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이수철 프란치스코신부님 -회개의 삶, 파스카의 삶 “겸손, 신의, 예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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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81106 선우경 [forgod] 스크랩 2025-03-2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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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5.3.29.사순 제3주간 토요일
호세6,1-6 루카18,9-14
회개의 삶, 파스카의 삶
“겸손, 신의, 예지”
"주님, 거룩한 하늘에서 지혜를 보내 주소서.
영광의 옥좌에서 그를 내려 주옵소서."(지혜9,10ㄱ)
안팎으로 참 뒤숭숭한 세상입니다. 사상 국내 초유, 최악의 산불에, 국외 미얀마에서는 강진에 의한 대규모 사상자가 발생했고, 교황청에서도 우려와 위로와 더불어 기도의 메시지도 전달했습니다. 국내상황 역시 녹녹치 않습니다. 12.3일 비상계엄후 시작된 내란의 불은 아직도 진행중이요 내전의 위기도 겪는 중입니다. 국내외 상황이 빛과 어둠, 선과 악, 생명과 죽음, 정의와 불의, 진리와 거짓의 영적전쟁터를 방불케 하는 현실입니다.
흡사 혼돈과 야만의 시대가 도래한 듯 합니다. 사탄의 시스템, 악의 카르텔에 의한 상상할 수 없는 예측불허의 초현실적 상황이 벌어집니다. 하느님이 보우하사 평화롭고 슬기롭게 해결되기를 마음 간절합니다. 이런 와중에 가톨릭교회의 ‘사순시기’가 자리잡고 있다는 사실이 큰 위로와 힘이 됩니다.
공선사후, 공익중심의 실로 온전하고 다양한 이들이 조화와 균형을 이룬 아름다운 정상적 공동체가 화이부동和而不同의 군자君子공동체요, 사익중심의 소인배들이 모여 악의 카르텔을 이루어 사는 불의와 거짓의 동이불화同而不和의 소인小人공동체입니다.
역시 판별의 잣대는 진리요 지혜요 길이요 빛이신 주 예수님입니다. 참으로 기도와 회개로 모두가 흥분을 가라앉히고 이성과 양심을 되찾아 정상적이고 상식적인 삶을, 지극히 침착하고 평온한 삶을 살도록 온갖 노력을 다해야 하겠습니다. 정말 기도와 회개가 절실한 작금의 현실입니다. 인간현실은 이렇듯 복잡다난해도 순리에 따라 펼쳐지는 봄철의 자연은 우리에게 큰 가르침과 깨우침을 줍니다.
봄철이 되니 다시 만개하기 시작한 봄꽃들이 수도원을 덮고 있으며 회개의 삶, 파스카의 삶을 촉구하는 듯 합니다. 봄꽃도 많고 부를 봄노래도 참 많습니다. 요즘 샛노란 개나리꽃도 한창입니다. 겨울을 지낸 ‘파스카의 봄꽃들’이라 모두가 청초합니다. 오래전 써놓은 두편의 시를 나눕니다.
“겨울 지낸 개나리
햇빛 환한 봄날도 너무 어두워
샛노란 꽃 초롱들
가득 켜 들고
대낮의 어둠 환히 밝히고 있네”<2001.4.11.>
햇빛 환한 대낮의 어둠처럼 문명의 야만시대라는 역설적 현실이 펼쳐지고 있는 오늘입니다. 대낮의 어둠 환히 밝히고 있는 청초한 봄꽃 영혼들로 살라는 가르침을 줍니다. 역시 답은 기도와 회개를 통해 참나로 돌아가는 길뿐입니다. 얼마전 잠시 대지를 촉촉이 적셨던 봄비에 떠오른 자작시입니다.
“마음을 촉촉이 적시는
봄비!
하늘 은총
내 딸 아이 하나 있다면
이름은
무조건 봄비로 하겠다”<2005.3. >
봄비같은 회개의 은총입니다. 회개의 촉구와 더불어 회개의 은총을 전하는 호세야 예언자의 말씀이 참 좋은 위로와 힘이 됩니다. 시공을 초월하여 오늘의 우리에게도 큰 울림의 감동을 선사하며 마음을 순화합니다. 그대로 하나의 시처럼 들립니다.
