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 회개로 조건 없는 하느님 자비를 입도록 / 사순 제4주일 다해(루카 15,1-3.11ㄴ-3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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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81114 박윤식 [big-llight] 스크랩 2025-03-2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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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성부와 성자와 성령의 이름으로 아멘.
■ 회개로 조건 없는 하느님 자비를 입도록 / 사순 제4주일 다해(루카 15,1-3.11ㄴ-32)
세상에는 두 가지 인간관계가 있다나. 하나는 깨어질 수 있는 관계, 또 하나는 깨어질 수 없는 것일 게다. 이를테면 직장의 사장과 직원은 언제나 깨어질 수 있다. 이는 서로 이해타산에 따라 결합되거나 강제로 구속되는 경우이니까. 곧 계산적이거나 강압적인 관계일 테니. 반면에 부모와 자식은 결코 깨어지지 않는 관계일 것이다. 아무리 연을 끊는다 해도 자식인 이상 언제까지나 자식이다. 이 관계는 어떤 계산에 따라 결합된 것도 강제로 이루어진 것도 아니니까.
‘되찾은 아들의 비유’ 이야기는 언제 읽어도 감동이다. 어리석을 정도로 착한 아버지이기에. 예나 지금이나 자식 농사만큼은 뜻대로 되지 않는다나. 부모 마음같이 움직여 주지 않기에. 자식 잘되길 바라는 잦은 잔소리, 심지어 윽박질러도 이 일 만큼은 원대로는 어렵다. 결국 자식 이길 부모 없다는 말처럼, 부모들 의지대로 되지 않는 게 세상사 부모님의 공통된 고민거리다.
이 비유에서 작은아들은 아버지와의 관계를 끊었다. 그는 깨어질 수 있다고 여겼다. 그래서 그는 아버지를 졸라 재산을 챙겨서 곧바로 달아났다. 오래 기다린 가출이었다. 손에 돈을 쥔 그는 세상을 다 얻은 것처럼 흥청망청 다 탕진했다. 결국 처참한 상황에서야 비로소 아버지를 떠올렸다. 그 비굴한 배고픔서 자신의 품위는 없고, 아버지와의 관계가 깨졌다는 것을 알았다.
탕자 아버지는 아들이 재산을 달라 했을 때 몽땅 날릴 걸 알았지만, 그래도 자식의 기를 꺾지 못했다. 아버지 예상대로 돈 떨어진 둘째는 힘을 잃었다. 돈깨나 쥐었을 때나 힘이 있기에 어쩜 당연했다. 이렇게 기가 죽을 때 은총이 다가온다. 그래서 결국 배고픔에 굶어 죽을 지경의 알거지가 되자, 아버지의 따뜻한 품을 느꼈다. 저 멀리 돌아오는 아들을 미리 본 아버지는 달려가 둘째를 끌어안고는 입을 맞추었다. 이렇게 그 아버지는 풀이 죽은 자식의 기를 일으켰다.
아들은 품팔이꾼 하나로 받아주길 바랐지만, 아버지는 죽은 놈이 다시 살아났다며 잔치를 베푼다. 아들은 천한 종으로 돌아왔지만, 아버지는 둘도 없는 귀한 아들로 안았다. 이처럼 부모 마음은 한결같다. 아버지는 자식이 어디에 있든 간에 늘 가엾은 마음이 변함없다. 언제라도 달려가 그의 목을 껴안고 입 맞출 자세이다. 아버지에게는 아들이 비록 방탕하여도 아들인 게다. 이 관계는 훈련 받는다고 얻어진다거나, 아니 그 어떤 조건에서도 결코 깨지는 관계가 아니다.
이처럼 우리와 하느님과의 관계도 결코 깨질 수 없다. 아무리 큰 죄로 떠났다 해도 결코 당신 품에서 내치지 않을 게다. 아무리 당신과의 관계를 끊으려 해도, 그저 돌아오기만을 기다리시리라. 이 하느님 마음도 바로 이 부모 마음과 별반 다를 수가. 우리가 그 마음 다 헤아리지 못할 정도로 때로는 강하게 꾸짖지만, 그분께서는 늘 안타까움으로 잘되도록 끝내 기다리신다.
아무튼 되찾은 아들의 비유는 한없는 하느님의 자비를 잘 드러낸다. 가출한 아들의 방탕함도, 오만한 큰애의 그 고집도 아버지 자비에 끝내 녹으리라. 잘못을 회개하기를, 당신 말씀대로 살기를 그토록 바라시기에. 우리 신앙인은 믿음의 생활이 더하여지면서 이런 하느님 자비의 마음을 조금이나마 더 깨닫게 되리라. 우리를 애타게 기다리는 그분께로 발걸음을 되돌리자. 그러면 처음과 같이 이제와 항상 무조건 용서하고 안아주시는 그분의 무한한 사랑을 이해할 수 있을 게다. 그분의 조건 없는 이 자비를 이웃과 늘 나눠가지면 하느님은 더더욱 기뻐하시리라.
† 성부와 성자와 성령의 이름으로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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탕자,회개,자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