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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의미사 (녹) 2025년 9월 7일 (일)연중 제23주일자기 소유를 다 버리지 않는 사람은 내 제자가 될 수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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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들의 묵상ㅣ체험
송영진 신부님-<몸의 치유나 현세의 복만 바라지 말고 영혼 구원을 향해서>

184606 최원석 [wsjesus] 스크랩 2025-09-03

 

“예수님께서는 회당을 떠나 시몬의 집으로 가셨다. 그때에

시몬의 장모가 심한 열에 시달리고 있어서, 사람들이 그를

위해 예수님께 청하였다. 예수님께서 그 부인에게 가까이

가시어 열을 꾸짖으시니 열이 가셨다. 그러자 부인은 즉시

일어나 그들의 시중을 들었다. 해 질 무렵에 사람들이

갖가지 질병을 앓는 이들을 있는 대로 모두 예수님께

데리고 왔다. 예수님께서는 한 사람 한 사람에게 손을

얹으시어 그들을 고쳐 주셨다. 마귀들도 많은 사람에게서

나가며, ‘당신은 하느님의 아드님이십니다.’ 하고 소리

질렀다. 그러나 예수님께서는 꾸짖으시며 그들이 말하는

것을 용납하지 않으셨다. 당신이 그리스도임을 그들이

알고 있었기 때문이다. 날이 새자 예수님께서는 밖으로

나가시어 외딴곳으로 가셨다. 군중은 예수님을

찾아다니다가 그분께서 계시는 곳까지 가서, 자기들을

떠나지 말아 주십사고 붙들었다. 그러나 예수님께서는

그들에게 말씀하셨다. ‘나는 하느님 나라의 기쁜 소식을

다른 고을에도 전해야 한다. 사실 나는 그 일을

하도록 파견된 것이다.’ 그러고 나서 예수님께서는

유다의 여러 회당에서 복음을 선포하셨다(루카 4,38-44).”

1) 40절에 있는, “해 질 무렵에”는,

“안식일이 끝나자” 라는 뜻입니다.

사람들은 안식일이 끝나기를 기다리고 있다가

안식일이 끝나자마자 병자들을 데리고 예수님께 왔습니다.

<유대인들은 저녁부터 다음날 저녁까지를

하루로 계산했습니다.

그래서 ‘해 질 무렵’은,

하루가 끝나고 새 날이 시작되는 시간입니다.

안식일에는 먼 거리를 걸어가는 일도, 또 응급환자가 아닌

병자들을 치료하는 일도 금지되어 있었기 때문에 사람들은

안식일이 끝나기만을 기다렸다가 안식일이 끝나자마자

예수님께 몰려든 것입니다.>

2) 39절에 있는, “열을 꾸짖으시니 열이 가셨다.” 라는 말은,

“예수님은 병을 지배하시는 주님”이라는 것을 나타냅니다.

단순히 병을 잘 고치는 의사가 아니라,

병이라는 것을 지배하시는 분이라는 것입니다.

<“예수님은 병을 지배하시는 주님”이라는 말은,

사실상 “예수님은 하느님이신 분”이라는 뜻입니다.>

어떤 백인대장이, 이 믿음을 최초로,

또 공개적으로 고백했습니다.

“주님, 수고하실 것 없습니다. 저는 주님을 제 지붕

아래로 모실 자격이 없습니다. 그래서 제가 주님을

찾아뵙기에도 합당하지 않다고 여겼습니다. 그저 말씀만

하시어 제 종이 낫게 해 주십시오. 사실 저는 상관 밑에

매인 사람입니다만 제 밑으로도 군사들이 있어서,

이 사람에게 가라 하면 가고 저 사람에게 오라 하면 옵니다.

또 제 노예더러 이것을 하라 하면 합니다(루카 7,6-8).”

“내가 너희에게 말한다. 나는 이스라엘에서 이런 믿음을

본 일이 없다(루카 7,9).”

백인대장이 한 말은, 예수님께서 ‘병’에게 떠나라고

명령하시면, ‘병’이 그 명령에 복종하고 떠날 것이며,

그러면 병자가 곧바로 치유될 것이라고 믿는다는 뜻이고,

예수님을 “병을 지배하시는 주님”으로,

즉 ‘하느님’으로 믿는다는 신앙고백입니다.

3) 사람들이 “자기들을 떠나지 말아 주십사고” 간청하면서

예수님을 붙든 것은, 예수님을 메시아로 믿었기 때문이

아니라, ‘병을 잘 고치는 의사’로만 생각했기 때문이고,

예수님께서 다른 곳으로 가시지 말고 자기들의 마을에서

계속 계시면서 병자들을 고쳐 주시기를 원했기 때문입니다.

<아마도 그곳에 병원을 차리시기를 원했던 것 같습니다.>

“나는 하느님 나라의 기쁜 소식을 다른 고을에도 전해야

한다. 사실 나는 그 일을 하도록 파견된 것이다.” 라는

예수님 말씀은, “나는 ‘몸의 병’을 고치려고 온 것이 아니라,

영혼 구원에 관한 복음을 모든 곳의 모든 사람에게

선포하려고 왔다.” 라는 뜻입니다.

여기서 ‘다른 고을에도’ 라는 말은, ‘이곳에서 한 것처럼

다른 고을에도’이고, 이곳에서 병자들을 고쳐 주신 일은,

사실은 복음을 선포하신 일이었다는 것을 나타냅니다.

복음을 선포하려고 병자들을 고쳐 주신 것이 아니라,

병자들을 고쳐 주신 일 자체가 복음 선포입니다.

그렇다면 예수님께서 한 사람 한 사람에게 손을 얹으신

일은, 단순히 병을 고치기 위한 치유 동작이 아니라,

사람들의 영혼을 구원하기 위한 ‘자비의 동작’입니다.

그렇지만 몸의 치유만을 원하는 사람들은, 몸이 치유된

것에만 만족하고 영혼 구원은 생각하지 않았습니다.

4) 사람들이 ‘몸의 치유’만을 원하면서 예수님을 붙든

일에서 예수님의 형제들이 했던 말이 연상됩니다.

“예수님의 형제들이 그분께 말하였다. ‘이곳을 떠나

유다로 가서, 하시는 일들을 제자들도 보게 하십시오.

널리 알려지기를 바라면서 남몰래 일하는 사람은 없습니다.

이런 일들을 할 바에는 자신을 세상에 드러내십시오.’

사실 예수님의 형제들은 그분을 믿지 않았다(요한 7,3-5).”

예수님께서 하시는 일을 세속적인 시각으로만 본 사람은,

그 일을 이해하지 못했습니다.

오늘날에도 그런 경우가 많습니다.

예수님을 믿는 믿음과 신앙생활은

세속의 방식이 아니라 예수님의 방식으로만

이루어져야 합니다.

‘몸의 치유’만을 바라는, 또는 현세적인 복만 비는 방식의

기복신앙이 아니라, 하느님 나라에서 얻는 영혼 구원과

영원한 생명을 희망하고 추구하면서 예수님의 가르침대로

생활하려고 노력하는 신앙생활이 되어야 한다는 것입니다.

송영진 모세 신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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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성부와 성자와 성령의 이름으로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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