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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의미사 (녹) 2026년 1월 20일 (화)연중 제2주간 화요일안식일이 사람을 위하여 생긴 것이지 사람이 안식일을 위하여 생긴 것은 아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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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영근 신부님_ “세상의 죄를 없애시는 하느님의 어린양이시다”(요한 1,29)

187479 최원석 [wsjesus] 스크랩 2026-01-18

* 오늘의 말씀(1/18) : 연중 제2주일

* 제1독서 : 이사 49, 3. 5-6.

* 제2독서 : 1토린 1, 1-3

* 복음 : 요한 1, 29-34

29 이튿날 요한은 예수님께서 자기 쪽으로 오시는 것을 보고 말하였다. “보라, 세상의 죄를 없애시는 하느님의 어린양이시다. 30 저분은, ‘내 뒤에 한 분이 오시는데, 내가 나기 전부터 계셨기에 나보다 앞서신 분이시다.’ 하고 내가 전에 말한 분이시다. 31 나도 저분을 알지 못하였다. 내가 와서 물로 세례를 준 것은, 저분께서 이스라엘에 알려지시게 하려는 것이었다.” 32 요한은 또 증언하였다. “나는 성령께서 비둘기처럼 하늘에서 내려오시어 저분 위에 머무르시는 것을 보았다. 33 나도 저분을 알지 못하였다. 그러나 물로 세례를 주라고 나를 보내신 그분께서 나에게 일러 주셨다. ‘성령이 내려와 어떤 분 위에 머무르는 것을 네가 볼 터인데, 바로 그분이 성령으로 세례를 주시는 분이다.’ 34 과연 나는 보았다. 그래서 저분이 하느님의 아드님이시라고 내가 증언하였다.”

* <오늘의 강론>

오늘은 연중 제2주일입니다. 오늘 <말씀의 전례>는 ‘예수님이 누구신지’를 증언해줍니다.

<제1독서>는 ‘하느님께서는 당신의 종을 통해 당신의 구원이 땅 끝까지 다다르도록 민족들의 빛으로 세울 것’이라는 예언자 이사야의 예고입니다.

<제2독서>에서 바오로 사도와 소스테네스 형제는 ‘하느님의 뜻에 따라 그리스도 예수님의 사도로 부르심을 받았음’을 증언하며, 성도들에게 하느님 아버지와 주 예수 그리스도의 은총과 평화를 빌어 줍니다.

<복음>에서 세례자 요한은 예수님을 두 가지로 증언합니다.

먼저, ‘첫 번째 증언’은 예수님이 “하느님의 어린양”이시라는 증언합니다.

“보라, 세상의 죄를 없애시는 하느님의 어린양이시다.”(요한 1,29)

그런데 예수님이 “하느님의 어린양”이란 말은 대체 무슨 말일까요?

사실, 우리는 오늘도 미사 중에는 ‘하느님의 어린양’이란 이름을 다섯 번이나 부릅니다. <대영광송>에 한 번(“하느님의 어린양, 세상의 죄를 없애시는 주님, 자비를 베푸소서.”), <영성체 예식>에서 네 번(“하느님의 어린양, 세상의 죄를 없애시는 주님, 자비를 베푸소서(두 번). 하느님의 어린양, 세상의 죄를 없애시는 주님, 평화를 주소서.”. “보라 하느님의 어린양 세상의 죄를 없애시는 분이시니 이 성찬에 초대받은 이는 복되도다.”) 부릅니다.

그런데 <성경>에서는 “어린양”의 네 가지 의미를 찾아볼 수 있습니다.

<첫째>는 “야훼 이레”, 곧 하느님께서 준비한 제물로서의 “어린양”(야훼이레; 야훼께서 준비하신다)입니다. 아브라함이 이사악을 데리고 모리야 산으로 갔을 때, 이사악이 "불과 장작은 여기 있는데, 번제물로 바칠 양은 어디 있습니까?"하고 묻자, 아브라함은 "얘야, 번제물로 바칠 양은 하느님께서 손수 마련하실 거란다."(창세 22,8)에서 보듯이, “어린양”은 하느님께서 제사에 쓰기 위해 준비한 ‘제물’입니다.

<둘째>는 ‘파스카의 어린양’(탈출 12,1-27;레위 23,5-6;신명 16,1-7)입니다. 곧 하느님께서서 모세를 통해 이집트의 맏자식을 치는 죽음의 재앙을 내렸을 때, 이스라엘 백성의 맏아들을 살리기 위해 문설주에 발라진 ‘희생양’입니다.

