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본향을 향하여♬~72처 나바위성지(전주교구) 1,2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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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4861 이명남 [agnes536] 스크랩 2025-10-3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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첫 번째 순례길.....2022.03.15
열화와 같은 성원에 힘입어 드디어...잔뜩 겁먹고 있던 전주교구 순례길을
떠나기 위해 일찍부터 서둘러 길떠날 차비를 한다.
먼길에 겁 잔뜩먹고 떠나면서 이것저것 잠자리침낭 모포들까지 차에 싣느라
바쁘다.
"참! 혈압약도 꼭 챙겨먹고 가야되지..." 하며 소화제. 알보칠. 영양제...비상약들
꼼꼼히 집어넣고, 저녁부터 비가내린다니 우비두개.. 우산들... 만반의 준비를 끝내고
오늘도 우리의 충마에게 밥 잔뜩 먹이고 왕복 600여킬로의 길을 부탁한다.
강원도길은 의정부 구리편 길로 가는데 전북 익산의 나바위길은 서해쪽의 길을
잡아 고삐를 당긴다.
관산동 고가를 올라타서 달려가다 김포를 지나는데,.....
"아 ! 맞다 혈압약.... 딴것 챙기다가 내 혈압약을 안묵고 왔네... 우짜지....음 우짜지.."
이머리 저머리 다 돌려대다... 혹시라도 오늘 못돌아오면 이틀에 한번 먹는 약을
오늘안먹으면 나흘째까지 거르다보면 수술한 머리속 혈압이 올라 큰일이라도 ...?
"반석아부지... 차 돌려가지고 세천사네 집이 가까우니 걸로 가서 비상약이라도
챙겨와야 겠네요..."
외곽고속도로위라 저 멀리 강화초입을 가르는 길에서 유턴해서 돌고돌아
풍동 숲속마을까지 왔다 다시 오르는 순례길은 벌써 한시간을 까먹어버렸다.
네다섯시간을 달려 12시에 도착예정인 익산나바위에 1시4분에 도착하게 되었다.
관산동성당 설립 다음해 봄 피정나들이로 화전성당/행신1동성당/관산동성당의
3개 성당의 식구들이 기차를 타고 강경역에 내려 도보순례로 올랐던 15년전의
기억을 다시한번 반추하고자 전주교구 첫번째 순례처로 잡았던 것이다.
2살 리노를 지애비 무등에 태워 비포장길 뒤뚱힘겨워하며 걸어가던 그 길위에는
50대 초반의 리노할매... 60초반의 리노할배....새색시같던 리노에미 미카엘라..
20대 하늬의 생기발랄한 얼굴도 방글거리고... 한카리스마 선글라스의 글라라님도 걸어가고..
좀은 젊은날의 할배. 할매들의 대 행진이 구부구불 긴 행렬은 마치도 잔치마당 그리며
설레이는 모두의 시간들이었으라...
그옛날 온갖 고초와 고문으로 비틀거리며 함께함께 걸어가던 긴 순교선조들의 행렬 또한
하늘 잔치 그리며 지금의 시간들을 뒤로하고 하염없이 걸어가듯....!!
기억속 나바위는 넓다란 풀이나있는 광장언덕과 함께 높은자리 기와건물이 고고하게
앉아있던 성전 앞 풀밭에 많은 사람들이 모여앉아 내밥 .. 내 도시락.... 내 꺼.. 아우성치며
금강산 식후경 쟁탈전이 벌어지는가 하면...
술한잔씩 나누며 적조했던 소식들속 반가운 얼굴들과 어울리다보니 어느새 얼큰히 오른
술기운은 별의별 모습으로 본래의 목적을 잃어버린채 봄소풍의 자리로 기가막히게 변해있었다.
부른배 두드리며 그늘나무 아래 드러누워 한숨살짝 자고일어나선 모여라의 나팔과 함께
다시 강경역으로 걸어가 집으로 돌아온 기억밖에는 없다는게 오늘은 많이 송구스럽다.
지금 이리도 숙제처럼 하는 십자가길도.... 성체앞 조배도... 성모님과의 신비의 장미송이도..
그날엔 하나도 등장한 기억이 없는 리노할매의 영적신앙의 현주소일테다.
그전날 150여명의 전신자들 아침식사를 준비해대느라 이윤주(가브리엘라) 자매와 밤이 새도록
새벽7시 기차시간에 맞춰 담아나르기위해 죽기살기로 책임완수를 해내었으니
그 시간까지 살아있다는게 작은 기적의 시간일테다..^^
나바위는 한국의 첫 사제 김대건 신부가 중국에서 사제가 되어 조국에 입국하며
첫발을 디딘 축복의 땅으로 ‘첫 마음의 성지’ 로 불리고 있다.



