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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의미사 (녹) 2025년 9월 6일 (토)연중 제22주간 토요일당신들은 어째서 안식일에 해서는 안 되는 일을 하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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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들의 묵상ㅣ체험
[연중 제22주간 수요일]

184597 박영희 [corenelia] 스크랩 2025-09-03

[연중 제22주간 수요일] 루카 4,38-44 “나는 하느님 나라의 기쁜 소식을 다른 고을에도 전해야 한다.”

 

 

 

 

오늘 복음에서는 예수님께서 3년 내내 보내신 ‘공생활’이 하루라는 시간 동안 압축적으로 드러나고 있습니다. 밤낮을 가리지 않고 당신께 몰려드는 군중에게 행하신 치유와 구마, 그리고 예수님께서 가장 중점을 두고 행하셨던 ‘하느님 나라의 기쁜 소식’ 선포가 숨가쁘게 이어지며 그분께서 어떻게 사셨는지를 분명하게 보여주지요. 오늘은 이런 예수님의 삶에서 드러나는 특징적인 부분 세 가지를 살펴보고자 합니다.

 

첫째, 예수님의 사랑에 ‘대충’이란 없습니다. 그분은 한 마디 말씀으로 당신을 찾아오는 군중 전체를 치유하실 수 있는 능력을 지니셨음에도 그런 식으로 ‘한 방’에 끝내지 않으셨지요. 그분께서 하시는 ‘치유’란 그저 육체의 병을 고쳐주는 의료행위가 아니라, 받는 이로 하여금 하느님의 사랑과 자비를 느끼게 만드는 ‘친교’행위였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굳이 안식일에 시몬의 집을 찾으시어 심한 열로 몸져 누워있던 그의 장모를 위로하시고 건강하게 만드십니다. 또한 치유에 대한 간절한 희망을 가지고 당신을 찾아오는 이들 한 사람 한 사람에게 손을 얹으시어 병을 고쳐 주십니다. 이는 상대방의 슬픔과 아픔에 적극적으로 공감하며 정성을 다하는 진심어린 행동입니다. 한 사람 한 사람 따뜻하게 맞아주시고 어루만져주시는 사랑의 행위를 통해, 치유 받은 이는 자신이 하느님으로부터 사랑받는 소중한 존재라는 점을 분명히 느꼈을 것입니다. 그리고 그 체험은 그가 앞으로 살면서 또 다른 고통과 시련을 마주하게 될 때 그것을 이겨낼 힘이 되었겠지요.

 

둘째, 예수님은 아무리 바쁘고 힘들어도 당신 삶에서 가장 중요한 한 가지를 결코 거르지 않으셨습니다. 그것은 바로 하느님 아버지와의 대화를 통해 이루어지는 내적 친교인 ‘기도’이지요. 예수님은 아직 해가 제대로 뜨지 않은 이른 새벽, 전날 바쁜 일정들을 보내시느라 피곤한 몸을 이끌고 ‘외딴 곳’으로 나가십니다. 사람들로부터 거리를 둔 ‘외딴 곳’은 높은 산이나 황량한 광야처럼 세속적인 모든 것을 내려놓고 오롯이 하느님 아버지를 만나는 장소이지요. 그곳에서 예수님은 하느님의 말씀을 ‘경청’하셨고 그분 뜻에 당신의 뜻을 일치시키셨습니다.

 

셋째, 그랬기에 현실에 안주하려 들지 않고, 쉽고 편한 길을 찾지 않고, 철저하게 하느님 뜻에 순명하실 수 있었습니다. 자기들을 떠나지 말아달라고 붙잡는 이들의 모습에 마음이 약해지실 법도 했지만, 다른 고을에도 하느님 나라의 기쁜 소식을 전해야 한다며 마음을 다잡으셨습니다. 그것이 당신을 이 세상에 보내신 하느님 아버지의 뜻이었기 때문입니다. 우리의 평소 신앙생활도 예수님의 공생활을 닮아야 합니다. 진심과 정성으로 이웃을 사랑하고, 기도를 통해 하느님의 뜻을 찾으며, 그렇게 찾은 하느님 뜻에 실천으로 순명해야 합니다. 그러면 하루 하루의 신앙생활을 통해 점점 더 하느님을 닮은 거룩한 모습으로 변화되어 갈 것입니다. 

 

* 함 승수 신부님 강론 말씀 

 

 



† 성부와 성자와 성령의 이름으로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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