻤노라. … 그 짜임새 멋지게 이룩된 도성!”(시편 121,1-2).
† 성부와 성자와 성령의 이름으로 아멘.
-

-
- ★★★† 제6일 - 하느님 뜻의 여섯 단계 - 승리 이후의 소유 [동정 마리아] / 교회인가
-
226355
장병찬
2022-11-09
-
반대 0신고 0
-
- † 예수 수난 제9시간 (오전 1시 - 2시) - 떼밀려 키드론 개울에 빠지시다 / 교회인가
-
226354
장병찬
2022-11-09
-
반대 0신고 0
-
- ★★★† 20. 하느님의 뜻을 행하며 이 뜻 안에서 사는 영혼에게는 죽음도 심판도 없다 [천상의 책] / 교회인가
-
226353
장병찬
2022-11-09
-
반대 0신고 0
-
- ★★★† [하느님의 뜻] 19. 만물을 통하여 표현되는 예수님의 사랑 [천상의 책] / 교회인가
-
226352
장병찬
2022-11-09
-
반대 0신고 0
-
- 오늘 미사에서 꽂힌 말씀
-
226351
윤종관
2022-11-09
-
반대 0신고 0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