15세의 나이로 조국을 떠나 마카오에서 사제 수업을 마치고 1844년 12월 부제품을 받은 김대건 신부는,
1845년 1월 선교사들의 입국 통로를 개척하고 그들이 거처할 집을 마련코자 서울에 입국하였다.
그리고 1845년 4월 선교사를 모셔올 목선을 구입하여 11명의 교우들과 함께 중국으로 돌아가
그 해 8월 17일 상해 금가항 성당에서 사제로 서품을 받았다.



김대건 신부는 8월 31일, 11명의 교우와 페레올 주교, 다블뤼 신부와 함께 타고 갔던
배편으로 귀국길에 올라, 죽을 고비를 수없이 넘긴 끝에 1845년 10월 12일 밤 8시 경
강경에서 좀 떨어진 ‘황산포 나바위 화산 언저리’에 닻을 내렸다.
나바위로 정박한 이 일을 페레올 주교는 그의 편지에서 ‘하느님의 섭리’라고 하였다.



화산의 끝자락에 넓은 바위가 있어 나바위라 불린다는 나바위성지....
금강의 강변에 자리한 화산은 산 밑 서북쪽으로 물이 닿았고 갈대숲이 우거졌다.
이곳에 나바위 성당이 설립된 후 초대 대구 교구장이신 드망즈 주교가 해마다
5, 6월이면 연례피정을 화산 정상에 있는 나바위에서 가졌다한다



개인피정 장소로 더할 수 없이 아름답고 조용한 분위기를 감탄하며 피정을 하시는
주교님을 위해 베르모렐 신부는 1915년 정자를 지어드렸다.
이 정자를 드망즈 주교는 바랄망. 아름다울 금의 망금정이란 이름으로 지어
오늘도 늠름하게 앉아 저 아래 금강을 내려다보며 그날의 평화로움을 선사한다.



고생하며 무거운 짐진자 내게오라신 예수성심상에 깊은 절하고 내려오는
작은 동산은 그옛날 입이터져라 먹고 배두드리던 너른 풀밭이 있던 자리였는데...?



성전옆 역사관 조촐한 건물안에는 험난한 바다를 헤치고 온 강심장 라파엘호의 작은 모형도 있고
초기 사제들이 입고 제사를 드렸던 황금색제의들도 걸려있고... 성합. 성작의 오랜 역사속
보물들이 지나간 시간속에 귀한 보물로 투박한 먼지속에서도 반짝반짝 빛나고 있다.



성전앞 귀퉁이에 작은 치유의 경당이 있고. 그 입구에 밧줄의 예수께서 엉거주춤
수난의 웅크림으로 모두의 회개를 기다리고 계신다.
아빌라의 데레사 성녀를 회심케한 칭칭동여맨 밧줄에 묶인 예수상이라 하는 이야기도 전해준다.



경당 저 꼭대기에는 진회색의 날렵한 새벽닭이 꼬꼬댁~! 울어대며 베드로
후예들의 통곡을 기다리는 예수님의 애끓는 성심을 온 땅으로 전해주는듯....
온갖 유혹과 악이 난무하는 세상살이... 주님을 세번이나 부정한 베드로의
눈물어린 회심으로 내적 외적 아픔의 고통을 기도하며 청하는 치유의 방에 앉아
꿇어앉은 리노할매도 주변의 온갖 아픔들을 위해 주님의 아픔위에
또 한 더미 올려보태며 염치없는 청원을 드려보며 일어서 나오는데



오늘도 우리의 리노할배는 작은 경당닮은 치유의 경당 봉헌함에 작은 정성
넣어드리며 뿌듯해하며 돌아서 나오는 바깥 언덕엔 아까부터
기분좋은 바람이 불어댄다.



조용한 성전 제대앞에 앉아 오늘은 양팔높이 들고 성모님과 함께 신비의
장미송이 엮어드린다. 주님 수난의 시간이라 각성한 양심성찰과 함께....
35여년전 젊은 날엔 할배와 함께 양팔높이 하늘향해 올리고 5단 묵주도 죽어라
힘들지않게도 기도했던 시간이 있었지만 지금의 할매에겐 한단의 양팔기도도
무척이나 힘이 드는게 속상하고 안타깝다.



십자가 길 오르는 입구에 서 계신 평화의 모후상의 전설을 읽어가며
동화속 전설나라 이야기를 읽는듯 재미속에 빠져간다.
초대주임 임요셉 베르모렐신부께서 성당을 지으려고 하는데,
성당귀퉁이 땅에 작은 암자가 있어 찾아가 좀 양보해주시기를 청하자
일언지하 거절하던 스님양반이... 그로부터 두세달 지난 어느날 찾아와서,
"꿈에 어떤 여인이 나타나서 이곳은 내자리이니 빨리 이곳에서 나가라고"
호통을 쳐대는 실제상황을 겪은후에 혼비백산하여 떠나갔다 한다는 이야기...^^
그후에 성당을 짓고 암자가 있던 자리에 지금의 평화의 성모상을 모셔놓고
저아래 나바위성전을 굽어보며 우리의 기도를 자비로이 간구해 주시고 있다 한다.