<셋째>는 아자젤”, 곧 대신 죽는 ‘속죄양’으로서 “어린양”입니다. 이스라엘 백성들은 40여 년 동안 사막을 헤매면서 사나운 맹수들이 위협할 때마다 염소나 양을 한두 마리 맹수들에게 보내주었고, 가나안에 정착 후에는 일 년 동안 지은 모든 죄악을 용서받기 위해 제의로 바쳐지면서(매년 7월 10일), 인간의 죄를 대신하는 속죄양 두 마리를 준비하여 한 마리는 하느님께 번제로 불살라 드리고, 다른 한 마리는 대제사장이 자기와 온 민족의 죄를 자복한 후에 광야로 내보냈던 “아자젤”, ‘속죄양’입니다.

<넷째>는 승리하신 ‘천상의 어린양(묵시 5장)으로서 예수님께서는 “하늘의 어좌에 앉아 계신 분과 함께 찬미와 영예와 영광과 권세가 영원무궁하신 분”(묵시 5,13 참조)임을 드러내줍니다.

이처럼, 오늘 <복음>은 “하느님의 어린양”이란 표상을 통해서 예수님의 신원을 밝혀줍니다. 그런데 특별히 세상의 죄를 없애시는 하느님의 어린양라는 표현하고 있습니다. 여기서, ‘세상’이란 물질적 공간적 그릇이 아니라 온 세상 사람들을 의미한다고 볼 수 있습니다. 곧 이스라엘 사람들만이 아니라 이방 사람들도, 옛날 사람들만이 아니라 오늘날 사는 사람들도 그리고 장차 이 세상에 태어날 사람까지도 포함하는 모든 사람들, 곧 ‘전 인류’를 표현합니다. 그리고 ‘세상의 죄’란 과거 현재 미래의 모든 죄들, 동서고금의 전 세계 모든 인류의 죄들을 포괄하는 표현이라 할 수 있습니다. 따라서 예수님은 전 인류의 죄를 대속하는 ‘속죄의 어린양’이심을 말해줍니다.

이처럼, 우리는 주님께서 ‘세상의 죄인들을 없애시는 분’이라고 하지 않고 “죄를 없애시는 분”이라고 고백하고 있듯이, 우리 또한 세상의 죄를 없애고, 평화를 주는 ‘어린양’으로서 살아가야 할 일입니다. 곧 “세상의 죄를 없애시는 하느님의 어린양”(요한 1,29)을 따르는 우리 역시 “세상의 죄를 없애기” 위해 바치는 삶을 살아야 하는 소명을 지니게 되는 것입니다.

이어서, 세례자 요한은 ‘예수님을 자신보다 뒤에 오신 분이지만 당신보다 앞서신 분이요, 이미 전에 증언한 분이요, 자신이 세례를 준 것이 바로 이 분을 세상에 알려지시게 하기 위함’이라고 덧붙인 다음, ‘두 번째 증언’으로 예수님이 “하느님의 아드님”이시라는 증언입니다.

그는 먼저 “나는 성령께서 비둘기처럼 하늘에서 내려오시어 저분 위에 머무르시는 것을 보았다. ~성령이 내려와 어떤 분 위에 머무르는 것을 네가 볼 터인데, 바로 그분이 성령으로 세례를 주시는 분이다.”(요한 1,32-33)라고 환시를 통해 보고 들은 바를 말하고, “과연 나는 보았다. 그래서 저분이 하느님의 아드님이시라고 내가 증언하였다.”(요한 1,34)라고 증언합니다.

여기서, “성령께서 하늘에서 내려오시어 예수님 위에 머무르셨다는 것”은 예수님의 신원이 존귀하신 분, 곧 아버지의 권능이신 성령으로 도유되시는 분이심을 드러내며, “성령께서 비둘기처럼 하늘에서 내려오신 것”은 노아의 홍수 때 비둘기가 생명의 푸른 잎사귀를 물어온 것처럼, ‘새로운 생명’을 물어오는 “성령으로 세례를 주시는 분”이심을 드러내줍니다. 곧 ‘생명’을 주시는 ‘하느님의 아드님’이심을 알려줍니다.

그렇습니다. 그러니 성령으로 세례를 받은 우리 안에서는 하느님 아드님의 신적 생명이 자라고 살고 있는 것입니다. 이토록, 우리는 그분을 옷 입듯이 입었고(갈라 3,27), 그분은 우리 안에서 사시는 것입니다.

이 얼마나 놀랍고 영광된 일인지요!! 그러니 이제 그분이 우리 안에서 우리의 삶을 통하여 당신의 생명을 활짝 드러내실 수 있도록 해 드려야 할 일입니다. 아멘. 

 

“세상의 죄를 없애시는 하느님의 어린양이시다”(요한 1,29)

주님!

죄를 탓하기보다

스스로 짊어질 줄을 알게 하소서.

허물을 뒤집어쓰고

하늘을 여는 제물이 되게 하소서.

기꺼이 바치는 삶이기에

그 어떤 억울함도 원망도 없게 하소서.

위하여 내어놓는 삶이기에

당신의 생명이 피어나게 하소서. 아멘. 



† 성부와 성자와 성령의 이름으로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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