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연중 제33주간 화요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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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86368 박영희 [corenelia] 스크랩 2025-11-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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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중 제33주간 화요일] 루카 19,1-10 “주님! 제 재산의 반을 가난한 이들에게 주겠습니다. 그리고 제가 다른 사람 것을 횡령하였다면 네 곱절로 갚겠습니다.”
오늘 복음의 장소적 배경이 되는 ‘예리코’는 해수면보다 258미터나 아래에 있는, 지구상에서 가장 낮은 고도에 있는 도시입니다. 이스라엘에서 가장 높은 곳에 건설된 도시 예루살렘과는 무려 1,000미터가 넘게 차이가 나지요. 그런데 예수님께서 지구상에서 가장 낮은 도시에 살던 가장 키 작은 사람, 가장 짙은 죄의 어둠 속에 살던 자존감 낮은 사람인 자캐오를 찾아오십니다. 자캐오가 그런 큰 영광과 복을 누릴 수 있었던 것은 주님을 간절히 보고 싶어했기 때문입니다. 그 간절함으로 키가 작다는 핸디캡을 극복하기 위해 노력했기 때문입니다. 세관장이며 부자인 그가 볼품 없는 돌무화과나무 위로 올라가는 모습을 보고 사람들은 ‘죄인’인 놈이 부끄러움도 모르고 체신머리 없는 짓을 한다고 손가락질 했을 것입니다. 작은 체구로 나무에 올라가려고 낑낑대는 모습을 보며 비웃었을 것입니다. 그러나 그런 건 자캐오에게 중요하지 않았습니다. 예수님을 보고야 말겠다는 일념으로 위신과 체면을 다 버리고 자기가 할 수 있는 최선의 노력을 다 함으로써 비로소 그토록 보고자 했던 그분을 멀리서나마 바라보게 되었지요.
그런데 그에게 놀라운 일이 일어납니다. 그의 모습을 눈여겨보시던 예수님께서 마치 오랫동안 알고 지낸 벗처럼 다정한 목소리로 그의 이름을 부르시며, 그날 저녁은 그의 집에 머무르겠다고 선언하신 것입니다. 동족의 등을 쳐먹는 ‘배신자’라고 욕만 먹던 그가, 사람들에게 ‘죄인’이라고 손가락질 받으며 무시당하던 그가 사람들로부터 참된 예언자이자 스승으로 존경받는 분을 자기 집에 모시고 함께 식사까지 하게 되었으니 그보다 더 큰 영광은 없겠지요. 그래서 그는 얼른 내려와 예수님을 자기 집에 모십니다. 그리고 예수님과 식사를 나누며 그분과 깊은 대화를 나눔으로써 완전히 ‘다른 사람’이 됩니다. 예수님을 알기 전에는 돈을 최고의 가치로 여기며 자기 자신만 생각했던 그가, 가난한 이들을 위해 자기 재산의 절반을 봉헌하겠다고 마음 먹은 것입니다. 예수님께서 소중히 여기시는 이들을 자신에게도 소중한 존재로 받아들였기 때문입니다. 또한 다른 사람 것을 횡령하여 부정한 방법으로 모은 재물은 네 곱절로 갚아주겠다고 선언합니다. 이는 율법에서 규정하는 것보다 훨씬 더 큰 배상이었습니다. 율법에는 부당하게 얻은 재산이 있으면 그것의 5분의 1을 배상하게 되어 있는데, 그는 무려 그 스무 배에 달하는 큰 금액을 내놓겠다고 한 것입니다. 주님을 자기 집 뿐만 아니라 자기 마음과 삶에 모시기 위해서는 참된 회개가 필요함을 알았기 때문입니다. 그렇기에 주님으로부터 용서받은 기쁨을, 참으로 회개하게 된 마음을 보속이라는 실천으로 드러낸 것이지요.
하지만 그 모습을 지켜보던 사람들, 특히 자신이 의롭고 거룩하게 산다고 착각하던 종교 지도자들은 예수님을 못마땅하게 여기며 투덜거립니다. 그들은 예수님을 자기 마음과 삶에 모시고 구원받은 자캐오를 부러워하기만 할 뿐, 정작 자신이 구원받는데에 필요한 노력을 할 마음이 없었기 때문입니다. 그들에게는 예수님을 만나기 위해 체면과 위신을 버릴 용기도, 자신이 아끼는 재산을 필요한 이들에게 기꺼이 나눌 각오도, 예수님께서 원하시는 뜻을 생각하며 회개할 의지도 없었던 것이지요. 그런 그들에게 구원은 그저 ‘그림의 떡’일 뿐이었고 그로 인해 아쉽고 분한 마음을 자캐오에 대한 질투로, 예수님에 대한 불평 불만으로 드러낸 겁니다. 지금 나는 어떤 모습으로 살고 있습니까? 주님을 만나기 위해, 그분을 내 마음과 삶에 모시기 위해 어떤 노력을 하고 있습니까? 혹시 열심히 신앙생활 하는 이를 시기 질투하며 불평과 불만을 입에 달고 살지는 않는지요?
* 함 승수 신부님 강론 말씀
† 성부와 성자와 성령의 이름으로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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