성전뒤 산길 위로는 커다랗고 널따란 바위들이 앉아있는 바위산... 나바위산의
모형으로 십자가의 길답게 우리를 인도하며 따라오라~ 올라오라~ 손잡아 이끌며
구석구석을 내어보여 철든 믿음의 사람으로 재무장 시켜주는듯....
감사롭다.. 또 황홀하다.... 그날은 못보았던 보물들의 진가를 세월이 지난 오늘
이리도 자비롭게 보여주시다니...!!












초기 신자들의 고난과 여정으로 만들어진 김대건신부의 순교탑을 우러르며
"교우들 보아라~!" 하시는 우렁차고 대쪽같은 목소리의 김대건 신부님의
저 모세의 신명기속 다짐의 소리를 들으며 "예! 그리살겠습니다"



프랑스신부 소세신부의 묘소가 바위언덕위에 평화로이 잠들어 계시고...
저 아래 멀리 넓고도 넓은 평야와 함께 펼쳐진 바다그림은 제주의 바람보단 1급 아래인
금강의 바람이 기분좋게 불어대고 있다.



십자가의 길에 함께한 오늘.. 너무나 편안한 우리예수님의 모습이
리노할매를 위로하며 천천히 오라시며 고통의 손 내밀어 이끌어주시어
힘든 바위산 십자가의 길을 무사히 끝냈다.


















망금정 뒤쪽 높고 넓은 바위벽에 새겨진 삼존불의 흐릿한 조각상들 또한
아이러니한 조화로 순교자의 후예들을 부르며 그날의 소식들을 전하고 있다.
고기잡이 나간 배들의 만선과 무사안녕을 기원하며 간절한 마음으로
염원하던 옛적 풍경을 들려주는듯한 바위벽 불심또한 하느님 천심일테다.



돌아돌아 내려온 나바위성지의 순례시간은 이미 2시간여를 가리키고 있다.
자전거 부대의 젊은 청년순례객들도 보이고...
가족무리의 순례객들... 몇팀들...
젊은 남녀의 십자가길 따라 걷는 모습들....
제법 여러사람들의 순례 발걸음들이 적적했던 산야같던 나바위를 두드려 대고 있다.
"깨어나라~~ 회개하라~~ 아픔씻고 돌아가 다시는 죄짓지 마라~"



두번째 순례길.......2023.08.04
생전 처음으로 3박4일의 정식 여름 휴가를 받아 떠나는 성지순례의 길이다

무박이나 일박이일의 순례길을 다녀오려면 엄청 마음과 몸이 고달프고 힘든데
우선 오늘은 마음부터 부자가 되어 빨리 빨리 란 말을 하지않아도 되는게 신기할 따름이다.
관산동성당에 금요일 10시 미사를 봉헌하고 10시55분에 출발하여 찾아가는 첫번째
코스 나바위이다. 이미 바깥날씨는 28도로 시작하여 한낮엔 37도까지 오른다고 하니
좀 아찔하기도 하지만.... 오늘도 용감무쌍한 우리 부부는 앞만 향하여 달려간다.
최고의 피크인 휴가기간이라 차들의 행렬이 장난이 아니다. 밀리고, 서고...
공주 알밤휴게소에서 내려 쉬어가는 길이 아마도 5시간은 족히 가야 될것같다.

3시 50분 에서야 도착한 나바위의 지글지글한 태양은 차문을 열기가 겁날 정도로
온 땅을 달궈대지만 서도...... 내려 서서.... 성모님 앞에 촛불의 향으로 신고식을 끝낸다.



아무도 없는 성전에 들어 묵주한단과 함께 치유경당 또한 들어가 조배기도를 마치고
전에 왔을 때완 다른 십자가길로 걸어간다.





간간이 나무잎들의 그늘이라도 있었으면 좋으련만. 완전 땡볕을 우산으로 버텨가며
깡다구 하나로 걸어내는 리노할매의 삶의 저력은 하느님께 받은 혼자만의 달란트?..^^




























휴~ ! 다 끝나갈 무렵 뜬금없이 나타나는 나무 배한척이 덩그마니 땅바닥에
배깔고 있다...
"할배요. 이기 바로 그 유맹한 라파엘호 아인교?...맞네... 참 반갑다"


저어기 꼭대기 망금정에라도 올라 홀딱젖은 땀이라도 씻고 가야할 참으로
마지막 고비 오르는데 온 익산땅을 울려퍼지는 경보 메시지...
"군민 여러분은 외출을 자제하고 물을 많이 마시며... 휴식을 ~~"
"아부지예~ 리노할배 할매가 아마도 이 더위에 미쳤나 봅니더~!!"

† 성부와 성자와 성령의 이름으로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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