“자, 주님께 돌아가자.
그분께서 우리를 잡아 찢으셨지만
아픈데를 고쳐 주시고
우리를 치셨지만 싸매 주시리라.
이틀뒤에 우리를 살려 주시고
사흘째 되는 날에 우리를 일으키시어
우리가 그분 앞에서 살게 되리라.”
회개한 영혼들에게 앞당겨 실현되는 파스카의 삶입니다. 파스카의 봄꽃들 같은 청초한 삶, 파스카의 삶, 회개의 삶입니다. 은총의 사순시기는 물론 이 거룩한 미사시간, 회개의 마음으로 새벽처럼, 봄비처럼 오시는 주님을 영접함은 물론 주님 공부에 전념하라는 예언자의 호소입니다.
“그러니 주님을 알자.
주님을 알도록 힘쓰자.
그분의 오심은 새벽처럼 어김없다.
그분께서는 우리에게 비처럼
땅을 적시는 봄비처럼 오시리라.”
이어지는 예언자의 탄식이 참된 회개를 통해 겸손과 신의, 예지의 삶을 살 것을 호소합니다.
“내가 너희를 어찌하면 좋겠느냐?
너희의 신의는 아침 구름 같고, 이내 사라지고 마는 이슬같다.
정녕 내가 바라는 것은 희생 제물이 아니라 신의다.
번제물이 아니라 하느님을 아는 예지다.”
희생제물이나 번제물을 바치는 전례의 거부가 아니라 혼동된 우선순서를 바로 잡으라는, 회개와 겸손, 신의와 예지를 우선하라는 것입니다. 바로 이의 모범이 오늘 복음의 가난한 세리의 기도와 회개입니다. 바리사이의 기도와는 극명한 대조를 이룹니다. 똑같이 “오, 하느님!”으로 시작합니다만 내용은 완전히 다릅니다. 바리사이는 꼿꼿이 서서 혼잣말로 기도합니다.
“오, 하느님! 제가 다른 사람들, 강도짓을 하는 자나 불의를 저지르는 자나 간음을 하는 자와 같지 않고, 저 세리와도 같지 않으니, 하느님께 감사드립니다. 저는 일주일에 두 번 단식하고 모든 소득의 십일조를 바칩니다.”
기도는 그 사람이 누구인지 보여줍니다. 이건 대화의 기도가 아니라 나르시즘, 자기자랑, 자기도취에 빠진 자기중심의 독백입니다. 기도 안에 하느님의 없습니다. 자기를 모르기에 기도한다며 남판단하는 죄를 짓습니다. 참으로 자기를 모르는, 낯 부끄러워할 줄 모르는 참 유치하고 무지한 바리사이의 기도입니다. 전혀 하나마나한 할 필요없는 기도입니다. 반면 가난한 세리의 기도는 단순명료하고 솔직담백하고 절박합니다. 세리는 멀찍이 서서 하늘을 향하여 눈을 들 엄두도 내지 못하고 가슴을 치며 말합니다.
“오, 하느님! 이 죄인을 불쌍히 여겨 주십시오.”
우리가 바칠 기도는 하느님 중심의 기도, 이 자비송 하나뿐입니다. 이 자비송과 더불어 시작하는 미사입니다. 참으로 부끄러워할 줄, 두려워할 줄 아는, 참으로 자기를 아는 회개와 겸손, 신의와 예지의 사람, 세리입니다. 주님의 최종결론이자 심판입니다.
“내가 너희에게 말한다. 바리사이가 아니라, 이 세리가 의롭게 되어 집으로 돌아갔다. 누구든지 자신을 높이는 이는 낮아지고, 자신을 낮추는 이는 높아질 것이다.”
주님은 가난한 세리처럼 부단히 회개와 겸손으로 낮춰지고 비워지는 삶을 사는 우리에게 신의와 예지의 주옥같은 선물을 주시니, 바로 주님의 이 거룩한 미사은총입니다.
"지혜가 나와 함께 있게 하시고,
당신 뜻에 맞갖는 것이 무엇인지 알게 하소서."(지혜9,10ㄴ). 아멘.
성 베네딕도회 요셉수도원
이수철 프란치스코신부님
† 성부와 성자와 성령의 이름으로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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